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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생님, 저 이번 시험 90점 넘었어요."
"저도 넘었어요."

세상을 다 가진 듯한 표정으로 목소리에는 잔뜩 힘을 주고 말하는 아이를 보며 나도 모르게 웃음이 났다. 아이들이 이렇게 득의양양해 하는 것은 '90점 파티'가 열리기 때문이다.

나는 집에서 아이들을 가르치는 일을 하고 있다. 주로 가르치는 과목은 수학이지만, 시험 때가 되면 다른 과목도 조금 다뤄준다. 이 일을 한 지도 어느새 20여 년이 넘어가고 있다. 그동안 나를 선생님이라 부르며 함께 한 아이들 중에는 이미 사회인으로서 자기 몫을 해나가는 아이들도 많다. 그 모습을 보면 괜히 뿌듯해지곤 한다.

"안녕하세요, 선생님?"
길 맞은편으로 걸어오는 건장한 청년의 깍듯한 인사에 나는 잠시 당황했었다.

"저예요. 정우, 김정우입니다."
"아, 그래. 네가 정우구나. 몰라보겠다."

이름을 듣고 나서야 나는 어렸을 때 정우의 모습을 찾아낼 수 있었다. 그 때는 장난꾸러기에 공부보다는 축구하는 것을 더 좋아해서 어지간히 속을 썩였던 아이었는데... 반듯한 청년으로 자란 걸 보니 기특할 따름이었다. 거기에 한 때 공부를 가르쳤던 과외 선생님을 잊지 않고 반갑게 인사하는 모습이 대견하기도 했다.

"정말 이제는 어른이구나, 밖에서 만나도 몰라보는 게 당연하지. 오늘처럼 네가 인사하지 않았으면 그냥 지나쳤을 거야."
"아우, 어떻게 선생님을 잊겠어요? 참, 지금도 과외 하세요?
"응, 그렇게 됐어."
"그럼 90점 파티도 하세요?"

그냥 헤어지는 게 아쉬워 나는 정우와 함께 근처에 있는 커피전문점으로 들어가 이야기를 나누었다.

"90점 파티? 응, 하긴 하는데 요즘은 아이들이 많이 없어서 파티 대신에 문화 상품권으로 대신하고 있어. 그것도 기억하고 있니?"
"하하, 그럼요. 그게 선생님이 주는 당근이었잖아요. 시험 점수가 90점 이상이면 파티를 열어준다는 거. 그 때는 생일파티도 대부분 집에서 하던 때라 파티라는 말만으로도 엄청 좋았거든요. 특히 90점이 넘으면 케이크를 선물로 받을 수 있었으니 정말 기를 쓰고 했어요. 저도 한 번 받았잖아요."
"후후, 그랬구나. 그래. 그 때는 그런 재미도 있었어."

정우의 말에 나는 까맣게 잊고 있었던 예전의 기억을 떠올렸다. 그러니까 16년 전쯤에는 가르치는 아이들이 많아서 하루하루를 정신없이 보냈었다. 공부라는 게 결과가 시험점수로 나타나기 때문에 은근히 부담 가는 것도 사실이다. 그리고 자신이 재미를 갖고 해야 하는데 가끔 그렇지 않은 아이들도 있어 걱정되기도 했다. 엄마들은 대부분 아이들의 성적이 오르지 않는 것이 모두 가르치는 사람의 탓으로 돌리니...

그래서 생각해낸 것이 90점 파티였다. 시험을 보고나서 90점이 넘는 아이가 있으면 그 팀에 파티를 열어주는 것인데 파티라고 해봐야 치킨, 떡볶이, 피자, 과자, 과일 등 아이들이 좋아하는 것들로 상을 차려 함께 먹는 것이다. 특히 90점이 넘는 아이에게는 따로 케이크를 선물로 주었는데 예상외로 반응이 좋아 어떤 때는 한 팀에서 서 너 명의 아이들 모두 90점이 넘을 때도 있었다. 그렇게 해서라도 공부에 재미를 갖게 된다면 더 이상 좋을 게 없다는 생각으로 일 년에 4번씩 90점 파티를 열곤 했었다.

나도 두 아이를 키우는 엄마의 입장이다 보니 교육비에 대한 부담을 잘 알고 있어 다른 곳 보다 싼 수업료를 책정했었다. 그로 인해 무조건 수업료가 비싸야 실력 있는 과외라고 생각하는 엄마들로부터 외면을 받기도 했지만 그래도 나는 내가 다른 사람을 도울 수 있는 방법이라는 생각으로 세월이 흘러도 수업료를 올리지 않고 있다. 갑자기 사정이 어려워져 과외를 그만두게 될 상황이 된 아이에게는 수업료를 받지 않고 가르치기도 했다. 물론 아이에게는 비밀로 하고.

그러니 90점 파티를 하다보면 어떤 때는 아이들로부터 받은 수업료가 그대로 들어갈 때도 있었지만 그래도 아이들이 좋아하는 모습을 보면 그런 것쯤은 문제가 되지 않았다. 오히려 나를 믿고 따라주는 아이들이 고마웠을 뿐, 그런데 요즘은 가르치는 아이들도 손가락으로 꼽을 정도이고 아이들도 어색한 파티는 좋아하지 않아서 그만두었다. 대신 문화상품권으로.

"그래도 그 때가 좋았던 것 같아요. 공부만 하면 되니까요."
"후후, 너도 그런 말을 하는 걸 보니 진짜 어른이구나? 그렇게 공부하기 싫어하더니."
"저는 선생님 덕분에 공부하는 재미를 알게 되었어요. 90점이 넘어서 케이크를 받았을 때 정말 좋았거든요. 그 때 케이크가 제일 맛있었던 것 같아요."
"후후, 하긴, 툭하면 도망가서 축구하던 네가 케이크를 받겠다고 기를 쓰고 공부하던 모습이 생각난다. 그러게 뭐든지 하겠다고 기를 쓰면 되는 거야."

환하게 웃는 정우를 보며 나는 그동안 내가 해왔던 일에 대한 보람을 오랜만에 느꼈다. 90점 파티에 대한 즐거움도...

덧붙이는 글 | '잔치, 어디까지 해봤나요'공모글



태그:#잔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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