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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년 주거빈곤 시대, 주거 문제를 스스로 해결하고자 나선 청년들이 지난 2월 민달팽이주택협동조합을 만들었다. 그리고 지난 7월 달팽이집 1호가 처음 만들어져 5명의 청년에게 보금자리가 생겼다. 공유주택 달팽이집이 나오기까지의 이야기 그리고 이곳에 사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통해 주거 문제의 대안을 모색해본다. [편집자말]
"함께 사는 사람들과 쇼핑을 갔어요."

민달팽이 주택협동조합의 공유주택(아래 달팽이집)에서 살기 시작한 후 가장 먼저 한 일이 무엇이냐는 질문을 들을 때마다 이런 이야기를 했다. 제주도에서 서울로 상경한 후 3년 동안 마음 먹고 옷을 사본 적이 없다. 남의 집 셋방살이에 내 몸 하나 뉘이기도 벅찬 고시원을 전전하던 시절이었다. 옷을 살 금전적 여유도, 옷들을 보관할 공간조차 없었다.

서울에는 연고가 전혀 없었다. 오랜만에 연락이 닿은 수원 사는 친구에게 어렵사리 사정을 이야기 해 한 달 정도 같이 살기도 했다. 하지만 남의 집 더부살이가 여러모로 눈치가 보였고, 출퇴근만 왕복 3시간이 넘는 거리도 나를 지치게 만들었다. 결국 친구 집에 오래 있지 못하고 노량진 고시원으로 들어갔다.

처음으로 갖게 된 함께 사는 '나의 집'

달팽이집1호 입주자 임소라(30), 함금실(27)씨.
 달팽이집1호 입주자 임소라(30), 함금실(27)씨.
ⓒ 민달팽이 유니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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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7월 달팽이집에 들어오기 전까지 3년 동안 그렇게 고시원을 전전하며 살았다. 고시원 생활은 쉽지 않았다. 겨울이면 창문 틈 사이로 바람이 들어와 방에서도 스마트폰 장갑을 끼고 살았다.

가능한 저렴한 방을 찾다 보니 화장실 옆과 부엌 사이에 끼어 있는 방도 감지덕지였다. 새벽이면 부엌에서 요리하는 소리, 화장실 쓰는 소리가 들렸지만 참고 살았다. 주인이 방을 빼야 한다고 해도 큰소리 한 번 내지 않았다. 이렇게라도 고시원에서 살아야만 했던 이유는 비싼 보증금 때문이었다.

조그마한 원룸을 구하려면 수백 단위의 목돈이 필요했다. 월세 역시 내가 버는 돈의 절반 정도를 지불해야 할 만큼 비쌌다. 집에 손을 벌리지 않으려다보니 원룸이나 자취방에서 사는 건 불가능한 일이었다. 그나마 고시원은 보증금 없이도 월 30만 원 선에서 주거를 해결할 수 있었다.

지금은 좁디 좁은 고시원에서 혼자 살지 않는다. 달팽이집은 혼자 살던 나에게 처음으로 방이 아닌 '집'을 선물해 주었다. 흔히 이야기 하는 '내 집 마련'의 꿈을 이룬 것은 아니다. 매달 나가는 월세가 없는 것도 아니다. 그렇지만 나랑 같은 고민을 하는 사람들이 스스로 만든 이곳은 '함께 사는 나의 집'이다.

처음에는 너무 생소했다. 협동조합이란 말은 들어봤지만 협동조합형 주택은 처음 알았다. 시세보다 너무 싼 월세는 정말 이 돈으로 입주할 수 있는 건지 의심스러웠다. 더군다나 공유주택이라니. 친구와 몇 달 살았을 때 겪었던 좋지 않은 기억들이 떠올라 망설여졌다.

하지만 세 차례에 걸쳐 친 입주자 워크숍에 참여하면서 점차 마음을 열 수 있었다. 주택협동조합에 대해 이해하고 공동주거의 어려움과 차이점을 함께 나누는 과정을 거쳤다. 또 입주계획서를 쓰면서 함께 살아갈 공간을 상상하고 그것에 대해 같이 그려보기도 했다.

무엇보다 입주자들이 서로에 대해 알아가면서 금세 가까워졌다. 입주 당일에도 조합원들의 도움을 받아 이삿짐을 옮겼다. 이런 과정을 거치며 '내가 여러 사람의 도움 속에서 살아가고 있구나'라는 느낌을 받았다.

타향에서 찾은 또 하나의 식구 

같이 살아가는 것, 생각보다 나쁘지 않더라, 꽤 괜찮더라.
 같이 살아가는 것, 생각보다 나쁘지 않더라, 꽤 괜찮더라.
ⓒ 민달팽이 유니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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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팽이집에 들어와 잔 첫날밤 기억이 생생하다. 고시원에서 잘 때는 뭔지 모를 불안함에 불도 못 끄고 잠을 잤다. 이곳은 달랐다. 오래 알고 지낸 사이는 아니지만, 마음을 열게 된 사람들과 한방에 누워 수다를 떨다 잠든다.

가장 좋았던 점은 함께 하는 식사였다. 나는 항상 '집밥'이 그리웠다. 자취하는 동안에는 혼자 대충 끼니를 때우는 적이 많았다. '외로운 밥상'에서 벗어나 함께 어울리며 한 끼 식사를 제대로 챙겨 먹을 수 있다는 게 '너무' 좋았다. 더 이상 혼자가 아니라 식구가 생긴 것만같은 기분. 그것만으로도 마음이 든든했다.

옆집에 사는 이웃과도 편하게 안부를 주고 받는다. 나눠줄 음식이 있으면 서로 나눠 먹기도 한다. 서로 모른 척 했던 생활에서 벗어나 서로에 관심을 기울이며 공유주택에서 산 지 6개월. 밖에서 돌아오면 아무 소리도 내지 않은 채, 모든 소리를 차단하며 살아야 했던 고시원 속 내 모습은 더이상 없다.

물론 좋은 점만 있는 건 아니다. 같이 사는 사람들의 성향과 생활이 다르기 때문에 서로 이해하며, 맞춰나가는 일은 쉽지 않았다. 성격도, 생활방식도 너무 다른 세 사람이 한 집에서 살기 위해서는 규칙이 필요했다. 합의해서 지킬 것은 지키고 살아야 했다. 처음에는 너무 친하다 보니, 갈등을 덮어두고 살 때도 있었다. 그러나 서로 잘 안다는 것과 실제 같이 산다는 것은 또 다른 문제였다.

한 번은 빨래 문제로 갈등이 생겼다. 세탁기는 하나였기 때문에 빨래가 모이면 그때 그때 먼저 보는 사람이 하기로 정했는데, 그러다보니 빨래하는 사람이 늘 한 명으로 정해진 것. 그러나 본인은 이 문제를 말하지 못하고 속으로 끙끙 앓았다.

그때 같이 사는 다른 친구가 용기있게 먼저 불편함과 아쉬운 점을 지적해 그동안 가사분담이 제대로 되지 않았던 점을 서로 인정하고 해결점을 모색해나갔다. 현재는 각자 빨래를 하고 있다. 이렇게 하니, 서로에게 불편하거나 신경 쓰이는 게 별로 없었다.

같이 살아가는 것, 생각보다 나쁘지 않더라

처음 공유주택에서 산다고 했을 때 대부분의 사람들이 "안 싸워?", "안 불편해?"와 같은 반응이었다. 물론 그렇게 느낄 때도 있다. 나 혼자 지내는 공간이 아니기에 친구를 마음 놓고 부를 수도 없고, 통화를 할 때도 시간과 장소를 고려해야 한다. 또 가끔은 혼자 있고 싶을 때도 있다. 하지만 살아가면서 서로의 부족한 점을 메워주고 아쉬운 점은 또 다른 즐거움으로 채워지는 게 공유주택의 매력이 아닐까 싶다.

이렇게 몇 번의 갈등과 오해의 시간을 겪으며, 나는 아직도 타인의 생활과 방식을 이해하는 과정에 있다. 단순히 월세가 저렴해서가 아니다. '타인과 더불어 공유주택 생활을 함께 잘 해보자'고 모인 관계임을 늘 기억하며, 서로를 이해하는 과정이 필요하다는 것을 매번 느끼며 살고 있다.

앞으로도 나는 서로 다른 사람들과의 살 비빔 속에서 공유주택의 장점과 단점을 경험하며 살아갈 것이다. 지금 당장 '공유주택이 너무 좋다'고 혹은 '너무 힘들다'고 말하기엔 이르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아직은 더 많이 그리고 오래 여기에서 만난 사람들과 공동체의 의미에 대해 천천히 느끼며 경험하고 싶다. 그만큼 같이 살아가는 것, 생각보다 나쁘지 않더라. 꽤 괜찮더라.

달팽이집'이란?
민달팽이 주택협동조합은 청년들의 주거 안정을 위해 한국사회에서 아직은 낯선 공유주택을 시도하고, 대안적 주거 모델을 실험하는 협동조합이다. 11월 현재 조합원은 132명이다. 이 주거협동조합의 달팽이집 1호는 지난 7월, 조합원들이 자발적으로 출자한 8200만 원의 출자금을 바탕으로 남가좌동에 주택 두 세대를 임대했다.

이 주택은 다시 조합원들에게 달팽이집이라는 이름으로 5명의 청년(두 세대에 각각 3명, 2명 거주)에게 공급됐다. 현재 세 명이 사는 201호의 경우, 큰방은 보증금 100만 원에 월 40만 원(현재 둘이 살고 있으므로 1인당 보증금 50만 원, 월세 20만 원), 작은방은 보증금 75만 원에 월 30만 원이다. 작은방이 2개인 202호에는 2명이 산다. 입주자들은 화장실과 마당, 테라스 등 공용공간을 함께 사용하게 된다. 집 없는 '민달팽이'들의 집이 되어준다는 뜻으로 '달팽이집'이란 이름이 붙었다.

달팽이집 1호가 궁금하다면?



태그:#민달팽이유니온, #공유주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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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거권 보장 지금 당장!'을 외치며 청년 세입자 대상의 교육, 상담, 현장대응 그리고 제도개선을 위한 실천행동을 함께 합니다. 무법지대와 다름없는 주택임대차시장에서 세입자 청년들이 겪는 부당한 관행에 2013년부터 함께 대응해왔고, 보증금 먹튀 대응 센터 운영 및 법안 발의 등 세입자 권리를 지키기 위한 활동을 이어오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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