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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정희 전 대통령의 그림자가 한국 사회에 짙게 드리우고 있다. 지난달 25일 그의 추모예배에서 "한국은 독재를 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오더니, 다음날 추도식에선 "유신시대가 더 좋았다"는 말까지 나왔다. 박근혜 대통령은 "제2의 새마을운동"을 거론하며 아버지의 업을 잇겠다고 했다. <오마이뉴스>는 14일 박 전 대통령의 96회 생일을 맞아 '신이 된 박정희'라는 연재기획을 통해 '2013년 대한민국의 박정희'는 어떤 모습인지 살펴본다. [편집자말]
 경북 구미, 청도, 포항에는 2009년 이후 생긴 박정희 전 대통령 동상이 있다. 왼쪽부터 구미 박정희 대통령 생가 있는 동상, 청도 신도리에 있는 동상, 포항 문성리에 있는 동상.
경북 구미, 청도, 포항에는 2009년 이후 생긴 박정희 전 대통령 동상이 있다. 왼쪽부터 구미 박정희 대통령 생가 있는 동상, 청도 신도리에 있는 동상, 포항 문성리에 있는 동상. ⓒ 소중한

"하루 묵는 데 319만 원입니다. 190만 원까지 해드릴 수 있어요."

대구 수성구의 한 호텔. 이 호텔의 202호는 '로열 프레지던트(Royal President)'로 불리는 박정희 전 대통령 테마룸으로 꾸며져 있다. 박 전 대통령이 대구에 오면 묵었다는 이 방은 약 99㎡(30평)의 크기로 거실에는 박 전 대통령, 육영수 여사의 사진과 함께 박근혜 대통령의 사진이 걸려 있다. 대구의 다른 고급호텔 192㎡(59평) 크기의 방은 하루 숙박료가 264만 원이다.

호텔 관계자에 따르면 이 방의 침대와 탁자 등의 가구는 대부분 박 전 대통령이 직접 사용하던 것이다. 특히 베란다에는 박 전 대통령이 묵을 당시 설치돼 있던 철제 방탄문이 그대로 남아 있다.

호텔 측은 이 방과 박근혜 대통령의 인연을 자랑하기도 했다. 202호라는 숫자가 박 대통령의 생일(2월 2일)을 의미한다든지, 319만 원이란 방값을 대통령 당선일(12월 19일)에 맞췄다는 식이다. 호텔은 12월의 1과 2를 더한 3을 백의자리에 두고 19를 십의자리와 일의자리에 둬 방값을 319만 원으로 책정했다.

호텔 측은 "방을 둘러보면서 눈물을 흘리는 사람도 많다"고 설명했다. 박 전 대통령의 생일인 14일 "방을 좀 구경할 수 있나"라고 요청했으나 호텔 측으로부터 "현재 묵고 있는 손님이 있어 불가능하다"는 답을 받았다.

 대구 수성구의 한 호텔. 이 호텔의 202호는 '로열 프레지던트(Royal President)'로 불리는 박정희 전 대통령 테마룸으로 꾸며져 있다. 박 전 대통령이 대구에 오면 묵었다는 이 방은 약 99㎡의 크기로 거실에는 박 전 대통령, 육영수 여사의 사진과 함께 박근혜 대통령의 사진이 걸려 있다.
대구 수성구의 한 호텔. 이 호텔의 202호는 '로열 프레지던트(Royal President)'로 불리는 박정희 전 대통령 테마룸으로 꾸며져 있다. 박 전 대통령이 대구에 오면 묵었다는 이 방은 약 99㎡의 크기로 거실에는 박 전 대통령, 육영수 여사의 사진과 함께 박근혜 대통령의 사진이 걸려 있다. ⓒ 호텔 홈페이지 갈무리

"그분은 내 우상"... "대출받아 추모관 건립" 스님도

경북 김천의 한 빌딩에는 '새누리 문화공간'이란 글씨와 함께 '박정희 대통령 향수관'이라고 적힌 갈색 간판이 걸려 있다. 이 빌딩의 지하에 있는 향수관에 들어서자 벽의 세 면에 박 전 대통령의 사진이 가득했다. 가족 사진, 집무 사진 등 약 130여 점에 이르렀다.

11일 만난 향수관의 관장 박판수씨는 "그분(박 전 대통령)은 제가 존경하고, 흠모하는 우상입니다"라며 사진 하나하나를 짚으며 내용을 설명했다. 박씨는 2012년 6월 자비를 들여 이 향수관을 직접 만들었다. 그에 따르면 향수관을 만드는 데 약 8000만 원이 들었다. 기자가 "정부나 지자체의 예산 지원을 받을 수 있지 않았나"라고 묻자 박씨는 "주변 사람들로부터 그런 제안을 받기도 했지만 박 전 대통령을 존경하고 흠모하는 순수한 마음에서 만든 것입니다"라고 강조했다. 지하에 있는 향수관엔 24시간 제습기가 돌아가고 있었다.

 경북 김천의 '박정희 대통령 향수관' 내부. 박판수씨가 자비 8000만원을 들여 만들었다는 이곳엔 박정희 전 대통령의 사진들로 가득했다.
경북 김천의 '박정희 대통령 향수관' 내부. 박판수씨가 자비 8000만원을 들여 만들었다는 이곳엔 박정희 전 대통령의 사진들로 가득했다. ⓒ 조정훈

"액자도 제가 다 걸었습니다. 직접 자로 길이와 높이를 재고, 손수 드라이버로 구멍을 하나하나 뚫었죠. 박 대통령 사진을 거는 건데 전기 드릴로 '윙' 하며 시끄럽게 하면 그분에 대한 예의가 아니니까요."

"박 전 대통령을 향한 비판의 목소리도 있다"라고 기자가 말하자 박씨는 "누구나 공과가 있을 수 있다. 큰 일을 위한 작은 희생이었다고 본다"며 "(박 전 대통령은) 내가 아닌 국민을 생각하는 따뜻한 마음으로 국정을 운영하셨다"고 말했다.

이어 "박 전 대통령을 직접 뵌 적은 없지만 꿈에서 나를 쓰다듬어주고 해 얼마나 기분이 좋았는지 모른다"며 "(박 전 대통령은) 대한민국을 부강한 국가로 만들고 행복한 시대에 살게 해준 큰 어른이다"라며 웃었다.

박씨는 현재 상담사로도 일하고 있다. 같은 빌딩의 3층이 그의 사무실이다. 사무실 벽면에는 박씨와 박근혜 대통령이 찍은 사진이 걸려 있었다. 사진과 함께 박근혜·이명박 대통령의 이름이 박힌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 자문위원' 위촉장, '제18대 대통령선거 새누리당 경상북도 선거대책위원회 수석본부장' 임명장이 보였다.

향수관을 둘러본 다음 날인 12일 박씨는 기자에게 전화를 해 "어제 못다 한 말이 있습니다"라며 "저는 박 전 대통령에 대한 존경과 향수를 가진 사람들의 모임 '행복가족김천산악회' 3000여 명의 회원들과 매월 둘째 일요일 정기 산행 및 유적지, 명소 방문을 통해 경로효친과 행복나눔을 실천하고 있습니다"라고 말했다.

 경북 김천 '박정희 대통령 향수관'의 관장 박판수씨가 11일 기자에게 박정희 전 대통령이 쓴 휘호를 설명하고 있다.
경북 김천 '박정희 대통령 향수관'의 관장 박판수씨가 11일 기자에게 박정희 전 대통령이 쓴 휘호를 설명하고 있다. ⓒ 조정훈

한편 지난해 6월 경기도 안성의 영평사에는 '박정희 추모관'이 문을 열었다. 이 절의 주지인 정림스님과 신도들이 돈을 모아 건립했다는 지상 3층의 추모관은 박 전 대통령의 친필 휘호 등 유품 270여 점을 전시하고 있다.

건립비용은 약 50억 원 정도로 추정되는데 건립 당시 정림스님은 언론사와의 인터뷰에서 "이 추모관을 짓기 위해 은행에서 대출까지 받았다"고 말했다. 또 "내가 좋아서 진행한 사업이며 절대로 정치권의 돈은 받지 않았다"고 강조했다.

"존경, 사랑, 감사" 방명록 가득... 생가 기념품 판매, 하루에 100만 원

정부나 지자체가 만든 박 전 대통령 기념 공간도 '박정희 향수'로 가득했다. 11일 찾은 경북 구미의 '박정희 대통령 생가'에는 평일임에도 많은 사람들의 발길이 이어졌다. 14일 '박정희 대통령 96회 탄신제'를 앞둬서인지 이를 알리는 조형물과 플래카드를 생가 곳곳에서 볼 수 있었다.

보리개떡과 막걸리 등을 파는 '보릿고개 체험장'에는 박 전 대통령 부부 사진과 함께 "내 일생 조국과 민족을 위하여"라는 박 전 대통령의 휘호가 눈에 들어왔다. 이곳의 판매원은 "104세 노인이 와 이곳을 둘러보고는 '이제 다 살았다'며 눈물을 흘리기도 했다"고 말했다.

 '박정희 대통령 생가'에 기념촬영을 하기 위해 마련된 박정희 전 대통령 부부 모형.
'박정희 대통령 생가'에 기념촬영을 하기 위해 마련된 박정희 전 대통령 부부 모형. ⓒ 소중한

생가에는 '민족중흥관'이라는 박 전 대통령 기념 전시관도 있다. 민족중흥관은 286억 원을 들인 '생가 주변 공원화 사업'과 함께 추가로 58억 원을 들여 올해 1월 개관한 곳이다. 기념품 판매소에 들어서자 박 전 대통령 부부의 사진은 물론 새마을운동 모자, 수건, 막걸리 주전자, 머그컵, 책 등을 판매하고 있었다. 판매원에 따르면 평일에는 1000여 명, 주말에는 2000여 명이 하루 동안 이곳을 다녀가고 기념품 판매점은 하루에 약 100만 원 어치가 팔린다. 

'탄신제'가 열린 14일 또 생가를 찾았다. '숭모제례'가 열린 추모관 앞은 사람들로 가득했다. 박근혜 대통령의 여동생인 박근령씨도 남편과 함께 절을 했다. 군복을 입고 '박해모(박근혜를 사랑하는 해병대 모임)'라고 적힌 완장을 찬 해병대전우회는 박근령씨의 경호를 자처했고, 박씨가 차에 오르자 "충성"이라고 외치며 거수경례를 하기도 했다.

 14일 경북 구미 '박정희 대통령 생가'에서 열린 '박정희 대통령 96회 탄신제'에서 박정희 대통령의 차녀인 박근령씨가 해병대전우회로부터 거수경례를 받고 있다.
14일 경북 구미 '박정희 대통령 생가'에서 열린 '박정희 대통령 96회 탄신제'에서 박정희 대통령의 차녀인 박근령씨가 해병대전우회로부터 거수경례를 받고 있다. ⓒ 소중한

추모관 앞의 한정된 공간 때문에 곳곳에선 "제례가 보이지 않는다"며 실랑이가 벌어지기도 했다. 생가에 마련된 방명록은 "존경합니다", "사랑합니다", "감사합니다"는 내용이 담긴 글로 가득 찼다.

각자가 '새마을운동 발상지'라고 주장하는 경북 청도와 포항에서도 박 전 대통령을 추억하는 사람들을 볼 수 있었다. 두 지역에는 같은 이름의 '새마을운동 발상지 기념관'이 있다. 각 기념관 측에 따르면 한 달에 약 2000여 명의 사람이 찾아온다.

청도 새마을운동 기념관 안내원은 "박근혜 대통령이 당선되고 방문자가 급격히 늘었다"며 "특히 박 대통령이 취임한 올해 2월 약 7000여 명이 기념관을 찾았는데 지난해 같은 기간에 비해 3배 가까이 늘었다"고 말했다. 포항은 2009년, 청도는 2011년 기념관 건립을 포함한 새마을운동 관련 사업을 벌였는데 각각 45억 원과 40억 원의 예산이 들어갔다.

최근 '박정희 기념' 예산 1496억 ... "지나친 우상화"

 신이 된 박정희?... 기념사업 규모만 1496억
신이 된 박정희?... 기념사업 규모만 1496억 ⓒ 고정미

이러한 가운데 '박정희 우상화'에 드는 예산이 과도하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지난해 최민희 민주당 의원실이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경북 지역에서 2008년부터 약 1270억 원의 국가 예산과 지자체 예산이 박 전 대통령 기념을 위해 사용됐다. <오마이뉴스>가 추가로 조사한 것까지 합치면 1496억여 원에 이른다.

박 전 대통령의 고향인 구미가 압도적으로 많은 예산을 사용하고 있다. 2008년 시작해 올해 완료된 구미의 박정희 생가 공원화 사업은 286억 원(경북도비 25억 원, 구미시비 261억 원)의 예산이 들었다. 구미는 이와 별도로 생가 인근 부지에 792억 원(국비 396억 원, 경북도비 119억 원, 구미시비 227억 원)을 들여 2015년까지 '새마을운동 테마공원'을 조성할 예정이다.

이밖에도 구미는 매년 11월 14일 탄신제 행사에 약 7500만 원, 10월 26일 추모제 행사에 약 700만 원의 예산을 배정해 집행하고 있다. "박 전 대통령의 사상과 철학을 선양하고 그 정신을 예술로 승화시키는 데 목적"이 있다는 '대한민국 정수대전'에도 2007년부터 올해까지 총 5억800만 원의 예산이 사용됐다. 구미는 2009년부터 올해까지 예산 1억 원을 매년 영남대에 지원하며 '박정희 리더십 연구원'을 공동으로 설립하기도 했다.

 14일 경북 구미 박정희 대통령 생가에서 열린 '박정희 대통령 96회 탄신제'에 참석한 사람들이 생가에 마련된 방명록에 흔적을 남기고 있다.
14일 경북 구미 박정희 대통령 생가에서 열린 '박정희 대통령 96회 탄신제'에 참석한 사람들이 생가에 마련된 방명록에 흔적을 남기고 있다. ⓒ 소중한

구미 외에도 박 전 대통령과의 '소박한' 인연을 계기로 '박정희 관련 예산'을 집행하는 경우도 있다. 경북 문경의 경우 박 전 대통령이 문경 서부심상소학교 교사로 있던 때에 살던 초가 하숙집인 '청운각'을 공원으로 조성하는 사업을 진행해 2012년 6월 완료했다. 문경은 청운각 주변에 박정희 사당과 기념관 등을 건립하는 데 17억 원의 예산을 썼다.

경북 울릉의 경우 박 전 대통령이 하루 묵은 곳을 기념관으로 만들기 위해 약 15억 원을 들이고 있다. 1962년 박 전 대통령이 국가재건최고회의 의장 시절 울릉도를 방문했을 때 옛 울릉군수 관사에서 하룻밤을 묵었는데 울릉은 이곳을 기념관으로 조성하는 중이다.

충북 옥천은 박 대통령의 당선 직후인 지난해 12월 25일 육영수 생가 주변에 '퍼스트레이디 역사문화센터'를 건립하겠다고 발표했다. 2017년까지 140억원의 예산이 소요될 예정이다. 옥천은 2011년 37억5000만 원을 들여 육영수 생가 복원 사업을 벌인 바 있다.

 경북 구미 박정희 대통령 생가의 민족중흥관에 있는 기념품 판매소. 판매원에 따르면 하루에 약 100만원 어치의 물건이 팔린다.
경북 구미 박정희 대통령 생가의 민족중흥관에 있는 기념품 판매소. 판매원에 따르면 하루에 약 100만원 어치의 물건이 팔린다. ⓒ 소중한

최민희 의원은 "경북은 박 전 대통령이 태어나고 자란 지역으로 전직 대통령을 위한 기념행사나 시설이 존재할 수는 있지만 그 정도가 너무 지나쳐 우상화, 신격화, 성역화와 다름없을 정도"라며 "유신독재가 종식된 지 30년이 더 지났음에도 다시 전체주의 유신 시절로 회귀한 것처럼 비정상적이 일들이 버젓이 벌어지고 있다"고 비판했다.

이와 반대로 14일 정수대전에서 만난 김태환 새누리당 의원(구미을) "이제는 박 전 대통령 기념을 한 곳에서 모아서 했으면 한다"면서도 "지금 들어가는 예산은 적정하다고 본다"고 말했다.


#박정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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