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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 고성군 22사단 GOP 총기난사 후 도주해 구속된 임 병장이 지난 8일 오후 현장검증을 하고 있는 모습.
▲ GOP총기난사 사건 임병장 현장검증 강원도 고성군 22사단 GOP 총기난사 후 도주해 구속된 임 병장이 지난 8일 오후 현장검증을 하고 있는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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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명의 새파란 젊은이들이 숨졌는데 누구 하나 나서서 책임지겠다는 사람이 없다. 재발 방지책이라고 논의되는 것도 이미 나왔던 정책의 재탕·삼탕이다. 어떻게 이럴 수 있나."

지난 6월 21일 발생한 육군 22사단 GOP 총기난사 사건과 그 후속 조치를 평가해 달라는 질문에 한 예비역 인사는 한숨을 내쉬었다.

2011년 7월 강화도 해병대 해안소초에서 김아무개 상병이 총기를 난사해 4명의 장병이 숨진 직후 김관진 국방장관은 국회에 출석해 "이러한 사건이 재발하지 않도록 모든 노력을 다하겠다"고 다짐했다. 이후 병영문화 혁신 대토론회, 제대별 정신교육, 합동 실태점검, 예비역 등 각계 의견 수렴, 인성 결함자 입영 차단 등의 대책을 쏟아냈다.

결과적으로 이런 대책들은 참극이 3년 만에 되풀이되는 것을 막지 못했다. "사고원인을 철저히 규명하고 근본적 재발방지 대책을 강구하겠다"는 대국민 성명을 발표했던 김 장관에 이어 한민구 신임 국방부 장관도 "보호관심병사 관리를 포함한 병력관리 시스템을 근본적으로 재검토해 종합적인 보완책을 강구할 것"이라고 밝혔다.

하지만 국방장관의 잇단 공언에도 불구하고 국방부와 군이 내놓을 재발 방지 대책에 대해서는 국회 국방위조차 회의적인 분위기다. 지난달 25일 열린 국회 국방위 전체회의에서 여·야의원들은 국방부가 관성적 대책만을 내놓고 있다고 질타했다.

송영근 새누리당 의원은 국방부가 국회에 제출한 사고 부대 안정화 및 재발방지 대책에 대해 "2005년 (경기도 연천 육군 28사단 총기난사 사건) 대책의 재탕에 불과하다"면서 "관행적인 분석과 대책인데다 심각성이 전혀 나타나지 않으며 심지어 콘셉트도 없고 개념도 없다"고 비판했다.

안규백 새정치연합 의원 역시 2005년 28사단 사건 당시의 진상조사 결과 보고서를 제시하며 "당시 국방위가 소위를 구성해 "병사의 성격 결함 및 선임병의 욕설 등 사고원인을 동기의 인격 모독과 폭력으로 지적했었고, 전 부대에 정밀 진단을 하겠다고 했다"면서 "형식적인 보고서만 만들었지 입법과 제도개선이 안 되는 것이 현실"이라고 꼬집었다.

보수정권 들어 군기는 세졌지만, 병영문화 개선엔 소홀

국방부가 구타와 가혹행위, 집단 따돌림 등 병사들 사이의 악습을 철폐하고 병영문화를 개선하려는 노력을 시작한 것은 2005년 6월 19일 발생했던 육군 28사단 총기난사 사건부터다. 소초장(중위)를 비롯해 모두 8명이 목숨을 잃고 2명이 중상을 입었던 이 사건 이후 병영문화 개선은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과제로 등장했다.

당시 노무현 정부는 민간대표와 국방장관을 공동위원장으로 하고 민·관 동수로 구성된 '병영문화개선 대책위원회'를 만들었다. 창군 이래 처음으로 병영문화 전반에 관한 문제점을 진단하고 해결책을 모색하기 위해 민·관·군이 머리를 맞댄 것이다. 국가인권위원회의 연구용역 사업으로 민간인 연구자들이 전무후무한 '군 인권 실태조사'에 착수했던 것도 당시의 일이다.

이러한 노력의 결과물 중 하나가 바로 군인이 기본권의 주체임을 명시적으로 확인하는 '군인복무기본법안'이었다. 2007년 2월 국방부는 장병 인권 증진과 새로운 병영문화 정착을 목적으로 하는 이 법안을 입법예고했다.

특히 이 법안은 제15조에서 정당한 명령을 보장하는 대신 '병(兵)은 다른 병에게 어떠한 명령이나 지시 등을 할 수 없고 간섭할 수 없다'고 규정, 병사 상호간에 명령, 지시, 간섭을 원천적으로 금지했다. 이는 당시 병사 자살 사건 중 41%가 선임병의 횡포가 원인이었던 것으로 조사되는 등, 선임병에 의해 조성되는 강압적인 분위기를 개선하지 않고는 병영문화 개선이 불가능하다는 판단에서 나온 것이었다.

하지만 정권이 바뀌면서 이 법안에 대한 국회의 심의는 이루어지지 못했다. 주무부처인 국방부가 소극적 태도로 방향을 바꾼 것이다. 결국 군인복무기본법안은 2008년 17대 국회의 임기만료와 함께 자동 폐기되고 만다.

당시 입법과정을 지켜보았던 한 민간전문가는 "군인들은 처음부터 이 법안이 이른바 좌파정부가 주도한 한시적 법률로 보는 경향이 강했다, 적당히 만드는 시늉만 하다가 보수정권이 들어서면 어차피 폐기해 버리겠다는 생각이었다"고 말했다. 이 전문가는 "당시 군 내부에서는 이 법이 시행되면 군 질서에 혼란이 초래되고, 실질적인 군 전투력 저하로 이어질 것이라는 우려가 강했다"고 설명했다.

이명박 정부의 첫 국방장관이었던 이상희 장관은 나사 풀린 군 기강을 잡아 군대다운 군대를 만들겠다면서 군의 재조형(Reshaping)을 천명했다. 병영생활 자율권 확대방안의 일환으로 추진되었던 병사들 간의 자율점호는 없어졌고, 그나마 병사들 간의 팀워크 혹은 사기를 증진시키는 역할을 했던 '전투 체육의 날'도 원래 쉬는 날인 주말로 옮겼다.

하지만 보수정부가 만들겠다던 '강군(强軍)'은 정작 2010년 일어난 천안함 침몰과 연평도 포격 때는 우왕좌왕하는 무기력한 모습을 보였다.

김관진 장관은 취임하자마자 전 군에 하달한 지휘서신 1호를 통해 "단순히 사고의 유무(有無)와 건수로 지휘관과 부대를 평가하는 관행을 없애겠다"고 공언했다. 김 장관은 군에서 발생하는 사고의 원인에 대해서도 "오랫동안 군대가 관료화했다"면서 "군의 작전기강과 전투의지를 고양, 야전성을 회복하겠다"고 강조했다.

이런 분위기 속에 군기는 더욱 세졌지만, 병사들의 사기는 떨어질 대로 떨어졌다. 정부의 강경한 대북정책 속에 '병영문화개선'은 설 자리가 없어졌다. 그 와중에 해병대 총기난사 사건이 터졌다.

"'병사 인격 존중=군기 붕괴'라는 지휘관 시각이 바뀌어야"

국회 국방위원회(위원장 황진하)가 지난 7일 오후 최근 총기난사 사건이 발생한 강원도 육군 22사단 GOP를 방문해 수류탄 폭발사고현장에서 이번 사건 수사본부장인 임석현 대령으로 부터 당시 상황을 보고 받고 있다. (왼쪽부터) 송영근. 황진하, 문재인, 윤후덕, 황우여 의원.
▲ 국방위, GOP총기사건 현장 방문 국회 국방위원회(위원장 황진하)가 지난 7일 오후 최근 총기난사 사건이 발생한 강원도 육군 22사단 GOP를 방문해 수류탄 폭발사고현장에서 이번 사건 수사본부장인 임석현 대령으로 부터 당시 상황을 보고 받고 있다. (왼쪽부터) 송영근. 황진하, 문재인, 윤후덕, 황우여 의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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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기사건과 잇따른 자살 사건으로 사실상 사의를 표명했던 해병대사령관을 유임시켰던 김 장관은 스스로도 책임을 지려하지 않았다. 안보실장으로 내정된 후 벌어졌던 이번 총기사건에서도 김 장관은 사의표명이 아닌 대국민 사과로 대신했다. 2005년 28사단 총기사건 당시 윤광웅 국방장관이 사건발생 사흘 만에 "참극의 책임을 지고 물러나겠다"고 사표를 냈던 것과는 비교되는 장면이다.

공교롭게도 김 장관은 2005년 28사단 총기사건 때는 3군사령관으로, 2011년 해병대 총기사건과 지난달 발생한 총기사건 때는 국방장관으로 3차례 모두 명령계통에 있었다. 결국 이명박 정부에 이어 박근혜 정부에서도 4년간 국방수장을 맡았던 김 장관은 청와대 안보실장으로 영전했다.

초동대응부터 검거작전, 사망자·부상자 처리 등에서 총체적 부실을 나타냈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는 이번 총기사건에 사건을 저지른 임아무개 병장 외에 아무도 책임질 사람이 없다는 비판이 나오는 대목이다.

실제 군 당국의 책임자 처벌도 밑으로 내려갈수록 가혹하고 위로 올라갈수록 후한 '상후하박'의 전형이라는 비판까지 받고 있다. 총기사건을 일으킨 임 병장을 추적하는 과정에서 발생한 아군간 오인사격과 관련 7명의 장병을 형사입건했으면서도, 군이 이번 사건에서 보여준 총체적 난맥상에 대해선 책임을 질 고위지휘관은 없는 실정이다. 

또 군에서 발생하는 총기사고의 원인을 개인의 문제로만 보아서는 안된다는 지적도 설득력을 얻고 있다.

육군 대장 출신인 백군기 새정치민주연합 의원은 "이번 사건을 개인의 잘못이나 단순한 지휘책임으로만 보아서는 안된다"며 "군대 문화 자체를 근본적으로 바꾸어야 한다는 생각을 가지고 접근해야 사고가 재발되는 것을 막을 수 있다"고 지적했다.

백 의원은 또 "병사들의 인격을 존중하는 것을 군기가 무너지는 것과 동일시하는 지휘관의 시각이 먼저 바뀌어야 한다"면서 "대한민국 군대가 수호하려는 가치가 바로 개인의 인격과 자유가 존중되는 민주주의의 가치인데, 군대에서도 이 가치가 보장될 수 있어야 할 것 아니냐"고 반문했다.

홍성수 숙명여대 법학부 교수도 "인권이라는 이념이 군대에서 작동하기 위해서는 민주주의가 필요하다"면서 "군에 대한 민주적 통제는 당연한 것이며, 시민들을 징집해서 운영되는 군대라면 더더욱 말할 것도 없다"고 지적했다. 

"군에 대한 민간참여 구조가 상설화될 필요성이 있다"고 강조한 홍 교수는 "지난 2012년 국가인권위원회가 권고한대로 민간인들과 군복무 당사자들이 상시적으로 병영문화정책에 참여할 수 있는 시스템을 구축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태그:#김관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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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 김도균 기자입니다. 어둠을 지키는 전선의 초병처럼, 저도 두 눈 부릅뜨고 권력을 감시하는 충실한 'Watchdog'이 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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