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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주의의 재발견> 책표지.
 <민주주의의 재발견> 책표지.
ⓒ 후마니타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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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한국의 민주주의는 위기를 맞았다. 당장 민주주의의 밑바탕인 선거조차 국가기관의 불법개입으로 훼손됐다는 사실이 드러났다.

박근혜 대통령과 새누리당은 "직접적인 책임이 없다"고 말한다. 그러나 불공정 선거가 이뤄졌다는 의혹, 더불어 그것을 밝히려는 수사가 정권으로부터 방해받고 있다는 또 다른 의혹만으로도 그들은 책임이 있다.

시민이 우리 사회 민주주의를 우려 섞인 눈으로 바라보게 만들었다는 혐의에서 벗어날 수 없기 때문이다.

"모든 민주주의 국가에서, 국민은 그들 수준에 맞는 정부를 가진다."

하지만 토크빌의 이 오래된 지적이 보여주듯, 모든 책임을 그들에게만 돌리기는 어렵다. 민주주의 위기가 찾아온 까닭은 불공정 선거뿐만이 아니다. 지금 볼썽사나운 민주주의는 우리가 지닌 수준을 보여주는 것이기도 하다. 이를테면 정치혐오나 정치불신으로 상징돼왔던 정치를 대하는 태도, 진영논리로 귀결되는 이해와 소통의 부족 등이 그렇다. 우리도 이 지경에 이르기까지 민주주의를 잘 가꾸어오지 못했던 것이다.

우리가 "민주주의를 잘못 이해"... '평범한 사람들을 위한 민주주의론'

어떤 민주주의를 바라고 만들게 될 것인가는 우리에게 달려 있다. 우리는 어떤 민주주의를 갖고자 하는가. 민주화 이후 벌써 사반세기를 지나고 있는 오늘의 한국 민주주의는 어떤 상태이고, 어떤 해결 과제를 안고 있는가. 어떻게 하면 보수 역시 민주적 가치의 신봉자가 되고, 진보 또한 책임 있는 정치 세력으로 역할을 할 수 있게 될까. 진보와 보수 사이에서 어떻게 하면 지금보다 더 유익한 경합의 체계를 발전시킬 수 있을까. 우리가 고민해야 할 것은 바로 이런 문제들이 아닐까 한다. - <민주주의의 재발견> 16쪽

정치학 박사이자, 출판사 후마니타스 대표인 박상훈씨가 지은 책 <민주주의의 재발견>(후마니타스 펴냄)은 '평범한 사람들을 위한 민주주의론'을 내세운다. 저자는 한국 민주주의가 어려움을 겪는 까닭으로 우리가 "민주주의를 잘못 이해"하고 있음을 꼽는다. 책은 열 꼭지로 나뉜 강의록 형식을 통해, "민주주의를 어떻게 이해하고 다뤄야 공동체에 유익한 효과를 가져 올 것인가"라는 고민을 담아냈다.

저자는 민주주의의 시작을 '갈등의 사회화'에서 찾는다. 우리 사회에 존재하는 여러 갈등을 최대한 많은 사람이 관여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는 지적이다. 이를테면 밀양 송전탑을 두고 벌어지는 갈등은 송전탑이 지나가는 지역 주민만의 문제가 아니라, 전기를 사용하는 모든 이의 문제다.

저자는 갈등을 공적 영역으로 넓혀야만 사회적 관심으로 이어지고, 이를 통해 약자가 보호받는 구조가 만들어진다고 설명한다. 갈등의 사회화가 이뤄질 때마다 '외부 세력' 운운하는 이들이야말로, 민주주의에 대한 몰이해를 드러내왔던 것이다.

민주주의에서 사회 갈등을 공적 영역으로 전달하는 것은 정치의 기능이다. 그리고 현대 정치의 핵심 기구는 정당이다. 갈등이 공적 영역에서 정당에 의해 조직되면 갈등의 규모는 커지지만 갈등의 수는 줄어든다. 민주정치의 비결은 여기에 있다. - <민주주의의 재발견> 42쪽

그렇다면 갈등의 사회화는 누구의 역할일까. 저자는 정당이라고 답한다. 정당이 갈등의 규모는 키우고, 수는 줄여야 한다는 설명이다. 예컨대 비정규직 문제는 갈등의 사회화가 이뤄지지 않을 때, 개별 노동자의 문제로 그친다. 이것이 정당에 의해 공적 영역으로 확대되면, "고용구조나 경제체제를 둘러싼 갈등"으로 규모가 커진다는 것이다.

그 지점에서 비정규직 문제는 개별 노동자가 아니라, 전체 노동자, 나아가 같은 경제체제를 공유하는 모든 이의 문제로 확산된다. 당연히 문제에 대응하는 목소리도 커지고, 현실의 변화도 더 빠르게 이뤄질 것이다. 저자는 '희망 버스' 같은 노동 문제를 향한 사회적 연대와 그것이 만들어낸 결실을 그 훌륭한 사례로 꼽는다.

제 역할을 못하는 정당들, '노동 없는 정치' 극복해야

정당들도 생각할 것이 많아 보인다. 민주주의에서 정당은 유권자 '속'에서 시민의 선호를 형성하고 결집하는 역할을 한다. 그러나 지금 우리의 정당은 대상화된 유권자 '앞'에 있다. 그것도 미디어에 의해 매개된 '가상적' 존재로 저 멀리에 있다. 보고 들을 수는 있으나 만지고 느낄 수 없는 정치는 그 때문인지 모른다. - <민주주의의 재발견> 80쪽

하지만 저자가 판단하기에 정당은 제 역할을 못하고 있다. 특히 민주당을 향한 비판이 날카롭다. 비판의 요지는 정치적 효능감, 즉 시민에게 '정치가 내 삶에 긍정적인 영향을 준다는 실감'을 주는데 실패했다는 것이다.

이를테면 대선과 총선이 잇따랐던 지난해, 저자의 지적처럼 모든 후보들은 경제민주화를 말했다. 문제는 경제민주화가 시민과 동떨어진 채로 논의되었다는 점이다. 재벌 대기업을 어떻게 규제할 것인지, 일자리를 어떻게 만들 것인지, 복지를 어떻게 확대할 것인지는 이야기가 넘쳐났다. 하지만 그 차별성 없는 '말의 향연'에서 시민의 삶이 어떻게 나아질 것인지 실감하기는 어려웠다. 저자는 "시민은 그야말로 누가 자신들에게 선한 군주가 되어 줄지나 판단해야 하는 수동적 존재"였다고 꼬집는다.

결국 오늘날 한국 민주주의를 위기로 몰고 가는 주범은 다른 것이 아닌, 노동 배제적이고 하층 배제적인 사회 그리고 그 위에 서있는 노동 없는 정치가 가난한 보통 사람들을 절망으로 이끄는 데 있다 할 것이다. - <민주주의의 재발견> 108쪽

저자는 그 근본적인 해결책으로 '노동 없는 정치' 극복을 꼽는다. 우리 사회 4천만 명 유권자 중, 1600만 명이 노동자다. 단일 유권자 계층에서는 가장 커다란 집단이다. 때문에 민주주의가 "보통의 평범한 시민들을 위한 정치체제"라면, 당연히 노동자를 위한 정치가 이뤄져야 옳다. 그것은 시민에게 정치적 효능감을 주는데도 어떤 방법보다 크게 기여한다. 더불어 "민주주의가 밥 먹여 주느냐"를 묻는 사람들에게, "그렇다"고 답할 수 있는 원동력이 될 것이다.

좋은 정당, 좋은 정치, 그리고 좋은 민주주의

좋은 정당이 시민의 정치 에너지를 잘 조직해 정치를 좋게 만들고, 그 힘으로 국가 기구 전반을 민주화함으로써 경제 권력에 의한 불평등 효과를 완화하고, 사회를 공동체적으로 재조직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아직도 우리는 제대로 된 정당, 제대로 된 정당정치가 안 돼서 고동 받는 것이지, 정당의 시대가 끝나서 그런 것이 아니다. 여전히 나는 좋은 정당, 좋은 정당 체제를 꿈꾼다. - <민주주의의 재발견> 200쪽

저자는 <민주주의의 재발견>에서 정당의 역할을 끊임없이 강조한다. 그것이 '갈등의 범위'를 확대함으로써 '갈등의 강도'를 최소화하는 가장 이상적인 방법이라 여기기 때문이다. 더불어 좋은 정당의 출현은 좋은 정치를 가능케 하고, 결과적으로 우리 사회에 좋은 민주주의가 자리 잡는 밑바탕이 될 것이란 기대다.

좋은 정당이 실현되기 위해서는 시민의 참여가 절실하다. 저자는 한때 전체 성인의 3분의 1 가까이가 사민당 당원이었다며, 스웨덴을 예로 든다. 정당이 시민에 의해 통제되고, 그 정당이 국가 관료제를 통제하면서, 제대로 된 사회정책 실천이 가능했다는 것이다.

물론 저자가 "정당이 모든 것"이라 주장하지는 않는다. 다만 민주주의가 제대로 기능하여 "사람들이 협동과 연대의 삶을 살 가능성을 풍부하게 하는 민주적 이상"에 가장 가까이 가는 길이라는 판단이다. 지금 한국의 정당들이 못났더라도, 그것을 좋게 만들거나 더 좋은 정당을 만들어야 하는 필요성이 거기에 있다.

덧붙이는 글 | <민주주의의 재발견>, 박상훈 지음, 후마니타스 펴냄, 2013년 2월, 1만 원.



민주주의의 재발견 - 민주주의를 둘러싼 싸움에서 승리하고자 하는 사람들을 위한 민주주의 강의

박상훈 지음, 후마니타스(2013)


태그:#<민주주의의 재발견>, #박상훈, #서평, #정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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