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찰이 18일 '사이버 명예훼손 형사처벌 강화'라는 칼을 빼들었다. "국민을 대표하는 대통령에 대한 모독적인 발언도 그 도를 넘고 있다"는 박근혜 대통령의 발언이 나온 지 이틀 만이다.
이날 대검찰청은 "사이버상 허위사실 유포 등의 폐해가 심각한 수준"이라며 미래창조과학부, 안전행정부, 방송통신위원회, 한국인터넷진흥원, 주요 포털사 등과 함께 대책회의를 개최했다. 검찰은 회의 전 배포한 보도자료에서 "최근 남녀노소, 신분 고하, 이념을 막론하고 누구나 사이버상 허위사실 유포의 피해자가 되고 있고 그 피해정도는 회복할 수 없을 만큼 중대하다"며 '무관용 원칙'을 내세웠다.
"사회적 병리현상 심각... 엄정한 법 집행할 것""이제는 진정이나 고소 등 개별 피해자들의 권리구제 요청에 응하는 것만으로는 이러한 병리적 현상의 발생을 막기 어려운 상황에 이르렀다"는 게 배경 설명이다. 검찰은 이를 뒷받침하기 위해 2011~2014년 다룬 주요 사이버 명예훼손 사건 20개도 소개했다.
이 사례들을 살펴보면, 피해자가 정치인인 경우가 10건, 연예인 4건, 체육인 또는 운동선수가 2건, 종교인 등이 피해자인 사례가 4건이다. 검찰은 수사 중인 7건을 제외하고, 8건은 피고소인 또는 피고발인을 불구속한 상태로 공판을 진행했다. 또 4건은 약식절차로 처리했다. 구속 기소한 사람은 회사원 이아무개씨의 나체 사진을 가족과 직장 등에 부착한 정아무개씨뿐이었다.
그런데 18일 검찰은 '엄정한 법 집행'을 내세우며 허위사실 유포 명예훼손사범을 적극적으로 구속 수사하고, 정식 재판절차를 밟는 것을 원칙으로 하겠다고 밝혔다. 또 공소유지에 힘써 실형선고를 유도하겠다고 덧붙였다. 게시물 최초 유포자는 물론 그 내용을 확산, 전달한 사람 역시 엄벌에 처한다는 방침도 정했다.
아예 전담수사팀까지 생긴다. 검찰은 서울중앙지검 서영민 첨단범죄수사1부장을 팀장으로 하고, 사이버 수사 경험이 풍부한 검사 5명과 전문 수사관을 투입, 신속하고 철저하게 수사하기로 했다. 수사팀은 전국 58개 검찰청에서 보내는 중요사건을 직접 맡고, 인터넷 실시간 모니터링을 실시하는 한편 유관기관과 협력체계를 구축한다. 검찰은 형사절차는 물론 피해자 보호를 강화하기 위해 게시물 삭제요청 방법 홍보 등에도 힘쓸 계획이다.
UN 권고에도 안 맞아... "약자들 탄압할 수도"하지만 검찰의 방침은 또 다시 논란을 낳을 가능성이 높다. 많은 나라들이 형법상 명예훼손죄를 없애고 있는데다 국내에서도 폐지 주장이 꾸준히 나오고 있는데, 그 흐름과 거꾸로 가는 일이기 때문이다. UN인권이사회 마거릿 세카기야 유엔 인권옹호자 특별보고관 역시 지난 1월 작성한 한국 인권 현황보고서에서 명예훼손을 형사처벌이 아닌 민사소송으로만 다뤄야 한다고 권고했다(관련 기사 :
UN 인권이사회서 드러난 한국 인권위의 '현재').
☞ 'UN 인권옹호자 특별보고관맞이 한국NGO모임' 요약자료결국 '표현의 자유 후퇴'라는 비판이 이어질 수밖에 없다. 홍성수 숙명여자대학교 법과대학 교수는 18일 <오마이뉴스>와 한 통화에서 "검찰이 이렇게 나서면 명예훼손죄가 남용될 수 있다"고 우려했다. 그는 "국가가 개인의 일에 적극 개입한다면 표현의 자유가 위축된다"며 "권력 감시 차원에서도 명예훼손죄를 확대 적용하면 더욱 문제가 될 수 있다"고 말했다.
또 명예훼손 형사처벌 강화가 오히려 약자들을 탄압하는 도구로 쓰일 수 있다고 지적했다. 명예훼손죄는 특정 피해자가 있고, 구성요건을 충족해야 성립하기 때문에 '허위사실 유포 = 명예훼손'이라는 등식이 곧바로 성립하지 않는다. 홍 교수는 "이 내용을 잘 아는 사람은 처벌을 받을 가능성이 낮다"며 "(법규를) 잘 모르지만 최후의 수단으로 과한 표현을 쓴 약자들이 얼마든지 피해를 볼 수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