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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엄마, 뭐하세요?"
"응, 슬리퍼가 뜯어져서."

등 뒤에서 들려오는 아이의 목소리에 나는 무심하게 대답했다.

"슬리퍼? 엄마~~~~."

어느새 내 옆으로 다가온 아이의 놀란 목소리에 나는 하던 일을 멈추고 아이를 바라보았다.

"그걸 왜 꿰매고 있어요? 그러다가 다치면 어떻게 하려고. 그깟 슬리퍼가 얼마 한다고..."

아이는 못마땅한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얘는, 여기 떨어진 부분만 꿰매면 되는데 굳이 돈 들여서 사긴 왜 사 니?  베란다에서 신는 슬리퍼 얼마나 신는다고."
"제발 그러지 좀 말아요. 요즘 세상에 엄마처럼 사는 사람이 어디 있어요? 제가 용돈으로 사올 테니 그만 두세요."
"얘는, 너나 그만 둬. 용돈은 돈이 아니니? 용돈 올려달라는 말이나 하지 말아."

이번에는 내가 못마땅한 표정으로 아이를 바라보았다. 그러면서도 다른 한편으로는 내가 너무 아이에게 궁색한 모습을 보여주고 있는 건 아닌지 하는 생각도 들었다. 그도 그럴 것이 평소 작은 물건을 살 때도 몇 번을 생각하는 것은 물론, 집에 들어온 물건은 필요가 없어도 창고에 쌓아둘 망정 쉽게 버리지 못하기 때문이다.

'괴짜 계산돌이', 우리 남편 별명입니다

괴짜계산돌이, 다 이유있다
 괴짜계산돌이, 다 이유있다
ⓒ clipar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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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여년도 훌쩍 넘은 세월 동안 아껴 쓰고, 나눠 쓰고, 바꿔 쓰고 다시 쓰는 '아나바다' 운동이 몸에 배어있다 보니 아이들이 태어났을 때 썼던 물건들을 지금도 쓰고 있다. 그 뿐인가? 전기나 수도요금 같은 것들에도 민감해서 요금이 전 달보다 많이 나오면 식구들에게 벌금을 물어 볼멘소리를 듣곤 한다. 그런데 이런 나보다 한 술 더 뜨는 사람이 있으니 바로 남편이다.

"그러니까 이렇게 작은 것들이 모이면 큰 금액이 될 거고, 그렇게 되면 결국 소비자들이 손해를 보는 거 아닙니까? 그러니까 속히 시정을 해야 합니다."

남편의 목소리는 한 옥타브쯤 높아져 있었다. 그렇게 10여분을 통화한 후에야 남편은 전화기를 내려놓았다. 아이들과 나는 궁금한 표정으로 남편을 쳐다보았다.

"내가 지난 주 동안 전화 통화요금 내역을 실시간으로 검색해봤는데 아, 글쎄 내 전화기에 찍힌 통화시간이랑 인터넷으로 확인된 시간이랑 계속  차이가 나는 거야. 인터넷으로 실시간 요금을 확인하는 프로그램이 있거든, 그 차이가 불과 몇 초이지만 그게 한 달이 되면 몇십 분으로 차이가 나고, 또 나만 사용하는 게 아니잖아. 전화를 사용하는 사람들이 모두 그렇다면 그 금액이 얼마나 크겠어. 그래서 시정해 달라고 한 거야."
"......."
"회사에서도 인정을 했어. 오히려 고맙다고 하더라고, 자기들도 이런 문제가 생길 수도 있다고 예견을 했었지만 이렇게 직접 소비자한테 이의 제기가 들어온 건 처음이라나, 정식 안건으로 올려 회의를 열겠다는 걸."

남편의 얼굴에는 만족스러운 웃음이 배어 있었다.

"그럼 아빠가 일주일 동안 매일 체크하신 거예요?"
"물론이지. 회사에서 실시간 요금확인제를 해놓았으니 얼마나 정확한지 봐야지. 그리고 나도 어느 정도 데이터가 있어야 말을 할 수 있지."
"역시 아빠는 계산돌이야. 우리는 그렇게 해볼 생각조차 하지 않았는데."
"으음, 아니, 그건 소비자가 해야 할 일이야. 당연히 내가 쓴 만큼 돈을 지불해야지. 왜 쓰지도 않은 비용을 지불하냐고......"

아이들의 말에 남편은 소비자의 권리에 대해 한 차례 연설을 시작했다. '괴짜계산돌이'. 남편에게 붙여진 별명이다. 언제, 어디서나 정확해야 한다는 남편은 별명만큼이나 매사 빈틈이 없는 것은 물로 남들은 생각지도 않는 일에 목숨을 걸곤 한다.

그뿐인가? 산수적인 계산은 물론, 말을 할 때도, 다른 사람의 말을 들을 때도, 물건을 구입할 때도, 행동을 할 때도 대충 넘어가는 법이 없다. 자신이 말을 할 때는 경청을 해야 하고, 묻는 말에는 처음부터 끝까지 자세히 설명하듯 대답을 해야 한다. 물건을 구입할 때도 계획을 세워서 가격비교를 해보고.

가끔 자기 기준에 어긋나는 행동을 하거나 기대에 못 미칠 때는 그냥 넘어가는 법이 없다. 그 자리에서 풀어야 한다. 그 뿐인가? 아무리 술에 취해 있어도 자신이 입고 있는 재킷이나 바지 주머니에 무엇이 들어있는지 정확히 알고 있으니. 그것도 왼쪽, 오른쪽, 안쪽까지 구별해서.

좋게 말하면, 아니 좋게 말할 것도 없이 그냥 괴짜계산돌이이다. 특히 나는 남편의 성격과 정반대이기 때문에 잘못했다는 소리를 입에 달고 산다. 그런 나를 보고 남편은 인생을 덤으로 산다며 못마땅해하지만 나는 은근히 그런 남편 비위를 맞추며 살고 있는 내가 대견스러울 따름이다.

남편의 평소 씀씀이는 이렇게 알뜰하지만, 힘들고 어렵게 사는 사람들을 매달 후원하기도 한다. 돈은 버는 것도 중요하지만 쓰는 것도 중요하다는 말을 실감하게 된다.

우리 부부가 이렇게 쫀쫀한 생활을 하게 된 것은 남편의 사업이 부도가 나서 한동안 경제적으로 힘든 시간을 보냈기 때문이다. 아이도 물론 그런 사실을 알고  있지만 그래도 아이는 아이인지라 나와 같을 수는 없다는 것도 잘 알고 있다. 그렇지만 마음 속으로는 이런 엄마, 아빠를 이해해주길 바라게 된다.

"티끌 모아 태산이라는 말도 있잖니. 너도 저금통에 동전을 넣을 때 동전 떨어지는 소리가 좋다고 했고, 엄마도 그래. 이렇게 조금만 수고하면 절약될 때마다 기분이 좋은 거야. 별 생각 없이 사서 쓰고, 버리는 것보다는 한 번 더 생각하면 더 좋다는 걸."
"네, 네. 알았어요. 알았습니다. 용돈 올려달라는 말 하지 않을 테니 걱정 마세요. 슬리퍼는 제가 마저 꿰맬테니 이리 주세요. 이래봐도 제가 패션 감각이 있으니 예쁘게 꿰맬게요."

내 말이 길어질 것 같자 아이는 재빨리 말을 가로채더니 너스레를 떨었다.

"대신 엄마, 꿰매는 값으로 1000원 어때요? 아니. 인심 썼다. 500원 어때요? 콜?"
"뭐라고? 후후, 그래. 좋다. 500원 콜!"

우리는 마주 보며 웃었다. 환한 웃음으로.

덧붙이는 글 | [짠돌이라 부르지마]응모작



태그:#짠돌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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