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긴급조치 1, 2호가 선포된 지 일주일도 안 돼 긴급조치 3호가 나왔다. 그러나 긴급조치 3호는 저소득층을 지원하는 내용의 '국민생활 안정을 위한 대통령 긴급조치'였다. 아마도 긴급조치가 공안탄압과 유신독재 유지에만 악용된다는 비난을 피하기 위한 처방이었을 것이다. 
 
그리고 3개월이 채 되기도 전에 긴급조치 4호가 나왔다. 긴급조치 1호에도 불구하고 반유신 운동이 끊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긴급조치 4호의 내용은 크게 두 가지인데 하나는 전국민주청년학생총연맹(민청학련)을 탄압하는 것이며 다른 하나는 학생운동을 전면 금지하는 것이다. 민청학련의 경우 가입은 물론 민청학련을 찬성하거나 도와주거나 관련 물품을 소지하는 것조차 처벌의 대상이 됐다. 학생운동의 경우 집회·시위·수업거부 등을 철저히 금지했으며 이를 위반할 경우 퇴학은 물론 대학을 폐교할 수도 있도록 했다. 
 
위반자에 대한 처벌도 살벌했다. 영장 없이 체포, 구속, 압수수색할 수 있으며 비상군법회의에서 사형, 무기 또는 5년 이상의 유기징역에 처할 수 있으며 자격정지도 15년까지 처할 수 있도록 규정했다. 게다가 긴급조치 위반자뿐 아니라 미수·예비·음모자, 심지어 이 조치를 비방한 사람까지도 처벌하도록 했다. 
 
박정희 정권은 긴급조치 4호를 선포한 그날 밤부터 중앙정보부를 앞세워 학생들을 대대적으로 검거하기 시작하여 총 1024명을 수사, 180명을 군사재판에 회부했다. 이 가운데 여정남, 도예종 등 8명은 사형선고를 받고 20시간도 되기 전에 사형을 당했다. 국제법학자회는 판결이 난 1974년 4월 8일을 사법사상 암흑의 날로 선포했다. 
 
박정희 전 대통령은 긴급조치 4호 선포와 함께 담화를 발표했다. 민청학련이 반국가적 지하조직을 꾸리고 인민혁명을 기도했다는 무시무시한 내용이었다. 민청학련 활동이 북한에 동조해 "국민총화를 저해하고 국론을 분열시킴으로써 국력배양을 훼방하려는 책동"이라는 것인데 독재정권의 논리는 예나 지금이나 큰 차이가 없어 보인다. 박 전 대통령이 늘 강조한 '국민총화'는 오늘날 박근혜 대통령의 '국민대통합'으로 이어지고 있다. 
 
먼 훗날 민청학련 사건 관련자들은 재심을 통해 무죄 판결을 받았다. 당시 정권이 권력유지를 위해 사건을 조작하고 국민들을 탄압했음이 드러난 것이다. 
 
민청학련 사건은 배경부터 내용, 탄압 양상까지 현재 진행 중인 진보당 혁명조직(RO) 사건과 유사한 점이 많다. 재판 과정에서 결정적 증거물인 녹취록이 왜곡되었음이 드러나는 등 국가정보원의 무리한 수사였음이 드러나고 있는 이 사건을 역사가 어떻게 평가할지 궁금하다. 다만 40여 년이 지나 명예는 회복되었어도 당시 사형당한 8명은 되살아나지 못한다는 점을 명심해야 할 것이다. 

 

1974년 4월 4일 경향신문 1면
(굵은 글씨는 저자 강조)
학원데모 징역5년~사형까지

박정희 대통령은 3일 하오 10시 헌법 53조에 의한 대통령 긴급조치 제4호를 선포, 전국민주청년학생총연맹과 이에 관련되는 제단체를 조직하거나 가입 또는 그 활동을 찬양 고무 동조하는 등 일체의 행위와 학생의 정당한 이유 없는 출석 수업 시험의 거부, 학교내외의 집회 시위 성토 농성, 기타 일체의 개별적 집단적 행위를 금하고 이를 위반하거나 이조치를 비방한 자는 사형·무기 또는 5년 이상의 유기징역(15년 이하의 자격정지병과)에 처할 수 있도록 했다. 긴급조치 4호는 또 문교부장관은 이 조치에 위반한 학생에 대한 퇴학 또는 정학의 처분이나 학생의 조직 결사 기타 학생단체의 해산 또는 이조치 위반자가 소속된 학교의 폐교 처분을 할 수 있도록 했으며 문교부장관의 이같은 처분에 위반한 자도 같은 형에 처하도록 했다. 
긴급조치 제4호 규정에 따라 이 조치 선포 전에 전국민주청년학생총연맹과 관련한 행위를 한 자는 오는 8일까지 그 행위 내용을 전부 수사 및 정보기관에 출석하여 숨김없이 고지하면 처벌받지 않게 되며 이 조치에서 금한 행위를 권유 선동 선전하거나 방송 보도 출판 및 기타 방법으로 타인에게 알리는 일체의 행위도 금하도록 돼있다. 
긴급조치 제4호 위반자는 법관의 영장 없이 체포 구속 압수수색할 수 있고 비상군법회의에서 심판하도록 했으며 서울·부산시장 또는 도지사로부터 군지역사령관이 병력출동의 요청을 받은 때에는 이를 지원하도록 돼 있다. 
긴급조치 제4호는 3일 하오 10시 청와대에서 열린 임시국무회의에서 이봉성 법무부장관의 제안으로 심의, 의결됐다. 

박대통령 담화 "불순요인 발본색원 위해"

박정희 대통령은 3일 밤 긴급조치 제4호를 선포하면서 다음과 같은 담화문을 발표했다. 
"친애하는 국민여러분, 나는 작금 우리 사회의 일각에서 공산주의자들이 강투적으로 전개하는 적화통일을 위한 이른바 통일전선의 초기단계적 불법활동양상이 대두되고 있음에 감하여 이같은 불순요인을 발본색원함으로써 국가의 안전보장을 공고히 다지고자 헌법절차에 따라 긴급조치를 선포하게 되었음을 국민여러분에게 알려드리면서 이에 대한 협조를 당부하고자 한다. 
...(중략)... 그러나 작금에 이르러 우리 사회 일각에서는 이같은 중차대한 시점에 처해서도 국민총화를 저해하고 국론을 분열시킴으로써 국력배양을 훼방하려는 책동이 아직도 자취를 감추지 않고 있어왔다. 
정부당국은 이런 책동이 최근에 가일층 격화, 노골화되고 있는 북한공산집단의 우리에 대한 공개적인 모략과 중상, 비방에도 불구하고 계속 추진돼 왔었다는 사실에 예의 주목하고 이를 국가의 안전보장이라는 차원에서 다각적으로 비밀리에 조사해 왔던 것이다. 
그 결과 이른바 전국민주청년학생총연맹이라는 불법단체가 반국가적 불순세력의 배후조종하에 그들과 결탁하여 공산주의자들이 이른바 그들의 인민혁명을 수행하기 위한 상투적 방편으로 으레 조직하는 소위 통일전선의 초기단계적 지하조직을 우리 사회 일각에 형성하고 반국가적 불순활동을 전개하기 시작했다는 확증을 포착하기에 이르렀다. ...(중략)...
나는 오늘 헌법절차에 따라 국무회의에서 의결, 발표된 대통령 긴급조치 제4호가 우리 대한민국내에 침투하고 있는 반국가적 불순분자들을 문자 그대로 발본색원함으로써 굳건한 국민총화속에 국력이 알차게 배양되고 국가의 안보가 더욱 강화됨으로써 영예로운 새민족사를 창조하는 데 크게 기여할 것으로 국민 모두와 더불어 믿어 마지않는다. ...(후략)"


태그:#유신독재, #긴급조치, #긴급조치4호, #박정희, #민청학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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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일번영을 여는 북한 전문 통신 [NK투데이] 기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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