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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권 추락이 사회적으로 큰 문제다. 학교에 지친 선생님들의 퇴임도 정년보다 빨라지고 있다. 소통 없는 교실이 늘어나는 요즘, 영화 죽은 시인의 사회 속 '존 키팅' 선생님을 꿈꾸는 이들이 있다. 나만 알기는 아까운(?) 선생님들의 이야기다. 이들에게 교실은 단순한 일터가 아니다. 모든 개인이 '한 편의 시'가 될 수 있음을 말하며 제자들 모두를 가슴으로 가르쳤던 '키팅', 여기 키팅을 꿈꾸는 '진짜' 선생님들이 있다. - 기자 말

"나 정말 큰 고민이 있어. 친구야."

늘 유쾌한 친구가 고민을 털어놓았다. 그 내용은 대학원 교수님이 학부생 강의를 하나 맡아달라고 했다는 제안이었다. 엄청난 이야기였다. 이 이야기의 주인공은 올해 3년 차 송지은 (24·제주인화초등학교) 선생님이다. 아직 3년 차 밖에 안 된 어린 교사에게 고작 한 두살 차이 밖에 나지 않는 학부생을 가르치라니 파격적인 제안이다.

하지만 이해 못하는 건 아니다. 그녀는 이른바 '능력자'다. 임용고시를 수석으로 합격했으며 우수한 성적으로 교대를 졸업한 인재다. 음악교육을 전공한 그녀는 피아노 연주 실력 또한 수준 급이고 작곡도 잘 한다. 그러니 그녀에게 그런 제안은 당연할 법도 하다.

하지만 그녀가 고민하는 것은 딱 한 가지다. 그녀가 가장 소중하게 생각하는 제자들. 학교 수업과 대학교 강의까지 하게 되면 아이들에 조금 소홀해 지는 건 당연한 것이다. 하지만 교수님의 제안은 어린 나이에 가질 수 없는 큰 영광이다.

NO1. 오직 내 제자들

"절대 아이들에게 소홀해 지긴 싫어."

그녀는 단호하게 말했다. 나는 그녀에게 "너의 최종 꿈이 뭐니?"라고 물었다.

"아이들과 진정으로 소통하며 지금보다 나은 사람으로 성장하게 돕는 교사지."

이어 그녀는 "내 성장이 아닌 아이들의 성장을 위한 교사가 되는 것이 내 목표! 오케이 결정!"이라고 말했다. 그녀는 망설임 없이 그 영광 대신 아이들을 선택했다. 이제 다시 아이들에게 100% 집중하며 행복한 선생님으로 돌아갔다. 사실, 그 고민의 해답은 이미 정해져 있었다.

누가 선생님인지 자세히 보아야 보인다.
▲ 반 여자아이들과 함께 누가 선생님인지 자세히 보아야 보인다.
ⓒ 김지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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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가 있는 교실

아이들과 함께 있으면 누가 아이고 누가 선생님인지 모를 정도로 아이들과 융화가 잘된다. 그녀가 있는 교실에서만큼은 재미를 느끼게 해주고 싶었다. 그녀는 반 아이들 모두가 함께 영화를 만드는 프로그램을 기획했다.

역할 분담해서 시나리오 작가, 감독, 배우, 촬영 등을 모든 반 아이들이 참여하도록 한 것. 그녀의 기대보다 아이들의 능력은 훨씬 뛰어났다. 진짜 작가가 된 듯 이야기를 풀어나갔고, 장면 연출도 프로 감독 못지 않았다. 아이들의 연기력도 프로 배우가 울고 갈 정도였다. 그녀는 영상 편집만 아주 조금 도와주었을 뿐, 모든 것을 초등학교 5학년 아이들이 해냈다.

"에이~ 우리가 어떻게 영화를 만들어요"라고 말하며 미지근한 반응을 보였던 아이들이 어느덧 영화 제작에 흠뻑 빠져들었다. 자신이 땀 흘려 만든 영화를 본 후 아이들은 "우리들이 할 수 있을 줄 몰랐어요. 다른 것도 해보고 싶어요"라고 말했다. 그녀는 아이들에게 아주 현명하고 자연스러운 가르침을 준 것이다. 친구들과 만난 술자리에서도 그녀는 내내 아이들 이야기로 시간 가는 줄 모른다. 어느 순간, 내 친구인 그녀보다 초등학교 선생님인 그녀가 더욱 익숙해졌다.

페이스북 '우리학교 클라스'에서 화제가 된 시험지.
▲ 12월 신성여중 국어 시험지 페이스북 '우리학교 클라스'에서 화제가 된 시험지.
ⓒ 김지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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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눈'

올 봄에 그녀는 흥미로운 제안했다. 자신이 작곡할 테니 작사를 맡아서 함께 동요를 만들자는 것. 한 달이 넘도록 통화하고 멜로디와 악보를 공유하며 동요를 만들었다. 그리고 '봄 눈'이라는 세상에 하나뿐인 노래가 탄생했다.

"아이들에게 가르쳐주는데 기분이 짜릿한 것이 정말 좋더라. 아이들도 좋아해, 자주 만들자. 우리."

함께 만든 노래가 교실에 울려 퍼졌다는 소식을 전하는 그녀는 누구보다 행복해 보였다. 그녀는 '음악으로 즐겁게 소통하는 교사'가 되고 싶다고 했다. "아이들은 노래를 부를 때 가장 아이다워 진다"고 말하며 억지로 상담해서 대화를 이끌어 내는 것이 아니라 자연스럽게 듣고 부르는 노래처럼 소통하는 교사가 되고 싶다고 했다.

'선생님은 언제나 너를 응원할게' 얼마 전 페이스북에서 신성여중의 국어시험지가 큰 화제가 되었다. 누리꾼들은 "보관하고 싶은 시험지는 네가 처음이야","시험문제 풀다가 울었다" 등의 반응을 보였다. 이 시험을 출제한 사람. 바로 10년 넘게 교사를 꿈꿨던 고기량(25) 제주신성여중 선생님이다. 한 일본 교사의 감동적인 시험지를 보고 자신도 아이들에게 감동을 주고 싶어 출제를 했다는 그녀는 뜻밖의 'SNS 스타'가 된 것에 대해 부끄럽다고 했다.

행복도 힘든 것도 기준은 학생이다

"선생님 덕분에 국어공부를 즐겁게 하고 있어요."

그녀가 가장 행복한 순간이다. 한창 질풍노도의 시기를 겪어서 무섭기로는 대한민국에서 둘째가라면 서러운 중2 들이 그녀에게 상담을 요청한다. 아무것도 아닌 것 같은 이런 작은 순간들이 그녀에게는 큰 행복이다. 곧 자신의 진심이 통한 순간이라는 증거이기 때문이다.반면 학생들이 그녀와 소통하지 못할 때 가장 힘들다. 자신이 힘든 것이 아니라 기댈 곳을 찾지 못하는 학생들이 힘들기에 그녀도 힘들다. 그녀는 모든 기준이 '학생'이다.

그녀는 자연스러운 언어로 소통하고 싶다. 그렇게 자연스러운 언어들이 모여 감동을 주는 '시가 흐르는 교실'을 만들고 싶다. 아직 존경받을 만한 선생님도 많고 사랑스러운 학생들도 많다. 오늘도 '존 키팅'을 닮은 선생님들이 있어 교실을 아직 행복하다.

덧붙이는 글 | '20대 청춘! 기자상 응모글'



태그:#키팅, #신성여중, #인화초등학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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