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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릉 칠사당, 눈 덮인 지붕과 나뭇가지의 하얀 눈꽃이 멋진 조화를 이루고 있는 풍경(2014년 2월 18일).
 강릉 칠사당, 눈 덮인 지붕과 나뭇가지의 하얀 눈꽃이 멋진 조화를 이루고 있는 풍경(2014년 2월 18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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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릉여행이 곧 자원봉사다."

강릉여행이 자원봉사라니, 도대체 이게 무슨 말인가 싶다.

'여행'과 '자원봉사'는 그 뜻이 전혀 다른 말이다. 이 말만 놓고 봤을 땐, 여행이 어떻게 자원봉사가 될 수 있는지 알 수 없다. 그런데 이 말에 담긴 뜻을 좀 더 자세히 들여다 보고 나면, 이 말처럼 가슴에 와 닿는 것도 없을 듯싶다.

이 말은 최근에 강릉시가 시장 이름으로 발표한 '호소문' 중에 들어가 있는 문구 중에 하나다. 강릉시는 지난주 말, 관광객들에게 강릉시로 여행을 와 줄 것을 부탁하는 호소문을 발표했다. 강릉시가 이런 호소문을 발표하게 된 것은 폭설로 강릉을 찾는 관광객들의 발길이 뚝 끊겼기 때문이다. 폭설이 그친 후에도 사정은 별반 나아진 게 없다.

"강릉여행이 곧 자원봉사"

강릉시에는 지난 6일부터 최근까지 약 180여cm 가량의 눈이 쌓였다. 기상청에서 '103년만의 폭설'이 내렸다고 했으니, 평생 보기 힘든 눈이 내린 셈이다. 그 많은 눈이 내린 뒤로 도시 기능이 마비된 것은 물론이고, 강릉 주민들 대다수가 자신들의 키 높이보다 더 높이 쌓인 눈 때문에 일상생활에서조차 큰 어려움을 겪어야 했다.

강릉 관아, 담장 높이까지 쌓인 눈(2014년 2월 18일).
 강릉 관아, 담장 높이까지 쌓인 눈(2014년 2월 18일).
ⓒ 성낙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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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강릉 시민들이 겪는 고통이 그 정도 선에서만 그쳤어도, 강릉시가 굳이 호소문까지 발표하는 일은 없었을지도 모른다. 문제는 장기간에 걸쳐 계속 눈이 내리면서, 강릉시를 찾는 관광객 수가 크게 줄어든 데 있다. 열흘이 넘게 계속된 폭설은 눈 속에 지역 경기마저 함께 묻어 버렸다. 그러니까 피해 복구에는 지역의 경기를 되살리는 일도 포함된다.

강릉시가 호소문을 발표한 데는 이런 사정이 있다. 강릉시는 호소문에서 "이번 폭설로 인해 강릉은 관광객 감소와 상경기 침체라는 이중고를 겪고 있다"며, "강릉여행이 곧 자원봉사이다. 전국에서 많은 관광객들이 찾아올 수 있도록" 도와달라고 호소했다. 관광이 이 지역에 미치는 영향을 고려하면, 강릉시가 하는 말에 충분히 공감이 가고도 남는다.

하지만 지금과 같은 상황에서 이런 호소가 얼마나 많은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일 수 있을지 알 수 없다. 강원도 동해안에 103년만의 폭설이 내렸다는 소식을 접한 사람들로선, 이 마당에 굳이 여행을 떠나야 하나 회의를 품지 않을 수 없기 때문이다. 호소문에 따라서 '자원봉사 삼아 여행을 떠나야겠다'고 마음을 먹는 데도 한계는 있다.

하얗게 눈 덮인 산을 배경으로 한 설악산 케이블카(2011년 2월)
 하얗게 눈 덮인 산을 배경으로 한 설악산 케이블카(2011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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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설로 누군가 큰 피해를 입었다는 사실까지 염두에 두면, 여행을 떠나는 일은 더욱 더 어려운 일이 되고 만다. 이럴 땐 사실 여행을 삼가는 것이 예의일 수 있다. 하지만 지금 강릉시에서 벌어지고 있는 상황을 보면, 그게 그렇게 간단히 결론을 낼 일이 아닌 것으로 보인다. 강릉시와 같은 경우, 여행은 오히려 폭설 피해를 입은 사람들을 돕는 일이 될 수도 있다.

오죽하면 시가 직접 나서서 관광객들에게 자원봉사 하는 셈치고 여행을 와달라고 했을까? 지금은 무엇보다 폭설 피해 지역의 속사정이 무엇인지를 유심히 들여다보는 일이 필요하다. 지난 19일 강릉시에 거주하는 최원석 기자가 쓴 기사를 보면, 어느 정도까지는 그 속사정을 가늠하는 일이 가능하다. [관련기사 : 쌀 훔치는 사람... 100년만의 폭설이 낳은 비극]

지금 강릉 시민들이 겪고 있는 고통은 우리의 짐작을 훨씬 더 넘어선 것으로 보인다. 장기간 눈이 내리면서, 많은 사람들이 생계에 큰 곤란을 겪고 있다. 이번 폭설로 특히 큰 피해를 본 사람들은 서민들이다. 폭설이 내리기 시작한 이후로, 대다수 상점과 음식점들이 장사를 제대로 하지 못하고 있다. 그들에겐 폭설보다 더 무서운 게 '지역 경기'다.

권금성에서 바라다 본 설악산(2011년 2월).
 권금성에서 바라다 본 설악산(2011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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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강릉시 내 제설 작업은 대부분 마무리 단계에 접어들고 있다. 강릉시에 따르면, 관광지로 통하는 주요 도로는 이미 제설 작업을 완료한 상태다. 여행을 하는 데는 별 무리가 없다. 제설 작업이 마무리되면서, 관광객들도 조금씩 늘고 있는 추세다. 하지만 같은 기간 눈이 내리지 않았을 때와 비교하면, 여전히 침체 상태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호소문은 다시 "(이번 주에) 강릉의 설경은 장관을 이룰 것"이라고 적고 있다. 거기에 덧붙여서 "오죽헌 선교장 등의 관광지를 비롯해 소복이 눈이 쌓인 겨울바다에서의 커피 한 잔은 관광객들에 잊지 못할 추억을 선사할 것"으로 자신하고 있다. 103년만의 폭설이 관광객들에게 보기 드문 장관과 함께 잊지 못할 추억까지 안겨준다는 얘기다.

100년만의 장관을 볼 수 있는 방법

수십 년 만의 폭설도 벌린 입을 다물기 힘든 장관을 보여주는데, 100여년 만에 보는 폭설은 또 오죽할까? 언제 다시 이런 장관을 만날 수 있을지 알 수 없다. 이런 장관은 사실 두 번 이상 기대할 게 아니다. 이번에 동해안으로 여행을 떠난다면, 말 그래도 '100년에 한 번 있는 여행'이 될 것이다. '장관'은 한동안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눈이 소복이 쌓인 설악산 권금성(2011년 2월).
 눈이 소복이 쌓인 설악산 권금성(2011년 2월).
ⓒ 성낙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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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릉시가 유례가 없는 폭설에도 불구하고 빠른 시일 안에 도시 기능을 되찾을 수 있었던 데는 무엇보다도 자원봉사자들의 역할이 컸다. 자원봉사자들이 없었다면, 강릉시 내 제설 작업이 그렇게까지 순조롭게 진행되지는 못했을 것이다. 강릉시에 따르면, 강릉시 내 제설 작업에만 민간인, 공무원, 군인 등 33만여 명이 투입됐다.

어찌됐든 그들 덕에 103년만의 폭설이 남긴 장관을 감상하는 일이 가능해졌다. 여행을 떠나게 되면, 그들의 수고도 잊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이다. 강원도 동해안에서는 아직도 수많은 자원봉사자들이 폭설로 인한 피해를 복구하기 위해 땀을 흘리고 있다. 폭설이 내리고 나서 21일까지 강원도 동해안의 제설 작업에 투입된 인원만 53만여 명이다.

폭설은 강릉시에만 내린 게 아니다. 이번 폭설로, 강원도 동해안 일대가 모두 1m가 넘는 눈 속에 갇혀야 했다. 지난 18일까지, 고성군에는 129cm, 동해시에는 118cm, 삼척시에는 116cm, 양양군에서는 107cm, 속초시에서는 103cm의 눈이 내렸다. 그 지역들이 지금 모두 힘든 겨울을 나고 있다. 그리고 강릉시와 마찬가지로, 관광객 감소로 인한 경기 침체를 호소하고 있다.


태그:#폭설, #강릉, #최명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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