청와대로 가는 길은 끝내 열리지 않았다. 쌍용자동차 해고자 전원복직과 정리해고 철폐를 위한 오체투지 행진단은 청와대를 약 1km 앞두고 경찰 병력에 가로막혔다. 서울 광화문 정부서울청사 앞 아스팔트 위에서 박제된 정물처럼 누워 버텼지만 소용없었다. 이들이 24시간을 보내는 동안 근처에 모아둔 생수병 14개는 모두 얼었다.
12일 오전 11시 쌍용차·기륭전자·스타케미칼 등 해고노동자들이 참여한 오체투지 행진단 100여 명은 지난 5일 동안의 오체투지 행진을 마무리 짓는 기자회견을 열었다. 경찰에 가로막히지 않았다면 이 기자회견은 전날 오후 2시 청와대 인근 청운동사무소 앞에서 열릴 예정이었다.
청와대로 가는 길목 완전 차단... 밤샘 농성으로 긴급 후송되기도오체투지 행진이 농성으로 바뀐 건 지난 11일 밤부터다. 지난 7일부터 쌍용차 구로정비사업소, 여의도 국회와 여야 당사, 서초동 대법원, 한남동 주한인도대사관 등을 오체투지로 행진한 이들은 이날 오전 10시 30분 덕수궁 앞 대한문을 출발해 청운동사무소까지 2km를 행진한 뒤 집으로 돌아갈 예정이었다.
하지만 경찰은 오전 11시 40분께부터 행진단 앞을 가로막았다. 이들이 대한문에서 정부서울청사까지 약 1km를 오는 데 5시간이 넘게 걸렸다. 정부서울청사에서 청와대로 가는 길목에서는 단 한 걸음도 허용되지 않았다. 길을 열어달라며 밤을 지새우는 사이 행진단 두 명이 호흡곤란과 저체온증, 전신마비 등을 호소하며 긴급 후송됐다(관련기사:
길막힌 오체투지, 결국 한겨울 길바닥 농성으로).
정부서울청사 앞에서 밤을 지새운 행진단은 12일 오전 8시께 다시 오체투지 행진을 시작했다. 경찰 방패 사이로 끈질기게 몸을 밀어 넣으면 이내 사지가 들려 되돌아 나오기를 반복했다. 박근혜 대통령이 신년 기자회견을 시작한 오전 10시에도 같은 풍경이 반복됐다.
약 3시간을 경찰 방패와 씨름하던 이들은 오전 11시께 자리에서 일어났다. 대부분의 참가자들이 굳은 몸을 일으켜 세우기 위해 이를 악물었다. 진행팀이 달라붙어 한참 동안 사지를 주무른 뒤에 간신히 일어선 참가자도 있었다. 가슴부터 발목까지 흙먼지로 더렵혀진 소복을 입은 참가자들은 침울한 얼굴로 청와대를 등지고 앉았다.
"더 크고 장엄한 행진으로 나아갈 것"... 3차 오체투지 행진 예고
지난 5박 6일 동안 행진단 맨 앞줄에서 오체투지를 했던 김득중 전국금속노조 쌍용차지부 지부장은 "침통한 마음을 감출 수 없지만 이 자리에 함께해준 이들의 고마운 마음을 받아 해고자 복직을 위한 싸움을 계속 이어 나가겠다"라고 밝혔다. 이어 그는 "쌍용차 싸움은 지지 않을 것"이라고 단호하게 말했다.
소복을 입고 1박 2일 동안 오체투지에 나선 최종진 민주노총 수석부위원장은 비정규직과 정리해고 철폐를 위한 '대규모 투쟁'을 선언했다. '단결투쟁'이라고 쓴 붉은 머리띠를 두른 그는 오는 15일 민주노총이 주관하는 첫 집회를 예고한 뒤 "더 이상 박근혜 정부와 자본의 질주를 용납할 수 없다"라면서 "민주노총이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투쟁을 업고 싸워나가겠다"라고 말했다.
이날 행진단은 ▲ 쌍용차 해고자 전원복직 ▲ 콜트콜텍 노동자 복직 ▲ 스타케미칼 노동자들의 고용 승계 ▲ 정리해고-비정규직 법제도 전면 폐기 등을 요구하며 낮 12시께 자진해산했다. 이들은 "정권과 자본의 테러에 맞서 더 크고 장엄한 행진으로 나아갈 것"이라며 3차 행진을 예고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