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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분야의 전문가하면, 그 분야에 상당한 학식 및 경험이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래서 우리 사회는 전문가를 존중하고, 전문가의 의견을 참고해 우리 사회의 중요 정책 결정에 도움을 받는다. 개인적으로 알고 있는 수자원 분야 전문가는 정책 결정 과정에서 미세한 문장 하나하나까지 꼼꼼하게 살핀다. 때론 격론을 벌이면서까지 정책을 올바른 방향으로 세우기 위해 고군분투하고 있다.

이는 어찌 보면 전문가로서 자신이 살아 왔던 세월에 대한 자존심 때문이기도 하다. 자신의 이름이 기록에 남기 때문에, 허투로 할 수 없다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자신의 주장에 근거를 마련하기 위해 더더욱 고심한다. 불행히도 우리 사회에는 전문가로서의 '자존심'이 없는 이들도 있다. 학문적 연구, 축적된 경험을 통한 정책 제안이 아닌, 상황에 따라 자신의 주장을 바꾸는 이들이 있다는 것이다. 물론 자신의 주장을 바꿀 수도 있다. 그럴 경우에는 그 근거를 명확히 밝히는 것이 전문가로서의 도리이고 책임이다.

[이명박 정부] 4대강본부 부본부장되면서 입장 바뀐 차윤정

차윤정 4대강 살리기 사업 환경부본부장.
 차윤정 4대강 살리기 사업 환경부본부장.
ⓒ 유성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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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을 인간의 관점을 벗어나 사고하자는 내용의 <신갈나무 투쟁기>는 생태학을 공부하는 이들에게는 명작으로 알려진 책이다. 이 책의 저자인 생태학자 차윤정씨는 4대강 사업이 강행되던 2009년 10월 <한국일보>에 "이제 강을 수로와 수심과 수변으로만 다듬는 '사업'을 한다고 예산까지 구체화하였다. 뭘 어떻게 해서 자연의 아름다운 강보다 더 아름다운 강을 만든단 말인가"라면서 "자연은 투자의 대상이 아니라 보호의 대상"이라고 4대강 사업을 비판한다.

그랬던 그는 2010년 5월 4대강 추진본부 환경부본부장이 되면서 입장이 바뀌었다. "금빛모래는 인간에게는 정서적 공간일지 몰라도 수생태와 생물에게는 생존이 어려운 가혹한 환경이라는 또 다른 측면을 볼 필요가 있으며, 습지도 큰물이 있어야 유지가 된다"면서 "지금의 강은 퇴적토사 등으로 노후화되었는데, 그렇다고 지금의 강을 버릴 수는 없는 일이니 우리가 다시 젊게 만들어줘야 한다"라는 것이 그의 변명 같은 입장이었다.

하천에서 모래는 수질 개선 및 어류의 산란 공간으로서 중요한 요소다. 그런 특성 때문에 독일의 경우 일부러 모래를 하천에 쏟아 붓기까지 한다. 차윤정 전 4대강 본부 환경부본부장을 두고 독일의 국제적인 하천전문가인 한스 베른하르트 교수는 "전문성이 취약하다"고 지적했다. 정확히 말하면 전문성이 취약한 것이 아니라, 주군을 위해 자신의 학문적 입장을, 전문가로서의 자존심을 버렸다고 하는 것이 맞을 듯하다.

[박근혜 정부] 코레일 사장되면서 입장 바꾼 최연혜

최연혜 코레일 사장 철도파업 현황 및 대책에 관한 보고를 위해 지난 23일 국회 국토교통위원회 전체회의에 출석해 회의시작을 기다리고 있다. 오른쪽은 서승환 국토교통부 장관.
 최연혜 코레일 사장 철도파업 현황 및 대책에 관한 보고를 위해 지난 23일 국회 국토교통위원회 전체회의에 출석해 회의시작을 기다리고 있다. 오른쪽은 서승환 국토교통부 장관.
ⓒ 남소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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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 정권에서도 비슷한 사례가 있다. 현재 최연혜 코레인 사장은 한국철도대학 총장을 지낸 바 있다. 그는 2012년 1월 <국익에 역행하는 고속철도 민간개방>이란 제목의 칼럼을 <조선일보>에 게재했다. 당시 그는 현재 박근혜 정권이 추진하는 이른바 '경쟁체제 도입'에 대해 확고한 반대 입장을 보였다.

칼럼에서 그는 "복잡한 기계와 설비, 여러 사람의 손발이 완벽하게 맞아야 안전이 담보되는 철도 특성상 운영기관 다원화는 사고 위험을 키울 수 있다"면서 "경쟁관계인 공사와 민간기업 간에 원활한 정보 및 의사소통을 기대하기 어렵다"고 지적했다. 또한 "흔히 지적되는 '높은 인건비', '부실경영'도 고속철도 민간개방을 정당화할 수 없다"면서 "철도공사 적자는 부실경영보다는 잘못 설계된 재무구조(부풀려진 수요 예측 및 각종 부채)에 더 큰 원인이 있다"고 밝혔다. 이는 현재 철도노조가 주장하는 것과 다르지 않는 내용이다.

최연혜 사장은 지난 19대 총선 대전 서구을 후보로 나섰을 때 <오마이TV> 인터뷰에서 "지금 수서역을 중심으로 KTX 부분 민영화에 대해서는, 저는 이 부분이 옳지 않다"면서 "지금 중국이나 러시아 철도와 비교할 때 규모나 파워 면에서 우리 철도가 상당히 취약하다. 이런 상황에서 이것을 또 분리해서 부분적으로 민영화를 한다면 상당히 국가적인 전망을 위해서도 좋지 않다. 나는 확고히 반대한다"라고 입장을 분명히 하기도 했다.

그랬던 그가 KTX 민영화를 반대하는 철도노조가 파업한다고 수천 명을 직위해제 시켜 버렸다. 자신의 주장을 바꾼 것에 대한 근거 있는 해명보다는 '회초리를 든 어머니의 심정'이란 표현을 써가며 철도노조를 탄압했다. 이는 철도노조뿐만 아니라 국민을 욕보이는 것이다.

최연혜 코레일 사장이나 차윤정 전 4대강 추진본부 환경부본부장 모두 한 때나마 전문가로 인정됐다. 그러나 그들은 더 이상 전문가로 불릴 수 없을 듯하다. 그들은 그저 권력의 시녀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이제 곡학아세 전문가들에게 국민들이 회초리를 들어야 하지 않을까 싶다.

덧붙이는 글 | 개인 블러그(blog.naver.com/ecocinema)에도 올립니다.



태그:#차윤정, #최연혜, #4대강, #KTX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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