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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기는 왜 반복되는가>
 <위기는 왜 반복되는가>
ⓒ 김영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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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B 정권 당시 시장 친화적인 정책이라는 포장 속에 대기업 친화적 정책이 쏟아질 무렵이었다. 여론에 비난이 일자 그들은 소위 '낙수효과(trickle down effect)'를 언급하며 자신들이 추진하는 정책의 타당성을 옹호했다.

낙수 효과란 넘쳐흐르는 물이 바닥을 적시는 것처럼 대기업의 발전과 성장이 중소기업의 성장을 이루고 결국 나라 전체에 그 성장의 혜택이 고루 퍼진다는 용어이다. 그런데 실상을 보면 그 혜택은 돈이 있는 자들에게만 머무르고 있는 것 같다.

비단 우리나라만의 이야기는 아니다. 전 세계가 빈부격차로 인한 갈등에 힘들어 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 대해 세계 석학들은 어떻게 생각하고 돌파구가 무엇이라고 생각할까? 이러한 궁금증에 대한 실마리를 미국의 전 노동부 장관인 로버트 라이시는 자신의 저서 <위기는 왜 반복되는가>(2011)를 통해 풀어준다.

이야기는 2008년으로부터 시작한다. 당시 오바마는 대통령 취임 직후 금융위기 해결을 위해 대규모 양적완화 조치에 들어갔다. 이는 역대 정부들이 위기 때마다 써오던 방식이었다. 대규모 양적완화 정책은 금융시스템의 붕괴와 경제공황을 막는 데에는 성공했다. 그러나 라이시는 이 정책이 경제위기의 근본적 원인까지는 해결하지 못할 것이라고 예견했다. 무너지는 경제를 표면상으로 회복시킨 것처럼 보이지만 그 덕에 정작 중요한 일인 병의 진짜 원인을 고치지 못했다고 안타까워한다.

로버트 라이시가 주장하는 경제위기의 진짜 원인은 놀랍게도 소득 불균형의 심화다.

경제가 선순환 하려면 생산한 것을 누군가가 소비하고 기업은 누군가의 소비를 통해 얻은 자본으로 다시 투자한다. 투자한 만큼 생산량은 다시 늘어나게 되고 그만큼 또 소비가 이루어지면 경제 선순환을 통해 사회가 가지는 전체 부의 양은 증가한다.

그러나 이러한 선순환이 가능하려면 '생산=소비'라는 등식의 성립을 위해 생산으로 얻은 소득의 재분배가 공정하게 이루어져야 한다. 소비를 위한 구매력의 원천이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소득이 상위 몇 퍼센트에게 집중되어 중산층의 구매력이 줄면 사회 전체가 생산한 물량을 소비할 수 있는 'CAPA'가 줄게 된다. 결국 생산과 소비 사이에 'GAP'이 발생하게 되고 사회는 그 'GAP'만큼 손실이 발생한다. 이는 사회적으로 실직자가 늘거나 불황으로 나타난다. 이것이 라이시가 소득불균형이 불황을 일으키는 원인이라고 설명한 이유이다.

일부 경제 전문가는 위기의 원인이 소득에 비해 소비가 많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그러나 라이시는 이에 대해 반박한다. 높은 수준의 부채는 위기의 증상일 뿐, 그 원인이 아니라는 것이다. 이는 루스벨트 정부의 연준 의장이었던 에클스의 포커게임 비유로 설명할 수 있다. 포커 게임에서 소수의 플레이어에게 칩이 집중되면 다른 플레이어는 돈을 빌려야만 게임에 참여할 수 있다. 대공황 직전 미국의 경제상황 역시 그러했고 돈을 융자하던 다수 국민들의 신용이 바닥나자 결국 파산, 즉 게임은 중단되었다. 이는 칩을 소비하는 플레이어가 문제라기보다 그 칩이 소수에게 집중되어 소비할 칩이 없어진 것이 진짜 문제라는 이야기이다.

그렇다면 왜 이 '칩'의 균형은 깨졌을까? 소득 불균형의 원인은 무엇일까? 이에 대한 답 역시 라이시는 탁월한 관점으로 자신의 책에 설명한다. 의외로 그는 소득불균형의 원인이 많은 이들이 일컫는 세계화보다는 전산·자동화에 있다고 말한다. 교역과 기술 발전으로 일자리의 '개수'는 감소하지 않았지만 자동화로 인한 인간노동 가치의 하락으로 전반적인 '실질임금'이 하락한 것이다. 그런 와중에도 고학력 및 전문 직업군의 소득은 엄청나게 증가했다.

또한 이렇게 칩의 간격이 벌어지는 것에 대해 정치는 적절한 조치를 취하지 못했다고 라이시는 지적한다. 민주주의 정치가 돈이 가진 권력에 더 귀 기울이고 로비스트들의 목소리 속에 정치인들은 정작 중요한 시민의 목소리를 듣지 못했다. 이는 소득세 비율이 증명한다. 대공항 이후는 70~90퍼센트였던 소득세율이 현재는 25~39퍼센트로 감소했다. 소득세의 감소는 공공자산의 투자감소로 이어지고 모두를 위한 공공시설보다 돈 있는 사람들의 사립시설 개발로 이어진다.

사회가 가진 부는 커지고 있는데 그것을 영위하기 위한 개인의 실질적인 부는 줄어들고 있다. 미국의 경우 점점 공공시설의 가치는 돈 없는 사람들이 사용하는 싸구려로 전락해 가고 있다. 개개인은 소득을 더 늘리기 위해 근로시간을 연장하고 아이를 나은 여성들은 자아실현보다 생계를 위한 노동에 가담한다.

한국만 하더라도 젊은이들의 평균 결혼적령기는 해가 바뀔수록 늦어지고 출산율은 프랑스보다도 낮다. 가계당 저축은 감소하고 부채는 증가하고 있다. 우리의 칩은 줄어들고 있지만 사회라는 게임에 참여하기 위해서는 계속해서 빚을 내야 한다. 월급을 모아서는 살 수 없는 집값, 아이를 한 명을 키우는 데 드는 무지막지한 돈. 사람들은 생계가 절박해서 공공의 가치보다 개인의 이익을 선택한다.

이런 사회의 끝은 모두에게 좋지 않다. 최근에 터진 '세월호 사고' 역시 공공선보다 개인의 이익을 끝없이 좇았던 어른들이 부른 탐욕의 결과이다. 어떻게 하면 이 시계추를 돌릴 수 있을지 우리는 진지하게 성찰해야 한다. 실질적인 민주주의를 통해 소수 힘있는 자들의 부당한 결정을 막아야 하고 공공선을 택하는 가치의 회복이 절실하다. 성장은 그 자체가 목적이 아니라 우리 모두가 더 행복해지기 위한 수단이다. 우리는 행복을 위해 그 수단을 사용하고 있는지 아니면 수단을 위해 행복을 등지고 살고 있는지 진심으로 돌아보아야 한다. 


위기는 왜 반복되는가 - 공황과 번영, 불황 그리고 제4의 시대

로버트 라이시 지음, 박슬라.안진환 옮김, 김영사(2011)


태그:#경제, #빈부격차, #행복, #정의, #세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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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저는 한국 사회에 평범한 신입아빠, 직장인인 연응찬이라고 합니다. 지극히 평범한 사람이 바라보는 사회가 정말로 대한민국 국민이 느끼고 공감하는 사회라고 생각합니다. 저는 그렇게 평범한 눈과 자세로 세상과 공감하고 소통할 수 있는 기사를 쓰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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