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밥집에서 내다보이는 골목 풍경은 평화롭다. 지나가던 여인네들은 저 펌프로 물을 끌어올려 발을 씻기도 했다.(바라나시)
 밥집에서 내다보이는 골목 풍경은 평화롭다. 지나가던 여인네들은 저 펌프로 물을 끌어올려 발을 씻기도 했다.(바라나시)
ⓒ 박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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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하면서 가장 긴 기다림의 시간을 준 나라는? 두말할 필요도 없이, 인도. 그들은 서두르거나 초조해하지 않는다. 아무것도 급할 게 없다. 연착하는 기차는 말할 것도 없지만, 음식을 주문하면 하세월이다.

바라나시 골목에는 인도인 남편과 일본인 아내가 하는 밥집이 있다. 영업시간도 짧아, 늦은 아침에 문을 열고 한낮이 막 지날 무렵 마감을 한다. 점심 한 끼만 팔고 말겠다는 것이렷다. 하기사 이 느긋한 골목에는, 아침 점심 저녁, 때 맞추어 세 끼를 챙겨 먹을 만큼 부지런한 여행자들은 별로 없어 보인다. 늦은 아침을 먹거나 늦은 점심을 먹거나, 어쨌거나 두 끼 장사는 될 터였다.

식당 앞에는 늘 주인보다 손님들이 먼저 와서 줄을 섰다. 이렇게 인기 있는 밥집이고 보면, 아침 점심은 물론 저녁까지 손님을 맞을 법도 한데. 자본주의적 욕망을 걷어내고 딱 먹고 살만큼만 벌겠다는 의지일까. 인도 남자와 결혼해서 인도에서 살면서 일본 음식을 만들어 내놓는 일본 여자의 마음을 내 마음대로 헤아려 본다.

돈 문제에 무덤덤한 주인장

기다리는 시간은 하염없이 길어진다. 슬그머니 그들을 엿보았다. 돌아서서 음식을 만드는 두 사람의 등이 맞닿을 정도로 주방은 좁고 분주하다. 밥집이라고 해봐야, 너댓 개의 테이블이 전부이지만 한 번에 들이닥친 손님들의 음식을 만들기에 부부는 정신이 없다.

밥집에서 내다보이는 골목은 그림처럼 평화롭다. 때로 골목을 지나가는 소가, 문 앞에 벗어놓은 신발을 즈려밟기도 하고 신발 위에 볼 일을 본다는 소문도 들려왔지만 다행히 그런 일은 없었다. 간간이, 지나가면서 발을 씻는 여인네들이나 물을 받기 위한 남정네들의 힘찬 펌프질 소리만이 가볍게 골목의 공기를 흩뜨리곤 할 뿐.

바라나시에 들어온 지 이틀 만에 배탈이 난 우리 가족은, 따뜻한 우동과 보들보들한 야채튀김과 입에 넣으면 볼이 터질 만큼 커다란 김밥으로 위로를 받곤 했다.

한번은 셈이 틀렸다. 나중에 시킨 김밥을 계산에 넣지 않은 것이다. 머리를 맞대고 내가 짚어주어도, 인도인 남편은 별로 당황하지도 고마워하지도 않았다. 그 돈 안 받고 지나쳤어도 그만이라는 듯이. 셈이 느린 사람이다.

잔머리 쓰지 않던 소년

카주라호에서 만난 밥집 소년도 그랬다. 음식 주문을 받고 음식을 나르고 테이블을 치우는 소년은, 옥상까지 오르락내리락하는 일에 머리를 굴리지 않았다. 옥상까지 올라와 다른 테이블의 그릇들을 치우는 김에 주문을 받는다든지, 음식을 나르는 김에 메뉴판도 함께 들고 올라온다든지, 요컨대 두 가지 일을 (환기시켜 주지 않는 한) 동시에 해결하는 법이 없었다. 옥상까지 오르내리는 일이 귀찮아서라도 요령을 부릴 법한데. 잔머리를 쓰지 않는 소년이었다.

그들이, 아라비아 숫자를 만들고 숫자 0을 생각해 낸 조상의 후예들이 맞나, 구구단을 19단까지 외워대는 인도인이 맞나 하는 의심이 들기도 했지만, 셈이 느리고 빈틈이 보이는 그들이 어쩐지 만만하고 마음에 들었다. 그래서 터무니없게도, 소년의 길쭉하고 날씬한 다리는 그런 성실함과 우직함이 준 선물임에 틀림없다고 믿어버리기로 했다.

수도 없이 계단을 오르내리던 소년은 지금쯤 요령을 터득했을까. (카주라호)
 수도 없이 계단을 오르내리던 소년은 지금쯤 요령을 터득했을까. (카주라호)
ⓒ 박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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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 2013년 1월 한달 동안 인도를 여행했습니다.
델리→조드뿌르→아그라→카주라호→바라나시→아우랑가바드(아잔타 석굴)→뭄바이 우리 가족의 여정은 이러했지만, 제 여행기는 여행의 순서를 따르지 않습니다. 엽서 한 장 띄우는 마음으로 씁니다.



태그:#인도, #인도여행, #인도인, #바라나시, #카주라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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