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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섭습니다. 제가 배에 타고 있던 학생이라면 느꼈을 공포. 사람들을 내버려두고 바삐 탈출해버린 선장이라는 인간에 대한 두려움. 그리고 그 선장에게 향하고 있는 전국민적 분노. 모두가 무섭습니다.

깎아버린 잡초는 비가 오면 또 나타납니다

선장을 옹호하느냐고요? 물론 아닙니다. 저도 열 받습니다. 미치겠습니다. 제가 할 수만 있다면 저보다 어른이지만 당장 감방에 집어넣고 싶습니다.

하지만 저 한 사람 열 받는다고 해서, 저 사람을 무기징역, 심하게는 사형을 선고한다고 해서 근본적인 해결이 되는 것은 아닙니다. 어떻게 보면 지금 이 순간의 분노를 표출할 대상이 될 뿐입니다. 예초기로 깎아버린 잡초는 비가 오면 또 나타납니다.

게다가 우리나라는 법치국가입니다. 잘못이 있다면 법률에 따라 잘잘못을 가려 처벌해야 합니다. 그렇지만 그것만으로 문제가 해결되느냐, 저는 그마저도 잘 모르겠습니다. 세월호 선장이 세상에서 모습을 감추더라도 제2의 세월호 선장은 또 등장할 것입니다. 아니, 이미 세월호 선장이 제3, 제4의 삼풍백화점 사장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심지어 박근혜 대통령도 "자리보전을 위해 눈치만 보는 공무원은 이 정부에서 반드시 퇴출시킬 것"이라고 말하면서 '사람'을 향해 화살을 겨누는 태도를 보였습니다. '사람'에 책임을 묻는 것도 중요하지만, 이는 일시적인 방편에 불과하다는 점도 간과해서는 안 됩니다.

수학여행을 전면폐지한다는 교육부의 대책 없는 대책에는 실소가 나옵니다. 대학교 신입생 오리엔테이션이었다면 오리엔테이션을 폐지하면 될까요? 폐지하고 나면, 우리의 무서움은, 불안감은 어떻게 해소될까요. 그저 시간이 지나면 잊어버리고 잘 사니까 그걸로 된 것일까요.

그렇게 해서 지금 우리가 삼풍백화점 붕괴, 대구 지하철 참사, 경주 리조트 붕괴사고 등 계속된 재난의 역사를 보고 있으면 정부의 재난 대응 노하우가 갈수록 쌓여가고 있는지도 의문이 생깁니다.

우리나라는 민주주의 국가입니다. 국민들은 공무원에게 세금을 주고 일을 시킵니다. 그리고 그 공무원들은 제도와 정책에 의해 정비된 시스템에 의해 일을 합니다. 그렇다면 우리의 분노가 이성적으로 향해야 하는 칼날의 끝은 오로지 '시스템의 재정비'여야만 한다고 생각합니다.

대통령에게 감히 요구합니다

저는 솔직히 자세한 대안은 모르겠습니다. 안전에 대한 국민적인 수준을 높이기 위해서 안전 교육을 강화하고, 승무원의 자격 요건을 높여야 하며, 배의 노후화를 점검하는 기준을 엄격히 하면 어떨까 하는 정도밖에 떠오르지 않는 무식한 사람입니다.

하지만 제가 세금을 내는 이유, 우리가 선거에서 한 표, 한 표 권리를 행사한 이유가 무엇이겠습니까. 대통령과 정부의 고위관료는 우리의 대표이자 우리의 일꾼입니다. 우리의 세금으로 우리를 대신해 시스템을 관리하고 만들어가는 사람들입니다.

이분들이 최선을 다해야합니다. 국민들의 억울함 섞인 원망에는 그저 묵묵히 열심히 국민을 위해 일하는 모습을 보여주길 바랍니다. 그것만이 이분들의 대답이어야 합니다. 수십 년 후에라도 우리가 안전하게 살아갈 수 있게 된다면 역할을 다 한 것이 아니겠습니까. 그것이 이분들의 사명입니다. 그게 민주주의 국가의 모습입니다.

저는 대통령에게 감히 요구합니다.

첫째, 제가 건방져 보일지 모르겠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부탁이 있습니다. 통 크게 사과 한 번 해주십시오. 국가의 재난 대응 수준에 대해서 진심으로 반성하고, 당신이 느꼈던 안타까운 마음을 우리와 공감하는 모습을 보여주십시오. 문제 해결은 문제를 인정하는 것에서부터 시작됩니다.

둘째, 시스템을 정비하는 노력에 최선을 다하는 모습을 보여주십시오. 사과만으로 끝날 것이 아니라, 단기적인 성과가 아니라, 우리 모두의 자녀, 우리의 후손이 더 나은 곳에서 살 수 있도록 해주십시오. 그래서 후진국형 사고가 났다는 따위의 말이 나오지 않는 세상을 조금씩 천천히 만들어주십시오. 당신의 자녀들에게, 우리의 후손들에게는 이런 세상을 남겨주지 말았으면 좋겠습니다. 정말.

"세월호의 선박 수입부터 면허획득, 시설개조, 안전점검과 운항허가에 이르기까지 철저히 점검해 단계별 문제점과 책임소재를 밝혀내라"고 대통령께서 말씀하셨습니다. 반면 민병희 강원도 교육감은 "학부모가 안심하고 학교에 보낼 수 있도록 하는 것이 교육기관의 1차 책임"이라며 "학생의 생명과 안전에 만전을 기하는 선진국형 학생안전강화 방안 마련에 총력을 기울이겠다."고 강조했습니다.

책임을 밝히는 것 또한 중요하지만, 시스템을 재정비하는 것에 더 많은 사회적 비용을 투자해 주십시오. 잡초를 완전히 제거하는 유일한 방법은 토양을 바꾸는 것입니다.

열과 성을 다해 지켜봐야 합니다. 공무원, 국회의원 그리고 행정가가 국가에 헌신하여 시스템을 구축하고 유지해 나가는지 감시하고 독려하는데 에너지를 쏟아야 합니다. 좀 더 나은 시스템을 만드는 것만이 '인재'를 예방하기 위해 '인간'이 할 수 있는 최선의 예방책이라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태그:#세월호, #민주주의, #재난 대응 시스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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