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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마지막 여행지인 바르셀로나로 떠난다. 한국에서 미리 바르셀로나행 저가항공을 예약해 놓았기에 짐을 챙겨 일찌감치 공항으로 갔다. 이젠 여행에 익숙해져 다른 여행지로 떠나는 것이 두렵지 않았다. 지난번 리스본행 저가항공을 탔을 때보다 한층 여유로운 태도로 비행기에 올랐다. 자리에 앉아 책을 펴고 몇 자 읽지도 않았는데 벌써 바르셀로나에 도착했단다. 수하물을 찾고 나니 밤 11시 반이었다. 늦은 시간이라 지하철 대신 공항버스를 타기로 하고 바르셀로나의 중심지인 카탈루냐 광장에서 내렸다.

꽤 많은 한국인과 버스를 타고 왔는데 버스에서 내리자마자 뿔뿔이 흩어져 우리만 남았다. 우리도 미리 조사해 온 호스텔을 향해 발걸음을 옮겼다. 그곳은 무료로 빨래가 가능한 곳이었다. 모로코의 사하라 사막을 다녀온 후 빨래를 하지 못해 찝찝한 옷을 입고 있던 나에게 무료 빨래는 끌리는 조건이었다. 이런 소박한 목적을 위해 카탈루냐 광장에 있는 수많은 호스텔을 뒤로 하고 우리가 가고자 하는 호스텔로 향했다. 호스텔은 광장에서 1.4km 정도 떨어져 있었지만, 여행하며 2~3km 정도는 가뿐히 걸어다녔던 터라 교통비도 아낄 겸 걷기로 했다.

무료 빨래 조건에 끌린 호스텔... 결국 찾지 못했다

금요일 밤이라서인지 거리에는 젊은 남녀가 떼로 모여 있었다. 늦은 밤 캐리어를 끌고 걷는 우리를 술에 취한 채 바라보는 이들이 많아서 불안했다. 삼십여 분이 지나고 주소에 써진 거리에 도착했는데 호스텔은 보이지 않는다. 지나다니는 사람들을 붙잡고 이 주소가 어디쯤이냐고 물었더니 우리가 서 있는 곳이 맞단다. 거리에 있는 건물을 하나하나 들여다 보며 호스텔을 찾아보았지만, 어디에도 없었다. 헤매는 우리가 안쓰러웠는지 할아버지 한 분이 도와주겠다고 하셨지만, 결국 호스텔은 찾지 못했다.

시간은 새벽 1시를 훨씬 넘어서고 있었다. 딸은 불안하고 초조한 나머지 짜증을 내기 시작했다.

"숙소 없으면 어떻게 해요? 엄마는 걱정도 안 돼요?
"설마 노숙이야 하겠어? 여행 며칠 남지도 않았는데 정 안되면 호텔가서 자면 되지. 돈은 걱정하지마."

딸이 지쳐 보이길래 원래 가려던 호스텔 찾기를 포기하고 다른 숙소를 찾아보기로 하였다. 근처 호텔로 들어갈까 했으나 딸은 고생한 게 아까워서라도 저렴한 숙소를 찾겠다며 다시 카탈루냐 광장으로 가잔다. 캄캄한 밤에 캐리어를 끌고 왔던 길을 되짚어 가려니 기운이 빠진다. 나까지 피곤해 하면 딸이 더 힘들어할까 봐 유쾌한 듯이 위로해 가며 걸었다. 광장 근처로 가니 불이 환하게 켜진 호스텔이 우리를 반긴다. 우선 문을 열고 들어갔다.

"방 있나요?"
"네, 이리 오세요."

이제 살았구나. 남는 대로 아무 방이나 달라고 하여 도미토리를 배정받았다. 너무 늦은 시간인지라 조심스럽게 문을 열고 침대를 찾았다. 우선 짐을 보관함에 넣고 자물쇠로 잠근 후에 침대 커튼을 열었는데... 아뿔싸, 웬 남자가 누워 있다.

우리가 배정 받은 두 침대 중 한 곳에 남자가 자고 있었다. 침대 배정에 착오가 생긴 모양이었다. 우선 짐은 그대로 두고 프런트에 가서 상황을 말했더니 미안하다며 다른 방을 주었다. 새로운 방으로 가기 위해서 아까 넣어 놓았던 짐을 꺼내려고 하는데 자물쇠가 열리지 않는다. 긴장해서 번호를 잘못 눌렀나 싶어 기억나는 대로 비밀번호를 조합해 보았지만, 끄떡도 하지 않았다.

잠은 달아나고 머릿속은 하얘지고 등에는 땀이 흐른다. 남들 자는데 덜그럭거리는 것이 여간 신경 쓰이는 게 아니었다. 하는 수 없이 빈손으로 후퇴했다. 짐을 꺼내지 못하니 씻지도 못하고 입은 옷 그대로 눕는 수밖에 없었다. 바르셀로나에 도착해 몸도 마음도 지친 탓인지 눕자마자 잠이 들었다.

아침에 눈을 뜨자마자 짐을 찾으러 갔다. 정신 없던 어제와 다르게 맑은 정신으로 다시 한 번 자물쇠 열기를 시도했으나 열리지 않았다. 여행을 위해 새로 산 것이었는데 불량품이었던 모양이다. 도저히 안되겠어서 프런트에 가서 절단기를 달라고 했다. 딸은 그런 게 있겠냐며 투덜거렸지만, 우리 같은 사람이 한둘이랴. 프런트에서는 절단기를 꺼내 들고는 이걸 원하는 게 맞냐고 웃는다. 직원은 자물쇠를 보더니 정말 잘라도 되겠느냐, 당신들 짐이 맞느냐며 장난을 치고는 직접 잘라주었다.

람블라스 거리는 매력이 넘치는 곳이다. 갖가지 상품들과 볼거리들이 있어 관광객의 눈길을 사로잡는다.
▲ 람블라스 거리 람블라스 거리는 매력이 넘치는 곳이다. 갖가지 상품들과 볼거리들이 있어 관광객의 눈길을 사로잡는다.
ⓒ 송진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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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단한 물건도 아닌데 괜히 자물쇠로 잠가서 한바탕 소동을 벌였다. 아침을 먹고 나서 작은 소원이었던 빨래도 한가득해서 널었다. 어제 밤늦게까지 고생한 데다가 빨래가 돌아가는 동안은 나가기도 애매해서 오전은 느긋하게 보내기로 하였다. 라운지에서 인터넷을 하며 빨래를 다 걷고 나니 어느새 오후가 되었다. 슬슬 바르셀로나 구경이나 하자 싶어 산 조세프 시장으로 향했다.

카탈루냐 광장에서 산 조세프 시장으로 가는 길 위에는 볼거리가 많았다. 람블라스 거리라고 불리는 이 길에는 색색의 꽃들이 펼쳐져 있는 꽃가게와 기념품 가게, 노천 카페가 늘어서 있다. 꽃향기를 맡으며 람블라스 거리를 걷다 보면 보케리아 시장이라고도 불리는 산 조세프 시장이 나온다. 바르셀로나 최대의 재래시장답게 입구부터 많은 사람들로 북적인다.

한국말 잘 하는 파키스탄인 덕분에 잘 먹었지만...

알록달록한 과일이 가지런히 진열되어 있다. 짚으로 쌓아 놓은 계란 꾸러미는 어린 시절을 떠올리게 한다.
▲ 산 조세프 시장 알록달록한 과일이 가지런히 진열되어 있다. 짚으로 쌓아 놓은 계란 꾸러미는 어린 시절을 떠올리게 한다.
ⓒ 송진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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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장 입구에는 색색의 과일들이 예쁘게 진열되어 있었다. 시장 안으로 들어가니 각종 해산물과 치즈, 하몽 등 다양한 식료품을 파는 가게가 나왔다. 시장은 큰 규모에도 깨끗하고 정돈이 잘 되어 있어서 인상적이었다. 곳곳에 다양한 간식 거리가 있었지만 더 안쪽으로 들어가 보기로 했다. 세트 메뉴를 5유로에 판다는 글씨와 함께 사람들이 많아 보이는 가게가 눈에 들어왔다.

메뉴를 둘러보고 있으니 점원이 "안녕하세요"라며 한국말로 인사를 한다. 여기도 한국인이 많이 오는구나 하고 딸과 무엇을 먹을까 상의하고 있으니 점원은 "이게 맛있어요"라고 한국말로 답한다. 장사하며 익힌 몇 마디를 익힌 수준인 줄 알았더니 의외의 대답을 한다.

그는 파키스탄 사람으로 어린 시절을 한국에서 보냈었기에 한국말에 능숙하다고 했다. 생각보다 유창한 그의 한국말에 이런저런 질문을 했더니 술술 대답한다. 주문은 어떻게 하냐고 물었더니 도시락통에 먹고 싶은 음식을 채우면 데워준단다. 추천을 받은 메뉴에다가 서비스로 음식을 조금 더 받아 딸과 함께 먹어 보았다. 맛도 괜찮았고 서비스도 좋아서 다음에 다시 오겠다는 인사를 하고 나왔다.

산 조세프 시장에서 사 먹은 음식. 한국말을 할 줄 아는 직원이 있어서 더욱 인상에 남는다.
▲ 산 조세프 시장의 가게 산 조세프 시장에서 사 먹은 음식. 한국말을 할 줄 아는 직원이 있어서 더욱 인상에 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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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녁도 먹었겠다 이번에는 쇼핑을 하기로 했다. 스페인에서는 일 년에 두 번 큰 세일이 진행된다. 1월 7일부터 2월 말까지 진행되는 겨울 세일은 거의 모든 상점에서 진행되며 세일 폭도 상당히 크다. 옷가게에서 마음에 드는 원피스도 하나 사고 액세서리 가게에서 우산도 하나 사면서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있었는데 갑자기 딸이 배가 아프단다. 더 이상 움직이는 것 무리일 것 같아서 바로 숙소로 돌아왔다.

일찍 들어온 김에 앞으로의 일정을 세워 보았다. 바르셀로나 여행의 백미인 가우디 투어는 넉넉하게 이틀을 잡고 남은 하루는 근교에 있는 몬세라트 수도원에 다녀오기로 했다. 이제 여행도 끝나가니 마지막까지 잘 버텨서 무사히 귀국해야 할 텐데...

일찍 잠자리에 든 딸은 새벽이 되더니 힘없이 엄마를 찾는다. 화장실을 계속 들락날락하더니 바닥에 주저앉아 일어나지를 못한다. 간신히 일으켜 세워 침대로 데려온 후 손가락을 따 주고 배에 핫팩을 붙여 주었다. 자다가 추울까 해서 내 이불까지 끌어다 덮어 주었다. 좀 나아졌는지 코를 골며 자길래 그제서야 나도 자리에 누웠다. 아무쪼록 아프지 말아야 할 텐데... 딸, 얼른 나아서 아침에 거뜬하게 일어나렴! 마음 속으로 빌면서 잠자리에 들었다.

아침 일찍 눈을 떠서 딸의 안부를 살폈다. 딸은 좀 나아진 것 같기는 하지만, 움직일 기운이 없단다. 그럼 오늘 일정은 어떻게 해야 하지? 딸이 낫기를 기다려 오후에 가우디 건축물을 보고 내일 몬세라트를 갈까, 아니면 오후에도 가우디 투어를 할 만큼 회복되리란 보장이 없으니 오늘 나 혼자라도 몬세라트에 다녀올까. 일단 아침을 먹으며 생각해 볼 요량으로 식당으로 갔다. 어제 인사했던 한국인 여행객에게 몬세라트 가는 길이 복잡하냐고 물었더니 혼자서도 다녀올 만하단다.

혼자 몬세라트에 다녀오기로 결심... 딸에게 의지하지 않고도

바위산 중턱에 위치한 수도원
▲ 몬세라트 수도원 바위산 중턱에 위치한 수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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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사를 마치고 나서 좀 더 생각했다. 아픈 딸 곁을 지키며 하루를 보내야 할지 딸 없이 혼자서라도 몬세라트를 다녀오는 게 나을지. 만약 혼자 가게 된다면 잘 다녀올 수 있을까, 길을 잃어 국제 미아가 되는 건 아닐까 걱정이 되었다. 이런저런 생각을 하다 보니 그동안 딸에게 너무 의존하고 있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고민 끝에 용기를 냈다. 따뜻한 차를 보온병에 담아서 딸에게 건네주고는 몬세라트에 혼자 다녀오겠다고 말했다. 가다가 자신이 없으면 왔던 길 그대로 되짚어 돌아오리라 마음먹었다. 딸도 자신 때문에 소중한 하루를 버리지 말라며 응원해 준다. 몬세라트로 가겠다고 결정하자 차 시간에 늦지 않을까 하여 부랴부랴 간단한 짐만 챙겨 숙소를 나섰다.

일단 지하철역으로 내려가서 T-10(지하철 10회 이용권)을 끊었다. 몬세라트로 가기 위해서는 에스파냐역으로 가서 기차를 타야 하는데 카탈루냐역은 1, 3호선이 다니는 역이라 어디로 가야 할지 헷갈리기 시작했다. 지나가는 사람에게 에스파냐역으로 가는 노선을 물으려 했는데 긴장해서인지 산츠역으로 가는 노선을 물었다. 엉뚱한 곳으로 가서 헤매다가 책을 펴고 노선도를 다시 살펴본 다음에야 에스파냐역으로 가는 1호선 지하철을 탈 수 있었다.

에스파냐역에서 내려 몬세라트로 가는 R-5 티켓을 파는 곳으로 갔더니 이미 표를 사려는 사람들이 길게 줄을 서고 있었다. 내 차례가 되어 발권을 하려 하니 몬세라트로 가는 방법은 케이블카와 산악열차로 가는 법이 두 가지란다. 발권을 도와 주는 직원에게 눈치껏 앞 사람과 똑같은 표를 달라고 했다.

혼자 기차를 타고 가려니 긴장이 됐다. 내 앞에는 정다워 보이는 노부부가 앉아있었다. 할머니는 카메라에 캠코더까지 만반의 준비를 해 왔단다. 그러면서 나와 내 옆에 앉은 멕시코 관광객에게 어디서 왔느냐, 미국에 가 봤느냐며 먼저 말을 건넨다. 나는 짧은 영어로 대답하며 대화를 이어 나갔다. 딸에게 의지하지 않고도 한 시간 넘게 대화를 한 스스로가 대견했다.

몬세라트 수도원 뒤 바위산의 모습. 사그라다 파밀리아를 설계한 가우디는 몬세라트에서 많은 영감을 받았다고 한다.
▲ 몬세라트 수도원 뒤 몬세라트 수도원 뒤 바위산의 모습. 사그라다 파밀리아를 설계한 가우디는 몬세라트에서 많은 영감을 받았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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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차에서 내려 케이블카의 한 종류인 푸니쿨라를 타기 위해 줄을 섰다. 기다리는 동안 바로 앞에 서 있는 한국인 처자 둘에게 말을 걸었더니 상냥하게 받아주어서 자연스럽게 동행을 하게 되었다. 젊은 사람들이라 설정샷도 많이 찍고 동영상 촬영도 하길래 내가 찍어주겠다고 하니 함께 찍자고 한다. 다시 20대로 돌아간 듯 그녀들과 즐겁게 어울렸다.

몬세라트 수도원은 중세부터 이어져 내려오는 소년 성가대로 유명하다. 유럽에서 가장 오래된 합창단이며 가창 수준도 높다고 한다. 매일 오후 1시와 일요일과 공휴일 12시 미사 때 부른다고 하여 시간에 맞춰 수도원으로 향했다.

기암절벽 위에 세워진 몬세라트 수도원의 정면과 내부 모습
▲ 몬세라트 수도원 기암절벽 위에 세워진 몬세라트 수도원의 정면과 내부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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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시가 가까워지자 줄을 서서 안으로 들어갔다. 미사가 끝날 때쯤 소년합창단이 나와 성가를 불렀다. 하얀 단복을 입은 소년들이 부르는 성가는 천사의 노래처럼 들렸다. 힘들지만, 오길 잘했다는 생각이 드는 한편 딸도 같이 와서 봤더라면 하는 아쉬움이 남았다. 딸을 위해 짧게나마 동영상을 찍었다. 미사가 끝나고 나와 수도원 뒤의 산에 올랐다. 산은 가팔랐지만 셋이서 이야기를 나누며 천천히 오르니 어느새 중턱에 다다랐다.

급히 준비하고 나오느라 먹을거리를 아무것도 챙겨오지 못했는데 그녀들은 미리 준비해 온 머핀을 내게 나눠 주었다. 같은 회사에서 만났다는 둘은 함께 회사를 그만두면서 여행을 오게 되었단다. 전에도 몇 번 여행을 같이 간 적이 있다며 지금까지 한 번도 싸워본 적이 없다고 했다. 자매 이상으로 친한 그녀들의 모습이 보기 좋았다.

"우리 엄마는 아픈 딸 버리고 혼자 구경 갔어요"

수도원에서 내려다보는 경치가 뛰어나다.
▲ 몬세라트 수도원에서 내려다 본 모습 수도원에서 내려다보는 경치가 뛰어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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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속 머무르고 싶었지만, 숙소에 누워 있을 딸 걱정이 되어 예정보다 일찍 돌아왔다. 하루종일 잤다는 딸은 한결 나아 보였다. 엄마가 오늘 무엇을 했을 것 같냐고 물었더니 한 시간이 지나도 안 오시기에 몬세라트에 잘 다녀왔겠거니 생각했단다. 그러면서 같은 방에 묵고 있는 사람들이 엄마는 어디 가시고 혼자 있냐고 궁금해 했단다. 그 질문에 "우리 엄마는 아픈 딸 버리고 혼자 구경 갔어요"라고 말해줬다고 해서 배꼽을 쥐고 웃었다.

딸은 배가 고프다며 나가서 뭘 좀 먹잔다. 기운이 생긴 것 같기에 먼저 일요일엔 무료로 입장이 가능한 피카소 미술관을 들르기로 했다. 미술관 앞에는 이미 줄이 길게 늘어서 있었다. 다행히 입장을 할 순 있었지만, 관람 시간이 촉박했다.

미술관에는 피카소의 소년기부터 노년기까지의 작품이 전시되어 있어 작풍이 변화하는 과정을 살펴볼 수 있었다. 스페인의 천재 화가 피카소의 작품을 한 시간밖에 볼 수 없어서 아쉬움이 매우 컸다.

수도원 경내에 있는 수비락의 작품. 선이 간결하면서도 강렬해 보인다. 수비락은 사그라다 파밀리아에 있는 그리스도의 수난 파사드를 만든 조각가이다.
▲ 조각가 수비락의 작품 수도원 경내에 있는 수비락의 작품. 선이 간결하면서도 강렬해 보인다. 수비락은 사그라다 파밀리아에 있는 그리스도의 수난 파사드를 만든 조각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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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감시간이 다 되어 미술관을 나와 저녁을 먹으러 갔다. 하루종일 고생한 딸을 위해 유명하고 오래된 맛집을 찾아 들어갔다. 완전히 회복하지 못한 딸은 스프만 시키고 나는 스페인의 대표 음식 빠에야를 시켰다. 분위기 좋고 근사한 식당에서 여유롭게 식사를 하니 딸의 기분도 좋아지는 듯했다. 계산을 하고 나니 몬세라트를 다녀온 것 만큼의 비용이 들었다며 멋쩍어하는 딸에게 여행 중 가장 비싼 밥을 먹었지만, 잘 먹고 나아서 함께 여행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말해주었다.

식사를 마치고 나와 항구 쪽으로 산책을 했다. 정박해 있는 배들은 가로등의 불빛을 받아 하얗게 빛난다. 밤에 보는 지중해의 모습은 낮과는 다른 매력이 있었다. 숙소로 돌아가는 길에서 밤에만 느낄 수 있는 바르셀로나의 또 다른 명물을 찾게 되었다. 가로등의 불빛이 여느 가로등과 조금 다르길래 자세히 들여다 봤더니 가우디의 첫 작품이라는 레이알 광장의 가로등이었다. 그리스 신화의 헤르메스를 상징하는 투구 모양으로 설계된 가로등에서 가우디만의 독특함을 엿볼 수 있었다.

가우디가 디자인한 가스등
▲ 가우디 가로등 가우디가 디자인한 가스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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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가로등은 레이알 광장에만 두 개가 설치되어 있는데 여기에는 사연이 있단다. 시에서 주최한 가로등 공모전에서 가우디는 뛰어난 디자인으로 입상했다. 가우디의 가로등은 바르셀로나 시내 전체에 설치될 계획이었으나 가스등으로 설계된 탓에 유지 비용이 너무 많이 든다는 이유로 레이알 광장에만 세웠다고. 화가 난 가우디는 그 이후로 시에서 주관하는 일에 응하지 않았다고 한다.

밤에도 아름답게 빛나는 바르셀로나. 낮에 보는 바르셀로나는 또 얼마나 화려하고 뜨거울지 기대해 본다.


태그:#바르셀로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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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수성과 감동은 늙지 않는다"라는 말을 신조로 삼으며 오늘도 즐겁게 살아가고 있습니다. 익숙함이 주는 편안함에 주저앉지 않고 새로움이 주는 설레임을 추구하고 무디어지지 않으려 노력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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