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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인가 가을인가
아 가을인가 봐
물동이에 떨어지는 버들잎 보고
물 긷는 아가씨 고개 숙이니
가을인가 가을인가
아 가을인가 봐

박태준 곡 <아! 가을인가>(1938년)의 노랫말을 쓴 윤복진(1907-1991)은 한국의 대표적인 아동문학가 중 한 사람이다. 그가 남긴 동요는 작곡가들에 의해 무수히 노래로 재탄생되었다. 그래서 사단법인 거리문화시민연대는 2007판 <대구 신택리지>에서 윤복진을 두고 "일제 시대 주요 일간지나 아동잡지에 거의 이름이 빠짐없이 등장한다"면서 "일제 시대 윤복진이라는 이름 석자를 모르는 어린이가 없을 정도였다"라고까지 표현했다.

하지만 그에 대한 연구는 지금까지 줄곧 단편적 수준에만 머물러 왔다. 이유는 단 하나, 그가 월북 문인이기 때문이다.

흰색 동그라미 부분이 윤복진의 생가 자리로 지금은 식당이 들어섰다. 사진 가운데로 높게 상단이 약간 드러나 있는 분홍빛 고층 빌딩은 대구백화점이고, 사진 앞면의 빈 터는 송학구이의 주차장이다.
 흰색 동그라미 부분이 윤복진의 생가 자리로 지금은 식당이 들어섰다. 사진 가운데로 높게 상단이 약간 드러나 있는 분홍빛 고층 빌딩은 대구백화점이고, 사진 앞면의 빈 터는 송학구이의 주차장이다.
ⓒ 정만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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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음악문헌학회가 2014년 9월 3일 발간한 <음악문헌학> 제5집에 윤복진의 작품 세계 전반을 정리한 논문이 발표됐다. 손태룡의 논문 '윤복진의 가사로 된 악곡 고찰'은 윤복진이 창작을 시작한 1925년부터 월북한 1950년까지 25년간 그의 삶 및 작품을 고찰한 결과 "106곡이 노래로 작곡되었다"면서, 그 중 96곡의 악보를 제시했다.

손태룡의 연구에 따르면, 윤복진의 가사를 바탕으로 창작된 96곡 중 63.6%인 61곡이 5음음계 또는 7음음계로 만들어졌다(5음음계 40곡, 7음음계 21곡). 손태룡은 이를 "작곡가들이 한국적인 느낌을 드러내고자 노력한 결과"로 해석했다.

손태룡은 또 "윤복진 노래 중 20.8%인 20곡은 '시'음이 없고, 10.4%인 10곡은 '파'음이 없어 모두 합하면 31.3%가 5음음계의 효과를 나타내며, 2/4박자로 된 것이 32.3%인 31곡, 4/4박자로 된 것이 33.3%인 32곡으로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다"면서 "주로 어린이들이 부르는 노래곡으로 작곡되었기 때문에 빠르고 경쾌하게 표현하고자 한 결과로 보인다"고 분석했다. 

윤복진의 시는 특히 박태준이 곡을 많이 붙였는데...

울 밑에 귀뚜라미 우는 달밤에
길을 잃은 기러기 날아갑니다.
가도 가도 끝없는 넓은 하늘로
엄마 엄마 찾으며 흘러갑니다.

오동잎이 우수수 지는 달밤에
아들 찾는 기러기 울며갑니다.
엄마 엄마 울고 간 잠든 하늘로
기럭기럭 부르며 찾아갑니다.
- 윤복진 시, 박태준 작곡 <기러기>(1928년)

윤복진의 노래 106곡 중 55.7%인 59곡이 박태준에 의해 작곡되었고, 홍난파가 14.2%인 15곡, 강신명과 권태호가 각각 4.4%인 5곡씩 등을 작곡했다. 손태룡은 윤복진의 시가 특히 박태준에 의해 노래로 많이 재탄생된 이유를 ""일제 강점기는 대부분 작곡가들이 일간지나 잡지를 통해서 창작한 동시를 취득하던 시기였다.

박태준은 계성학교의 후배이자 음악을 좋아하는 윤복진과 친하게 지내게 되어, 그의 수준높은 노래가사를 손쉽게 이용하여 작곡할 수 있었다. 때문에 박태준의 초창기 작곡은 윤복진의 가사를 이용하여 대구에서 많이 작곡되었다"고 밝혔다.

일제 강점기, 우리나라 사람의 자본으로 설립되었던 무영당백화점 건물(지금은 부산비닐상사 간판이 붙어 있다) 뒤로 곽병원 주차 빌딩이 보이는 풍경. 주로 윤복진의 시에 곡을 붙인 박태준의 동요집은 무영당에서 출간했다.
 일제 강점기, 우리나라 사람의 자본으로 설립되었던 무영당백화점 건물(지금은 부산비닐상사 간판이 붙어 있다) 뒤로 곽병원 주차 빌딩이 보이는 풍경. 주로 윤복진의 시에 곡을 붙인 박태준의 동요집은 무영당에서 출간했다.
ⓒ 정만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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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에서 볼 수 있는 윤복진의 자취

윤복진 약력
1907년, 대구 출생
1924년, 계성학교 졸업
1925년 이후, <어린이> 잡지에 동요 여러 편 입선
1929년, 윤복진 작사 박태준 작곡 동요곡집 <중중
          때때중> 발간
1930년, 동아일보, 조선일보 등 동요현상모집 당선
1936년, 일본 동경법정대학 문학과 졸업
1946년, 조선문학가동맹 아동문학부 사무장
1948년, 조선문화단체총연맹 경북지부 부위원장
1950년, 전쟁 중 월북
1988년, 월북 작가 작품 출판 허용
1991년, 북한에서 사망
대구 중구 서문로 곽병원 뒤편에 가면 부산비닐상사 간판이 붙어 있는 빌딩을 볼 수 있다. 이 빌딩은 일제 강점기 시절 무영당백화점으로 쓰였다. 대구에 설립된 백화점 중 조선인의 자본으로 세워진 최초의 백화점이 바로 무영당이다.

무영당백화점의 주인 이근무는 본래 무영당서점을 경영했다. 이근무는 당대 대구 지식인들이 원하는 것이면 일제가 판매를 금지한 책까지도 어떻게든 구해주었고, 1937년 백화점으로 사업이 커진 뒤에는 건물 2층에 예술가들을 위한 공간도 제공해주었다. 윤복진의 시에 곡을 붙인 박태준의 동요집들도 무영당서점에서 간행되었다.

박태준의 생가는 도로가 나면서 자취도 없어졌고, 윤복진의 생가에는 식당이 들어서 있다. 윤복진과 박태준의 모교인 계성학교는 그들이 재학했던 무렵의 모습을 고이 간직한 채 지금도 대구 중구 대신동에 당당하게 남아 있다.


태그:#윤복진, #손태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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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편소설 <한인애국단><의열단><대한광복회><딸아, 울지 마라><백령도> 등과 역사기행서 <전국 임진왜란 유적 답사여행 총서(전 10권)>, <대구 독립운동유적 100곳 답사여행(2019 대구시 선정 '올해의 책')>, <삼국사기로 떠나는 경주여행>,<김유신과 떠나는 삼국여행> 등을 저술했고, 대구시 교육위원, 중고교 교사와 대학강사로 일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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