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일 년, 텃밭농사를 지어 봤습니다. 구청에서 분양해 주는 6평(20㎡)짜리 텃밭을 신청해 받은 텃밭입니다. 난생처음 짓는 농사지만, 시골에서 보고 들으며 자란 게 농사니 그깟 텃밭농사쯤 별것 아닐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몇 천 평씩 농사를 지으며 사는 친구들도 있으니 그까짓 거 별 거 아니라고 생각하는 게 망상만은 아닐 겁니다.
농사를 시작하기 전에는 농담 삼아 대농(大農)이라고 자랑도 했습니다. 정작 6평짜리 텃밭농사라는 말은 쏙 빼놓고 상추, 고추, 들깨, 아욱, 브로콜리, 오이, 가지… 등 머릿속으로 짓고 있는 최소 십수 종의 농산물들을 줄줄 늘어놓으면 '그렇게나 많이 농사를 짓냐?'며 다들 반쯤은 속았습니다.
호미도 사고 조루도 샀습니다. 자신도 있었습니다. 거름 듬뿍 주고, 종종 물주고, 풀 쏙쏙 뽑아주며 이따금 벌레나 잡아주면 주렁주렁 달리고, 싱싱하게 자라 푸성귀들 맘껏 뜯어 먹을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그게 아니었습니다.
눈으로만 보고, 머릿속으로만 그리던 농사는 결코 마음대로 되는 게 아니었습니다. 그 어느 것 하나 저절로 자라는 게 없었습니다. 벌레를 잡을 때는 눈을 씻고 봐도 보이지 않았는데 며칠 후 보면 뭔가가 파먹은 흔적이 끊이지 않았습니다. 꿈틀거리고 있는 벌레도 보였고, 다닥다닥 붙어있는 깨알 같은 것들도 보였습니다. 벌레라는 벌레는 이것저것 가리지 않고 닥치는 대로 다 잡았습니다.
생각 같아서는 시원하게 농약이라도 치고 싶었지만, 텃밭농사의 기본은 농약을 하지 않는 게 상식이라는 말 때문에 그럴 수도 없었습니다. 결론적으로 말해 지난 일 년, 난생처음 지어본 텃밭농사는 벌레들과 치룬 전쟁에서 맛본 눈물겨운 패배입니다.
텃밭농사를 짓기 전에 꼭 읽어야 할 <텃밭 해충과 천적>
<텃밭 해충과 천적>(지은이 이기상, 펴낸곳 도서출판 들녘)을 진작 읽었더라면 그 정도 패배까지는 아니었을 거라는 생각입니다.
닥치는 대로 이것저것 가리지 않고 다 잡아 없앴던 벌레 중에는 진짜 없애야 할 해충도 있었지만 그런 해충들을 없애주는 천적, 익충도 있었다는 걸 이 책을 통해 알게 되었습니다.
우리나라에 서식하는 거미는 약 680여 종이 있으며 모두 포식성 천적이다. 서식처는 논, 밭, 옥내, 과수원, 연못, 야산, 고산지대, 등 어디에나 서식을 하는데 모든 종들이 아무 데나 있는 것이 아니다. 종별로 서식하는 환경 영역들이 모두 다르다. -<텃밭 해충과 천적> 72쪽-고추에 피해를 주는 해충은 10종, 토마토에 피해를 주는 해충은 6종, 가지에 피해를 주는 해충은 9종, 오이와 호박에 피해를 주는 해충은 12종이나 되고 배추와 무에 피해를 주는 해충은 무려 15종이나 됩니다.
그러고 보니 지난 한 해 텃밭이라는 전장에서 벌레들과 이룬 전투는 어떤 게 적인지도 모르고 싸운 꼴이니 결코 질 수 밖에 없었던 무모한 전쟁이었습니다.
책에서는 고추, 토마토, 가지, 감자, 오이, 참외, 수박, 호박, 마늘, 파, 배추, 무, 청경채, 샐러리, 신선초, 당근, 시금치, 근대, 상추, 들깨, 아욱 등 텃밭에서 지을 만한 농작물에 피해를 줄 수 있는 해충들을 농작물 별로 사진으로 정리해 보여주는 것으로 시작합니다.
그리고 피해를 주는 해충과 이익을 주는 익충에 대한 개념을 설명하고, 익충을 이용해 피해(해충)를 최소화 하는 방법 등을 소개하고 있습니다. 익충을 이용해 피해를 최소화하는 방법은 복잡하지도 곤란하지도 않습니다. 농작물에는 피해를 주지 않고 해충들을 먹이로 하는 곤충(익충)들이 모여들거나 잘 서식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해 주는 간단한 방법입니다.
지난해 텃밭에 갈 때마다 닥치는 대로 잡아 없앴던 거미와 무당벌레가 여러 해충의 천적이라는 걸 알았다면 그들을 잡아 없애는 일을 없었을 겁니다. 익충인 그들이 해충들을 잡아먹도록 내버려 뒀다면 그토록 비참한 패배는 아니었을 거라는 아쉬움도 듭니다.
고추밭두렁에 심어진 옥수수, 천적 기르고 간식 얻는 일석이조참고로 수백 평 이상 전문적으로 고추농사를 짓는 농민들의 경우, 옥수수를 밭두렁에 함께 심었을 경우 담배나방의 피해가 별로 없었다고 답하는 비율이 약 70∼80% 정도라고 한다(지금까지는 이런 관계를 모르고 그냥 심어 온 경우이다) -<텃밭 해충과 천적> 147쪽-그러고 보니 친구가 짓고 있는 고추밭두렁에도 항상 옥수수가 심어져 있었는데 그게 그냥 옥수수를 따 먹기 위해서 심었던 게 아닌가 봅니다. 친구가 이런 사실을 알고 심었는지 아니면 우연이었는지는 모르지만 고추밭 두렁에 심어놓는 옥수수는, 고추에 심각한 피해를 주는 담배나방을 잡아먹는 알기생벌 종류가 잘 서식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해 주는 지혜로운 농사가 분명합니다.
고추밭두렁에 심어놓은 옥수수는 간식으로 먹을 옥수수만을 얻는 게 아니라 고추에 피해를 주는 해충들을 잡아 없애 줄 천적들을 위한 서식지가 되니 이런 농사, 천적들을 이용한 해충 제거야 말로 공짜로 하는 해충방제, 덤으로 얻는 간식 수확이라 생각됩니다.
책에서는 식물별로 해충과 익충을 사진으로 보여주며 그 생태특성을 설명하고 있어 사실적입니다. 그리고 해충별 천적들과, 그 천적들을 불러들이는 방법, 모여든 익충들이 잘 서식할 수 있는 환경 조성 방법까지를 세세하게 설명하고 있어 내년 텃밭농사에 바로 도움이 될 내용입니다.
말과 머릿속으로만 짓는 텃밭농사는 생각하고 꿈꾸는 것에 비례해 풍년일 수 있습니다. 하지만 텃밭농사를 지으며 맞닥뜨리는 실제는 그렇지 않습니다. 텃밭농사에 대한 꿈을 갉아 먹는 최고의 천적은 눈에도 보이지 않을 만큼 하찮게 보이는 해충일 수도 있습니다.
해충을 알고, 그 천적을 알아 벌레로 벌레를 잡는 농사를 짓는 것이야 말로 머릿속으로 그리고 있는 텃밭농사를 현실에서도 풍년으로 가져다 줄 수 있는 최소한의 지식, 해충 방제에 최고 효과를 기댈 수 있는 농사비법이 아닐까 기대됩니다.
덧붙이는 글 | <텃밭 해충과 천적> (지은이 이기상 / 펴낸곳 도서출판 들녘 / 2014년 12월 8일 / 값 1만 8000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