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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강남구 대치동 은마아파트 전경.
 서울 강남구 대치동 은마아파트 전경.
ⓒ 선대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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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집은 오래된 아파트라 녹물 때문에 물 쓰려면 몇 초 틀어놔야 해요. 크기는 32평. 근데 이번에 계약하고 싶으면 2억 8000만 원 달래요. 6000만 원 오른 거예요."

10일 영등포구의 한 아파트. 내년 초 임대계약 만료를 앞둔 임아무개씨는 "전셋값이 정말 말도 안 되는 수준"이라며 분통을 터트렸다. 임씨가 사는 집의 매매가격은 약 3억4000만 원.

1980년대에 지어진 집이라 주변 신축 건물들에 비해 높은 가격이 아니지만 전세는 얘기가 다르다. 임씨 역시 재계약을 위해서는 최소 4000만 원 빚을 내야 할 판이다. 그는 "어딜 가나 아파트는 전세 매물이 거의 없고 가격은 천정부지로 올라 있다"고 털어놨다.

정부가 주택매매 활성화를 뼈대로 하는 전세대책을 내놓은 지 100여 일이 지났지만 효과가 전혀 없는 분위기다. 정부 설명대로 '집 사는 사람'이 늘었지만 전국 아파트 평균 전세금은 꾸준히 오르고 있다. '미친 전셋값'이 내년에도 계속되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나온다.

미분양 줄었는데 전세값은 66주째↑... 올해 전셋값 9.71%↑

'주택시장 정상화'. 지난 8월 28일 박근혜 정부가 내놓은 전세대책의 핵심이다. 집을 사야 할 사람들이 집을 안 사고 전세시장으로 몰리면서 전셋값이 올랐으니 이들이 주택을 구입하면 수요 부족으로 전셋값이 내려간다는 발상이다.

정부는 이를 위해 취득세를 내리고 돈이 부족한 서민들에게 주택 구입자금을 저리에 빌려줬다. 집값 하락 우려 때문에 집을 안 사는 이들을 위해 시세 손실을 정부와 공유하는 방식의 모기지론도 내놨다.

시장은 즉각 반응했다. 국토교통부 통계에 따르면 지난해 12월 7만4835가구까지 치솟았던 전국 미분양 주택은 지난 10월 말 기준 6만4433가구로 2개월 연속 감소세를 보였다.

준공 후 미분양 주택도 건설사들의 '땡처리' 할인판매에 힘입어 줄어드는 양상이다. 특히 서울 지역은 10월 기준 664가구로 전월에 비해 17.8% 감소했다. 이같은 현상은 양도세 면제와 생애최초구입자에 대한 취득세 면제 혜택이 계속되는 연말까지 지속될 전망이다.

문제는 정부 전망대로 소비자들의 주택구입이 늘었지만 전셋값 상승은 여전하다는 점이다. 부동산정보업체 부동산 114에 따르면 전국의 아파트 전세금은 전주에 비해 평균 0.06% 오르며 66주 연속 상승세를 보였다. 집계 이후 역대 최장 상승 기록이다.

작년에는 2.46% 증가에 그쳤던 전셋값이 올해는 9.71% 올랐다. 특히 서울(10.40%), 수도권(12.38%), 신도시(14.76%)의 시세가 급등했다. 주택 매매를 촉진시킨 정부의 대책이 다소 엉뚱한 결과를 낳은 셈이다.

"매매시장 활성화시키면 전세 가격 오를 수밖에"

인천 청자자이 아파트 전경
 인천 청자자이 아파트 전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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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대인경제연구소의 선대인 소장은 이같은 현상을 두고 "너무나 당연한 결과"라고 설명했다. 8·28 대책 자체가 미분양 아파트를 노골적으로 해소해주기 위한 정책이었고 정부가 전월세 가격을 떨어뜨릴 마음이 없었다는 것이다.

그는 "올해 하반기에 수도권 중심으로 아파트 분양이 몰려있었고 정부가 전세수요를 매매수요로 돌린다고 하면서 서민들 빚 내서 집 사게 만든 것"이라고 비판했다.

"지금은 부동산 대세 하락기고 사람들이 다 집값이 떨어질 거라고 생각하고 있어요. 그런데 정부가 매매 활성화 대책으로 그걸 떠받치고 있으니까 집값이 잘 안 떨어집니다. 그럼 집을 사고싶은 사람들도 집을 살 수가 없으니 전세로 몰립니다. '깡통전세'는 위험하니까 안전한 전세를 찾는데 이미 그런 집은 절반도 채 안 되죠. 안전한 전세에 대한 수요가 많아지는데 공급은 점점 없어지니까 전세가가 올라가는 겁니다."

'빚내기'를 유도하며 집값 강제 부양책을 펼치는 정부 정책이 전세값 상승의 주요 이유 중 하나라는 주장이다. 선 소장은 "특히 세입자 전세금 합쳐서 집을 산 하우스푸어들은 자기 투자 손실을 만회하는 방법으로 전세금을 끌어올리거나 계약을 보증부 월세로 돌리게 된다"면서 "그러면 전세 물량은 더욱 줄어든다"고 덧붙였다.

변창흠 세종대 행정학과 교수도 정부의 인위적인 매매활성화 정책에 문제가 있다고 주장했다. 매매가 활성화되면 자연스럽게 주택 가격이 오르는데 전세가격은 항상 이에 연동해서 움직인다는 것이다. 변 교수는 "과거 어떤 때도 매매시장이 활성화됐을 때 전세 가격이 내려간 적이 없었다"고 잘라 말했다 .

그는 그러면서 "주택시장 순환상 시기적인 문제도 있다"고 분석했다. 지금은 부동산 전체로 봤을 때 전세가 월세로 전환되는 시점이기 때문에 전셋값 상승은 어느 정도 불가피한 측면이 있다는 지적이다.

김수현 세종대 부동산학과 교수 역시 부동산 시장에서 전세라는 임대차 구조가 사라져가기 시작하는 시점이라는 분석에 힘을 실었다. 정부가 일회성 정책으로 풀기에는 시기적인 어려움이 있다는 것이다. 그는 "정부 정책이 완전하게 틀린 거라고 말하기는 어렵다"고 말했다.

반면 정부의 매매활성화 대책이 전세난 해소에 기여했다는 주장도 있었다. 익명을 요구한 한 금융권 전문가는 "복합적인 전세난을 한 방에 풀 수 있는 방법은 없다"면서 "8·28 대책 이후 매매 거래량이 늘어났다는 것은 그만큼 전세를 살다가 집을 구입한 사람들이 있다는 의미"라고 말했다.

이 전문가는 "90년대 초에 있었던 서울 전세 급등 현상도 분당, 일산 등 수도권 신도시가 들어서면서 잡히기 시작했다"면서 "매매활성화 정책이 없었다면 지금보다 더 큰 폭으로 전세값이 뛰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정부 정책이 전세 수요 조절에 기여했다는 것이다.

'내년에도 전세 오를 것'... "집값 떨어뜨리는 게 가장 확실"

전문가들은 내년에도 전세 가격이 상승할 것으로 내다봤다. 그러면서 '전세 가격 상승 효과를 상쇄할 수 있는 정책이 필요하다'고 입을 모았다. 전세가 월세로 급격하게 전환되지 않도록 속도를 줄이는 방책을 도입해야 한다는 것이다.

변창흠 교수는 "통상 전세금이 낮을수록 월세로 바뀌는 비율이 높다"면서 "전세에서 월세로 전환하는 경우 집주인의 세금을 높게 매기는 등의 제도를 고려해볼 수 있다"고 설명했다. 이어 "서울시가 시도하고 있는 '장기전세주택'처럼 주거 안정을 위해 민간 임대주택을 활용하는 방안도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주거비 부담능력이 낮은 서민용 전세 보호가 시급하다는 얘기다.

김수현 교수는 "공공임대주택 비율을 지금의 5~6% 수준에서 10% 선까지는 올리는 게 정답"이라고 주장했다. 전셋값 상승은 결국 주거 안정의 문제이므로 내년부터라도 시장 가격의 영향을 받지 않는 공공임대주택을 꾸준히 확충해가는 게 가장 확실한 방법이라는 것이다.

집값을 떨어뜨리는 게 가장 확실한 전세 대책이라는 지적도 있었다. 선대인 소장은 "전세난 해결에는 다른 해법이 없다"면서 "정부는 더 이상 집값을 인위적으로 부양할 생각 말고 적극적으로 총부채상환비율(DTI)와 주택담보대출비율(LTV)을 낮춰가면서 위험수준인 가계부채를 줄여가도록 유도해야 한다"고 말했다.


태그:#전셋값, #전세대책, #8.28, #전세대란, #미분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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