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리 앙투아네트 에서 마그리드를 연기하는 윤공주

▲ 마리 앙투아네트 에서 마그리드를 연기하는 윤공주 ⓒ EMK뮤지컬컴퍼니


<레베카>의 댄버스 부인처럼 주인공이 아닌 서브 캐릭터가 뮤지컬 팬에게 각광받는 뮤지컬이 있다. 바로 <마리 앙투아네트>의 마그리드다.

하루 하루 먹을 것이 없어 어떻게 먹고 살아야 하는가를 고민해야 하고, 오늘 밤은 어디에서 두 발 뻗고 잘 수 있을까를 고민하며 살아가는 프랑스 빈민가의 여성이다. 그와는 반대 지점에 있는 마리 앙투아네트를 끔찍이도 미워했지만 결국에는 마리 앙투아네트에게 감정이입할 수 밖에 없는, 1막과 2막의 감정선의 변화가 확연한 캐릭터가 마그리드다.

수백 명의 인터뷰이를 만나보았지만 마그리드를 연기하는 윤공주처럼 자신의 캐릭터에 몰입하는 배우는 처음인 것 같다. 인터뷰 중간에 그는 울먹이며 답변하기에 이르렀다. 무엇이 그를 울컥하게 만들었을까. 마그리드는 뼛속까지 마리 앙투아네트를 증오하던 사람이다. 하지만 마리 앙투아네트가 마그리드와는 다른 세계의 존재가 아니라 각별한 사람이었다는 걸 깨닫는다.

그럼에도 마리 앙투아네트를 단두대로 보내야 하는 운명의 아이러니를 겪는지라, 극 중 상황에 감정이 고조되어 인터뷰 도중 눈물을 보일 수밖에 없었다. 자신의 배역을 마치 배우 자신의 일처럼 감정이입할 줄 아는 배우, 윤공주를 샤롯데씨어터에서 만났다.  

"마그리드, 정의로운 잔다르크가 아닌 먹고 살기 바빴던 시민"

<마리 앙투아네트>의 윤공주 "처음에는 마그리드를 바라볼 때 너무나도 굶주려서 혁명을 일으키는 잔다르크 같은 여자로 보았다. 하지만 원작자는 마그리드를 그렇게 정의로운 인물로 보지 않았다. 원래의 마그리드는 정의를 말하기 이전에 먹고 사는 게 바쁜 여성이었다고 한다. 먹고 사는 문제가 해결되지 않은 마그리드가 더 불쌍해 보였다."

▲ <마리 앙투아네트>의 윤공주 "처음에는 마그리드를 바라볼 때 너무나도 굶주려서 혁명을 일으키는 잔다르크 같은 여자로 보았다. 하지만 원작자는 마그리드를 그렇게 정의로운 인물로 보지 않았다. 원래의 마그리드는 정의를 말하기 이전에 먹고 사는 게 바쁜 여성이었다고 한다. 먹고 사는 문제가 해결되지 않은 마그리드가 더 불쌍해 보였다." ⓒ EMK뮤지컬컴퍼니


- <마리 앙투아네트> 속 캐릭터들은 실존 인물들이지만 윤공주씨가 연기하는 마그리드만 가공의 인물이다. 다른 캐릭터에 비해 해석할 수 있는 폭이 넓어 보인다.
"원작자와 텍스트 안에서 '어떤 마그리드를 바라는가'가 정해져 있다. 텍스트 안에서 마그리드를 분석해야지, 가공의 인물이라고 해서 제가 마음대로 분석할 수는 없다. 역사 속 인물이 아니기에 프랑스 혁명 당시 빈민 계층, 거리에서 살아가는 여자는 어떤 인물이었을까 많이 상상해 보았다.

프랑스 혁명을 일으킨 사람들은 당장 먹을 것이 없어 죽어가던 이들이었다. 하지만 앙투아네트가 있는 베르사유 궁전의 사람들은 너무나도 호화스럽게 살았다. 프랑스 시민들이 들고 일어나지 않을 수 없었던 것이다. 혁명을 일으키지 않았다면 사람들은 굶어 죽었을 것이다. 굶어 죽거나, 아니면 혁명에 실패해서 죽음을 당하거나, 이래 죽으나 저래 죽으나 마찬가지인 상황이었다."

- 마그리드는 마리 앙투아네트의 얼굴에 샴페인이 든 잔을 끼얹을 정도로 대담한 인물이다.
"한국 버전의 <마리 앙투아네트>는 일본 토호의 <마리 앙투아네트>와는 많은 점에 있어 다르다. 원래 버전은 마리 앙투아네트가 마그리드에게 샴페인을 끼얹는 거다. 한국 버전은 마리 앙투아네트에 대한 인간적인 연민을 많이 부각시켰다. 그래서 마그리드가 끼얹는 걸로 바뀌게 되었다.

처음에는 마그리드를 바라볼 때 너무나도 굶주려서 혁명을 일으키는 잔다르크 같은 여자로 보았다. 하지만 원작자는 마그리드를 그렇게 정의로운 인물로 보지 않았다. 원래의 마그리드는 정의를 말하기 이전에 먹고 사는 게 바쁜 여성이었다고 한다. 먹고 사는 문제가 해결되지 않은 마그리드가 더 불쌍해 보였다.

먹을 것도 없고 잠 잘 곳도 없는 사람들이 프랑스 시민들이지만 귀족들과 왕족은 이런 비참한 현실을 모른다. 마그리드가 마리 앙투아네트가 권한 샴페인을 그에게 뿌리는 건, 프랑스 시민들은 당장 먹을 것이 없다는 항거의 의미를 갖는다.

마그리드는 처음에는 정의가 무엇인지 잘 모르다가 시간이 흐르면서 진정한 정의를 찾고 성숙해져 가는 인물이 된다. 여린 면도 있지만 여리게만 살면 죽으니까 살기 위해 강해질 수밖에 없던 여자다."

- 베르사유 궁에서 먹을 것을 주머니에 가득 넣고 나온 마그리드는 굶주린 파리 시민에게도 이를 나눠줄 정도로 이타심이 가득한 여자이기도 하다.
"갖고 있던 음식을 나누어 주면 당장 먹을 것이 없어지게 된다. 먹을 것이 없어 굶주리는 불쌍한 파리 시민들을 외면해야겠다는 생각이 머릿속에서 떠오르지만 가슴으로는 못 본 체 할 수만은 없었다. 가슴이 머리의 말을 듣지 않은 마그리드는 프랑스 혁명이 발발할 당시 귀족들에게 '정말로 모르겠느냐'며 울분을 토한다. 왕족과 귀족들은 그가 분노할 수밖에 없도록 만들었다."

"연습 때 많이 울어야 공연할 때 덜 울 줄 알았는데"

<마리 앙투아네트>의 윤공주 "혁명을 일으킬 때 카리스마를 어떻게 보여주어야 할지 고민이 많았다. 이때 연습실에 있던 한 언니가 '공주야, 마그리드는 카리스마가 아니야. 진정성을 갖고 해야 해' 하더라. 어디까지 카리스마를 갖고 가야 할지 고민이 될 때 '지금 네가 연기하는 게 맞아' 하는 언니의 조언이 많은 도움이 되었다."

▲ <마리 앙투아네트>의 윤공주 "혁명을 일으킬 때 카리스마를 어떻게 보여주어야 할지 고민이 많았다. 이때 연습실에 있던 한 언니가 '공주야, 마그리드는 카리스마가 아니야. 진정성을 갖고 해야 해' 하더라. 어디까지 카리스마를 갖고 가야 할지 고민이 될 때 '지금 네가 연기하는 게 맞아' 하는 언니의 조언이 많은 도움이 되었다." ⓒ EMK뮤지컬컴퍼니


- 1막 후반부에 프랑스 시민들과 다함께 어울려 노래를 부르는 장면이 인상적이다. 이렇게 윤공주씨가 감정이입하게끔 만드는 넘버나 장면이 있다면.
"비단 그 장면만이 아니다. 마그리드를 연기하면서 먹먹한 장면이 너무 많다. 무대 위에서 가짜를 진짜처럼 보이기 위해 연기하는 게 배우의 몫이다. 윤공주와 마그리드를 동일시하기란 어려운 일이다. 하지만 다른 배역과는 달리, 마그리드는 저 자신과 동일시되는 부분이 너무나도 많다. 마그리드가 '나는 이렇게 비참하게 살았어'라고 표현하고자 하는 것이 아닌데, 제 안에서는 마그리드에 대한 연민이 있다.

마그리드에 대한 먹먹함이 1막보다는 2막에서 더욱 많아진다. 2막에서는 마그리드가 몰랐던 놀랄 만한 반전이 있다. 반전을 알았을 때 마리 앙투아네트가 너무나도 불쌍하지만 그럼에도 단두대로 보낼 수밖에 없다. 매번 끝날 때마다 너무나도 슬프다. 연습 때에는 대사를 하지도 못할 정도로 지금보다 훨씬 많이 울었다.

연습할 때 많이 울어야 본 공연에서 덜 우니까 연습 당시에는 런(run)을 돌지 못할 정도로 울었다. 그런데 그게 생각처럼 되지만은 않았다. 제가 연습할 때 울지 않았던 장면인데, (본 공연에서는) 가슴을 울려 눈물이 나올 때도 있다. 어느 한 장면만 콕 짚어서 언급하기란 쉽지 않다."

- 이번 공연에서는 윤공주씨에 대한 호평이 많다.
"어릴 적에는 노래에 대한 생각이 많았다. 뮤지컬을 보러 온 관객에게 노래를 완벽하게 전달하고 싶었다. 노래가 완벽해야 연기도 공감할 수 있지 않을까 싶었다. 약간이라도 노래를 못 하면 속상해했다. 그러다가 2~3년 전부터는 연기를 더 잘 하고 싶었다. 노래보다 연기에 대해 더 많은 고민을 하게 된다.

마그리드는 다른 뮤지컬에 비해 노래를 소화하기가 쉽지 않다. 그럼에도 부단한 노래 연습과 함께 캐릭터에 대한 분석을 많이 했다. 마그리드를 분석할 때 주변 사람들로부터 도움을 받은 것도 있다. 뮤지컬 할 때 동료 뮤지컬 배우들, 오빠와 언니, 동생들에게 '너라면 어떻게 생각할 거 같아?' 하고 많이 묻는 편이다.

혁명을 일으킬 때 마그리드가 카리스마를 어떻게 보여주어야 할지 고민이 많았다. 이때 연습실에 있던 한 언니가 '공주야, 마그리드는 카리스마가 아니야. 진정성을 갖고 해야 해' 하더라. 어디까지 카리스마를 갖고 가야 할지 고민이 될 때 '지금 네가 연기하는 게 맞아' 하는 언니의 조언이 많은 도움이 되었다. 어떤 뮤지컬이든 무대 위에서 진정성 있게 표현하고 싶다. 이번에는 제가 상상한 것 이상으로 관객이 마그리드에게 공감해 주었다. 참으로 감사하다."

- 공주라는 이름이 가명이 아니라 실명인가.
"늦둥이라 아버지가 아기 적에 '공주야' 하고 부르시던 게 실명이 되었다. 어릴 적에는 남자 아이들에게 '네가 무슨 공주냐'라고 많은 놀림을 받았다. 하지만 커서는 공주라는 이름 덕을 많이 본다. 한 번 들으면 누구나 기억하기 쉬운 이름이다. 제 이름에 감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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