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환경운동연합과 오마이뉴스는 '지구가 아프다' 기획을 통해 환경문제로 신음하고 있는 지구촌 곳곳의 모습을 알릴 계획입니다. 먼 곳에서 일어나는 국제 환경사안을 가까이에서 들여다 보는 인터뷰와 기획기사를 주제별로 준비했습니다. 우리 삶과 밀접한 지구적 환경문제 개선을 위해 독자여러분들의 관심과 참여 부탁드립니다. [편집자말]
눈꽃빙수, 우유빙수, 메론빙수, 망고빙수, 커피빙수, 녹차빙수, 옛날빙수.

팥빙수의 역사가 다시 쓰였다 해도 무방할 만큼 다채로운 빙수가 선보였던 지난 여름, 눈앞에 수북이 담겨 있던 빙수는 마치 '미니 빙하' 같았다. 빙하를 마주했던 적이 없으니 만만한 게 팥빙수다. 하지만 꿀릴 이유는 없다. 세계여행이 대수롭지 않은 요즘 세상이라도 북극이나 남극에서 빙하를 직접 본 사람은 흔치 않다. 지구온난화로 빙하가 줄고 있다는 소식이라도 접하면 막연히 북극곰을 걱정하는 것이 뭇 사람들이 빙하에 대해 반응하는 방식이다. 그리고나선 사람들은 탄소 배출 따위 신경 쓸 겨를 없는 바쁜 일상으로 재빨리 회귀한다.

2012년 공개된 제프 올로우스키 감독의 환경 다큐멘터리 영화 <빙하를 따라서(Chasing Ice)>는 그린란드, 아이슬란드 등 북극권에서 사라져 가는 거대 빙하의 실제 모습을 카메라에 담아 호평 받았다. 기후변화의 현장을 담은 영화 속에서 빙하는 놀랍게도 팥빙수처럼 하릴없이 무너져 내린다. 빙하의 연약함을 목격하게 된 사람들은 지금 뭔가 이상한 일이 벌어지고 있다고 생각한다. 빙하 후퇴의 영향을 받는 것이 비단 북극곰만은 아닐 것 같아 불안하기도 하다.

빙하 면적의 감소는 지구온난화를 드러내는 자연적 지표로서 거론되어 왔다. 빙하의 추이에 일희일비하다가 숲을 보지 못하는 오류를 범하기도 한다. 지난 9월 일부 언론은 북극권 빙하가 전년 대비 증가했다고 보도함으로써 지구온난화 현상을 의심했다. 그러나 실제 북극 빙하는 지난 30여 년간 약 40% 감소하는 등 명백한 하락 추세다. 전년에 견줘 빙하가 늘었으니 지구온난화가 아니라는 보도는 빙하면적의 장기적 감소 추세를 무시한 일개 해프닝에 불과하다.

빙하는 지구상에서 바다 다음으로 큰 물의 저장고이자 담수의 보고이다. 빙하가 녹으면 해수면이 상승해 해안 도시를 위협하는 한편 식수, 농업용수의 원천이었던 담수 공급에 차질을 빚음으로써 식량 생산에도 영향을 미친다. 빙하의 해빙은 적어도 팥빙수가 녹아 출렁출렁 물이 되었을 때의 아쉬움보다 훨씬 더 큰 위력을 발휘한다.

눈 덮인 설산은 시한폭탄

네팔 히말라야의 초롤파 호수는 빙하홍수의 위험이 매우 큰 것으로 알려져 있다.
▲ 초롤파(Tsho Rolpa) 네팔 히말라야의 초롤파 호수는 빙하홍수의 위험이 매우 큰 것으로 알려져 있다.
ⓒ FoE EWNI

관련사진보기


하늘에서 제일 가까운 곳에 가도 빙하를 만날 수 있다. 에베레스트 산을 비롯해 8000m가 넘는 봉우리를 14개나 보유한 '세계의 지붕', 히말라야 산맥. 히말라야는 구비구비 펼쳐진 설경의 아름다움으로 유명한데 에베레스트 산이 있는 사가르마타(Sagarmatha) 국립공원은 유네스코가 지정한 세계문화유산이기도 하다. 그리고 히말라야 산맥의 서쪽으로 하늘과 맞닿아 있는 7000m 산들의 힌두쿠시 산맥. 힌두쿠시-히말라야(Hindu Kush-Himalaya) 산지 일대는 극지를 제외하고 세계에서 가장 많은 빙하를 볼 수 있는 곳이다. 힌두쿠시-히말라야에 있는 빙하의 개수는 무려 1만5000 개. 아프가니스탄, 파키스탄, 인도, 네팔, 부탄, 티베트 자치구 등에 걸쳐 있는 이들 빙하는 13억 인구가 의존하는 아시아 9개 강의 수원이기도 하다.

절정의 아름다움을 지닌 힌두쿠시-히말라야에도 지구온난화의 적신호가 켜졌다. 빙하가 녹으면서 생기는 빙하호와 이로 인한 홍수 위협 때문이다. 기후변화로 인한 설산의 자연재해, '빙하홍수'는 영어로는 'GLOF(Glacial Lake Outburst Floods)'라고 알려져 있다.

빙하호는 빙하에 의해 패인 분지에 빙하가 녹은 물이 채워지면서 형성된 호수이다. 지구온난화와 더불어 최근 고산지대 빙하호의 규모와 개수가 늘어나고 있다. 이런 호수들은 위험하다. 빙하가 녹은 물로 호수의 양이 증가해 범람의 우려가 있고 호수를 가둬 두는 자연제방 또한 호수의 압력에 취약하기 때문이다. 물 폭탄이 터지면 고산마을은 직격탄을 맞고 파괴적 여파가 강 하류까지 이를 것이다. 힌두쿠시-히말라야의 빙하 해빙으로 인해 파키스탄, 인도, 네팔, 부탄, 티베트 자치구 등 인근 국가의 산마을과 하류쪽 사람들이 언제 터질지 모를 빙하홍수의 위협에 시달리고 있다. 산꼭대기에 지구온난화로 점점 더 빨리 카운트다운 되고 있는 홍수 시한폭탄이 얹혀 있는 셈이다.

빙하는 녹고 위험은 커져가고... 네팔은 억울해

온실가스 배출의 역사적 책임을 묻는 '기후정의(Climate Justice)' 개념은 세계를 기후변화 문제에 있어 억울한 국가와 별로 억울할 것이 없는 국가로 양분한다. 네팔은 기후변화에 관한 한 아주 억울한 국가에 속한다. 네팔의 온실가스 배출량은 과거나 지금이나 미미한 반면 당장 기후변화로 인한 위험에는 크게 노출되어 있기 때문이다. 빙하가 녹으면서 초래되는 빙하홍수는 네팔이 당면하고 있는 대표적인 기후변화 위협이다.

히말라야의 기온은 지구평균보다 빨리 상승하고 있다. 네팔의 기온은 연평균 0.06℃ 상승하는데 히말라야에서는 연평균 0.12℃ 오르고 있는 것. 이에 따라 빙하의 해빙은 더욱 빨라지고 빙하호의 양과 개수는 점점 증가하고 있다. 네팔 히말라야에는 현재 3252개의 빙하와 2323개의 빙하호가 있는 것으로 조사되었다.

2011년 유엔에 보고된 바에 따르면 네팔에서는 지난 30년간 빙하 면적이 21% 감소했다. 에버레스트 산 계곡에 있는 빙하들은 연평균 10-60m 후퇴하고 있으며 AX010 빙하의 경우 이대로 가다간 2060년경 사라지게 될 것이다. 임자(Imja) 빙하는 2001년 이래 1년에 74m 이상 줄어들고 있다. 50년 전만해도 존재하지 않다가 그저 작은 연못에 불과했던 임자 빙하호는 어느새 너비 580m, 길이 2.3km, 수심 100m의 호수가 되었다.

빙하홍수는 힌두쿠시-히말라야 일대에서 크게 알려지지 않은 위험이었다. 하지만 네팔 사람들은 1985년 8월4일 빙하홍수의 파괴력을 인지하게 되었다. 에버레스트 산 옆 계곡에 위치한 딕초(Dig Tsho) 호수가 얼음사태에 자극을 받아 터진 것. 딕초 호수는 랑모체(Langmoche) 빙하에서 파생된 호수였다. 675만㎥로 추정되는 양의 물이 4-6시간 만에 호수를 빠져나갔다. 빙퇴석으로 이뤄진 자연제방을 범람한 물은 4-5m/s의 속도로 아래로 아래로 돌진해 갔다. 물길이 지나는 곳에는 고산마을도 포함돼 있었다. 해가 쨍쨍하던 어느 이른 오후, 셰르파 축제가 진행 중이었던 마을은 삽시간에 아수라장이 되었다. 산책 중이던 사람 여럿이 목숨을 잃었고 집 30채, 다리 14개, 농경지, 그리고 완공을 2주 앞두고 있던 남체(Namche) 수력발전 시설이 파괴되었다. 파괴된 수력발전 시설로 인한 손실만 150만 달러였다. 1998년 9월 3일 탐포카리(Tam Pokhari) 빙하 홍수가 났을 때에도 네팔에서는 2명이 죽고 다리가 6개 이상 파괴되었으며 농경지가 홍수에 휩쓸려 피해가 컸다.

이런 빙하홍수를 네팔은 지금까지 22번 겪었다. 이중 12번은 네팔의 빙하호에서 생긴 일이었지만 10번은 티베트에서 발원했다. 국경 없는 빙하홍수는 중국에서 29번, 파키스탄에서 9번, 부탄에서 4번 발생했다고 보고되었다. UNEP는 20세기 하반기 들어 힌두쿠시-히말라야에서 빙하홍수 빈도가 높아지고 있다고 보고했으며 요즘 빙하홍수는 힌두쿠시-히말라야 지역에서 2~5년에 한번씩 일어나는 사건이 되었다. ICIMOD(International Center for Integrated Mountain Development)에 따르면 네팔 히말라야 44개의 호수에 잠재적 빙하홍수의 위험이 있다.

기후변화 적응 시급한 네팔

네팔 히말라야에 있는 임자 호수. 빙하호가 점점 커지고 있다.
▲ 임자 초(Imja Tsho) 네팔 히말라야에 있는 임자 호수. 빙하호가 점점 커지고 있다.
ⓒ FoE EWNI

관련사진보기


네팔 인구의 10%는 해발 2000~3000m 내외의 산간지대에 산다. 전기와 수도시설이 부족하긴 하지만 산마을 사람들은 평화로운 농경생활을 영위하고 있다. 마당에는 닭, 염소, 돼지가 있고 경사진 논에서는 작물이 자란다. 이들은 고유의 언어와 전통을 가지고 아름다운 자연과 호흡하며 하루하루를 보낸다.

이들에게 빙하로 인한 홍수는 청천벽력이다. 빙하홍수는 사상자를 낳을 뿐만 아니라 집과 가축을 앗아가고 숲과 농경지를 망친다. 고도가 높은 지역에서는 척박한 기후 조건 때문에 작물 재배가 매우 제한적으로 이뤄진다. 그런데 경사지가 한번 홍수에 휩쓸리면 비, 눈, 바람 등으로 인한 침식 때문에 땅이 불안정해져서 더이상 작물을 재배하기 어렵다. 또한 고산지대에서 중요한 다리, 수력발전 시설 같은 사회적 인프라가 빙하홍수로 인해 파괴되고 있다. 한편 물의 저장고 역할을 하던 빙하가 녹으면 빙하에서 발원하는 하천의 수량이 줄고 이것은 필연적으로 하류의 농사에 영향을 미친다.

빙하홍수 발생 빈도가 높았고 앞으로도 기후변화의 위협을 받고 있는 국가이건만 네팔의 대비는 허술하다. 경보 시스템은커녕 5000m 고도에서 진행되고 있는 빙하호 형성에 대해 여전히 많은 산사람들이 모르고 있으며 지방정부도 이에 대한 대책이 없다. 위험에 대비하려면 히말라야 빙하와 빙하호의 변동을 추적해야 하지만 인벤토리 구축조차 되어 있지 않은 상황이기에 체계적인 모니터링이 어렵다. 위험이 알려진 빙하호의 경우 급한 대로 호수의 바닥을 파냄으로써 물 수위를 낮추는 조치가 부분적으로 취해지고 있지만 험악한 기상과 장비 수송의 문제로 에러가 많다.

가난한 나라 네팔에 기후변화 적응 정책이 필요하다. 빙하홍수 위험권에 있는 산마을에 대한 재난 대비가 시급한 것이다. 히말라야 빙하호 인벤토리 구축을 위한 방편을 찾는 한편 빙하홍수에 대한 연구도 이뤄져야 한다. 위험한 빙하호에 대한 조치가 있어야 한다.

세상의 중심에서 기후정의를 외치다

기후정의 메시지를 전하기 위해 네팔 등반대가 에베레스트 산 정상에 올랐다.
▲ 에베레스트 정상에 선 기후정의 기후정의 메시지를 전하기 위해 네팔 등반대가 에베레스트 산 정상에 올랐다.
ⓒ FoE Nepal

관련사진보기


따지고보면 기후변화 적응 정책이 궁극적인 해결책은 아니다. 지구온난화가 가속화되고 있는 무력한 현실 앞에서는 빙하홍수 대비에도 한계가 있기 때문이다. 히말라야의 홍수 시한폭탄을 카운트다운 하고 있는 것은 네팔인들이 아니라 주요 온실가스 배출국의 기업과 사람들이다. 한국은 온실가스 배출국 세계 7위이지만 우리는 네팔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모르거나 빙하홍수를 '남의 나라 일'이라 한다.

지난 5월 4개의 세계 기록을 가진 산악인 펨바 도르제 셰르파(Pemba Dorje Sherpa)가 네팔인들로 구성된 등반대를 이끌고 기후정의를 위해 에베레스트 산에 올랐다. 이들이 8848m에 이르는 세계에서 가장 높은 산에 오른 까닭은 세상을 향해 기후정의를 외치기 위해서였다.

들리는가, 그 소리가?


태그:#GLOF, #빙하, #기후변화, #네팔, #지구온난화
댓글1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