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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 초, 시어머니가 위급한 상황을 넘겼다. 급성신부전증으로 응급실로 실려 갔던 어머니는  보험이 되지 않은 수백만 원짜리 수술을 하고서야 퇴원을 할 수 있었다. 입원을 하면 보험이 적용되지 않는 온갖 검사와 신종 기계를 이용한 시술을 받아야 한다. 덕분에 대개 수백 만 원 이상의 돈을 들인다. 흔한 암보험 하나 들지 않았기에, 누군가 아프면 덜컥 겁부터 난다.

은퇴 후 두 번째 삶 시작하려던 수리공... 그에게 닥친 비극

<내 아내에 대하여>(라이오넬 슈라이버 지음 / 박아람 옮김 / RHK / 2013.12 / 1만 5800원)
▲ 내 아내에 대하여 <내 아내에 대하여>(라이오넬 슈라이버 지음 / 박아람 옮김 / RHK / 2013.12 / 1만 5800원)
ⓒ RH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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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아내에 대하여>는 실화를 바탕으로 하여 의료민영화의 민낯을 낱낱이 드러내는 소설이다. 스스로를 중산층이라고 생각했던 세퍼드는 26년 간 일했던 만물 수리상을 처분해 100만 달러를 받는다. 그의 꿈은 그 돈으로 아프리카 펨바에 가서 수리공으로서 제2의 삶을 소박하게 사는 것이다.

그가 '두 번째 삶'을 위해 펨바로 떠나자고 말하자 아내는 동행을 거절한다. 혼자라도 떠나겠다고 하자 아내는 마침내 자신이 암에 걸렸고 혼자 병원을 다니고 있다는 사실을 고백한다. 아내는 종피종이라는 희귀한 암을 앓고 있었다. 수리공이던 세퍼드는 자신이 오래 전에 사용했을지 모르는 석면 때문에 아내가 병에 걸렸을지 모른다는 죄책감에 시달린다. 그는 자신의 미래 계획을 포기하고 아내의 병수발과 항암 치료에 매달린다.

동료이자 오랜 지기인 잭슨과 캐럴 부부에게는 플리카라는 딸이 있다. 플리카는 전 세계에서 350명만이 앓고 있는 희귀병 자율신경장애(FD)에 걸렸다. 플리카는 보험 처리가 되지 않는 값비싼 치료약과 처치로 겨우 연명중이다. FD 환자는 대부분 20살 이전에 죽음을 맞는다.

딸 때문에 일찌감치 의료 사각지대의 실태를 알게 된 잭슨은 세상을 향해 냉소를 날린다. 1%의 부자를 빼고는 '쪼다와 찐드기' 두 부류만 있다고, 순진한 쪼다들이 찐드기를 먹여 살린다며 말이다. 잭슨에 따르면 찐드기 1순위는 바로 정부와 정부에 얹혀사는 사람들이다. 정부 도급 업자와 고문, 두뇌집단과 로비스트, 회계사와 변호사, 사회복지 수혜자, 범죄자들도 찐드기다. 찐드기들 가운데는 의료업계와 손잡은 민간 의료보험 회사도 포함된다.

"1920년대 이전까지는 의료보험이란 게 없었어. 의료비 청구서를 받으면 그냥 냈다고. 그때도 민간 보험이 아주 드물게 있긴 했지만 그건 정말 커다란 재앙을 보장하기 위한 거였어. 고용주가 보험료를 내주는 제도는 제 2차 세계대전 때 발전한 거야. 노동력이 귀했잖아.

대기업은 군대에 가지 않고 남은 극소수의 남자들을 끌어오려고 혈안이 되었는데 정부의 임금 통제 때문에 높은 임금을 제안할 수 없었지. 법망을 피하기 위해 의료보험을 일종의 미끼로 끼워 넣은 거야. 작은 혜택이었지. 비용이 많이 들지 않았어. 그 시절엔 전부들 젊은 나이에 금방 쓰러졌잖아. 화학요법이나 심장이식, MRI 따위도 개발되지 않아서 의료비 자체가 그렇게 많이 나가지 않았어. 당시 의료보험을 끼워준 건 정말 직원들한테 피자 교환권을 던져준 거랑 크게 다르지 않았다고." (본문 중에서)

의료 단가가 높아지고 인간 수명이 길어지자 이윤을 추구하는 자본가와 정부는 의료비를 개인에게 떠넘기는 방법을 선택한다. 그게 바로 의료민영화다. 미국은 많은 이들이 보험 없이 살아가고 있다.

'쪼다'는 결국 파산할 때까지 의료계에 착취당한다

배짱과 상상력이 없어서, 진지하고 성실하게 사회에 참여해 노동을 하고 세금을 내는 대부분의 시민은 쪼다다. 쪼다는 국민성의 핵심 특징을 이루는 '변통성'도 '혁신성'도 보이지 못한다. 그저 체제에 순응하고, 국세청에 항의도 못하며 온갖 명목의 세금을 꼬박꼬박 낸다. 그러나 정작 정부의 복지 혜택은 거의 없다시피 하다.

"만물 수리상 매각만 봐도 그래. 난 정부에 양도 소득세로 20만 달러를 냈어. 내가 고등학교 때부터 그 개자식들에게 퍼다 준 걸 다 합치면 100만 달러에서 200만 달러 사이일 거야. 하지만 그렇게 받아먹고도 그 자식들은 내 마누라가 암에 걸렸을 때 타이레놀 한 알 사주지 않지. 연세 높은 우리 아버지도 돌봐주지 않아. 아버지도 평생 정부에 돈을 냈는데 말이야. 게다가 단지 아버지도 나처럼 자신을 책임질 수 있다는 이유로 빈곤하지 않다는 이유로 말이지." (본문 중에서)

세퍼드는 의료보험을 위해 온갖 수모를 견디며 자신이 매각한 수리상의 직원으로 생활 한다. 하지만 세퍼드는 직장에서 들어 준 의료보험은 보험이 적용되지 않는 분야가 무척 많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세퍼드는 부조리한 의료 살태와 정부에 분노한다.

"모두를 위한 복지를 위해 내가 냈던 세금을 왜 아내의 불치병 치료에는 쓸 수 없을까?"

의료비는 이미 지불된 보험료를 빼고 나머지 비용에서 2대 8 혹은 4대 6으로 지불한다. 예를 들어 1만 달러인 항암 치료제가 보험이 적용된다면 5000달러는 이미 지불됐고, 나머지 5000달러 중 1000달러, 혹은 2000달러를 환자가 지불해야 한다. 그러나 보험이 없다면 1만 달러를 모두 지불해야만 한다. 그런데 희귀 질병을 앓고 있는 사람들은 보험 혜택을 받지 못하는 치료를 더 많이 받아야 한다. 고액의 의료수가를 고스란히 지불해야 하는 처지이다.

의사는 마지막으로 약효나 부작용이 검증되지 않은, 임상 실험 중인 신종 치료제를 사용할 것을 권한다. 완치 확률은 지극히 낮으며 비용은 1회당 10만 달러이다. 세퍼드가 더 이상 치료비를 낼 수 없는 상황임을 말하자 의사는 비로소 아내가 3주밖에 살 수 없다고 실토한다. 세퍼드가 아내를 위해 지불한 200만 달러가 연장한 아내 목숨은 겨우 3개월이었다. 병원에서는 환자 가족의 은행 잔고가 텅 비어 더 이상 의료비를 지불할 수 없을 때까지 환자의 상태를 정확하게 말해주지 않으며 희망고문을 했다.

이것이 의료 민영화로 보험사가 폭리를 취하는 미국 의료의 민낯이다. 아내를 간호하며 밤을 새느라 지각과 결근이 잦은 세퍼드는 직장에서 해고당한다. 아내가 항암치료를 하는 1년 동안 자신이 번 돈과 저축한 돈을 모두 의료비용으로 지불한 세퍼드는 결국 파산하고 만다.

의약품의 독점이나 카르텔의 폐해는 심각하다. 단가를 얼마든지 낮출 수 있는 에이즈 치료제와 항생제 개발 기술을 독점 기업이 거머쥐고 아프리카인과 아시아인의 주머니를 털어간다. 개발 기술이 전수된다면 살아날 수 있는 수많은 생명이 이윤 극대화를 추구하는 기업에 의해 죽음을 맞는다.

암 발병률 세계 1위인 한국이 의료 민영화가 된다면 어떤 상황이 벌어질까. 가족 중 누군가 희귀병에 걸렸다면 전 재산을 팔아서라도 살리려고 하지 않을까. 만일 아내나 남편 혹은 자식이나 부모가 암에 걸렸다면 어떠할까. 집이 재산인 사람들은 집을 팔아서라도 병을 치료하려 할 것이다. 민간 보험으로 충분히 대비할 수 있는 부자가 아닌 평범한 직장인이라면 어떤 결과가 벌어질까. 남편이 투병 끝에 빚만 남기고 가자, 극빈자로 전락해 목숨을 끊어야만 했던 세 모녀의 비극은 더 이상 남의 일이 아니다.

덧붙이는 글 | <내 아내에 대하여>(라이오넬 슈라이버 지음 / 박아람 옮김 / RHK / 2013.12 / 1만 5800원)



내 아내에 대하여

라이오넬 슈라이버 지음, 박아람 옮김, 알에이치코리아(RHK)(2013)


태그:#의료민영화 반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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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자 잘살면 무슨 재민교’ 비정규직 없고 차별없는 세상을 꿈꾸는 장애인 노동자입니다. <인생학교> 를 통해 전환기 인생에 희망을. 꽃피우고 싶습니다. 옮긴 책<오프의 마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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