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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릴라칼럼'은 <오마이뉴스> 시민기자들이 쓰는 칼럼입니다. [편집자말]
세월호 참사를 통해 드러난 식자층의 저급한 윤리의식에 나를 포함한 국민들이 날마다 경악하고 있다. 해경 간부, KBS와 MBC 고위 간부, 청와대 대변인을 위시한 정부 관료, 국회의원, 대학교수 등... 일일이 다 언급하기도 힘든 사람들이 '지식인'임을 자처하며 실종자 가족과 유가족들, 국민들을 훈계하듯 몰아세우고 있다.

마치 '막말대왕' 대회에 나선 것처럼 거의 매일 막말을 쏟아내고 있는 그들을 보고 있으면, 분노가 솟구치다 못해 욕이라도 실컷 퍼붓고 싶은 마음이 든다. 난 공감능력 부족에 윤리의식 결핍 환자들인 그들이 지식인이나 사회지도층으로 불려서는 절대 안 된다고 생각한다. 

목사도 예외는 아니다. 누구보다 먼저 유가족들의 눈물을 닦아 주어야 할 종교인이 "가난한 집 아이들이 경주나 가지 왜 제주도에 갔냐..."고 했다는 소식을 접하곤 할 말을 잃었다. 아이를 잃은 슬픔에 비탄에 빠져 있을 유가족들에게 소금을 뿌린 이 목사는 "대통령의 눈물에 같이 눈물을 흘리지 않으면 백정"이라고도 말했단다. 이는 종교인의 입에서는 나와서는 안 될, 국민을 향한 협박이고 저주나 다름없다. 이런 모습은 세월호 대참사로 드러난 우리 사회의 추악한 이면이다.

박근혜 대통령이 19일 오전 청와대 춘추관에서 세월호 참사 관련 대국민담화를 발표하며 눈물을 흘리고 있다.
 박근혜 대통령이 19일 오전 청와대 춘추관에서 세월호 참사 관련 대국민담화를 발표하며 눈물을 흘리고 있다.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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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큰 문제는 정부에 대한 불신이 커져가고 있다는 점이다. 세월호 대참사 이후 정부의 무능은 '국가가 국민의 생명을 책임질 수 있을까?'란 근본적 회의를 불러왔다. 더구나 지난 19일 박근혜 대통령이 발표한 대국민 담화는 국민들에게 반성과 희망을 메시지를 전달하지 못했다.

오히려 세월호 실종자 가족들과 박근혜 대통령의 대화 모습을 편집해 청와대 홈페이지에 올리고, 전관예우로 5개월 동안 16억 원을 번 안대희 전 대법관을 총리에 지명하고, 국회는 세월호 국정조사 증인 채택을 둘러싸고 파행을 보이는 등 박근혜 대통령이 흘린 눈물의 진정성이 의심스러운 행보만 지속해왔다.

'박근혜 눈물 쇼'라고 비난할 마음 없었는데...

사실 난 대통령의 눈물에서 진정성을 느낄 수 없었지만, '쇼'라고 비난할 마음까지는 없었다.  그동안 보였던 행보와 다르게 왜 울었는지 이해가 되지 않더라도 대통령과 내 감정의 차이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대통령의 눈물을 두고 제기된 '눈물 정치', '악어의 눈물'이란 질타는 조금 불편했다. 늦긴 했지만, 세월호 사고를 '참사'로 키운 무능한 정부의 책임자로서 흘린 사과와 회한의 눈물이라면, 감정을 이성의 잣대로 저울질하는 것도 자제해야 된다고 판단했다.

그러나 결국 내 착각이었다. 청와대는 대통령 담화가 끝나기 무섭게, 홍보 동영상을 만들어청와대 홈페이지에 올렸다. 이는 넓은 마음으로 이해하려고 해도 이해할 수 없는 일이었다. 더구나 대통령의 진도 체육관 방문과 조문에서 불거진 문제는 일체 언급하지 않고 유가족의 손을 잡고 청와대를 걷는 대통령의 자애로운 모습(?), 눈물 흘리는 대통령의 모습만 집중 부각시킨 동영상은 왜곡을 넘어선, 해서는 절대 안되는 일이란 생각이 들었다. 물론 국민들의 따가운 항의에 청와대는 관련 동영상을 삭제했지만, 세월호 대참사를 지방 선거에 이용했다는 비난은 사그라지지 않고 있다.

선거를 앞두고 '대통령의 눈물을 닦아주자'고 외치는 새누리당의 모습도 뻔뻔스럽긴 마찬가지다. 새누리당 중앙당 홍보국은 각 시도당에 공문을 보내 동영상 홍보를 독려했다고 한다. 한 술 더 떠 새누리당 경북도당은 눈물 흘리는 박근혜 대통령 사진에 경북도당에서 눈물을 닦아 드리겠습니다. 대통령님 걱정마십시요"라는 문구를 넣어 도당 사무실은 물론 지역 당협사무실에 게재했다.

이런 새누리당의 모습은 분노를 넘어서 실소가 나오게 만든다. 이런 행위는 누가 보더라도 대통령의 눈물을 이용한 비열한 선거 운동이라는 비난을 비껴가기 어렵다. 만약 새누리당이나 정부가 대통령 눈물의 진정성을 호소하려 했다면, 자숙하는 모습과 반성하는 태도를 보였어야 한다. 그러나 청와대나 새누리당은 오히려 반대의 길을 택했다. 대통령의 눈물이 '쇼'라고 손가락질 당하고, '눈물 정치'라고 비난 받는 건 누구의 탓도 아니다. 청와대와 새누리당이 자초한 일이다.

김기춘 증인 채택 반대 후 사라진 새누리당 원내대표

여야가 국회 세월호 국정조사 증인 선정에 이견을 좁히지 못해 국조 계획서 채택이 불발되고 자정을 넘긴 28일 새벽 진상규명을 위해 협상 타결 소식만 기다리던 세월호 참사 희생자 가족들이 국회 의원회관 대회의실의 차가운 바닥에 몸을 누인 채 쪽잠을 자고 있다.
▲ 진도서도 국회서도 '쪽잠' 신세 여야가 국회 세월호 국정조사 증인 선정에 이견을 좁히지 못해 국조 계획서 채택이 불발되고 자정을 넘긴 28일 새벽 진상규명을 위해 협상 타결 소식만 기다리던 세월호 참사 희생자 가족들이 국회 의원회관 대회의실의 차가운 바닥에 몸을 누인 채 쪽잠을 자고 있다.
ⓒ 남소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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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호 국정조사를 둘러싼 새누리당의 억지도 국민들의 공분을 사기에 충분했다. 새누리당은 대통령조차 성역 없이 조사에 임하겠다고 발표한 마당에, 관행과 절차를 이유로 김기춘 대통령 비서실장의 증인채택을 반대했다. 급기야 여당의 원내대표는 유가족을 남겨둔 채 사라지기도 했다. 이는 아예 국정조사를 하지 않겠다는 으름장과 다를 바 없다. 이완구 새누리당 원내대표는 다음날인 28일에도 지방 선거 지원을 이유로 아예 협상 테이블을 떠났다.

세월호 침몰의 책임은 당연히 청해진 해운에 있다. 검찰이 억대의 현상금을 걸고 청해진 해운의 실질적 소유주인 유병언 전 세모그룹 회장과 자식들을 찾는 이유는 책임을 묻기 위함이다. 그렇지만 침몰을 대참사로 만든 책임은 정부에 있다.

해경과 해군, 행정안전부도 이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그러나 가장 큰 책임은 정부의 수많은 조직들을 우왕좌왕하게 만든 청와대가 져야 한다. 때문에 대통령 비서실장의 국정조사 증인 채택을 대통령 흠집 내기나 정치 공방으로 볼 이유가 없다.

안대희 전 대법관의 총리 지명과 사퇴도 청와대가 국민 여론을 제대로 읽지 못해 빚어진 참사다. 전관예우라는 사법 근간을 흔드는 폐행으로 5개월 동안 16억 원을 받은 것을 확인하고도 그를 총리로 내정했다면, 무책임한 인사라는 비난을 면키 어렵다.

박근혜 대통령과 새누리당이 아직 모르는 사실

세월호 대참사는 아직 끝나지 않았다. 아직 16명이 돌아오지 못했고 유가족은 물론 국민들조차도 심한 정신적 공황 상태에 놓여 있다. 이런 때 유가족들에게 막말을 퍼붓고 국민성 운운하는 것은 범죄나 다름없다. 정부나 여당의 태도도 마찬가지다. 세월호 대참사를 정치에 이용하지 말라고 하면서도 정작 대통령 치적을 앞세우는 세월호 관련 동영상을 만들고, 유가족의 국정조사 요구를 무시한 채 도망가듯 지방선거 지원에 나선 여당 원내대표의 행위 등은 유가족과 국민들의 아픔을 어루만지고자 한다면 결코 해서는 안 될 일이다.

대통령이 또 다시 울면서 사과하길 바라진 않는다. 이제 대통령이 국민들에게 진짜로 보여줘야 하는 건 눈물이 아니라 '진정성'이다. 담화에서 최종 책임이 대통령에게 있다고 이야기한 만큼, 거기에 걸맞은 처방을 내놓아야 한다.

세월호 침몰 사고 초기, JTBC <뉴스9> 손석희 앵커는 취재기자가 사고 현장에서 생존 학생을 인터뷰하면서 저지른 잘못을 자기의 잘못이라며 사과했다. 그의 사과가 빛날 수 있었던 건 그의 언변 때문이 아니었다. 이후 세월호 참사를 다루는 뉴스에서 자신의 진정성과 진심을 보여줬기 때문이다. 대통령과 정부 여당이 몇 번이나 사과를 하고 눈물을 보였지만, 국민들이 공감하지 못한 건 진정성을 보지 못했기 때문이다. 마음에서 진심으로 우러나오는 사과가 아닌, 입으로만 하는 사과는 티가 나기 마련이다.

세월호 참사 39일째인 지난 24일 오후 서울 청계광장에서 세월호참사국민대책회의 주최로 '세월호 참사 2차 범국민촛불행동, 천만의 약속'이 열렸다.
▲ 세월호 참사 2차 범국민촛불행동 세월호 참사 39일째인 지난 24일 오후 서울 청계광장에서 세월호참사국민대책회의 주최로 '세월호 참사 2차 범국민촛불행동, 천만의 약속'이 열렸다.
ⓒ 권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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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 담화 이후 청와대와 새누리당이 보인 행보에선 더더욱 어떤 진정성도 찾을 수 없다. 입으로는 사과를 하면서도 촛불집회는 막기 바쁘고, 유가족은 내팽개치고... 그러나 박근혜 정부와 새누리당이 아직 모르는 게 있다. 몰려드는 국민들보다, 등 돌려 멀어져 가는 국민들이 더 무섭다는 사실을 말이다. 진정성을 보여줄 수 있는 '골든타임'이 얼마 남지 않았다. 유가족과 국민들이 촛불을 끄고 등을 돌려 떠나는 것, 그것이 박근혜 정부와 새누리당이 바라는 것인가?


태그:#세월호 , #안대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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