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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 내 휴대전화."

외출준비를 마치고 현관문을 나서는 순간, 손이 허전한 것을 느낀 나는 다급한 눈길로 주변을 둘러봤다.

"잘 찾아봐요. 특히 가방 속에 있는지."

반면 곁에 있던 큰아이는 느긋한 웃음으로 나를 지켜보고 있었다. 그도 그럴 것이 외출할 때면 으레 있는 일이기 때문이었다. 물론 처음에는 덩달아 거실이며 방, 부엌으로, 그것도 아니면 직접 전화를 걸어 찾아주기도 했지만 그러고 나면 휴대전화는 으레 내 가방 속에 있었으니…. 게다가 그런 일이 반복되다 보니 언제부터인가 느긋하게 기다릴 뿐이었다. 그런데도 나는 그럴 때마다 왜 이렇게 당황스럽고 허둥대는지.

그래도 이 정도는 괜찮다. 깜박깜박하는 건망증으로 인한 정신적인 부분은 그만두더라도, 설령 내 것을 잃어버리는 것은 나 혼자에게만 피해를 줄 뿐이니 다시 새것으로 사면되지 않겠나. 그로 인해 다른 사람들에게까지 피해를 주게 되는 상황은 끔찍하다.

아름다운 결혼식, 그런데...

그러니까 지난해 가을 어느 날, 우리 가족은 남편 지인의 딸의 결혼을 축하하는 자리에 초대됐다. 전에도 가끔 부부동반으로 만나곤 해서 반가운 마음으로 흔쾌히 가기로 했었는데 그날. 남편은 회사 일로 같이 가지 못하고 식장에서 만나기로 해서 나는 아이와 함께 약속 시각에 맞추기 위해 부지런히 준비했다. 나는 옷차림이며 화장에 신경을 쓰고, 그러다가 문득 손이 너무 허전해 화장대 속의 반지를 꺼내 손가락에 꼈다.

솔직히 말하면 이 반지는 힘들 때 팔았던 결혼반지 대신 남편이 해준 반지로 나에게는 소중한 반지다. 처음에는 늘 끼고 있었는데 집안일을 하다 보니 걸리적기리기도 하고 깜박하는 건망증으로 혹시 잃어버릴까 하는 염려로 언제부터인가 화장대 서랍 속에 모셔두고 있었다.

그렇게 준비를 마치고 집을 나서 식장에서 남편을 만나고, 지인 부부와 인사를 나누고, 잠시 후, 결혼식이 시작됐다. 테이블 위에는 손서에 맞춰 음식들이 나와 우리는 식사를 시작했다. 음식도 맛있고, 분위기도 마음에 들고, 신랑·신부의 화사한 웃음에 박수를 보내고, 스크린에 비치는 두 사람의 모습을 보며 이야기도 나누고….

정말 더 없이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다른 무엇보다 시간에 쫓기는 듯한 일반 예식장과는 달리 차분하면서도 느긋한 여유도 즐길 수 있어 부러움마저 갖게 됐다. 결혼식이 끝나고 남편은 지인을 돕기 위해 그곳에 남고 나와 아이는 테이블 위에 장식돼 있던 꽃들을 정리해 손에 들고 식장을 나섰다.

얼마쯤 시간이 흘렀을까. 갑자기 손이 허전한 것을 깨닫고는 황급히 발걸음을 돌려 식장으로 향했다.

"엄마, 엄마는 좀 천천히 와요. 내가 먼저 갈 테니."

잃어버린 반지의 행방은?

"그냥 올 걸. 오늘따라 안 끼던 반지는 왜 끼어서는…. 그 반지는 결혼반지나 마찬가지인데, 아빠가 용돈 모아서 해준 건데…. 어떻게 하지?"
 "그냥 올 걸. 오늘따라 안 끼던 반지는 왜 끼어서는…. 그 반지는 결혼반지나 마찬가지인데, 아빠가 용돈 모아서 해준 건데…. 어떻게 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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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보다 더 당황한 아이는 나를 두고는 먼저 달려갔다. 그 뒤를 쫓아 식장으로 들어서니 직원들이 부지런히 정리를 하고 있었다. 우리가 앉았던 자리도 정리돼 있었지만, 혹시나 하는 마음에 테이블 밑을 보기고 하고 의자를 털어보기도 하며 부산을 떨었다. 그러자 지배인이 다가와 나는 반지의 행방을 물었다.

"그럼 사무실로 같이 가서 확인해 보시죠. 그런데 이곳 직원들은 교육을 받아서 손님이 두고 가신 물건은 분실물로 접수합니다. 이곳에서 소지품을 잃어버린 손님은 안 계십니다."

지배인의 단호한 말에 안심이 되기도 했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그래도 혹시나 하는 염려도 있었다. 그리고 그 염려는 곧 사실로 확인되는 듯했다. 사무실에서 확인해 봐도 분실물로 접수된 물건이 없었고, 반지를 봤다는 직원은 없었다. 그런데 그 자리에 남편과 지인 부부가 나타나는 바람에 모든 것을 알게 됐다. 남편은 물론 지인 부부의 놀란 표정이란….

"어떻게 하죠? 괜히 오셨다가 반지를 잃어버려서."
"일단 저희가 더 알아보고, 못 찾게 되면 비슷한 반지라도…."

정말 난감했다.

"아니에요. 아닙니다. 그럴 수는 없죠. 그럴 필요도 없는 일이에요. 당신은 그만 가 봐요. 여기 일은 내가 알아서 할 테니."

남편의 말에 나는 사무실 직원에게 혹시라도 찾게 될 때를 대비해 내 전화번호를 알려주고 서둘러 식장을 빠져나왔다. 조금 전과는 달리 아이와 나는 한동안 아무 말 없이 걸었다.

"그냥 올걸. 오늘따라 안 끼던 반지는 왜 끼어서는…. 그 반지는 결혼반지나 마찬가지인데, 아빠가 용돈 모아서 해준 건데…. 어떻게 하지?"
"할 수 없지 뭐. 아빠한테 또 해달라고 하세요. 내가 직장인이라면 무조건 해드릴 텐데, 아직 학생이니 용돈 받은 거 좀 보탤게요. 그만 얼굴 좀 펴세요."

나를 달래느라 괜히 웃어주는 아이를 보며 마지못해 고개를 끄덕였지만 좀처럼 마음이 풀어지지 않았다. 오히려 마음이 더 무거워질 뿐. 다른 무엇보다 남편에 대한 미안함으로 발걸음도 무거워졌다. 길을 걸으면서도, 버스를 타고 오면서도, 집에 들어서면서도….

이해할 수 없는 나... 왜 그랬을까

"엄마…."

아이의 목소리는 한 옥타브쯤 높아져 있었다. 곧이어 나에게 내미는 아이의 손바닥에는 반지가, 잃어버렸던 반지가 놓여있었다.

"어머, 그게 왜 거기에 있니? 다행이다. 집에 놓고 갔구나. 정말 다행이야."

나는 반가운 마음에 반지를 처음 보는 것처럼 이리저리 돌리며 만져보았다. 그것도 잠시, 남편과 지인부부의 난감해하는 표정이 떠올랐다.

"엄마, 정말…. 아예 끼고 가지도 않았던 반지를 잃어버렸다고 그 난리를 쳤으니. 그렇게 기억이 안 나요? 어떻게 할 거예요? 아빠는 그렇다고 해도 그분들이 엄마를 어떻게 생각하겠어요?"
"…."

어쩌면 그렇게 기억이 안 났을까? 나도 자신을 이해할 수가 없었다. 결국 나는 숨고 싶은 마음으로 전화를 통해 남편에게 사실을 알렸고 남편의 전화기를 통해 지인 부부에게도 미안하다는 말을 전했다. 애써 상냥한 목소리를 만들어 가며….

그 일 이후로 나는 시험대에 올랐다

그 후로 아이는 가끔 내 기억력을 향상시킨다는 이유로 나를 붙잡곤 한다. 가끔은 열 개의 단어를 듣고 순서대로 외우는 테스트도 하고, 때로는 느닷없이 가족이나 친척들의 생일을 묻기도 한다. 한번은 카드를 찾아내는 게임을 하기도 했다. 그럴 때마다 귀찮기도 하고 마치 어린아이처럼 대하는 것 같아 은근히 화가 나기도 하지만, 나를 염려하는 아이의 눈빛에 그럭저럭 따라가곤 했다. 그리고 그런 면에서는 별로 걱정할 정도가 아니었다. 그런데도 자주 깜박이는 것은 여전해서 나도 할 말이 없었다.

"여기 있네. 언제 넣었지?"

가방 속에 들어있는 휴대전화를 보고 아이에게 멋쩍은 웃음을 지었다.

"그러게 괜히 서두르지 말고 천천히 해요. 그럼 깜박하는 일이 없을 테니."
"나는 깜박하고 싶어서 그러는 줄 아니? 너도 나이 들어봐. 엄마처럼 안 그러나."

이미 알고 있었다는 듯 무심한 말투로 대답하는 아이에게 괜히 서운해져 나는 아이보다 서너 발자국 앞서 걸었다.

"흐응, 엄마. 화났어? 엄마, 내 마음 알죠? 엄마가 걱정되니까 그러는 거예요. 엄마 혼자 외출했을 때를 대비하는 거니까 속상해하지 말아요. 사랑해요. 엄마, 저 하늘만큼, 땅만큼. 후후…."

아이는 콧소리를 섞어가며 내 곁으로 다가와 팔짱을 꼈다. 나도 모르게 웃음이 나왔다.

아! 나는 또 깜박했다. 방금 전의 서운함을….

덧붙이는 글 | 이 글은 '건망증 때문에 겪은일' 공모 기사입니다.



태그:#건망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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