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정말 이대로 한 해가 지나가려나 보다. 세월호 참사 이후 무엇 하나 확실하게 밝혀진 것도, 재발방지를 위한 실질적인 대책도 세워진 것이 없는 가운데 여전히 일어나는 크고 작은 인명 사고가 우리를 놀라게 하는데 말이다.

OECD 가입국가 중 노인자살률 1위, 노동자 노동시간 2위, 아동의 삶 만족도와 출산율 등이 최하위인 상황에서 최근에는 비정규직 노동자가 정규직으로 전환하는 비율 역시 최하위를 기록하고 있다는 결과에도 말이다. 군대에서는 잊을만하면 청년들이 죽고, 성추행을 당하고, 학대를 당하는 사건이 일어나고 있지만, 책임자와 가해자들이 처벌을 면하기 일쑤인 상황은 거의 변함이 없는데도 갑오년 2014년은 야속하게 끝을 향해 가고 있다.

없는 사실을 만들어 내어 간첩사건을 조작하는 국가정보원과 걸핏하면 국가보안법을 들먹이며 민변 소속 변호사까지 탄압하는 검찰의 행태는 새삼 달력을 봐야만 내가 살고 있는 시대가 21세기가 맞는지를 알게 해 준다. 죽음으로 부조리한 현실을 고발한 아파트 경비원의 기사를 읽고 눈시울을 붉혔다. 그리고 얼마 후 그 아파트 경비직 모두가 계약해지 되었다는 통보를 받았다는 소식에서 우리는 돈만이 최고라는 신자유주의국가 대한민국의 결코 변하지 않는 속살을 마주하게 된다.

이러한 비참한 현실을 개선하고 변화시켜달라고 기대해야할 야당의 무력함 또한 우리를 우울하게 하는 큰 원인이다. 바라는 것이 꺾이는, 절망(絶望)의 순간들로 채워진 시간들이 시나브로 가고 있는 것이다. 우리는 이런 어두운 현실의 어디에서 희망을 발견하고 어떻게 희망을 만들어 가야 하는 것일까?

사회변혁에 대한 거대한 개혁담론도 중요하겠지만 우리가 찾아야 할 구체적인 희망의 근거는 매일 접하는 소식과 가까운 주변에도 있다고 생각한다. 막돼먹은 국가정보원과 막무가내 검찰에 맞서 억울한 시민들의 인권을 보호해온 변호사들, 거대기업에서 일하다 죽거나 병을 얻은 노동자들을 위해 산업재해 인정을 받기 위해 노력해온 단체, 불평등한 벌금제 개혁을 통해 힘없는 서민들의 인권을 지켜주기 위해 꾸준히 활동을 벌여온 단체, 복지국가의 비전을 만들기 위해 동분서주해온 단체, 4대강 사업의 허상을 파헤치고 보다나은 환경을 위해 힘써온 단체, 지역에 뿌리박고 지역과 지역민을 통해 세상을 변화시키려고 노력해온 단체, 그 밖에 사람들이 좀 더 살기 좋은 세상을 만들기 위해 힘써온 수많은 단체들과 이 단체들의 활동소식은 물론 정권과 권력의 탄압에도 굴함 없이 진실을 보도하기 위해 싸우고 있는 좋은 언론들이 존재하고 있다는 사실을 잊지 말았으면 좋겠다.

눈을 들어 세상을 보면 한숨밖에 나오지 않는 현실들뿐이지만, 그 속으로 조금만 깊이 들어가 보면 그러한 세상을 바로잡기 위해 싸우고 연구하는 수많은 시민단체와 전문가들을 우리는 어렵지 않게 만날 수 있다. 상투적인 헌사로 들리겠지만 매서운 추위 앞에 선 현실에서 굳이 희망을 찾으라 한다면 우리는 당연히 여전히 움직이고 싸우며 변화하는 이 수 많은 운동단체들에게서 희망의 근거를 찾아야 하지 않을까 싶다.

몇 해 전 나온 김상봉, 서경식 선생의 대담집 <만남>을 보면 서경식 선생이 팔레스타인의 얼굴도 모르는 한 어린이를 위해 매월 얼마씩 후원하고 있다는 대목이 나온다. 팔레스타인의 얼굴도 모르는 한 아이를 후원하고부터는 신문 국제면에서 보는 팔레스타인이 폭격 당했다는 기사가 그냥 넘어가지지 않더라는 서경식 선생의 말은 참 인상적이었다. 내 방식대로 해석을 하자면 말로만 외치는 연대보다 적지만 얼마라도 실질적인 후원을 동반하는 연대가 주는 구체성을 확인하는 순간이었다.

SNS를 통해 하루에도 수많은 사연을 접하고 있는 상황이지만 개인적으로 올해 가장 인상적인 사연을 꼽으라면 한겨레신문 안수찬 기자가 전한 홍세화 선생의 사연이었다. 안 기자가 직접들은 바에 의하면, 홍세화 선생이 한 달에 이런저런 시민단체와 조직에 후원하는 금액이 70만 원에 달한다는 것이다. 책을 판매하고 받는 인세 이외 정기적인 수입이 없는 분에게 한 달 70만 원의 후원은 분명 무척 큰 금액일 것이다. 수입의 십일조 이상은 후원하고 있다고 자위하고 있던 나로서는 홍세화 선생의 사연을 접하자마자 부끄러움과 존경의 탄성이 함께 나왔었다.

구체성과 대안이 없을 때 절망은 쉽게 현실화되지만 반대로 희망은 구체적인 연대성을 양분으로 성장할 수 있다. 희망이 지워지는 시대에 희망을 다시 만드는 제일 좋은 방법은 희망의 근거지를 만들어 가는 좋은 단체에게 후원을 하는 것이며, 단체에 대한 후원은 우리들 스스로도 희망이 될 수 있는 가장 쉬운 방법이라고 단언하고 싶다.

'절망스러운 올해가 빨리 가기를 바라며 희망의 2015년을 준비하자'라는 상투적인 인사가 현실의 희망으로 변화하기 위해서는 마지막 남은 한 달 동안 좋은 단체 몇 곳에게 더 후원하고, 좋은 언론을 한 부 더 구독하자. 그것이 희망의 2015년을 준비하는 구체적인 실천방안일 것이다. 홍세화 선생이 한겨레신문 구독을 권유하며 인용한 볼테르의 말을 빌려 글을 마친다.

"광신자들이 열성을 부리는 것도 수치스러운 일이지만, 지혜 있는 자들이 열의를 보이지 않는 것 또한 수치스러운 일이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를 쓴 이상재 씨는 현재 대전충남인권연대 사무국장으로 활동중입니다. 이 기사는 인권연대 주간 웹진 <사람소리>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태그:#세월호, #민변 탄압, #인권단체, #참언론
댓글

인권연대는 1999년 7월 2일 창립이후 세계인권선언의 정신에 따라 국내외 인권현실을 개선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는 인권단체입니다.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