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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마을에 아이들이 자라고 있다. 이 자명한 사실. 아이들이 고통받고 있다. 이 완강한 사실. 평화는 아이들이 앓지 않는 것이다. '강정 평화마음 동화'는 구럼비라는 우주 놀이터를 아이들에게 돌려주기 위해 사실을 바탕으로 쓴 손바닥 동화이다. 그 마을에 아이들이 자라고 있음을 자주 잊은 일을 용서받기 바라는 글쓰기이다. - 기자 말

강정 평화마음 동화
 강정 평화마음 동화
ⓒ 이동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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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이 불었다. '해군기지 반대'라고 적힌 수십 개 깃발이 일제히 휘날렸다. 긴 방파제에 주욱 꽂힌 깃발은 우리 마을 사람들이 함께 외치는 목소리다. 저 아래 포구 입구로 성우네 배가 들어오는 게 보였다. 내 옆에 서 있던 성우가 뛰어 내려갔다. 아저씨 한 분이 아빠에게 물으셨다.

"현 선생님, 계속 반대운동을 해도 공사는 상당히 진행되고 있습니다. 정부나 사법부의 억압도 심해지는데 언제까지 반대운동을 지속할 수 있을까요?"
"해군기지가 취소될 때까지입니다. 저희 선조들은 이 섬에서 자연을 비롯한 여러 악조건을 극복해왔습니다. 이백여 년에 걸친 출륙금지령이나 4·3 고통을 이겨내며 삶의 터를 가꾸어온 선조들처럼 저희도 그렇게 하겠습니다."
"잠깐만요! 출륙금지령이 뭔가요?"
"네, 제주도는 전복을 비롯한 특산물 과다 진상 등으로 수탈이 심했습니다. 왜구의 노략질도 심했고요. 견디기 어려워서 섬을 빠져나가는 사람들이 많았죠. 그러자 조선 인조 때 법이 정해졌습니다. 제주사람은 진상을 하러가는 일 외에는 섬 밖으로 나갈 수 없었어요. 특히 제주 여자들은 육지로 시집갈 수 없었죠. 1850년에야 이 법에서 풀렸습니다."
"아… 그런 일이…."

아빠 말씀을 듣는데 눈물이 핑 돌았다. 이래서 아빠가 '믿음직한 우리 아들 상규'라고 하셨을 때 부끄러웠던 거다. 하지만 섬 밖으로 못 나가게 했던 법은 너무 나쁘다. 나는 눈물을 안 흘리려고 범섬을 바라보았다.

"해군기지가 완공되면 원주민들은 떠나고 외부에서 많이 이주해 오겠군요."
"저 해군기지가 완공된다 해도 국제적인 평화공원으로 사용되기를 바랍니다. 저희들은 끊임없이 평화로운 마을을 꿈꾸고, 이전보다 더 좋아진 마을을 상상합니다."
"그 꿈이 실현될까요?"
"네, 해군기지 설계도를 보면 보통 어부들 눈에도 위험한 항구입니다. 기본적인 자연 조건도 고려되지 않았고요. 항구로 사용하기 어려울 것입니다. 큰 사고나 지나친 해양 오염 없이 수습되기를 바랍니다. 지금이라도 중단하는 것이 세금 낭비를 없애는 일이고 미래의 위험을 예방하는 길입니다."

흰셔츠 차림 아저씨 한 분이 안고 있던 어린 아이를 땅에 내려놓으며 물었다.

"그 설계도는 해군에서 내놓은 것인가요?"
"네, 그렇죠."
"나중에 그걸 좀 볼 수 있을까요?"
"물론입니다. 저녁 식사 후에 함께 보시죠."
"저는 작년 연말에 국회 앞을 지나가다가 강정 주민들이 눈밭에서 국회를 향해 삼천 배 하는 걸 봤습니다. 마음이 먹먹하더군요. 당시 국회에서 입출항 시뮬레이션(가상 실험)을 재실시하고 문제가 있으면 설계 변경을 명령한 것으로 들었습니다. 그건 반영이 됐나요?"
"아뇨, 전혀 반영되지 않았습니다. 국회 특위가 졸속 시뮬레이션을 지켜보고 보고서를 작성했다고 들었습니다. 정치적 입장 때문에 사실이 왜곡되지 않아야 되는데…."

'정치적 입장이라는 게 뭘까. 아마 나쁜 것인가 보다….'

성우 아빠가 가르쳐주신 항구 이야기

범섬은 웅장하다. 우리 마을이랑 법환 마을을 난바다에서 지켜주는 큰 장군 같아 보인다. 그런데 요즘은 점점 힘이 빠져 보인다. 3만 년 동안 친구였던 구럼비가 폭파되고 자기 품에 있는 연산호가 죽어가는 걸 보면 슬플 것이다. 범섬을 한참 바라보는데, 누가 내 팔을 흔들었다. 형준이라는 아이였다.

"얘, 저기 네 친구가 너 부르는 것 같애."

성우가 포구에서 나를 향해 손을 흔들었다. 그리로 내려오라는 뜻 같았다.

"저 배, 내 친구네 거야. 너희들도 가볼래?"

나는 형준이와 노란 모자 쓴 아이와 은서와 함께 방파제를 달려 내려갔다. 바람이 휙휙 지나갔다. 문득 한 생각이 떠올랐다.

'나는 아빠의 꿈속을 달리는 아이다.'

성우 아빠와 윤구 삼촌이 생선이 담긴 나무상자를 내리고 계셨다. 옥돔이 가장 많았고 백조기랑 서대랑 가자미도 있었다. 해녀계원인 어멍(어머니) 때문에 해군기지 찬성 측에 섰던 윤구 삼촌. 우리 외할머니 장례 때 마을 삼촌들과 만난 후로 성우 아빠 배에서 일을 하게 되었다.

"삼촌, 야들은 서울에서 감귤 따기 체험 온 애들이에요. 애들아 인사해. 저분이 성우 아빠고 이쪽은 윤구 삼촌이야."

애들이 인사를 하자, 포구에 선 윤구 삼촌에게 생선 상자를 건네주시던 성우 아빠가 큰 소리로 말씀하셨다.

"짐 다 내리고 배 구경 시켜줄까?"
"네에~!"

아이들은 약속이나 한듯 똑같이 외쳤다. 

"지저분하고 냄새도 나는데 괜찮나?"
"괜찮아요~!"

배에 올라가자 아이들은 조금 비틀거렸다. 오늘은 바람이 좀 부는 날이라 포구에 들어와서도 배가 흔들렸다. 아이들은 비틀거리면서도 성우 아빠를 따라 흥미롭게 조타실과 기관실을 들여다보고 이것저것 만져보기도 했다. 성우는 완전 자랑스러운 표정으로 아이들에게 뭔가 가르쳐주었다.

"이게 배를 운전하는 조타대야. 우리 아빠가 선장이니까 운전을 해. 여기 이건 누르면 부우부우 소리가 나. 안개 낀 날 쓰는 무적이야."
"무적? 천하무적?"
"아니야 하하. 아빠, 이게 무슨 한자라 했수꽈?"
"안개 무자에 피리 적자를 쓴 무적이다. 안개가 끼면 배들이 서로 안 보이거든. 그럴 때 '나 여깄소'라고 신호를 보내야 부딪치지 않지."
"여기가 기관실이고, 여기는 간이 침대야."
"와, 나도 배에서 자봤으면 좋겠다."

비록 포구 안이지만 배에서 바라보는 바다는 마음을 설레게 한다. 공항에 가서 비행기를 보는 기분과 비슷하다. 다른 아이들도 마찬가지인가보다. 다들 선미(배의 꼬리)에 붙어 서서 바다를 바라보았다. 노란 모자를 쓴 아이가 말했다.

"아저씨, 포구로 들어오는 입구가 되게 좁아요. 넓게 하면 바다도 많이 보이고 배도 여러 척이 한꺼번에 들어올 수 있지 않아요?"
"관찰력이 좋구나. 너 이름이 뭐냐?"
"네, 장태호예요."
"태호야, 저 입구가 넓으면 조류와 바람이 막 밀려든단다. 그러면 묶인 배들끼리 부딪치거나 저 접안시설에 부딪쳐 망가져버려. 무슨 말인지 이해가 돼?"
"정말요? 파도가 그렇게 세요?"
"지금도 배가 많이 흔들리고 있잖아. 저기 먼 바다가 어딘지 아니? 바로 태평양이야. 서귀포 바다는 태평양으로 트여 있어서 파도가 아주 세지. 그중에서도 강정이 가장 파도가 거세단 말야. 다른 포구들보다 조심하지 않으면 안 되는 곳이야."
"태풍이 불면 더 위험한 거죠?"
"물론이지. 해군 자료를 보면, 서귀포 지역은 일 년 중 7개월은 초속 26미터 이상 되는 바람이 부는 곳이야. 1초에 26미터 날아가는 바람이 자주 분단 말이지. 그런 날 파도가 저 방파제를 넘어 포구로 덮치면 배들이 부서지지. 서귀포에서도 바람이 가장 센 강정은 파도 높이가 20미터가 넘기도 해…. 아파트 6층 높이 파도가 상상이 되니?"

"우리가 좋아하는 군함이 위험하대"

은서가 포구에 묶여있는 배들을 둘러보며 걱정스럽게 물었다.

"태풍 불면 여기 배들 다 부서져요?"
"부서질 줄 알면서 그냥 두면 게으름뱅이 어부겠지? 태풍 소식이 오면 여기보다 안전한 항구로 피신을 해. 자연의 힘은 크고 무섭거든."

형준이는 우리 아빠가 방파제에서 해준 이야기를 기억하고 있었다.

"저기 해군기지는 여기보다 더 바깥쪽으로 튀어나와 있어서 더 위험하겠네요."
"야, 너 뉘집 아들이냐. 한 가지를 가르쳐주면 열 가지를 아는구나. 하하하."
"네! 저는 송, 윤자 식자 쓰시는 아버님의 장남 송형준입니닷! 이름 밑에 받침을 다 빼면 '소혀주'입니다. 그래서 소들이 저를 무서워 합니닷!"

형준이가 너스레를 떨어서 모두들 한바탕 웃었다. 성우 아빠가 웃음을 함빡 머금은 얼굴로 설명해주셨다.

"형준아, 저기 집채만 한 시멘트 덩어리 보이지?"
"네."
"그게 케이슨이라는 거다. 한 개 무게가 8800톤이야. 저걸 바다에 세워서 물살을 막고, 방파제를 만들지. 그런데 작년 태풍에 저쪽에 세운 케이슨 7개가 몽땅 망가져버렸단다. 저 큰 삼발이도 수백 개 파도에 쓸려갔지. 바람과 물결의 힘이 그렇게 강한 거야."

애들이 '와~' 소리쳤다. 해군도 여기는 파도가 센 곳이라는 걸 알았을 텐데, 왜 미리 예방하지 못 했을까? 정말 알 수 없는 일이다.

"삼촌, 해군도 여기 파도 센 거 알 텐데 왜 예방을 안 해수꽈?"
"예방을 할 수가 없지. 공사를 안 하는 게 예방이지 다른 방법은 없어."
"완성될 때까지 태풍이 안 불면 괜찮을까요?"
"크고 작은 태풍은 해마다 불게 되어 있지. 여기보다 훨씬 안전하다는 서귀포항도 작년 태풍에 정박한 배들이 좌초되고 항구가 많이 부서졌어."
"일 년에 7개월은 초속 26미터니까요?"

은서가 끼어들어 아는 체를 했다. 조그만 애가 어려운 걸 잘도 기억하고 있었다.

"서울에서 제일 똑똑한 애들만 강정에 놀러왔나 보네, 하하하. 은서야, 아저씨는 큰 걱정이다. 파도가 센 여기에 이지스함을 비롯해서 항공모함도 정박시킨다는구나. 걱정은 또 있지. 여기는 태풍이지만 동해나 서해는 잔잔할 때가 많거든. 그럴 때 동해나 서해가 침공 당하면  여기 군함들이 출동할 수가 없어."

이때 형준이와 태호가 동시에 소리쳤다. 두 아이 모두 얼굴이 환해지면서 목소리가 막 높아졌다.

"저기에 항공모함도 들어와요? 멋있다!"
"하하 너희들 항공모함 좋아하냐?"
"네~ 저는 아빠랑 항공모함 모형 조립도 했어요. 무지 크고 복잡해서 두 달이나 걸렸다니까요."
"저는 해군이 돼서 군함을 타는 게 꿈이에요."
"그렇구나. 근데 어떡하냐. 그 멋진 군함들이 저렇게 위험한 항구로 온다니 말야 하하."
"어, 진짜 위험하면 안 되는데. 천안함이라는 군함도 부서져서 해군 아저씨들 많이 돌아가셨잖아요."
"자, 애들아. 이제 내려가자. 저기 아빠들이 오신다."

우리는 성우 아빠와 함께 배에서 내려왔다. 계속 흔들리던 배에서 내리니까 땅을 밟는 기분이 좀 이상했다. 또 한 가지 이상하게 내 머리 속을 뱅뱅 도는 생각도 있었다. 언젠가 국이 삼촌이 막 화가 난 얼굴로 아빠에게 했던 말이다.


태그:#천안함, #해군기지, #태풍, #케이슨, #군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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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 한국작가회의. 2000 한국일보로 등단. 시집 <이발소그림처럼> 공동저서 <그대, 강정>.장편동화 <너랑 나랑 평화랑>. 2011 거창평화인권문학상

** 월간 작은책에 이동슈의 삼삼한 삶 연재중. 정신장애인 당사자 인터넷신문 '마인드포스트'에 만평 연재중. 레알로망캐리커처(찐멋인물풍자화),현장크로키. 캐릭터,만화만평,만화교육 중. *문화노동경제에 관심. 또한 현장속 살아있는 창작활동을 위해 '부르면 달려갑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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