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데빌 에서 존파우스트를 연기하는 윤형렬

▲ 더 데빌 에서 존파우스트를 연기하는 윤형렬 ⓒ 클립서비스


존파우스트가 블랙먼데이라는 시대적인 어둠을 만나지 않았다면 아마도 그는 여자친구와 결혼하고 단란한 가정을 꾸렸을 촉망받는 증권맨으로 자리잡았을 터. 하지만 블랙먼데이는 그의 인생을 송두리째 뒤바꾼다.

존파우스트는 이 사회적인 재앙으로 인해 투자자의 돈을 지키지 못한 것에 대한 죄책감에 시달리기 시작하면서 X라는 악을 소환하기에 이른다. X를 불러내지 않았다면 존파우스트는 착한 증권맨, 착한 남자친구로 남았을 텐데 말이다.

우리나라 뮤지컬계에서 러브콜이 많은 배우 중 한 명인 윤형렬은 '내실'을 가장 중요하게 생각한다. 아무리 러브콜이 많다 한들, 배우의 내실이 따라주지 않는다면 오래 가지 못할 것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무대 위에서 행복하게 공연하기를 바라는 뮤지컬 배우 윤형렬이 이야기하는 <더 데빌>과 존파우스트의 이야기를 들어보도록 하자.

사회적인 실수를 자신의 탓으로 돌린 파우스트

- 블랙먼데이로 곤경에 처한 존파우스트에게 X가 나타나 도와주는 계기는 무엇일까.
"원작 <파우스트>에서는 신과의 내기에서 메피스토펠레스라는 악마가 등장한다. 그 가운데서 파우스트는 악마에게 이용당한다. <더 데빌>은 <파우스트>를 베이스로 했지만, X는 존파우스트 안에 있는 존재다.

존파우스트가 곤경에 처했을 때 넘지 말아야 했을 마지막 선이 X라고 생각한다. X는 실존하는 인물이 아니다. 대사를 보면 X를 사람이라고 표현하는 부분이 없다. '그 자'라고 표현된다. 블랙먼데이로 말미암은 주식 실패에서 벗어나고자 손을 잡게 되는 악을 X라고 이해하면 될 듯하다.

관객이 어려워하는 부분이 있다. 존파우스트만 X를 보는 게 아니다. 존파우스트의 여자친구인 그레첸도 X를 볼 수 있다. 그런데 존파우스트가 보는 X와 그레첸이 보는 X는 다른 인물이다. X는 존파우스트의 내면에서 나온 존재지만 초자연적인 존재이기도 하고 존파우스트의 내면을 반영하는 거울 같은 인물이다. 존파우스트가 착하게 마음먹으면 착하게 보이지만, 반대로 악하게 마음먹으면 악하게 보이는 캐릭터가 X다."

- 증권가에 있는 증권맨은 자신만 잘 먹고 잘 살기 쉽다. 하지만 존파우스트는 블랙먼데이로 어려움을 겪는 수많은 투자자들에게 이타심을 많이 느낀다.
"사람들은 증권맨을 믿고 투자한다. 그런데 증권맨에 대한 신뢰가 블랙먼데이로 무너졌다. 존파우스트는 투자자에 대한 죄책감을 많이 느낀다. 살아오면서 이렇게까지 크게 패배한 적이 없는 사람이다.

블랙먼데이 때문에 많은 사람이 실직하고 자살한다. '그들(투자자)이 가진 모든 걸 잃게 만들었어'라는 대사가 있다. 하지만 존파우스트는 이들을 위해 해줄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다. 블랙먼데이는 존파우스트 개인의 실수가 아니라 사회적인 실수다. 그걸 존파우스튼는 자신의 탓으로 돌리고 비관한다."

더 데빌 에서 존파우스트를 연기하는 윤형렬과 X를 연기하는마이클리

▲ 더 데빌 에서 존파우스트를 연기하는 윤형렬과 X를 연기하는마이클리 ⓒ 클립서비스


- 그레첸은 존파우스트의 여자다. 사랑하는 그레첸이 X에게 농락당하면 남자의 입장에서 자존심이 허락하지 않을 텐데.
"존파우스트는 이미 X에게 잠식당했다. X가 그레첸을 건드린다는 걸 인식하지 못 한다. X는 존파우스트의 내면에서 나온 존재라 X가 존파우스트고 존파우스트가 X다. X에게 잠식당한 존파우스트 자신의 악한 모습이라 질투를 느끼지 않는다."

- 존파우스트와 X가 한 인물이라면 <지킬앤하이드>가 연상된다.
"자칫 잘못하면 <지킬앤하이드>처럼 보일 위험이 있어서 그렇게 보이지 않으려고 노력한다. 극을 어렵게 보면 X의 정체가 과연 신인가, 아니면 악마인가 분석하며 보기 쉽다. X를 이해하기 위해서라면 <지킬앤하이드>를 연상하는 게 쉬울지도 모른다."

- 차지연씨와 장은아씨의 그레첸 연기는 어떤가.
"차지연 누나는 자기 주관이 뚜렷하고 의지할 수 있는 여자친구 연기를 보여준다. 커리어우먼 이미지나 소울메이트로서의 그레첸을 차지연 누나가 보여준다면, 장은아씨의 그레첸은 여린 부분이 있다. 감싸주고 싶고 보호해주고 싶은 그레첸을 보여준다. 여린 연기를 보여주는 장은아씨를 2막에서도 계속해서 밀어붙이는 것에 대한 미안함이 있다."

더 데빌 에서 존파우스트를 연기하는 윤형렬과 가르첸을 연기하는 차지연

▲ 더 데빌 에서 존파우스트를 연기하는 윤형렬과 가르첸을 연기하는 차지연 ⓒ 클립서비스


- 록 뮤지컬이다 보니 성대 보호에도 신경을 많이 쓸 텐데.
"뮤지컬을 하기 전에 가수를 했고, 가수를 하기 전에 학교에서 밴드 보컬을 담당했다. 뮤지컬하면서 클래식하게 노래를 부르기 시작한 것이다. <더 데빌>의 록 성향이 저에게는 맞다. 목이 쉬지 않게 노력했다기보다는 살을 빼니 목이 쉬지 않더라(웃음)."

- 조명이 밝지 않은 상태에서 계단을 오르락내리락 해서 다치기가 쉽다.
"지금까지 해본 공연 중 가장 다치기 쉬운 세트다. 배우들의 정강이가 멍들지 않으면 어딘가가 찢어져 있다. 조명이 어두운 데서 격하게 왔다 갔다 하는 장면이 많다. 배우들이 다치지 않으려고 노력하며 공연한다."

- '15금' 뮤지컬이다.
"2막 첫 장면에서 존파우스트가 그레첸을 억지로 덮치는 장면이 있다. 제가 성인이지만 부모님 앞에서는 아들이다. 민망한 장면이 있어서 부모님을 보여드리지 못했다. 보여드렸다가는 난감할 것 같다.(웃음) 부모님을 초대할 엄두가 나지 않는다."

- 이목구비가 뚜렷한데, 방송이나 영화에도 영역을 넓히고 싶지는 않은가.
"어릴 적에는 모든 연기를 해보고 싶은 욕심이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뮤지컬을 통해 많은 걸 배우는 중이다. 죽을 때까지 연기에 대해 배우겠지만 당분간은 뮤지컬을 계속 하고 싶다."

윤형렬 더 데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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