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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 정부가 끝내 수서발 KTX 운영을 담당하는 신설법인을 만들었다. 철도공사는 지난 10일 수서발KTX를 철도공사(코레일)에서 분리해 주식회사로 설립하는 안을 이사회에서 의결했다. 이에 철도노조는 '민영화 수순'이라며 파업에 돌입했다.

철도노조 파업 8일째인 지난 16일 박근혜 대통령이 수석비서관회의에 참석했다. 박 대통령은 "정부에서 그동안 누차 민영화 안 한다고 발표했는데도 민영화하지 말라며 파업을 하는 것은 정부 발표를 신뢰하지 않고 국민 경제에 피해를 주는 행위"라며 철도노조를 비판했다. 그 발언을 기다렸다는 듯 검찰은 노조위원장 등 10여 명에 대해 체포영장을 발부받아 사법처리에 나섰다. 

정부의 논리 "코레일이 반대하면 민영화도 없다"

지난 16일 청와대 수석비서관회의에 참석한 박근혜 대통령
 지난 16일 청와대 수석비서관회의에 참석한 박근혜 대통령
ⓒ 청와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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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 대통령의 철도노조 비판 발언에는 첨예하게 대립하고 있는 갈등의 본질이 잘 드러나 있다. 박 대통령은 "철도가 지금까지 독점 체제로 운영되면서 경영을 잘했는지 못했는지 비교대상 자체가 전혀 없었기 때문에 내부경쟁을 도입, 경영 효율성을 높이기 위해 (자회사 설립을) 추진하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어서 "민간자본이 아닌 공공자본을 통해 설립되는 자회사이기 때문에 민영화하고는 전혀 관계가 없다"고 강조했다..

수서발 KTX 신설법인은 지난 6월 26일 박근혜 정부가 발표한 '철도산업발전방안'에 기초해 설립된 것이다. 코레일이 신설법인 지분의 41%를 보유하며, 나머지 59%는 공공자금이 지분을 보유하게 된다. '공공자금 보유지분이 민간에게 매각되면 민영화'라는 주장을 반박하기 위해 지난 7월 중순 정부는 '민간매각 방지대책'도 내놨다. 정부로서는 나름 지난 5개월 동안 '민영화 아님'을 강조해온 셈이다.

정부는 민간매각 방지대책이 말뿐이 아니라는 점을 강조하며, 그 실효적 조치로 공공부문 보유 지분 매각시 이사회 특별결의(재적이사 2/3 출석, 2/3 찬성)를 거치도록 했다. 지분 41%를 보유한 코레일의 동의 없이는 민영화가 불가능하다는 의미다. 민간에 지분을 매각하는 것 또한 정관에 금지조항을 넣었고, 이를 개정하기 위해서는 같은 조건으로 이사회 특별결의를 거치도록 했다. 이 역시 코레일이 반대하면 불가능한 조치라는 게 정부의 설명이다.

국토교통부는 위와 같은 내용(이사회 특별결의)으로 민영화를 막을 수 있는지 김앤장·세종·한결 등 법무법인에 의뢰해서 검증까지 받았다. 정부는 이들 법무법인의 검토 의견이 '코레일 동의 없이는 공공지분이 민간에 매각되는 것을 방지하는, 실효적인 방안이고 현행법상 추가적인 조치를 상정하기 어렵다'로 모아졌다고 소개했다.

경제학 족보에도 없는 '모자기업간' 경쟁체제 도입

수서발 KTX 신설법인을 둘러싼 쟁점은 두 가지다. 신설법인을 설립한 것이 '코레일과의 경쟁체제 도입으로 볼 수 있는가'가 하나요, '민영화 방지 대책이 정부 주장처럼 실효성이 있는가'가 다른 하나다.

먼저 그토록 정부에서 강조하는 '경쟁체제 도입'에 대해 살펴보면 왜 언론·지식인 그룹에서 이 말에 아무런 문제제기도 하지 않는지 납득하기 어렵다. 경제학 전공 여부와 별개로 모자기업간 경쟁체제 도입이라는 말은 성립할 수 없다. 박근혜 대통령은 이 보고를 받고 동의했는지, 아니 이해했는지 묻고 싶다.

둘은 결국 경쟁이 아닌 상하관계가 될 수밖에 없다. 설립의도와는 무관하게 자본주의 개념이 그렇기 때문이다. 모회사(코레일)는 자회사(수서발 KTX 법인)를 통제한다. 코레일이 보유한 41%의 지분은 법적으로 중대한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다는 의미로 신설법인은 코레일의 '지분법 대상회사'로 분류된다. 회계기준서상 이 신설법인의 경영실적은 코레일의 지분법손익으로 귀속된다. 모기업으로 자회사 경영에 있어 중대한 의사결정을 미치게 되며, 그 경영실적은 모기업 경영실적에 포함된다. 박근혜 정부는 이런 관계를 '경쟁관계'라 부르고 있다.

대주주는 자회사 경영에 영향력을 미치기 위해서 지분을 보유한다. 이사회와 주주총회를 통해 배당결정을 하고, 이사회를 거쳐서 조직개편·임원선임에도 영향력을 행사한다. 코레일 이사회에서 확인했듯이 신설법인 경영의 중요한 의사결정은 코레일에서 선정에 관여할 이사회에서 결정하게 된다. 영향력을 행사한다는 뜻은 '결정한다'는 말의 다름 아니다. 그런데 이와 같은 관계에 놓이게 된 코레일과 신설법인과의 관계를 박근혜 정부는 경쟁체제라고 정의하고 있다.

코레일 이사회 '만장일치'에서 확인된 특별결의의 무용성

김명환 전국철도노조 위원장과 지역본부장이 지난 14일 오후 서울 중구 서울역 광장에서 열린'총파업 승리 위한 전국 철도노조 결의대회'에서 철도민영화를 반대하며 구호를 외치고 있다.
 김명환 전국철도노조 위원장과 지역본부장이 지난 14일 오후 서울 중구 서울역 광장에서 열린'총파업 승리 위한 전국 철도노조 결의대회'에서 철도민영화를 반대하며 구호를 외치고 있다.
ⓒ 유성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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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번째 쟁점인 '공공지분의 민간 매각 금지조항'을 살펴보자. 박근혜 정부 말처럼 이 조항이 실효성 있는 것이라면 철도노조는 위기를 과장해 국가경제에 손실을 미치는 파업을 중단해야 할 것이다. 그렇다면 이 조항들은 정말 실효성이 있는 걸까.

국토교통부의 일관된 발표에는 재미있는 대목이 존재한다. 신설법인의 지분 41%는 코레일이 보유하고, 나머지 59%는 공공기관에서 보유한다는 말이 그것이다. 지분구조의 방점은 코레일이 보유하는 41%에 찍혀 있다. 왜냐하면 59%는 단순 재무적 투자가 역할이기 때문이다. 재무적 투자가들의 관심은 경영이 아니라 '자신들의 수익'에 있다. 언제든 지분을 비싸게 매입할 주체가 있으면 팔고 나가는 게 그들의 역할이다. 그들은 손님이다.

결국 신설법인의 민영화 여부에 대한 열쇠는 코레일의 41% 지분이 쥐고 있다. 이 때문에 국토부에서는 지속적으로 신설법인 정관에 '공공부문 보유 지분(59% 해당분) 매각 시 특별결의' 조항을 넣었으니 안심하라는 말을 거듭했다. 코레일이 동의하지 않으면 절대 민영화는 없다는 뜻이라고 덧붙였다.

지난 10일에 개최됐던 코레일 이사회는 수서발 KTX 신설법인 설립에 동의했다. 이사 13명 중 12명이 출석했으며 출석 이사 전원이 찬성했다. 이날 이사회의 만장일치가 주는 의미는 매우 명확하다. 국토부가 강조하고 있는 '특별결의 조항'이 그리 대단하지도, 바뀌지 않을 정도로 탄탄한 개념이 아니라는 게 바로 그것이다. 코레일 이사회가 저 정도인데 코레일이 중대한 영향력을 행사하는 신설법인 이사회는, 이사회의 정관개정은 어떻겠는가. 철도노조의 의심과 불안에는 나름 충분한 근거가 있다.

1년 전 '대통합의 리더'는 어디가고 권위주의만 남았나

경찰이 17일 아침 철도노조 파업과 관련해 서울 용산역 인근 철도노조 본부와 서울 사무소에 대해 전격 압수수색을 벌였다. 사진은 17일 오전 8시 17분 현재 철도노조 압수수색 직전 50~60여 명의 경찰들이 철도노조 사무실에 배치된 모습(휴대전화 5543님이 <엄지뉴스>로 전송한 사진).
 경찰이 17일 아침 철도노조 파업과 관련해 서울 용산역 인근 철도노조 본부와 서울 사무소에 대해 전격 압수수색을 벌였다. 사진은 17일 오전 8시 17분 현재 철도노조 압수수색 직전 50~60여 명의 경찰들이 철도노조 사무실에 배치된 모습(휴대전화 5543님이 <엄지뉴스>로 전송한 사진).
ⓒ 엄지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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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 대통령은 '민영화 아니고, 경쟁체제 도입이라고 했는데 철도노조에서 정부의 말을 신뢰하지 않고 불법파업을 하고 있다'고 단호하게 말했다. 대통령 입에서 '불법' 언급이 있자 새로운 총장이 취임한 검찰은 전격적으로 움직이고 있다. 1년 전 이맘 때 대통합의 리더십을 선보이겠다는 태도와는 정반대다. 정말 철도노조가 오해하고 있다고 판단한다면 대화를 통한 '설득'이 먼저였을 터. 입으로는 노조의 오해를 말하지만 이어지는 행동을 보면 탄압의 명분 쌓기로 해석된다.

검찰은 지도부 10여 명에 대한 체포영장에 이어 간부급 170여 명에 대한 체포영장 신청을 검토 중이라고 밝혔다. 검찰을 통한 압박에 더해서 보수언론을 통한 여론조성에도 부지런하게 나서고 있다. <중앙일보>는 17일자 사설 '결국 인명피해 부른 철도파업'을 통해 "우리는 이미 이번 철도노조 파업이 명백한 불법이며, 장기화할수록 돌이키기 어려운 만큼 당장 파업을 끝내라고 여러 차례 주문한 바 있다"며 "하지만 노조는 여전히 실체도 없는 민영화를 반대한다며 강경 투쟁 일변도"라고 비판하면서 정부와 같은 목소리를 내고 있다.

철도노조 파업이 장기화되는 가운데 정부도 갈수록 강경한 태도를 보이고 있고, 철도노조의 파업 열기도 식지 않고 있다. 17일을 기준으로 파업은 9일째로 접어들었다. 철도노조 사상 최장 파업이다. 서울시는 파업이 15일 이상 지속되면 열차 운행이 평소보다 70% 줄어들 것으로 예상했다.

지금 벌어지는 양상을 보면 정부는 철도노조를 설득할 마음이 없다. 파업 중인 노조를 대하는 정부의 '격'을 확실히 세우려는 듯 검찰을 시켜서 구속하고, 단단히 혼내줄 생각으로 가득해 보인다. 한파에 거리에 쫓기듯 내몰린 철도노조와 출퇴근이 걱정인 시민들의 불안함에는 관심이 없다. 대화에 나서지 않는 대통령의 권위주의적 태도가 사태를 더욱 악화 시키고 있다.

그 결과 '안녕하지 못한 사람들'만 더욱 늘어나고 있다.


태그:#철도노조, #수서발KTX, #경쟁체제, #철도민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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