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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산은 정말 이렇게 아름답기만 한 풍경일까...
 출산은 정말 이렇게 아름답기만 한 풍경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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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 남들은 둘째다 셋째다 하는데 너네는 왜 하나도 없냐고! 누구한테 문제 있는 거야?"

한때 친정엄마는 맨 정신에 하지 못한 말을 술만 드시면 종종 내뱉으셨다. 신랑과 나는 쓴웃음을 지으며 어떠한 대답도 확실히 못했다. 아이는 내 마음대로, 우리의 뜻대로 되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결혼한 지 반년이 지났을 때쯤부터 부모님은 물론 주변 사람들은 잊을 만하면 '아이 낳을 계획은 하고 있냐', '노력은 하고 있냐'고 물었다. 그때까지만 해도 신랑과 나는 2년 후부터 본격적으로 노력하자는 마음이었다. 산전검사를 받으러 갔을 때 의사가 자궁이 건강하니 조급하게 생각하지 말라고 했기 때문에 더 느긋했던 것 같다.

나는 5년 전, 스물여덟 살에 결혼했다. 이르다고 생각하진 않았지만 주변 커플 중에서는 이른 편이었다. 그러나 시간이 갈수록 나보다 더 늦게 결혼 한 지인, 친구의 임신 소식, 출산 소식이 점점 늘어만 갔다. 곧이어 돌잔치 초대장이 몇 장이나 날아왔다. 돌잔치에는 평소 잘 못 만나던 사람들을 보는 반가움, 아이의 신상 퀴즈를 맞혀서 상품을 타오는 재미, 평소 먹지 못하는 뷔페 음식을 먹는 즐거움으로 갔다.

하지만 만삭으로 다음의 만남을 기약하는 또 다른 친구를 보고, '언제쯤 아이 낳을 거냐'는 사람들의 목소리를 되새기며 집으로 돌아온다. 그런 날은 '내가 꼭 6개월 안에 임신한다!' 하고 속으로 다짐한다.

그놈의 돌잔치는 줄어들 생각을 안 한다. 문득 축의금으로 나간 돈을 생각해본다. 아니, 잔치에 갈 때 쓴 기름 값 혹은 버스비까지 생각난다. 많이 안 친한 친구면 5만 원, 요즘 말로 완전 '베프'(베스트 프렌드)거나 친척이면 10만 원. 1년에 못해도 열 건, 그중에 대여섯 건은 직접 간다. 젠장, 다 베프다. 아, 머리아파. 농담 반 진담 반으로 구시렁거린다. 아, 신랑 회사에 경조비 내는 거랑 돌잔치 축의금은 다 언제 거두나?

"너 미워! 미워!"

새해를 맞아 충청도에 계신 시할머니를 뵈러 갔다가 인사 대신 들은 말이다. 결혼 5년차에 접어드는데도 아직 아이가 없는 나한테 할머니가 재촉 대신 밉다는 표현을 하신 거다. 이제는 노력하고 있다는 말조차 부끄러워 어색한 웃음만 짓고 돌아왔다.

결혼 5년차에 남의 돌잔치만... 올해는 큰 효도 해보고 싶어

예전 일이 생각났다. 시어머니와 친정엄마한테 한창 재촉과 압박을 받을 때였다. 신랑의 친한 친구가 자기 부인 임신 소식을 문자로 알리기에 축하한다고 답장을 보냈더니 대뜸 "제수씨는 언제 아기 낳을 거예요? 빨리 낳아요" 하는 게 아닌가. 아, 육성으로 욕이 저절로 나왔다. "아무리 친하지만 지킬 건 지키시죠? 친구 부인한테 그런 식으로 말하는 건 아니라고 보는데요?" 했더니 미안하단다. 그날 남편한테 한마디 했다.

"내가 아무리 털털하고 편해도 친구 부인한테 그러는 건 아니지. 우리보다 늦게 결혼했는데 애 먼저 생겼다고 약올리는 거야? 그 친구 부인이 당신한테 '야야' 그래도 참았는데, 얘네는 아니야. 앞으로 만나지 마. 만나려면 나한테 절대 걸리지 마. 다 뒤집어놓을 거니깐."

안 그래도 가족들이 주는 스트레스만으로도 힘든데 신랑 친구까지 그래버리니까 너무 화가 났다. 이런 식으로 압박은 주로 신랑이 아닌 나한테 왔다. 옛날부터 '밭이 좋아야 한다'는 말이 있어서 그럴까? 술을 줄여도 나한테만 줄이라 하고, 병원도 나한테만 가라고 했다. 그냥 몸을 좀 아껴보려 신경 쓰면 "오~ 아이 가지려고 노력하는 거야?", "그래 잘 생각했어. 나이도 생각해야지" 하고 지나친 관심을 보이는 것도 오히려 스트레스였다. 그냥 지켜봐주면 좋으련만….

SBS <오! 마이 베이비>에 출연한 배우 임현식과 손자. 시부모님도 이런 모습을 부러워하시겠지.
 SBS <오! 마이 베이비>에 출연한 배우 임현식과 손자. 시부모님도 이런 모습을 부러워하시겠지.
ⓒ SB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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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트레스를 덜 수 있게 힘이 돼준 사람은 바로 시누이다. 시누이는 내 입장이 돼서 이야기를 많이 해준다. 시어머니가 나한테 "노력은 하고 있는 거니?" 하시면 시누이는 "엄마는 자꾸 올케한테만 그러지 마. 형로(신랑 이름)도 술이랑 담배 많이 하잖아. 병원을 가더라도 둘이 같이 가야지. 그래야 올케 불안한 마음도 안정되지. 자꾸 스트레스 주지 마!" 하고 대꾸해준다.

시누이의 똑 부러지는 말에 시어머니가 인정하시는 표정을 지으실 때면 더없이 든든하다. 그 말이 또 나를 다짐하게 만든다. '6개월 안에는 꼭 임신해야지!' 그러나 또 시간이 흐르면서 그 굳은(?) 다짐은 무뎌져가기 일쑤다.

그런데 얼마 전, 삼신할머니의 아기씨 선물을 기다리고만 있지 말자고 다짐하게 된 계기가 있었다. 바로 신랑 외사촌 여동생의 아들 돌잔치다. 다른 외사촌들도 모였다. 외사촌들은 모두 기본 두 명씩 아이들을 데리고 왔다. 게다가 돌잔치를 치르는 외사촌 여동생의 배 속에는 쌍둥이까지 있었다. 나도 모르게 자꾸 시부모님의 눈치를 보게 됐다. 시부모님이 조카 손주를 예뻐하시면 나는 주방에 가는 척, 화장실에 가는 척했다. 신랑은 내 기분을 아는지 모르는지 내 얼굴은 한번 쳐다도 안 보고 어른들과 술만 마셨다. 

예전에 시어머님이 한 말씀이 생각났다. 외손자 볼에 뽀뽀를 하며 "아휴~ 예쁜 거~ 이렇게 예쁜 게 친손자도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하셨다. 그 장면이 생각나면서 더 이상 임신을 미루고 싶지 않게 됐다. 일부러 아기를 안 가지려고 한 건 아니었지만 그렇다고 적극적으로 노력한 것도 아니었다. 여기저기 들려오는 출산의 고통 이야기 때문에 두려웠던 건 사실이다. 하지만 한편으로 생각하면, 많은 사람들이 출산을 하는데 나만 그것을 피하고 두려워 할 이유가 없기도 하다. 

지금껏 임신 테스트기만 샀는데 올해 들어서는 배란일 테스트기도 샀다. 완전 작정하고 노력하려는 내가 보이는지 신랑도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눈치다. 신랑도 나 못지않게 친구들의 2세 소식을 들으면서 자존심이 상했는데 남자라 표현을 잘 못 했나 보다. 올해는 큰 효도 한번 해보고 싶다. 고통의 출산이 아닌 아름다운 출산을 경험하고 싶다.

덧붙이는 글 | '출산, 그 아름다운 이야기' 공모 응모글입니다



태그:#임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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