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베스트셀러>의 한 장면.

영화 <베스트셀러>의 한 장면. ⓒ 에코필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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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년 이맘때가 되면 작가 지망생들의 심박수는 조금 빨라진다. 신춘문예 마감이 코앞으로 다가왔기 때문인데, 여전히 원고를 완성하지 못해 초조해하는 사람들도 있을 테고 다 쓴 원고라 하더라도 만족스럽지 않아 일찌감치 포기하고 내년을 기약하는 경우도 있을 것이다. 문학도라면 누구나 가슴이 뜨거워지는 계절. 하지만 생각만 많아지고 복잡한 심경이 되어 아무것도 손에 잡히지 않는다.

신문사마다 조금씩 마감일이 다르지만 보통은 12월 6~12일 사이에 접수가 끝난다. 자신의 성향에 따라 투고하는 신문사도 다르겠지만, 신춘문예에 응모하는 이들이라면 누구나 겪게 되는 중압감과 긴장감은 같은 무게일 것이다. 또 신인이다 보니 '새로워야 하다는 것'에 대한 부담감도 클 터. 새롭지 않으면 '신인'이라 불릴 자격이 없다는 걸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바야흐로 신인의 계절, 그러나 신인은 없다

그러나 유감스럽게도 하늘 아래 새로운 것은 존재하지 않는다. 이미 오래전 누군가에 의해 만들어진 창조물을 그저 답습하며 편집 혹은 가공할 뿐이다. 사람의 상상력이라는 게 그래서 참 진부하다. 보고, 읽고, 경험하지 않으면 결코 상상 자체를  할 수 없다는 게 함정. 다시 말하면, 언젠가 책이나 영화 등을 통해 보았던 내용이 뇌에 저장되어 있다가 시간이 흐른 후 무의식 속에서 마치 자신의 생각인 것처럼 여겨지는 착각, 즉 무의식적 최면 현상이 우리가 말하는 '창작'이니까 말이다.

한 해도 거르지 않고 1월 1일이 되면 모든 신문사에서 신춘문예 당선작을 지면에 싣는다. 그런데 좀 이상하다. 당선작은 있는데 새로운 작품은 찾아보기 어렵다. 당선자는 있는데 신인은 없다. 색다를 것 없는 응모작을 포장하기 위한 심사위원들의 그럴싸한 심사평이 오히려 눈에 띈다. 이를테면 '지금보다 미래가 더 기대되는 신인'이라던가 '꾸준히 습작한 노력이 엿보여' 등이다.

작가 지망생치고 꾸준히 습작을 하지 않는 사람이 어디 있으랴. 그리고 신인이기 때문에 지금보다 미래가 더 기대되는 건 당연한 일. 그럼에도 꼭 그 작품을 당선작으로 뽑아야만 했던 이유에 대해 독자들은 의심하지 않을 수 없다. 신춘문예 당선작 수준 역시 매년 떨어지고 있다. 어디서 읽은 적 있는 글, 들어본 것 같은 내용은 기본이고 구성 방식이나 문체까지 같은 사람이 쓴 것 같은 당혹감마저 안겨주는데. 그야말로 지금의 신춘문예는 '클리셰'의 향연이다.

<베스트셀러>에 담긴 무의식적 표절...누가 자유로울 수 있나

영화 <베스트셀러>는 무의식적 표절에 대한 고찰을 미스터리, 스릴러, 호러 등의 장르를 뒤섞어 '크로스오버'라는 개념을 빌려 관객에게 전하고 있다. 영화 속 주인공인 백희수(엄정화 분)는 내는 책마다 베스트셀러 기록을 세우는 인기 작가다. 작가로서의 명성과 영향력을 쥐게 된 백희수는 일과 가정에서 완벽한 성공을 거두었다고 자부한다. 하지만 예상치 못한 사건이 그녀의 인생에 던져진다. 자신이 심사했던 공모전에서 탈락한 신인의 작품을 표절했다는 의혹이 제기되면서 '표절 작가'라는 낙인이 찍히고 만 것.

자신은 결코 표절하지 않았다고 주장했지만 남편마저도 그녀의 말을 믿어주지 않는다. 그렇게 2년이란 시간이 흐르고 여전히 펜을 잡지 못하고 방황하던 백희수는 경북 어느 마을 사람의 발길이 거의 닿지 않는 외딴 별장을 찾아가 새로운 소설을 집필하기로 결심한다. 음산한 분위기의 별장에서 죽은 딸이 들려주는 이야기를 토대로 신작을 완성한 후 재기에 성공하는 듯 했지만, 다시 표절 시비에 휘말리게 되자 숨겨진 진실을 밝히기 위해 22년 전의 사건을 필사적으로 추적한다.

재미있는 사실은 영화의 핵심을 이루고 있는 주제가 '무의식적 표절'인 동시에 이정호 감독 역시 표절 의혹을 피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할리우드 영화 <사일런트 힐>, <1408>의 구성이나 스토리를 무척 닮아있다는 이유에서였는데, 이를 두고 무의식적 표절인가, 클리셰인가 하는 논쟁의 도마에 오르기도 했었다.

클리셰는 원래 인쇄에서 사용하는 연판을 일컫는 프랑스어지만 영화나 문학에서는 진부한 장면이나 판에 박힌 대화, 낡아빠진 표현, 구성법 등이 반복적으로 사용되는 경우를 지칭한다. 클리셰는 포뮬라(Formular)의 개념과는 조금 다르다. 포뮬라는 관객들에게 친숙하고 예측 가능한 결말을 제공하는 행위의 연속 혹은 구조를 뜻하는데, 이것을 자칫 잘못 사용하게 되면 '판에 박힌' 진부한 구성이 될 뿐만 아니라 표절 의혹을 받기 십상이다.

 영화 <베스트셀러>의 한 장면.

영화 <베스트셀러>의 한 장면. ⓒ 에코필름


진짜 신인의 등장을 기대한다...우리 모두

영화 <베스트셀러>의 구성이 조금 더 독창적이었다면 멋진 포뮬라를 선사했을 테지만 이 영화를 아쉬운 한 마디로 정의하자면 '짬뽕' 같은 영화라고 하겠다. 그럼에도 창작을 향한 무서운 집념과 근성, 진실에 다가가려 고군분투하는 배우 엄정화의 연기는 짬뽕 국물의 맛을 한층 살린 싱싱한 홍합의 역할을 하기에 충분했다.

다시 신춘문예의 이야기로 돌아와, 응모 분야가 시든 소설이든 평론이든 간에 '구성의 미학'에 중점을 두어야 한다는 것을 강조하고 싶다. 소재는 해마다 비슷하다. 문학에도 트렌드가 있기 때문인데 유행에 뒤처지지 않는 것도 좋지만 자신만이 쓸 수 있는 이야기에 힘을 싣는 것이 더 좋은 작품을 쓸 확률이 높다. 매끈하기만 한 구성은 매력적이지 않다. 다소 거칠더라도 신인만의 기지를 발휘하여 엉뚱한 이야기, 독자의 뒤통수를 치는 구성이야말로 1월 1일 탄생하는 신인 작가의 자격이 있지 않을까.

그것이 가능하려면 클리셰에서 완벽하게 벗어나야 한다. 방법은 단 하나, 가장 '나답게 쓸 것'. 파벌에 의해 종용당하는 것이 신춘문예의 오랜 관습이라지만 독자의 수준이 높아진 만큼 좋은 작품을 엄선하여 당선작으로 선정하지 않는다면 신춘문예에 대한 불신은 점점 커져 영원히 외면당하게 될 테니 한 번 더 심사위원들을 믿어보자. 2014년에는 그렇고 그런, 어디서 본 것 같은 작품들을 만나지 않기를 기대해본다.

베스트셀러 신춘문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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