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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딱히 잘하는 게 없는 나다. 그러나 서당개 3년이면 풍월을 읊는다고 했다. 거의 4년째 학교 식당에서 아르바이트하고 있다. 주 5일로 매일 일한 적도 있고, 학기 중 수업이 좀 더 빡빡할 땐 주말에만 일하기도 했다. 서당개가 풍월을 읊기 위해 필요한 3년보다 긴 4년간 아르바이트를 해서일까. 같이 일하는 이모님들이 농담 반 진담 반으로 날 '베테랑'이라 한다.

사실 내가 식당에서 하는 일은 단순하다. 서빙, 그러니까 음식 나르는 일이 주 임무다. 먹음직스런 음식들이 올려진 네모난 쟁반을 고이 들어서 살포시 손님 앞 탁자에 내려놓으면 된다.

주중엔 '애피타이저'로서 감자나 고구마, 샐러드 등을 제공한다. 그리고 주중과 주말 가리지 않고 후식 음료가 함께 제공된다. 이 모든 걸 손님들께 드리면서 '맛있게 드세요'란 말을 덧붙이면 된다. 그리고 손님이 식사를 맛있게 드시고 자리를 비우면 그 쟁반을 치우면 된다. 누구든지 할 수 있는 일이다.

하지만 이 일이 그렇게 단순한 일이면 굳이 이 기사에 응모할 이유가 없다. 한 번이라도 식당에서, 매점에서, 카페에서 손님 접대하는 일을 해 본 사람들은 안다. 이 단순한 일들을 하는 과정에서 맞닥뜨리는 여러 인간 군상들로부터 받는 스트레스의 크기를 말이다. 내가 받았던 스트레스가 다른 사람들의 그것에 비해 절대 큰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때때로 겪었던 한숨 나오는 상황들은 생생하다. 그 이야기들을 조금이나마 쓰고 싶다.

내가 주로 일하는 시간은 낮 12시부터 오후 2시까지다. 점심시간이라 가장 많은 손님들이 몰리는 시간이다. 이 시간의 식당은 말 그대로 미어터진다. 미친 듯이 식사를 나르고, 탁자 위를 치우면서 틈틈이 식당 입구 밖을 본다.

단 한 순간도 멈추지 않고 몰려오는 사람들. 그들은 빈자리에 앉자마자 "여기 주문요!"를 외친다. 그 말을 듣는 나는 결코 한큐에 그곳으로 달려가지 못한다. 거의 100% 다른 손님에게 음식을 나르거나 물을 갖다 주는 중에 그 소릴 듣는다. 그럴 때마다 나는 <개그콘서트>의 유행어를 외친다. "잠시만요!" 다른 탁자에 음식을 갖다 주고 우사인 볼트 뛰어가듯 주문 받으러 간다. 아뿔싸. 주문 용지랑 메뉴판 가져간다는 걸 깜빡했다. 다시 그걸 챙기러 후닥닥 달려간다.

한두 명, 아니 네 사람이 주문하는 경우까진 그래도 괜찮다. 인원이 적다 보니 메뉴 정리가 쉽다. 그러나 종종 10명이 넘는 대인원의 주문을 받을 시엔 골치 아프다.

한 번은 16명의 주문을 한꺼번에 받았다. 그들끼리도 이견조율이 안 되는 모양이었다. 16명 중 확실히 메뉴를 정한 사람은 반도 안 됐다. 네 명 정도는 어떤 거 드시겠느냐고 물어봐도 대답이 없다.

두세 명은 누가 떠들든 말든 휴대폰으로 카카오톡이나 게임에 열중한다. 또 나머지는 "김치찌개 먹을게요. 아니다 아니다. 생선 먹을까? 아 돈가스도 맛있지?" 이러면서 주문 용지에 쓴 글을 자꾸 지우게끔 한다. 이럴 땐 각 메뉴별로 몇 명인지 헤아리는 데도 시간이 상당히 많이 든다.

그러나 진짜 고역인 순간은 음식을 가져다줄 때다. 자리에 앉은 손님과 손님 간의 좁은 공간, 그곳을 통해 음식을 드려야 한다. 드려야 하는 음식은 김치찌개나 만둣국 등 거의 하나같이 뜨거운 음식들이다. 음식을 들다 뜨거운 국그릇에 손이 데서 이루 말할 수 없이 고통스러울 때가 종종 있다. 나오려는 비명을 억지로 삼키며 다음의 말로 승화시킨다. "식사드리겠습니다. 뜨겁습니다" 거칠게 표현하자면, "뜨거운 그릇에 데기 싫으면 나오세요"란 뜻이다.

그럼에도 비키지 않는 손님들이 있다. 여전히 게임에 열중하고 있다. 옆의 친구가 "야! 밥 나왔어!"라고 해야 뒤늦게 비켜준다. 여전히 휴대폰에서 손을 안 뗀 채. 그럼에도 난 "맛있게 드세요"란 말은 붙여준다.

음식 나왔는데 비켜주지도 않고 휴대폰 게임 열중... 그래도 "맛있게 드세요"

후식 드리는 것도 은근히 일이다. 둥근 쟁반에 음료수가 담긴 잔을 열 개 이상 싣는다. 말은 후식이지만 식사하는 도중에 드려야 한다. 그래야 식사를 마치고 편하게 후식을 즐길 수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식사하느라 열심히 팔을 놀리는 손님들 틈으로 후식을 전달해야 한다.

그 과정은 흡사 곡예다. 식사하는 손님과 음료수를 탁자 위에 조심스레 놓는 내 몸이 닿는다. 가끔 그런 나를 짜증스러운 표정으로 보는 손님들이 있다. 반사적으로 내 입에서 "죄송합니다"가 튀어나온다.

손님이 무진장 몰릴 시엔 당연히 주문도 밀릴 수밖에 없다. 식사도 당연히 늦게 나온다. 주방 안의 이모들, 홀의 이모들 중 그 순간 노는 사람은 단 한 명도 없다. 그러나 손님들 중 일부는 "왜 식사 빨리 안 나와요!"라며 우리의 압박감을 증가시킨다.

이해한다. 나도 배고파죽겠는데, 다음 일정 있는데, 식사 빨리 안 나오면 참기 힘든 게 사실이다. 하지만 가끔 식사 늦게 나온다고 온갖 짜증을 내는 사람들을 보면, 저렇게까지 해야 하나 의문이다.

"여기요! 지난번에도 늦게 나오더니 오늘도 또 늦어요?"
"죄송합니다. 지금 주문이 밀려 있어서… 금방 식사 드리겠습니다."
"어휴… 빨리 먹고 저도 강의 들어가야 돼요."
"네, 죄송합니다."

난 표정 관리를 정말 못 한다. 힘들 때나 짜증 날 때 얼굴에 그대로 드러난다. '포커페이스'들이 부럽다. 위와 같은 상황에서도 죄송하다는 말은 하지만, 표정은 전혀 죄송스럽지 않다.

전혀 안 죄송한 표정으로 "죄송합니다" 하던 나

우리 식당 매니저님, 그리고 이모님들은 나와 정반대다. 항상 손님들에게 '친절한 서비스'의 표본을 보여준다. 식사가 늦어질 때마다 자초지종을 설명하며 진심으로 죄송스런 표정을 짓는다. 난 죽었다 깨어나도 그 상황에서 그런 표정 짓는 게 안 된다. 바쁘고 정신없는 와중에도 그처럼 침착하게 손님들을 대하는 그들 모두 존경스럽다.

그런 그들도 폭발하는 날이 있다. 이따금 등장하는, '님' 자 붙이기도 아까운 '손'들 때문이다. 하루는 어느 단골 '손'이 매니저님께 불같이 화를 냈다. 정신없는 와중에도 "당신 고소할 거야"란 소리가 어렴풋이 들린다. 일 끝나고 식사하는 시간에 왜 그랬는지 들었다. 손님들이 많이 와 자리 다 차서 손님을 더 받을 수 없는 상황에 그 사람이 왔던 것이다.

비어 있는 자리가 있긴 했지만 그곳은 예약석이라 손님을 받을 수 없었다, 그러나 그는 거기 앉겠다고 했다. 매니저님은 "손님, 정말 죄송하지만 여긴 예약석이라 안 됩니다"라고 진심으로 죄송한 마음을 담아 말했다. 그러자 그 '손'이 버럭 했다는 거다. 이야기를 잇는 매니저님의 표정은 평소의 친절한 표정이 아니었다. 뭔가 참을 만큼 참은 사람이 더이상 못 참고 폭발한 듯이, 얼굴이 시뻘게진 상태였다.

"내가 진짜 웬만큼 그러면 참겠는데… 계속 안 된다고, 죄송하다고, 다음에 오시면 더 잘 대해 드리겠다고까지 하는데도 막무가내야. 그렇게 옥신각신하는 동안에도 손님은 온 사방에서 주문 외치고, 문밖엔 또 다른 손님들 줄 서 있고… 그래서 안 그래도 머리가 터질 거 같은데 '고소하겠다' 그 말 듣는 순간 도저히 못 참겠더라고. '네, 그럼 고소하세요' 그랬지. 그러니까 그 사람이 '어머! 어머!' 그러면서 아주 그냥 숨넘어갈 듯하더니만 나가버리더라."

이모 셋이서 20명의 식사를 날라야만 했던 이유

억장 무너지는 상황은 이모들에게도 있었다. 우리 식당엔 미리 예약한 사람들만 쓸 수 있는 방이 있다. 그 방은 창밖에 학교 뒤편의 산이 병풍처럼 펼쳐진, 멋진 전망을 자랑하는 곳이다. 그만큼 학내 '높으신 분'들이 주로 식사하는 공간이다. 하루는 학교에서 열리는 학술대회 끝나고 여러 교수들이 식사하러 왔다. 평소처럼 식사를 들고 방 안에 들어가려 하는데 한 여교수가 나를 툭 치며 말한다. 굉장히 쌀쌀맞은 말투로.

"저기요, 학생들이 들어오지 말고 아줌마들 와서 음식 나르라 그래요. 학생들이 나르면 정신없어."

반말은 이제 아무것도 아니다. 처음엔 '남의 집 귀한 자식에게 보자마자 반말이야' 싶었지만 어찌어찌 참게 됐다. 근데 갑자기 툭 치니까 확 기분이 나쁘다. 그런데 더 기분이 상했던 건 '정신없다'는 이유로 굳이 안 그래도 밖에서 정신 없이 돌아다니는 이모들을 불렀단 것이다. 이모들도 어처구니없어했다.

"야, 안 그래도 홀에서 돌아다니기도 바빠 죽겠는데 왜 부른데?" 하지만 가야 한다. 안 갈 순 없다. 결국 이모들 세 명인가가 그 방 안 20명 넘는 인원들 모두에게 일일이 음식을 날랐다. 이모들을 도와드리고 싶어도 그럴 수 없는 상황이 짜증 났다.

식당 일하며 배운 '역지사지' 정신

지금까지 쓴 상황들이 결코 일반적인 상황은 아니다. 대부분의 손님들은 예의라는 걸 아는 사람들이다. 식사 드릴 때마다 "감사합니다", "잘 먹겠습니다"라며 식사를 받는 손님들이 대다수다. 내가 식사를 드리기 힘든 공간에 위치한 손님들께 갈 때는, 옆에 앉아 있던 손님이 나 대신 그 음식을 전달해 주기도 한다. 나도 모르게 "아유, 감사합니다. 조심하세요"란 말이 튀어나온다. 일하는 사람들을 힘들게 하는 사람들은 생각만큼 많진 않다. 그러나 그들로 인해 받는 스트레스의 크기는 상상을 초월한다.

식당 일을 하면서 배운 게 많다. 하지만 그중에서도 가장 절실히 배운 건, '역지사지'의 정신이었다. 더 이상 식당이나 술집에 갈 때 종업원들에게 독촉하지 않는다. 아무리 음식이 늦게 나와도, 옆의 친지들이 "왜 이리 늦게 나오지?"라며 짜증을 내도, "바빠서 그래. 금방 나올 거야"라고 다독인다. 식사가 나오면 "감사합니다"라고 무조건 말한다.

식당 일을 하면서, 이 땅에 가장 흔한 노동 현장인 식당에서 일하는 노동자들 앞에서 어떤 마음가짐을 갖고 행동해야 하는지 조금이나마 더 생각하게 되었다. 그렇게 배운 '역지사지' 정신의 가치는, 그동안 일하면서 번 돈의 가치보다 결코 낮지 않다고 확신한다.

마지막으로 일하는 사람들을 종종 힘들게 하는 '손'들에게 한 마디 말씀 드리고 싶다. 그렇다. 손님은 왕이다. 하지만 옛날 맹자는 이런 말씀을 하셨다. "왕 답지 않은 왕은 결국 백성들에 의해 쫓겨난다" 뭐 그렇다고 내가 식당에서 '역성혁명'을 일으키진 않을 거다. 그럴 능력도 없다. 하지만 부디 '왕 다운 왕'으로 거듭나서, 진정 일하는 사람들이 즐겁게 일할 수 있게끔 도와주시기 바란다. 

덧붙이는 글 | <아프니까 '감정노동'이다> 공모글입니다.



태그:#식당 아르바이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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