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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대 베이비부머세대가 60대, 70대와 함께 음악교육을 받는 모습을 볼 때 가끔 엄마와 딸, 또는 자매같다는 생각을 한다. 청주시 노인종합복지관의 악기 연주반엔 대부분 50대 이상의 여성들이 참가하고 있다. 누군가의 딸이기도 하지만 또 누군가의 친정어머니, 시어머니이기도 한 그들. 3년 전 시작된 이 악기연주반은 외부에서 악기와 강사를 지원 받아 지금까지 알차게 진행돼 오고 있다.

치료감호소, 경로당, 초등학교, 요양시설 등 소외계층 앞에선 공연을 많이 했지만,나는 그 분들이 여성 관객 앞에서 공연하길 바랐다.

그러나 그들은 프로도 아니고 아마추어 중에서도 아마추어... 일반 여성행사나 공식행사에 초청할 리 만무했다. 그래서 문화제 중심의 행사를 찾았다. 마침 충북도지사가 참석한다는 공식 여성주간 문화제가 열린다고 했다.

공연 중인 악기연주반 우클렐레팀
 공연 중인 악기연주반 우클렐레팀
ⓒ 이영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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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군가의 딸이자, 엄마이자, 아내이자, 할머니인 그들

문화제는 '삶을 노래하라'라는 공모형식으로 참가자를 뽑는다고 했다. 공연만으로는 예선통과가 어렵기 때문에 리얼스토리를 포함한 형식으로 가기로 결심했다. 몇 년간 내가 만들고 운영했던 교육프로그램에 오는 분들의 '진짜 이야기'를 들어봤다. 평소 누군가 먼저 이야기 하지 않으면 사생활을 묻지 않았기 때문에, 이번 기회로 몰랐던 것을 참 많이 알았다. 우리는 15일 행사에 참석해 멋진 공연을 치렀다. 다음은 이 분들의 '리얼스토리' 발표 중 일부다.

"남편이 위험한 작업을 해야하는 일을 해요. 어떤 때는 새벽에도 일해야 해서 집에 오지 않아요. 그러다가 이번엔 다른 곳에 전근을 가서 주말부부가 될 것 같은데. 처음에는 밥을 안해도 되서 좋았는데 오래되니 월말부부가 되기도 하고... 좀 마음이 울렁거리고 안정이 안돼요. 안 그래도 갱년기 증상이 있는데. 우울증에 빠질 것 같아 우크렐레를 배우게 됐어요."

"나는 노래를 잘해서 합창반 활동도 했는데 어느 날 갑자기 소리가 안 나오고 말하기도 힘든 거야! 병원에 가보니 갑상선 암이래. 투병을 반복하다가 그래도 아무것도 안 하기보다는 노래를 못하지만 귀랑 손이야 멀쩡하니...이렇게 배우고 또 배운 걸 공연하니 넘 좋아!"

"시골에서 살고 있는데... 처음에는 흙을 만지고 전원생활하는게 좋았지만 이전에 살던 도시문화가 그리워서 배우게 됐어요."

"어릴 적 부터 아무 악기하나라도 연주하는 게 꿈이었는데...그게 쉬워? 악기도 비싸고 수강료도 비싸고. 그런데 이렇게 무료로 악기도 빌려주고 가르쳐주는데가 있어서 오게 됐지. 근데 여기 와서 형님, 아우님 만나 함께 노래하면서 연주하고 좋은 일도 하니 얼마나 다행이야!"

"난 일흔넘은 이 나이가 되면 자식농사 다 마치고 내가 하고 싶은 것을 하면서 쉴 줄 알았어! 근데 딸이 직장다녀서 딸집에 살림해주고 손주봐주고 하다보니 정신없이 금방 일흔이 됐지. 손주가 무럭 무럭 잘 커서 좋긴 하지만 조금이라도 잘못되면 내 탓이란 눈치도 보이니 스트레스가 없는 것도 아니더라구. 어느 날 갑자기 생각이 드는 거야. 이러다가 금방 팔십이 될 터인데 내가 하고 싶은 것 하나라도 해야지, 라고."

공연후 수상하는 악기연주반
 공연후 수상하는 악기연주반
ⓒ 이영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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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분들의 리얼스토리는 할머니들의 인생사가 아닌 이 시대를 살아가는 보통여성들의 이야기였다. 기러기부부와 독거투병여성, 애환을 지닌 친정엄마까지. 인생의 종착역에서 문득 자신을 돌아보고, 아무도 부르지 않는 자신의 이름을 찾는 그들. 악기연주반에 직접 등록해 돋보기 끼고, 악보도 보며 음계 하나 하나 여학생처럼 짚어가며 공부하는 여성들... 꼭 음악이 좋아야만 음악을 하는 것이 아니다. 누구나 삶을 노래 하고 연주할 수 있다.

난 그분들이 무대에 서서 연주하는 것이 정말 보기 좋았다. 그리고 내가 하는 일에 보람을 무척 느낀다. 이 분들이 앞으로도 지금 모습 그대로 여전히 활기차고 밝게 연주하기를 소망한다. 그 곳이 설사 작은 무대라할지라도. 세월이 변하면 하나 둘 씩 구성원이 바뀌겠지만 지금 마음은 그냥 지금처럼 늘 그렇게 함께 동행하고 싶다.


태그:#청노우크렐레, #삶을 노래하라 충북의 여성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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