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높이 76m의 언덕같은 산이지만 위치가 좋아 여러 다른 이름을 지닌 가양동의 주산, 궁산(宮山).
 높이 76m의 언덕같은 산이지만 위치가 좋아 여러 다른 이름을 지닌 가양동의 주산, 궁산(宮山).
ⓒ 김종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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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강서구는 조선 시대에 경기 양천(陽川)현에 속했다. 햇볕이 잘 들고 물 맑은 고장이라는 뜻. 이곳의 아름다움은 조선 영조 때인 1740년대 양천현령을 지낸 겸재 정선의 화폭에 잘 묘사돼 있다. 지금의 강서구 가양동이 바로 한강 마을 양천 고을이다. 한강이 시원하게 펼쳐진 강변 동네 가양동엔 운동 삼아 걷거나 자전거 타기 좋은 공원이 이어지는 길이 나 있어 요즘 같은 화창한 봄날에 참 좋다.

봄볕을 쬐며 산책하듯 편안하게 걸어 오르기도 좋은데다 한강의 경치가 발아래로 펼쳐지는 궁산근린공원과 서울에 유일하게 남아 있는 양천향교, 강서구와 깊은 인연을 지닌 천재화가 겸재 정선, 우리나라 한의학의 큰 별 허준 선생이 거쳐 가신 공간을 만난다. 옛 선인들의 발자취를 따라 학문과 예술, 기개가 고스란히 느껴지는 길이기도 하다.

경치좋은 한강 마을 양천 고을의 명소, 궁산(宮山)

서울에 남아 있는 유일한 향교인 양천향교.
 서울에 남아 있는 유일한 향교인 양천향교.
ⓒ 김종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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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의 들머리는 수도권 전철 9호선 양천향교역에서 시작된다. 양천항교역 2번 출구로 나오면 '겸재정선 기념관' 이정표가 보이는데, 먼저 나타나는 것은 서울 유일의 향교라는 양천향교. 입구에 서 있는 여러 개의 비석들이 향교의 옛 분위기를 물씬 풍기게 한다. 향교는 공자의 유교사상을 바탕으로 한 조선시대의 지방교육기관으로 학생들을 가르치고 문묘를 세워 제사를 지냈던 곳이다.

안으로 들어가면 양반 자제들이 공부를 하던 명륜당, 공자와 성현의 위패를 모신 대성전 등이 그대로 남아있다. 구한말 갑오개혁(1894년)으로 과거제도가 폐지됨으로 인해 교육기관으로의 기능은 없어지고 문묘기능만 허용되었다. 그 후 1945년 조국광복과 함께 관내 유림들의 노력으로 보수와 복원 후 제자리를 찾게 되었다고.

향교를 한 바퀴 돌아서 궁산 근린공원으로 가면 공원 입구에 현대식으로 지어진 겸재 정선 기념관이 자리하고 있다. 겸재 선생이 65~70세(1740~1745)까지 지금의 강서구 가양동 일대를 지칭하는 양천현의 현령으로 있으면서 강서 지역의 뛰어난 경치를 <경교명승첩>, <양천팔경첩> 등에 그림 작품으로 고스란히 남긴 것을 기념하는 곳이다. 선생은 조금 후 마주하게 될 궁산 꼭대기에 있는 누각 '소악루'에서 바라본 한강의 풍경을 많이 그렸다고 한다.

봄 기운으로 가득한 궁산의 편안한 둘레길.
 봄 기운으로 가득한 궁산의 편안한 둘레길.
ⓒ 김종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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궁산은 높이 75.8m로 나지막한 언덕같은 산이지만 서울에서 한강을 가장 잘 볼 수 있는 곳이다. 궁산(宮山)이라는 이름이 독특하다 싶었는데 산자락에 공자의 위패를 모신 양천향교가 있어서 이곳을 궁(집 宮)으로 여기어 붙인 이름이라고 한다. 궁산은 성산, 관산, 진산 등으로도 불리었다. 쓰임새에 따라 다양하게 붙여진 이름으로 보아 작고 낮은 산이지만, 매우 중요한 위치에 있는 곳임을 짐작할 수 있었다.

예상대로 성산(城山)은 산 위에 삼국시대에 쌓은 옛 성터가 남아 있어 성산이라 했고 -  이 산성은 강 건너 행주산성과 파주의 오두산성과 함께 삼국시대에 한강 하구를 지키는 요새의 역할을 하였다 - 관산(關山)은 한강을 지키는 빗장의 역할을 했다고 '빗장 관(關)'자를 써서 관산이라 했고, 진산(鎭山)은 양천고을의 모든 관방시설이 설치되어 있어 진산이라 했단다.

겸재 정선이 매일 올라가 그림을 그린 누각 '소악루'

한강의 하류와 강건너 산들이 파노라마로 펼쳐져 보이는 궁산의 누각 소악루.
 한강의 하류와 강건너 산들이 파노라마로 펼쳐져 보이는 궁산의 누각 소악루.
ⓒ 김종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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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악루에서 그린 겸재 정선의 그림에 보이는 한강과 강건너의 산들.
 소악루에서 그린 겸재 정선의 그림에 보이는 한강과 강건너의 산들.
ⓒ 겸재 정선 기념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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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에 가서 양천현을 보지 못했다면 조선을 다녀왔다고 말하지 말라."

옛 중국 사신들은 조선시대 양천현의 아름다움을 두고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아마도 그들은 궁산의 누각 소악루에 올랐던 것 같다. 소악루(小岳樓)는 중국 동정호의 악양루 경치에 버금간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겸재 정선이 한강을 바라보며 그린 '안현석봉'(안현은 현재의 안산), '목멱조돈'(목멱은 현재의 남산) 그림이 누각안 안내판에 담겨져 있어 눈 앞에 펼쳐진 한강과 주변 모습을 옛 풍경과 비교해 감상하기 좋다. 궁산과 한강 사이에 널찍한 강변도로가 지나가고 있어 옛 모습을 짐작하기가 쉽지 않지만, 선생의 그림처럼 강 건너 삼각산(북한산), 안산, 인왕산, 남산까지 잘 보인다. 더불어 한강 하류의 물줄기가 파노라마로 한눈에 들어오는 게 풍치 한 번 참 좋다.

아쉽게도 현대에 와서 그만 쓰레기 산이 되버린 난지도(현재의 하늘공원, 노을공원)에 가려 그림 속의 만리재, 애오개, 와우산 등은 이제 더 이상 보이지 않는다. 여름엔 강바람이 불어와 무척 시원할 것 같고 누각에서 보이는 강변의 해 저무는 풍광도 꽤 운치있을 것 같다. 조선시대 겸재 정선이 양천현감으로 부임한 뒤 경치를 화폭에 담기 위해 매일 찾았다는 말이 허언이 아님을 알 수 있었다.

겸재 정선은 양천향교에 선정비가 남아 있을 정도로 목민관 역할도 충실히 했지만 현령 시절 가장 큰 업적은 한강 일대의 아름다운 풍광을 후대에 전한 것이다. '경교명승첩(京郊名勝帖)' '양천팔경첩(陽川八景帖)' 등이 그것이다. 특히 소악루는 시와 그림의 만남으로 유명하여 누각안에 정선의 그림과 이병연의 시를 함께 감상할 수 있도록 만들어 놓았다.

정선은 1740년 양천현감으로 부임하면서 당시 진경시(眞景詩)의 태두 이병연(1671~1751)의 시문(詩文)과 자신의 그림을 바꿔 보자고 약속하고 한강 주변의 많은 풍광들을 그렸다. 정선과 이병연은 진경시문학의 기틀을 마련한 삼연 김창흡의 문하(門下)에서 함께 수학한 동료이기도 하다.

허준 자취가 남아있는 공암나루공원, 허준 박물관  

경기도 광주에서 물길을 따라 떠내려 왔다는 광주바위
 경기도 광주에서 물길을 따라 떠내려 왔다는 광주바위
ⓒ 김종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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궁산 근린공원을 나오면 한강이 좀 더 가까워지는 산책길이 이어져 있는 곳이 공암나루공원이다. 한강과 가양동의 아파트촌 사이에 길게 이어진 공암나루공원은 보행로와 자전거길 곳곳에 나무들과 쉼터 정자가 들어서 있어 걷거나 자전거타기 좋은 곳이다. 조선시대 도성과 양천고을, 강화를 이어주던 나루 중간쯤에 구멍이 뚫려있는 바위가 있어 구멍바위 즉 공암이라 하는 나루의 이름이 유래되었다고 한다.

화창한 봄날을 즐기러 나온 아이들, 동네 사람들과 함께 걷다보면 연못위에 떠있는 바위들이 이채로운 구암공원이 나타난다. 풍채 좋은 이 바위들에 붙은 이름은 '광주암'. 전설에 따르면 경기도 광주에서 물에 떠내려 온 바위란다.

지금의 올림픽대로가 생겨나기 전에는 이곳까지 한강물이 들어찬 강변이었다니 바위가 떠내려 온 전설엔 근거가 있음직하다. 광주암이 있는 연못을 돌아가면 허준 박물관이 보인다. 박물관 입구에서 허준 선생이 아이들을 치료하는 동상이 눈길을 끈다. 선생의 인물됨을 잘 드러낸 모습으로 박물관이 정답고 친근하게 느껴졌다.

허준 박물관 옥상엔 동의보감에 나오는 약초들을 키우는 전망좋은 약초원이 있다.
 허준 박물관 옥상엔 동의보감에 나오는 약초들을 키우는 전망좋은 약초원이 있다.
ⓒ 김종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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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천현은 진경산수화의 대가 정선 이전에 의학의 대명사인 허준을 배출했다. 허준이 나고 생을 마친 이 지역은 양천 허씨의 발상지이기도 하다. 임진왜란이 끝나자 선조는 피난길을 끝까지 함께 한 호종공신(扈從功臣) 열일곱 명 중의 하나인 허준에게 다시 종1품 숭록대부(崇祿大夫) 벼슬을 내렸다. 그후, 선조가 세상을 떠나자 선조의 지나친 총애에 시기를 하던 신료들이 선조 임금의 죽음을 막지 못했다며 죄를 물었지만 광해군은 허준을 감싸 안았다.

하지만 계속되는 신료들의 질시와 견제에 어쩔 수 없어 허준은 1년 8개월의 귀양살이를 하게 되는데 기록에 의하면 귀양지가 바로 서울 강서구 가양동에 있는 탑산의 바위굴(공암)이고 <동의보감>도 귀양살이 중에 편찬하였다고 한다. 선생의 아호인 구암(龜巖)도 동네에 거북처럼 생긴 산에서 비롯되었다 한다. 이러한 허준의 업적을 기리기 위해 탑산 아래 그의 호를 딴 구암공원을 조성하고 허준박물관을 세웠다고.

4층의 박물관 옥상에 동의보감에 나오는 100여 가지의 약초들을 직접 기르고 있는 한강 전망까지 좋은 '약초원'이 있어 특별했다. 예쁘고 때깔고운 들꽃인줄로만 알았던 쑥부쟁이, 하늘 매발톱, 붓꽃 등이 약초 혹은 한약재로 쓰였다니 각각 꽂혀있는 안내푯말을 흥미롭게 읽게 된다. 한강 마을 가양동 여행을 마무리 하기 딱 좋은 곳이다. 박물관에서 수도권 전철 9호선 가양역이 가깝다.

덧붙이는 글 | * 여행은 지난 3월 30일에 다녀왔어요.

* 허준 박물관 : 운영시간 (10:00시 ~ 18:00시), 매주 월요일 휴관, 입장료 800원 (매월 2,4주 토요일 무료관람)



태그:#가양동, #궁산, #공암나루공원, #광주암, #허준박물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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