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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 숲길에 떨어진 낙엽을 주워 시집 갈피에 끼워 말렸던 추억. 누구에게나 한 번쯤 있을 것이다. 가을은 누가 뭐라 해도 독서의 계절이다.

책과 함께 떠난 여행
장석주의 그리스 터키 인문학 기행
▲ 내가 사랑한 지중해 장석주의 그리스 터키 인문학 기행
ⓒ 맹그로브숲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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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 문장 노동자, 독서광이라고 자신을 소개한 장석주의 그리스·터키 인문학 여행기인 <내가 사랑한 지중해>. 저자는 독서광답게 유명 관광지 대신 터키부터 그리스 아테네까지 아카데미 광장, 신전, 도서관, 서점, 그리고 니코스 카잔차키스가 머물던 자리 등 인문학이 깃든 장소를 돌아보며 영혼의 샘물을 채워나간다.

인간은 누구나 안정된 자리를 지키고 싶어하는 마음과 더불어 새로운 세계를 향한 떠남의 열망을 안고 살아간다. 책을 통한 앎이 정적이고 내적이라면 미지의 세계를 향해 떠나는 여행은 동적이며 외적인 앎을 향한 발걸음이다.

저자는 자기 안에 숨겨진 열망과 만날 수 있는 깊은 여행을 꿈꾼다. 그가 선택한 여행의 방식은 인간의 정신적 사유의 영역을 되짚어가며 내밀하고도 깊은 만남을 갖는 인문학 여행이다. 지중해에서 만난 신전과 건축물, 도서관 순례를 통해 인간 삶에 녹아든 신들의 역할을 되돌아보고 인간 심연에 자리한 욕망과 갈등 등 지적 사유를 짚어낸다.

헬레니즘 시대 공공 도서관 중 하나였던 셀수스 도서관에는 Sophia(지혜), Episteme(지식), Ennoia(지성), Arete(미덕) 네 여신상이 있다. 그는 이곳에서 무한 우주를 꿈꿨던 지중해 사람들의 내면세계와 지성의 한 단면을 떠올리기도 했다. 도서관에서 그는 과거의 지혜로부터 먼 미래까지 무한한 사유와 상상의 날개를 펼치며 정신의 해방을 맛본다. 지중해 연안에서 터키의 역사를 돌아보기도 하고 트로이, 에베수스, 파묵칼레에서 죽은 자의 시간을 통해 시간의 영원성을 자각한다.

"직사광선 아래에서 오랜 세월 동안 빛바랜 석관들 속에 누워 자는 자들은 아무 말이 없다. 죽은 자들은 자신의 유한함 때문에 시간의 무한함 앞에 무릎을 꿇었다. 사람은 모든 것이 무로 돌아가는 죽음의  미망 앞에서 무력하다. 오오 죽은 자들이여, 영원 속에서 안식할지니!" - <내가 사랑한 지중해>중 일부

저자는 여행을 떠나며 니코스 카잔차키스의 <영혼의 자서전>과 <그리스인 조르바>를 챙겨 갔다. 그리고 시간이 날 때마다 카잔차키스의 책을 거듭해 읽었다. 20대 때 중고서점에서 우연히 집어 들었다가 그의 영혼을 단숨에 사로잡은 카잔차키스의 자취를 더듬기 위해서였다.

"그토록 먼 이곳까지 오고 싶어 했을까?...지난 30여 년 동안 이 책을 읽을 때마다 내 심장박동은 빨라지고 영혼은 술렁거렸다. 카잔차키스의 묘지에는 그리스어로 "나는 아무것도 바라지 않는다. 나는 아무것도 두려워하지 않는다. 나는 자유다"라고 씌어 있다."  - <내가 사랑한 지중해>중 일부

멀리 떠나지 않아도 좋다


카잔차키스의 분신 조르바처럼 자유로운 인간 니코스 카잔차키스는 자유를 쟁취한 대가로 출판은 거부당했고 그리스 정교회는 그를 파문했다. 교회 공동묘지에 그의 시신이 묻히는 것조차 거부당해 아라크리오의 한 언덕에 쓸쓸하게 묻혔다. 그러나 그는 수많은 젊은이들의 가슴을 뛰게 했고, 영혼의 자유를 꿈꾸게 했으며 무한한 상상력으로 몸과 정신의 합일을 열망하게 만들었다.

그는 여정의 끝자락에서 산토리니 섬 북쪽에 있는 '아틀란티스 북스'를 찾는다. 젊은 시절 동로서적, 동아서적, 청구서적 등 중고 서점에서 지식에 탐닉했던 시절을 떠올리기도 한다.

"나는 왜 그토록 책을 좋아할까? 내가 세상의 모든 서점들과 도서관들을 좋아하는 것도 거기에 책이 있기 때문이다. 나는 그리스 시대의 철학자 에라토스테네스가 그랬듯이 로고스를 사랑하는 자(philologos)이다. 즉 언어 애호가다...책을 읽는 시간은 언제나 가슴이 벅차오르는 기쁨의 찰나들이고 온통 빛으로 감싼 은총의 순간들이었다." - <내가 사랑한 지중해>중 일부

책과 여행은 인간의 삶을 넓고 깊게 만들고, 인간의 정신을 정화한다. 이 혼탁한 세상에서 삶의 의미와 인간됨을 찾고 싶다면 애독서 한 두 권을 배낭에 넣고 저자의 삶을 더듬어 보는 여행을 계획해봐도 좋을 것이다. 지중해가 아닌 크레타 섬이라도 좋다. 만해를 만나 색즉시공의 세계를 물을 수도 있고, 해운대의 고운 최치원과 만나 밤을 새우며 고담을 나누어도 좋지 않겠는가. 여행을 떠날 수 없다면 한적한 숲길에 홀로 앉아 책 속으로 긴 여행을 떠나보는 것도 좋겠다.

덧붙이는 글 | <내가 사랑한 지중해> 장석주 / 맹그로브숲/ 1만 4800원 / 304쪽



내가 사랑한 지중해 - 장석주의 그리스 터키 인문학 여행

장석주 지음, 임서진 사진, 맹그로브숲(2014)


태그:#내가 사랑한 지중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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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자 잘살면 무슨 재민교’ 비정규직 없고 차별없는 세상을 꿈꾸는 장애인 노동자입니다. <인생학교> 를 통해 전환기 인생에 희망을. 꽃피우고 싶습니다. 옮긴 책<오프의 마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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