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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감이 끊기고
정신이 냉소의 눈에 덮이고
비탄의 얼음에 갇힐 때
그대는 스무 살이라도 늙은이가 되네,
하지만 머리를 높이 들고 희망의 물결을 붙잡는 한,
그대는 여든 살이라도 늘 푸른 청춘이네….

유태계 미국 시인 사무엘 울만(Samuel Ullman)이 쓴 <청춘>(Youth)의 끝부분이다. 78세에 쓴 시라고 하니 노년에 '늘 푸른 청춘'을 노래하는 시인의 모습이 정겹다.  

스무 살짜리 청춘의 눈에 서른을 넘긴 사람은 다 늙어 보인다. 저 나이에 무슨 재미로 살까 싶을 때도 있다. 자신도 막상 서른 살이 되면 마흔을 넘긴 이들이 또 그렇게 여겨진다. 마흔이 되면 쉰이, 쉰을 먹으면 예순이 안쓰럽다.

팔십 줄에 들어선 노인들은 아무 희망도 없을 것 같다. 삶의 재미도 모를 것처럼 보인다.  정말 그런가. 그래서 늙어가는 게 싫은 건가.

개인차가 있지만 사람의 몸은 대략 25세를 전후해서 노화가 시작된다고 한다. 생물학적으로 새롭게 생겨나는 것보다 수명을 다해서 죽어가는 세포가 더 많아지는 시점인 것이다.

어느날 문득 거울에 비친 자신의 모습을 자세히 들여다본다. 피부의 윤기와 탄력이 점점 떨어져가고 있다. 주름의 골이 깊다. 눈앞이 침침하다. 장기의 기능도 떨어졌다. 기운도 예전 같지 않다. 본격적으로 늙어가는 것이다. 그때가 바로 대략 50세쯤이다. 공자는 그 나이를 '지천명'(知天命)이라고 했다. 아, 이런 것이 내게 주어진 삶이라는 걸 깨닫는 나이라는 것이다.

"그런 소리 말게, 난 항상 젊다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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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송준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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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걸 누가 모르나. 받아들이기가 쉽지 않아서 그러는 것이다. TV에 나오는 배우나 가수들에게는 세월도 비켜가는 것 같다. 그걸 바라보고 있으면 더 한탄스럽다. 그림에 적힌 것처럼 피부 '주름 개선'이니 '리프로그래밍'이니 하는 온갖 노화방지 대책이 그야말로 대세인 것도 다 그런 이유에서일 것이다.

여자들이 운동할 때(심지어는 운전하면서도) 착용하는 마스크도 날개 돋힌 듯 팔린다. 자외선에 노출되면 멜라닌 색소가 증가해서 피부노화가 촉진되기 때문이란다. 영원한 청춘이고 싶은 건 인지상정이다. 하지만 사무엘 울만이 앞서 읊조렸듯 스무 살 노인도 있고, 여든 살 푸른 청춘도 있다. 몸이든 정신이든 쉴수록 빨리 늙는다.

영혼이 늙는 게 진짜 늙는 거다. 어느 노 시인에게 이발을 그렇게 하시니까 훨씬 젊어 보이신다고 덕담을 드렸더니 빙긋 웃으시면서 그러시더란다.

"그런 소리 말게. 나는, 이발 안 해도 항상 젊다네…."

그 정도로는 위안이 안 되는가. 늙어가는 게 억울한가. 그럼 몇 가지만 감히 묻고자 한다. 당신은 혹시 굴지의 재벌 회장들만큼 부자인가. 왕성한 저술활동으로 사회적으로 높은 명망을 얻었는가. 수많은 국민들로부터 존경을 받고 있는가. 세계적으로 알아주는 스타가 돼 있는가. 필생의 업적으로 해마다 노벨상 후보에 이름을 올리고 있는가. 

늙어가는 게 억울하기로 말하면 그들이 몇 배 더할지도 모른다. 몸부림을 친들 가는 청춘을 어떻게 붙잡을 것인가. 오는 백발은 또 무슨 수로 막을 것인가. 보라. 탤런트 이순재도 최불암도 늙어가고 있다. 그 곱고 아리따웠던 소위 '트로이카'의 얼굴에도 주름살이 깊다. '화면발'에 현혹돼서 제대로 느끼지 못할 뿐이다. 사람으로 태어난 이상 늙는 데는 누구도 예외가 없다.

어떤 모습으로 어떻게 늙어갈 것인가

'안티에이징(Anti-ageing)' 따위에는 눈길조차 주지 말라는 게 아니다.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피부가 아니라 '정신'이고 '영혼'이라는 걸 말하고 싶은 것이다. 어떤 모습으로 어떻게 늙어갈 것인가가 훨씬 중요하다는 걸 강조하고 싶은 것이다. 

나 하늘로 돌아가리라.
새벽빛 와 닿으면 스러지는
이슬 더불어 손에 손을 잡고,

나 하늘로 돌아가리라.
노을 빛 함께 단 둘이서
기슭에서 놀다가 구름 손짓하며는,

나 하늘로 돌아가리라.
아름다운 이 세상 소풍 끝나는 날,
가서, 아름다웠다고 말하리라….

얼굴에 검버섯 피었다고 한탄할 시간이 있으면 풀잎 이슬의 영롱한 빛깔을 한 번이라도 더 들여다보길 권한다. 붉은 노을의 아름다움에 흠뻑 빠져보라. 인생의 소풍이 아직 끝나지 않았으니 설레는 가슴으로 매일 새벽빛을 맞으라.

나이 쉰 살에 이 시 <귀천>(歸天)을 썼던 천상병 시인은 그후 15년쯤 지난 예순셋의 이른 나이에 하늘로 돌아갔다.


태그:#노화방지, #인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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