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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 수정 : 2014년 9월 15일 오전 10시 20분]

이르쿠츠크 시내 전경.  도시를 관통하는 강이 바로 앙가라강이다.
 이르쿠츠크 시내 전경. 도시를 관통하는 강이 바로 앙가라강이다.
ⓒ 정수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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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차의 종착역은 이르쿠츠크다. 물론 시베리아 횡단열차는 모스크바까지 계속 이어지지만, 우리의 목적지인 바이칼 호수를 가기 위해서는 여기서 내려야 한다.

이르쿠츠크에 내리니 비로소 이곳이 유럽이라는 느낌이 확실히 온다. 건물 양식과 길거리의 사람들을 보면 "열차를 타고 많이 오긴 왔구나"라는 생각이 절로 일어난다. 이르쿠츠크는 우랄산맥 기준으로 러시아 동부에서는 꽤 규모가 있는 도시이지만 한국 교민은 얼마 되지 않는다. 유학생들이 60~70명 정도 머물고 있단다.

오후 10시에야 해가 지는 '백야'의 도시

야곱의 동상
 야곱의 동상
ⓒ 정수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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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르쿠츠크를 발견했다는 야곱의 동상이 세워져 있다. 야곱에 대한 설명을 듣다 보니 문득 오버랩 되는 인물이 있다. 바로, 콜럼버스! 그러면 러시아에서 기념하는 이 야곱도 '러시아판 콜럼버스'가 아니냐고 가이드에게 물어 봤다. 비슷하다고도 볼 수 있지만, 이 야곱이라는 사람은 토착민이었던 부리야트족과 조화롭게 지냈다는 대답이 돌아왔다. 그래도 원래 살고 있던 사람들이 이미 있었는데 이곳을 '발견'했다는 표현을 쓰며 기념하는 것을 보니 서구중심 백인우월주의가 느껴지는 것 같아 씁쓸하다.

이르쿠츠크 시내에는 동시대를 살았던, 그러나 같은 운명을 가질 수 없었던 유명한 두 인물의 동상이 있다. 제정 러시아의 마지막 흑해함대 사령관이었던 꼴착 제독과 불셰비키 혁명의 주역 레닌이 그 주인공들이다.

제정 러시아의 마지막 흑해함대 사령관이었던 꼴착 제독은 볼셰비키 혁명군을 제압하기 위해 철도로 이동 중 붙잡혀 이곳 앙가라 강에서 총살 됐다. 당연히 사회주의 소련의 역사 속에서 그의 이름은 기념될 수 없었다.

꼴착의 동상이 세워진 것은 2004년이다. 그를 추모하는 독지가들의 성금으로 세워졌다고 하나, 과거 러시아 제국의 권위와 영광을 꿈꾸는 푸틴의 의중이 반영됐다는 설(說)이 유력하다.

꼴착과 대척점에 서있는 레닌, 그의 동상은 구 소련 붕괴 이후 대부분의 도시에서 사라졌다. 하지만 이르쿠츠크는 레닌과 그의 동지들이 활동하며 혁명을 준비하던 곳이라는 깊은 인연이 있어서인지 아직 철거되지 않고 남아있다고 한다.

레닌 거리 주변의 한 풍경
 레닌 거리 주변의 한 풍경
ⓒ 정수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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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닌 동상이 서있는 주변 거리는 일제시대 우리 사회주의 계열 독립운동가들이 활동하던 장소이기도 하다. 흘러간 시간이 길었던만큼 당연히 관련 흔적들을 찾아 볼 수는 없었다. 지금은 거리의 화가들만이 그 자리를 메우고 있었다.

숙소로 머물렀던 이르쿠츠크 시내 중심가 앙가라 호텔 앞에는 아담한 공원이 잘 꾸며져 있다. 백야다. 사진을 찍은 시간이 오후 9시였는데, 우리나라로 치면 7시 정도의 느낌밖에는 들지 않는다. 오후 10시가 되어서야 해가 넘어가 어둠이 자리 잡는데, 이국땅에서 맞이하는 색다른 경험이 신기하다.

이르크추크 도심에 조성된 작은 공원.  백야현상으로 밤9시까지도 주변이 환하다.
 이르크추크 도심에 조성된 작은 공원. 백야현상으로 밤9시까지도 주변이 환하다.
ⓒ 정수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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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애보를 간직한 '시베리아의 파리' 이르쿠츠크

이르쿠츠크의 별칭이 '시베리아의 파리'이다. 이 도시에 대한 안내서를 읽으면서 예전 고등학교 세계사 시간에 배웠던 내용이 기억을 스친다. '데카브리스트'. 나폴레옹이 모스크바까지 진격했다가 퇴각할 때 파리까지 추격해갔던 러시아의 청년 장교들은 자유로운 서유럽의 모습을 보고 충격을 받는다. 그들은 농노제를 폐지하고 군주제를 타파할 것을 목적으로 1825년 12월 거사를 일으켰으나 결국 실패하고 만다. 5명의 주동자가 처형되고 120여 명이 유형을 떠나게 되는데, 그들이 당도한 유형지가 바로 이르쿠츠크다.

시내에는 러시아정교회가 추구하는 전통양식과 유럽 바로크 양식이 혼합된 이른바 '시베리아 바로크' 형식의 독특한 건물이 많다.
 시내에는 러시아정교회가 추구하는 전통양식과 유럽 바로크 양식이 혼합된 이른바 '시베리아 바로크' 형식의 독특한 건물이 많다.
ⓒ 정수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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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카브리스트 박물관으로 조성되어 있는 발콘스킨 저택
 데카브리스트 박물관으로 조성되어 있는 발콘스킨 저택
ⓒ 정수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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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 편안한 생활을 하고 있던 데카브리스트 장교의 부인들은 둘 중 하나의 선택을 해야 했다. 하나는 이혼을 하고 귀족 신분을 유지하며 재가하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남편들을 따라 모든 명예와 부를 포기하고 시베리아로 유형을 따라가는 것이었다. 상당히 많은 숫자의 여인들이 남편을 따라 고난의 길을 선택하는 영화 같은 스토리를 남긴다. 이들의 이야기는 이후 러시아 문학의 소재로도 많이 쓰이기도 했다.

유형을 왔던 데카브리스트들의 영향으로 이르쿠츠크는 '시베리아의 파리'로서 문화의 꽃을 활짝 피우게 된다. 그러면 여행안내서에 소개되어 있는 것처럼 지금 이르쿠츠크 시민들은 시베리아의 파리로서의 자부심을 갖고 있을까? 궁금해서 유학생 가이드에게 물어 보았다. 가이드는 "그런 질문을 하면 이곳 사람들이 웃는다"며, "모스크바 사람들은 이르쿠츠크 사람을 '동부의 촌놈들'이라고 부른다"고 대답했다.

4시간 걸쳐 도착한 '비린내 나지 않는 바다'

바이칼로 가는 길은 버스를 이용해서 편도만 4시간은 족히 달려야 한다. 중간에 휴게소가 가끔 있기는 한데 우리나라 휴게소를 생각하면 안 된다. 휴게소에 들렀을 때 한국이 더욱 그리워지는 이유는 화장실 때문이다.

휴게소에 있는 화장실
 휴게소에 있는 화장실
ⓒ 정수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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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에서 무료 화장실은 우리 옛날 시골 '푸세식' 화장실을 생각하면 된다. 유료 화장실이라고 해도 시설이 열악하다. 그리고 특이한 점은 변기에 커버가 없다는 점이다. 러시아에 유학 온 학생들이 제일 먼저 구입하는 게 변기 커버라고 하니, 이런 것에 신경 많이 써야 하는 분이라면 러시아 여행 계획 시 꼭 유념하기를 바란다.

러시아에는 '40400'이라는 말이 있다고 한다. 알코올 도수 40도가 아니면 술이 아니고, 영하 40도 밑이 아니면 추위가 아니고, 400km 이상의 거리가 아니면 멀리 가는 게 아니란다.  추위와 넓은 땅을 가진 러시아인들의 대륙적 기질을 엿볼 수 있다. 버스로 4시간이면 적절한 거리라고 생각하니 나의 몸과 뇌도 대륙에 적응한 듯 그리 지루하게 느껴지지 않았다.

드디어! 창 밖 너머가 아닌 육안으로 바로 볼 수 있는 바이칼의 푸른 물이 나타난다. 2500만 년이나 된,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호수다. 수심 1742m로 세계에서 가장 깊은 호수이자 전 세계 얼지 않은 담수량의 20%와 러시아 담수량의 90%를 차지하는 호수. 아무리 숫자로 표현해도 상상이 잘 안 됐는데, 직접 보니... 그냥 바다 같다. 수평선이 보이는 비린내 나지 않는 바다라고 표현하면 딱 어울린다.

알혼섬의 비포장도로를 힘차게 달릴 수 있는 우와직 4륜구동차
 알혼섬의 비포장도로를 힘차게 달릴 수 있는 우와직 4륜구동차
ⓒ 정수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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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이칼 호수가 한민족의 시원이라는 가설은 사실일까

바이칼은 또한 '한민족의 시원'과 연관된 의미를 갖고 있는 곳이기도 하다. 빙하기 때 바이칼은 고립된 오아시스와 같은 열수(熱水)광산이었다. 당시 구석기인들은 혹독한 추위 때문에 열수가 치솟는 온화한 바이칼 주변에 머물고 있다가 해빙기에 큰 홍수가 일어나자 남하해 한반도 일원에까지 정착하게 되었다고 한다.

최근 일부 학자들은 연구를 통해 '조선'이나 '고려(고구려)'는 순록을 뜻하는 '코리(Khori 또는 Qori)'나 '고올리(Kholri)'에서 유래된 말이라고 주장한다. 바이칼 동쪽에서 순록을 기르면서 살아온 코리족(야쿠트)을 비롯한 순록 유목민 일파가 순록의 먹이인 이끼의 길을 따라 만주 지역으로 이동하였고, 여기서 목축이 농업과 결합해 (고)조선, 부여, 고구려, 발해 등 제국의 경제적 토대를 이루고, 더 남하해 한반도에 이르러서는 농업구조로 전환하면서 한반도 내 고대국가들의 밑거름이 되었다 한다. 이것이 이른바 '순록민족기원설'이다.

체질인류학적인 측면에서도 몽골, 만주, 한국, 브리야트를 비롯한 동시베리아인은 매우 가까운 사이라고 한다. 바이칼 주변의 야쿠트인과 브리야트인, 아메리카 인디언 그리고 한국인의 DNA가 모두 비슷하다고도 한다.

문화면에서의 상관성도 찾아볼 수 있다. 선사시대 이래 근대국가의 형태를 갖출 때까지 유라시아 대륙을 넘나들며 끊임없이 문명의 교류를 실현시켜왔던 유목민들에게 정신적 지주는 샤머니즘이었고 그 샤머니즘의 고향이 바로 이곳 바이칼 호수였다. 바이칼 호수 주위에 흩어져 사는 부랴트족들은 바이칼이 시베리아의 중심일 뿐만 아니라 세계의 중심이라고 믿었다.

알혼섬 들어가는 선착장 봉우리에서 둘러본 바이칼 호수변
 알혼섬 들어가는 선착장 봉우리에서 둘러본 바이칼 호수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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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이칼 주변에는 우리 말고도 몇몇 한국인 여행팀이 있었다. 우리 일행도 그랬고 대부분의 여행팀은 한국인 유학생들이 가이드를 하고 있었다. 이르쿠츠크의 대학교 1년 학비는 우리나라 대학교의 1학기 학비 정도라고 한다. 여름방학 성수기를 쉬지 않고 열심히 일하면 1년 학비를 벌 수 있다고 한다. 러시아도 실업률이 높기 때문에 한국인 유학생들의 가이드는 불법이라서, 늘 경찰의 단속을 걱정하면서 일한단다. 타국 땅에서 열심히 일하며 내일을 준비하는 청년들을 보니 짠하기도 하고 대견하기도 하고.

사람과 차를 싣고 알혼섬으로 들어가는 바지선
 사람과 차를 싣고 알혼섬으로 들어가는 바지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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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지선을 타고 10분도 안 걸리는 짧은 거리를 들어가면 바이칼 22개의 섬 중 가장 크다는 알혼섬이 나온다. '시원'이라는 수식어가 붙어서인지 뭔가 태초의 신비를 간직한 담백한 느낌일 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섬에 내리는 순간 상상은 완전히 깨진다. 비포장도로를 달릴 수 있는 4륜 구동 자동차, 바퀴 큰 오토바이, 북적이는 사람들, 우리나라 휴양지에서 쉽게 볼 수 있는 새로 지은 펜션, 그리고 카페에 호프집까지.

⑦편에서 이어집니다.


태그:#이르쿠츠크, #꼴착, #바이칼, #데카브리스트, #백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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