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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말을 들어 보세요. 하비와 저, 토머스 제이는 꼭 핀볼 같아요. 우리가 준비되어 있든  아니든, 사람들이 동전을 넣고 단추를 누르면 튕겨 나와 빙글빙글 돌다가 결국엔 구멍 속에서 끝장나고 마는 핀볼 같은 신세예요. 그게 전부라고요."

위탁 가정에 맡겨진 아이들의 치유 성장기
▲ 우리는 핀볼이 아니다 위탁 가정에 맡겨진 아이들의 치유 성장기
ⓒ 사계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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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여름 한 위탁 가정에 두 남자 아이와 한 여자 아이가 맡겨진다. 칼리라는 여자 아이와 하비와 토머스 제이라는 남자 아이들이다. 책 <우리는 핀볼이 아니다>는 부모에게 버림받아 위탁 가정에 맡겨진 아이들의 치유 성장 동화다.

자신들 힘으로는 아무것도 할 수 없다고  생각하던 아이들이 서로의 상처를 보듬어 주며 스스로 행복한 인생을 개척해 나갈 수 있다는 사실을 서로를 통해 깨우치게 된다는 줄거리다. 하비는 친아버지 자동차에 치어 두 다리가 부러졌다. 판사는 아빠가 하비에게 접근하지 못하게 했다. 아빠가 술을 자제하고 안전한 가정을 꾸릴 수 있을 때까지 하비를 위탁 가정에 맡기라는 판결을 내린 것이다.

토머스 제이는 두 살 때 쓸모없는 강아지처럼 어느 농가 앞에 버려졌다. 농가 주인은 여든 두 살의 쌍둥이 할머니였다. 할머니들은 토머스 제이가 어릴 적엔 말동무로, 좀 커서는 정원을 가꾸는데 도움이 되어 공공 기관에 맡기지 않고 토머스 제이를 6년 간 곁에 두었다.

여든여덟이 된 쌍둥이 할머니들 엉덩이뼈가 부러졌을 때  공공기관 사람들은 처음으로 토머스 제이의 존재를 알게 됐다. 토머스 제이는 '친부모를 찾거나 평생 돌봐 줄 양부모가 정해질 때'까지 위탁 가정에 맡겨졌다. 칼리는 고집이 세고 의심이 많으며 공손하지 않다. 텔레비전 보는 것을 제일 좋아하고 누가 화면을 가리면 물건을 집어 던졌다. 칼리는 두 번째 의붓아버지와 사이가 나빠 위탁 가정에 맡겨졌다.

세 아이 모두 부모에게 버림받아 상처를 지닌 아이들이다. 아이들을 맡은 메이슨 부인은 아이를 낳지 못했다. 양자를 들이려고 준비하던 중 위탁 가정이 되어 달라는 공공 기관의 요청을 받는다. 이미 열일곱 명의 아이들이 메이슨 부인의 가정을 거쳐 자기 자리를 찾아갔다.

메이슨 부인은 반 귀머거리인 할머니들과 사느라 목소리가 크고, 사람을 돕는 일에 익숙한 토머스 제이를 두 다리가 부러진 하비와 같은 방을 사용하게 한다. 도움이 필요하면 부를 수 있게 하려는 것이었다. 멋진 의상을 입고 텔레비전에 나오거나 유명 배우와 인터뷰하는 꿈을 꾸는 칼리에게는 옷 만드는 법을 알려주고, 하비를 도울 수 있도록 음식을 가져다주고 말동무가 되도록 한다.

상처가 많아 마음을 닫아걸고 어떻게 소통해야 하는지 모르는 아이들은 처음에는 서로 기름과 물처럼 겉돈다. 매사에 냉소적인 칼리는 말수가 적고 비밀이 많은 하비에게 점점 관심을 갖는다. 칼리는 좀처럼 마음을 열지 않는 하비의 관심을 끌기 위해 시도하지만 매번 실패로 끝난다. 편지를 쓰고 싶지만  아빠에게 할 말이 없는 하비는 편지 대신 '최악과 최상의 사건', '좋아하는 책 목록', '15분 간 하고 싶은 일' 등 자기만의 목록을 적기 시작한다.

병원에 입원한 토머스와 제퍼슨 할머니를 찾아간 토머스 제이는 어떤 방법으로 감사나 사랑을 표현해야 하는지 몰라 당황한다. 사람을 받아보지도, 표현하지도 못하고 살아왔기  때문이다. 할머니들이 차례로 세상을 떠나자 부모도 생일도 모르는 토머스 제이는 여덞 살 고아로 남겨진다. 칼리는 늘 위탁 가정에서 빨리 도망칠 궁리를 하면서도 옷 만드는 법을 배우고 메이슨 아주머니의 요리를 돕기도 한다. 하비의 관심을 끌려는 시도도 멈추지 않는다. 더불어 토머스 제이에게도 조금씩 관심을 갖는다.

아내에 대한 증오가 깊은 하비의 아빠는 하비가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알려고 하지 않는다. 그저 자신이 좋다고 생각하는 방식대로 선물을 하거나, 하비와 약속을 했다가 멋대로 깨트린다. 하비는 강아지를 키우는 것이 소원이지만 하비가 생일 선물로 받은 강아지마저 멋대로 없애버린다. 그리곤 하비의 생일 선물로 소형 컬러 텔레비전을 보낸다. 하비는 그런 아빠의 선물이 조금도 반갑지 않다.

게다가 자아를 찾겠다며 떠난 엄마가 정말로 자기와 아빠를 버린 걸 알게 된 하비는 실망한다. 수술 부작용으로 다리가 감염되어 입원하지만 병을 이기려는 의욕마저 없다. 하비가 의욕을 되찾도록 궁리하던 칼리는 하비의 생일 선물로 강아지를 준비해 토머스 제이와   함께 병원으로 몰래 데려간다. 강아지를 본 하비는 눈물을 펑펑 쏟으며  울고, 마침내 의욕을 되찾는다.  간호사는 강아지를 못 본채 눈감아 주고 메이슨 부인도 꾸중 대신 두 아이를 꼭 안아주며 "잘했다"고 칭찬을 해 준다,

생일이 언제인지도 모르는 토머스 제이에게 칼리는 자신의 생일과 같은 날 생일을 하자고 제안한다. 생일이 생긴 토머스 제이는 아홉 살 생일을 기다릴 수 있게 됐다. 위탁 가정에 들어 온 순간부터 도망칠 궁리만 하던 칼리는 스스로의 인생은 스스로 결정해야 한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메이슨 부인은 아이들에게 억지로 강요하는 일도 없지만 방치하지도 않는다. 대신 아이들끼리 서로를 도울 수 있도록 세심하게 배려한다.

자신의 부족한 점, 어릴 적 이야기를 들려주며 아이들 스스로 세상과 소통하는 방법과 서로를 배려하는 방법을 깨우치도록 한다. 누군가를 배려하거나 감사를 표하거나 자신이 원하는 것을 가져 본 적 없는 아이들은 서로에게 부족한 부분을 채워주면서 서로 상처를 치유해 간다. 아이들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좋은 장난감이나 비싼 옷이 아니었다.

아이들이 정말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관심을 갖는 것. 그리고 있는 그대로 아이들을 바라봐 주는 것. 잠재되어 있는 가능성을 스스로 찾아내도록 참고 기다려 주는 것이면 충분했다. 햇살처럼 그저 멀리서 따뜻한 관심을 감지하게 해주는 것으로 아이들 스스로 자기 앞의 생을 개척할 힘이 생기는 것이다. 스스로는 아무것도 할 수 없는 '핀볼' 신세라고 냉소하던 칼리는 이렇게 고백한다.

"토머스 제이, 누구라도 널 핀볼이라고 부르지 못하게 해야돼."
"무슨 말인지 통 못 알아듣겠어."
"별거 아니야. 그냥 핀볼들은 어떤 일이 닥쳐도 스스로는 어떻게 할 수 없단 뜻이야. 하지만 우리는 달라... 그런데 한 번도 도망치지 않았어. 대단한 건 아니지만, 내 인생에 대한 결정은 내가 내려야 하는 걸 깨달았어. 지금 난 새 학교에서 열심히 노력하기로 마음먹었어. 그러니까 너도 진짜 열심히 해야 해. 알았지? 노력하는 한 우리는 핀볼이 아닌 거야."

덧붙이는 글 | <우리는 핀볼이 아니다>(베치 바이어스 장편. 김영욱 옮김/ 사계절/ 8000원)



우리는 핀볼이 아니다

베치 바이어스 지음, 김영욱 옮김, 사계절(2010)


태그:#위탁 가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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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자 잘살면 무슨 재민교’ 비정규직 없고 차별없는 세상을 꿈꾸는 장애인 노동자입니다. <인생학교> 를 통해 전환기 인생에 희망을. 꽃피우고 싶습니다. 옮긴 책<오프의 마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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