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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 채로 배 속이 들추어진 사람을 유심히 관찰하는 사람들이 둘러싸고 있다. 결박된 손에 얼음 물을 쉼 없이 부어 손에는 고드름이 주렁주렁이다. 공기가 없는 투명한 유리방 안에서 사람이 쓰러져 나뒹군다. 일본군은 고통스러워하는 사람들을 관찰하며 기록하기에 여념이 없다.

비록 모형이지만 전해지는 고통은 생생하다. 채색되지 않은 모형은 오히려 배려같다. 밀폐 된 자료전시실 내부. 옅은 불빛 아래에서 일제의 만행을 고발하듯 자료들로 빼곡하다. 이곳은 '731부대'다.

'마루타' 실험실 731부대

'731부대'의 본부 건물. 최근 복원을 마치고 전시관으로 개관했다.
 '731부대'의 본부 건물. 최근 복원을 마치고 전시관으로 개관했다.
ⓒ 김민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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잿빛 모래 위에는 풀 한 포기 없다. 뙤약볕 아래 갈색 건물 한 동이 을씨년스럽게 서 있다. 입구에 붙어있는 '731부대'라는 표지판 만이 이곳이 '부대' 였음을 말해주고 있었다. 하지만 '731부대'라는 이름만으로는 무엇을 하는 부대인지 도무지 감이 오지 않는다.

중국 흑룡강성(헤이룽장성) 하얼빈시. 이곳에 일본군은 태평양전쟁 당시 '부대'의 이름으로 위장된 거대한 생체실험실을 만들었다. 1932년 설립 초기에는 '관동군 방역급수부대', '동향부대' 라는 이름으로 불렀고, 1941년 '731부대'로 개명했다. 이 부대의 임무는 세균전 대비를 위한 '인간생체실험'이다. 말 그대로 실험 대상은 살아있는 사람이다. 즉, 인간을 사람이 아닌 실험재료로 취급한 '마루타'의 실험실이었다.

'731부대'의 부지는 상당히 넓다. 이 공간을 가득 채우고 있었던 건물들은 거의 찾아 볼 수 가 없다. 일본이 패전하고 도망가면서 모조리 파괴해버리고 떠났기 때문이다. 현재 온전한 건물도 최근에서야 복원된 것이다. 중국정부는 이곳을 역사유적으로 지정했다. 그리고 거의 사라져 버린 역사의 흔적을 복원하기 위해 터닦기를 하고 있었다. 입구 정면으로 보이는 유일한 건물을 전시관으로 사용하고 있다. 이 건물은 당시 731부대의 본부 건물이었다.

전시관 건물로 들어서는 입구부터 어둠을 쏟아낸다. 볕을 최대한 차단해 놓은 전시실은 할로겐 전구가 쏘는 희미한 빛에 의존할 뿐이다. 15개의 전시실을 가득 메운 자료들은 당시의 참혹함을 날것 그대로 보여준다. 흑백 사진의 공포를 극대화 한다. 전시 내용에 기승전결은 없었다. 꽝꽝 얻어 맞는 듯한 충격이 시종일관 계속 된다.

생체실험을 재현해 놓은 모형들
 생체실험을 재현해 놓은 모형들
ⓒ 김민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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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체해부, 생체냉동실험, 생체원심분리실험 및 진공실험, 신경실험, 생체총기관통실험, 독가스 실험 등 모든 실험에 '생(生)'자가 붙어있다. 살아있는 사람을 마취도 없이 해부해 내장을 꺼내 관찰하고, 살아있는 사람에게 총을 쏴 관통 정도를 확인한다. '독가스실험실' 앞에서는 오히려 덤덤해진다. 사람들에게 가해진 끔찍한 고통을 상상해 본다. 금세 상상력의 빈곤함과 마주한다. 그 고통을 상상하는 것조차 무력하다.

유골도 신원도 확인 할 수 없는 한국인 희생자들

1936년부터 1945년 전쟁이 끝날 때까지 일본군의 마루타가 되어 죽어간 이는 무려 3000여 명에 달한다. 그 대상은 한국인, 중국인, 러시아인, 몽골인 등이다. 항일투사를 비롯해 민간인을 포함한다. 한국인 희생자는 254명이다. 1946년 도쿄 전범재판정에서 밝혀진 숫자다. 하지만 이들의 신원은 대부분 파악하지 못한 상태다.

일본은 전쟁에서 패하자 '731부대'의 흔적을 없애려고 했다. 살아있는 포로들은 모두 처형하고, 시체들은 불태웠다. 또한 건물을 모조리 파괴했고, 희생자들 명단이 적힌 자료는 소각해 버렸다. 유골조차 찾을 수 없다. 그렇게 희생자들의 넋은 어두운 역사 속에 갇혔다.

신원이 확인된 6명의 한국인 희생자의 이름이 선명하다.
 신원이 확인된 6명의 한국인 희생자의 이름이 선명하다.
ⓒ 김민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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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득룡, 이청천, 이기수, 한성진, 김성서, 고창률'

일본군의 '마루타'가 되어 죽어간 한국인의 이름이다. 신원이 확인된 희생자는 6명에 불과하다. 일본은 지금까지도 전쟁에 관한 자료들을 상당 부분 은폐하고 있다. 이런 상황이라, 희생자 신원 확인을 위한 연구에 많은 어려움이 있었다. 다행히 최근에 당시 문서들이 새롭게 발굴되고 있어 희생자들에 대한 연구가 진행될 전망이라고 한다. 참혹한 고통 속에서 죽어 간 희생자들의 넋이라도 찾을 수 있기를 바랄 뿐이다.

자료관 출구로 향하는 곳에 어둡고 긴 회랑이 있다. 유난히도 어두운 복도에는 검은색 대리석 명판이 빼곡히 수놓아져 있다. 이 명판에는 마루타가 되어 죽어간 사람들의 이름이 하나하나 새겨져 있다. 가장 많이 희생 된 중국인들의 이름 사이에 한글로 또렷이 새겨진 6개의 명판이 있다. 한국인 희생자 앞에 서자 아무런 말도 할 수 없었다. 그저 숙연히 고개를 숙였다.

'생체실험보고서' 미국과의 거래로 살아남은 이시이 시로

'731부대' 사령관 이시이 시로.
 '731부대' 사령관 이시이 시로.
ⓒ 김민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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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시이 시로. '만행'이라는 말로는 다 표현할 수 없는 잔인함의 중심에 있는 인물이다. 세균학 박사인 그는 일본군에 세균전을 대비 할 것을 적극 주창했다. 이시이 시로의 주장으로 731부대를 만들고, 그는 사령관이 되어 이곳에서 벌어지는 모든 생체실험을 진두지휘했다.

자료실에는 '생체실험결과보고서' 사본의 일부가 전시되어 있다. 이 보고서는 패전과 동시에 자취를 감췄었다. 이시이 시로는 승전국인 미국을 상대로 모종의 거래를 한다. 자신을 비롯한 731부대 핵심 관계자들의 목숨을 담보하는 조건으로 '생체실험보고서'를 넘긴다. 수 천명의 생명이 잔악무도한 전범자들의 목숨값으로 지불되고 만 것이다. 그렇게 이시이 시로는 전범 재판을 피했고, 어떠한 처벌도 없이 무사히 본국으로 건너간다.

일본의 패망에도 전범자들에게는 다시 봄이 찾아온다. 731부대 핵심 관계자들은 일본으로 건너가 의약계, 정.관계의 주요 요직을 차지한다. 최근 밝혀진 바에 의하면, 731부대 관계자 중 24명은 생체실험 데이터를 가지고 박사학위까지 받았다고 한다. 이들에게는 전쟁에 대한 일말의 반성도 없었다.

배후세력은 미국이다. 미국은 자신들의 이익을 위해 역사상 가장 잔악무도한 전쟁 범죄를 눈감아 준 것이다. 이후 미국의 의학 발전에 생체실험의 결과가 큰 역할을 했음은 두 말할 나위가 없다. 전후 처리의 책임을 맡았던 미국은 결과적으로 전쟁 피해국들에게는 일제와 똑같은 공범에 불과했다.

'일제의 만행은 과연 어디까지일까. 인간의 잔혹함은 과연 끝이 있기나 한 것일까.' 731일부대를 둘러보는 내내 머릿속을 맴도는 생각이다. 인간의 '비인간성', '잔인성'을 전쟁이라는 상황적 조건으로 설명하기에는 설득력이 부족했다. 과거를 반성하지 않는 자들. 세계를 피로 물들인 이들이 여전히 현실을 장악하고 있다. 그리고 다시 전쟁을 준비하고 있다.


태그:#731부대, #생체실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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