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치올림픽이 막을 내린 지 18일이 지났다. 영광의 순간을 만끽하고 돌아온 선수들이 다시 일상으로 돌아왔다. 지난달 26일부터 나흘간 열린 '제95회 전국동계체육대회'에서 박승희-세영 남매가 쇼트트랙 500m에서 동반 우승을 차지했고 스피드스케이팅 여자일반부 1000m 경기에 출전한 이상화는 대회 3연패를 달성했다. 남자일반부 1500m에서 우승한 이승훈은 대회 신기록을 작성하며 대회를 마쳤다.

'올림픽 특수' 예능에 진출한 국가대표 선수들

4년간의 노력을 쏟아 붓고 온 선수들은 밀려오는 피로에도 불구하고 올림픽 국가대표로서 주어진 마지막 일들을 하나씩 해결해 나갔다. 방송사 인터뷰, 선수상 시상식, 포상금 수여식, 대통령과의 오찬 등 짜인 일정에 따라 바삐 움직였다.

올림픽 기간에만 누릴 수 있는 특별한 경험을 한 선수도 있다. 이상화·박승희·조해리는 짬을 내 MBC 예능프로그램 <일밤-아빠!어디가?2> 녹화를, 이상화는 인기 예능 <무한도전> 촬영을 마치기도 했다. 주형준·김철민과 함께 스피드스케이팅 팀추월 경기에서 은메달을 획득한 이승훈은 13일 저녁 KBS <해피투게더3>에 출연했다. 올림픽 영웅의 또 다른 모습을 궁금해 하는 국민들을 위해 기꺼이 카메라 앞에 선 것이다.

자연스러운 행보였다. 나들이를 마친 선수들이 다시 태릉선수촌에 입촌했다. 스케이트화를 조여 매고 세계선수권 대비 훈련을 시작했다. 폭풍 같았던 한 달이 지나 다시 일상으로 복귀한 것이다.

국민 여동생의 열애, 국민이 들썩

밝은 표정의 김연아 김연아 선수가 25일 오후 인천공항에서 열린 소치동계올림픽 선수단 해단식을 마친 뒤 기자들의 질문을 받으며 밝게 웃고 있다.

▲ 밝은 표정의 김연아 김연아 선수가 25일 오후 인천공항에서 열린 소치동계올림픽 선수단 해단식을 마친 뒤 기자들의 질문을 받으며 밝게 웃고 있다. ⓒ 권우성


대부분의 올림피언들이 제자리로 돌아온 데 비해, 의외의 폭풍에 휩싸인 선수가 한명 있다. 김연아(24·올댓스포츠)다. 선수 생활 내내 전국민적인 관심과 기대를 어깨에 짊어진 채 빙판 위에 올라야 했던 그는 얼음 밖을 나선 뒤에도 자유롭지 못한 신세가 됐다.

국가대표 선수로서 마지막 일정이었던 청와대 오찬을 가진 다음날, 온라인 연예전문매체 <디스패치>가 김연아의 열애설을 보도했다. 포털사이트 실시간 검색어는 하루 종일 김연아의 열애와 관련한 단어들로 도배됐고 각종 인터넷사이트에는 관련 게시글이 끊임없이 올라왔다.

이날 하루 '김연아'가 제목에 포함된 기사는 총 2229건, '피겨 여왕'이 포함된 기사는 1239건으로 집계됐다. 단시간에 폭발적인 양의 기사가 출고된 만큼 중복 기사도 과장된 내용도 많았다.

국민 여동생의 열애 소식에 너도나도 한마디씩 말을 보탰다. 네티즌은 댓글로 기자들은 기사로 확인되지 않은 내용을 무분별하게 실어 날랐다. 미국 매체 <야후 스포츠>가 김연아와 군인 신분인 김원중(30·대명 상무)이 군 휴가에 맞춰 데이트를 즐겼다고 보도한 것을 몇몇 국내 매체에서 오역한 것이 화근이 됐다.

군 휴가를 밀월 여행급으로 둔갑시켜 버린 것이다. 루머는 일파만파 퍼져나갔다. 김원중 선수와 가족의 신상 털기도 어김없이 이어졌다. 김연아의 남자 친구로 지목된 김원중 선수 관련 기사는 6일 하루 동안 1966건이 생산됐다.

7일 오후 김연아의 매니지먼트사인 올댓스포츠는 "여러 매체와 SNS, 인터넷 댓글 등에서 사생활을 침해하고 허위사실을 유포하는 등으로 인해 개인의 명예를 훼손하는 정도가 이미 도를 넘어서고 있다"며 "허위사실을 유포하거나, 악의적인 글을 인터넷이나 SNS 등을 통해 올릴 경우 명예훼손 차원에서 신속하게 법적 대응할 것"이라고 입장을 밝혔다.

자연인으로 돌아온 그가 필요한 건 자유

 '피겨여왕' 김연아가 21일 오전(한국시간) 러시아 소치 아이스버그 스케이팅 팰리스에서 열린 2014 소치 동계올림픽 피겨스케이팅 여자 싱글 프리스케이팅에서 환상적인 연기를 선보인 뒤 관중에게 인사하고 있다.

'피겨여왕' 김연아가 2월 21일 오전(한국시간) 러시아 소치 아이스버그 스케이팅 팰리스에서 열린 2014 소치 동계올림픽 피겨스케이팅 여자 싱글 프리스케이팅에서 환상적인 연기를 선보인 뒤 관중에게 인사하고 있다. ⓒ 연합뉴스


소치올림픽 당시 메달 시상식을 마치고 카메라 앞에 선 김연아는 눈물을 흘리며 이렇게 말했다.

"이제는 조금 여유를 가져도 될 것 같아요. 그동안 너무 달리기만 해서요. 여유를 갖고 새로운 삶을 찾아야죠. 그동안 너무 감사드렸고요. 앞으로도 계속해서 행복하게 잘 지내는 모습 보여드리겠습니다."

행복을 얘기한 지 2주도 채 지나지 않은 시간이었다. 지난 6일 열애설이 터진 이후 일 주일이 지났지만 아직도 '김연아의 연애'는 핫한 키워드 중 하나다. 올림픽을 끝으로 국가대표 생활은 마감했지만 김연아를 향한 국민적 관심은 쉽게 꺼지지 않고 있다. 자연인으로 돌아온 김연아에게 자유는 닿지 않을 희망 사항인 걸까?

사실 김연아는 훨씬 전부터 자유롭길 원했다. 김연아는 4년 전 밴쿠버올림픽을 자신의 마지막 무대로 생각하고 힘든 훈련을 견뎌왔다. 하지만 그는 밴쿠버올림픽이 끝난 이후에도 섣불리 은퇴 선언을 하지 않았다. 다만 "왜 내가 지금 스케이트를 타야 하는지 모르겠다"는 말을 내뱉으며 훈련을 이어갈 뿐이었다. 그렇게 한 달이 지났고 2010년 3월, 김연아는 세계선수권대회에 출전했다.

김연아는 2011년 11월 <조선일보>와의 인터뷰에서 당시 상황을 이렇게 회상했다.

"동계올림픽이 끝나면 내 선수생활은 끝이라고 생각해왔어요. 그런데 금메달을 따고 한 달 뒤 '토리노 세계선수권대회'(2010년 3월)에 나가라는 거예요. 그전에 출전 약속은 되어 있었어요. 올림픽에서 원하는 목표를 이루고 난 뒤라 의욕도 없고 연습도 못하겠어요. 괜히 나갔다가 망신만 당할 수 있고요. 제가 죽어도 못하겠다고 난리를 쳤지만 어쨌든 나갈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어요."

그리고 1년 뒤인 2011년 4월, 모스크바 세계선수권 대회 출전 또한 그에게 쉽지 않은 결정이었다.

"반 년 이상 안 나가겠다고 싸웠죠. 주변에서 워낙 설득을 하니 어쩔 수 없었는데, 나가기로 해놓고도 후회하고 포기하고 싶었지요. 주위에서 안 나가면 매스컴이나 팬들, 국민들이 저를 외면할 거라고 했어요. 아직도 전 그게 이해가 안 돼요. 왜 그러는지." (2011.11.21 <조선일보> 인터뷰 중)

오로지 선수의 의지만으로 진행된 선수 생활 연장은 아니었던 셈이다.

그는 이 대회 프리스케이팅 곡으로 아리랑을 포함한 한국 전통음악을 편집해 사용했다. 오마주 투 코리아(Homage to Korea). 그동안 자신을 응원해준 국민들에게 바치는 프로그램이었다. 이후 한동안 얼음을 떠났던 그가 2012년 7월 현역 복귀를 선언했고, 지난 2월 올림픽에서 은퇴 무대를 마쳤다.

이제는 우리가 그를 놓아줄 차례

쇼트프로그램 '어릿광대를 보내주오'(Send in the Clowns)와 프리스케이팅 '아디오스 노니노'(Adios Nonino). 얼음 위에 선 김연아는 자신에게 주어진 7분 동안 온몸으로 작별을 얘기했다. 그렇게 인사를 마친 그가 마침내 얼음 위를 걸어 나왔다.

아디오스 김연아. 18년간 선수로 지내며 자유롭지 못했을 그. 셀러브리티라는 이유로 모든 걸 감당해야 할 의무는 없다. 그의 연기로, 그의 존재 자체로 희망을 얘기하던 나날이 많았다. 이에 보답하는 의미로 이제는 조금 물러서서 그의 인생 2막을 응원하는 것은 어떨까?아디오스 김연아. 이제는 우리가 그를 놓아줄 차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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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연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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