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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장은 물건을 사고 파는 곳입니다. 시장은 사람과 사람이 소통하는 공간입니다. 우리에게 시장은 어떤 의미가 있을까요? 연재 '전통시장 고군분투기'는 기자를 지망하는 청년들이 시장을 직접 체험하며 느낀 점들을 다룰 것입니다. 장소는 서울의 전통시장 30곳입니다. 취재 원칙은 하나 입니다. '시장문을 열 때부터 닫을 때까지'. - 기자 말

손명숙 할머니. 눈에 보기에도 작은 공간이다. 하루를 이 작은 공간에서 일을 한다. 좁고 불편해 보인다는 말에 할머니는 "두 사람이 앉아도 남을 만큼 넓직하다"며 웃으신다.
 손명숙 할머니. 눈에 보기에도 작은 공간이다. 하루를 이 작은 공간에서 일을 한다. 좁고 불편해 보인다는 말에 할머니는 "두 사람이 앉아도 남을 만큼 넓직하다"며 웃으신다.
ⓒ 사진작가 김진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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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전 5시, 서울 중구 황학동에 위치한 신당역 위 도로에는 시내버스 외에 승용차가 거의 다니지 않는다. 말 그대로 고요하다. 이곳의 새벽을 여는 사람들은 신당역 2번출구에 위치한 서울중앙시장의 야채, 식자재 상인들이다. 시설현대화로 아케이드를 설치하고 천장에 조명을 설치했지만 아직 형광등을 켤 시간이 아니다. 어슴푸레한 어둠 속에서 아침 손님을 받으려는 상인들의 모습이 분주하다.

서울중앙시장에서 70년 이상을 살아온 터줏대감 손명숙(78·여·서울 황학동) 할머니도 이 시간에 시장에 나온다. 가게에서 몇 걸음만 걸으면 집들이 모여 있는 골목이 나오는데 그 골목을 들어서서 첫 번째 집이 할머니가 평생을 살아온 집이다.

집에서 야채를 꺼내 오고 상점 자리를 구분해둔 덮개를 걷는다. 평소에는 매일 오전 2시쯤 도매상이 그날 판매할 물건을 배달하는데 요즘은 3~4일마다 한 번씩 물건을 받는다. 휴가철이라 손님이 뜸하기 때문이다(기자가 손명숙 할머니를 만난 날은 지난 8월 19일이다). 종이상자 등 폐지를 모아 한쪽 구석에 두고 척척 정리하면 마무리까지 20여 분이 걸린다. 그제서야 할머니는 텔레비전을 켜며 말을 꺼냈다.

"시장 주변에 은행이나 회사들이 있어. 거기서 아침 식사를 준비하는 사람들 중 우리 집 단골이 많아. 그 사람들 때문에 새벽 장사를 거를 수가 없어. 요즘은 휴가철이라 손님들이 뜸하긴 해도 매일 이 시간에 눈이 떠지니 나와 있는 거지."

할머니의 말대로 오늘은 새벽 장사가 영 신통치 않다. 오전 5시 30분쯤 정리를 끝내자 40대 여성이 양파 2개를 사간다. "밤새 음식점에서 일을 하고 아침 찌개거리를 사간다"는 그는 할머니가 아침 식사를 하기 전까지 방문한 유일한 손님이었다.

6·25 한국전쟁도 시장에서 겪었다

손 할머니는 오전 7시 30분부터 아침 식사를 준비한다. 1분 거리인 집에서 가져온 김치찌개와 오이절임, 깻잎이 반찬의 전부다. 이를 1인상에 올리는데 그 상 역시 간신히 좌판 뒤 의자에 올라간다. 할머니는 식사를 하며 서울중앙시장과 자신의 역사를 들려줬다. 손 할머니는 광희국민학교, 경성무학공립고등여학교(지금의 광희초등학교, 무학중·여고)를 나온 서울 중구 토박이다.

"내가 34년생인데 내 기억으로 9살 때부터 어머니가 여기서 장사를 하셨어. 그때는 다들 가난하니 땅바닥에 물건을 두고 팔았지. 그런데 전쟁이 난 거야. 전쟁이 나고 포탄이 떨어지니 여기 있던 집들이 다 불탔어. 그땐 다 초가집이었거든. 이웃들은 피난도 갔지만 우리 가족은 집 아래에 땅굴을 파고 숨어 있었어. 피난가다 공산군에 잡히는 사람도 많아서 그냥 있었던 거지. 그렇게 지내다 전쟁이 끝나고 공병들이 집을 만들어줬어. 그렇게 지은 집이 지금 우리 집이야. 그때부터 지금까지 한 집에서만 살았어."

할머니의 말처럼 주변 상인들은 한결같이 시장의 오랜 역사에 자부심을 갖고 있었다. 6·25 전쟁이 일어나기 전부터 형성됐던 이 시장은 1950~60년대에 전성기를 누렸다. 그때에는 신당역에서 청계천까지 약 600미터(m)의 큰길이 상인들로 꽉 찼다고 한다. 현재는 그 거리의 반이 뚝 잘려 청계천부터 300미터는 가구점과 주방용품점이 모여 있으며 나머지 300미터만이 지금의 서울중앙시장이다.

손명숙 할머니의 장사 품목 변천사


하루에 얼마버는지는 중요하지 않다. 일 할수 있다는것이 오히려 더 중요하다는 손명숙 할머니.
 하루에 얼마버는지는 중요하지 않다. 일 할수 있다는것이 오히려 더 중요하다는 손명숙 할머니.
ⓒ 박기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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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은 양파와 당근 등의 야채, 다시마와 미역 줄기, 국산 천일염과 중국산 소금, 손수 만든 빨래 비누가 할머니가 다루는 품목의 전부다. 손 할머니는 계절에 따라 판매하는 야채를 바꾼다. 요즘은 날씨가 더워 오래 보관할 수 있는 양파, 당근을 판매하지만 날씨가 선선해지면 다른 야채류도 판매할 것이다. 할머니가 처음부터 야채 장사를 시작했던 것은 아니다. 스물아홉 꽃다운 나이에 시작한 첫 장사는 옷장사였다. 왜 옷장사를 하게 됐냐고 묻자 할머니는 청춘을 떠올리는 듯 슬며시 미소를 짓는다.

"그게 내가 하고 싶었던 장사였거든. 전쟁 때 다 불에 타니 옷이 귀하잖아. 그래서 장사도 잘 됐어. 또 옛날에는 옷 종류도 단순해서 멋이 없었거든. 동대문에서 직접 예쁜 옷을 골라 가져오는 게 재미있었어. 내가 옷 보는 안목이 있는지 손님이 많은 편이었어. 그렇게 57살까지 했으니 거의 30년을 한 거지."

손 할머니는 30년 전에 영구 눈썹 화장을 했다. 할머니의 진한 눈썹과 뽀얀 피부는 옷가게 사장님이란 직업과 잘 어울렸다. 그런 손명숙 할머니가 야채 장사를 시작한 계기는 무엇일까?

"내가 아들만 둘이 있는데 작은 아들이 지금 내 자리에서 도매로 야채를 팔았어. 그때 나는 여기 바로 뒤 상가에서 옷장사를 하고 있었지. 그렇게 같이 장사를 하다 아들이 결혼을 했고 새로운 일을 하겠다고 시장을 떠났어. 내가 그때부터 야채를 조금씩 팔았는데 이제는 내 유일한 상품이 이것뿐이네."

야채 장사를 처음 시작한 때를 생각하니 어려웠던 점들이 먼저 떠오른다.

"야채 장사를 시작할 땐 단골이 없는 게 가장 힘들었어. 그래서 처음에는 손해를 보더라도 남들보다 싸게 팔고 상처난 야채 등 못 파는 것들을 덤으로 줬지. 그러다보니 자연스레 단골이 늘더라고. 내가 쉬는 날 단골이 찾아올까봐 나는 쉬는 날도 없어."

할머니가 단골을 잡는 노하우는 이뿐만이 아니다. 손 할머니는 새벽 한가한 시간에 양파 껍질을 까곤 한다. 할머니는 "직장인들, 남자들은 까놓은 양파를 많이 사간다"며 간단하지만 쉽게 손님을 끄는 방법을 밝혔다. 그렇게 만든 단골 손님은 보통 10년차, 오래 된 손님들은 20년, 30년 된 사람도 많다. 손 할머니네 가게는 연중무휴다. 서울중앙시장은 매달 셋째 주 일요일을 휴일로 정하고 있다. 그러나 단골 손님이 헛걸음을 할까봐 손 할머니는 하루도 쉬는 날이 없다.

사랑방이 된 손명숙 할머니의 야채가게


이날 오후 손 할머니의 오랜 단골인 박계순(79·여·서울 왕십리2동) 할머니가 가게를 찾았다. 박 할머니는 손 할머니보다 한 살이 많은데 손 할머니가 옷장사를 할 때부터 단골이었다. 박 할머니는 말 안장이나 가방, 허리띠 등 가죽 제품을 만드는 공장을 운영한다. 공장 운영이 한창 잘 되던 1970년대에 그는 50~60명이던 공장 직원들의 반찬재료를 사러 서울중앙시장을 찾았다고 한다.

"옛날 여기서 우리 직원들 반찬을 준비할 때에 여기(서울중앙시장)는 엄청 컸지. 행당역 근처에 행당시장이 있었지만 일부러 여기 와서 살 정도였어. 반찬 때문에 왔는데 손명숙 할머니네 옷가게 옷이 예쁘더라고. 내 옷, 자식 옷을 사면서 손 할머니와 친해졌지. 나는 지금 북한산에 있는 노적사에서 일을 돕고 있는데 오늘도 거기를 갔다가 집에 가기 전에 놀러왔어."

두 할머니는 좁고 딱딱한 의자에 함께 앉아 있으면서도 불편한 기색을 찾아볼 수 없었다. 도란도란 얘기도 나누고 텔레비전을 함께 보며 시간을 보내다 보니 동네 주민들이 하나둘 모여든다. 박 할머니 외에도 손명숙 할머니의 야채가게에 들르는 사람들은 반이 손님, 반이 동네 주민들이다.

직접 찾아오는 주민들 외에도 손 할머니는 길을 가는 사람 중 친구들을 붙잡아 앉아서 쉬다 가라고 손을 끈다. 산책 겸 시장을 걷는 동네 주민들은 앉아 쉬어가기도, 잠시 서서 인사를 나누다 떠나기도 한다. 어떤 용무로 여길 찾든 손 할머니와 이야기를 나눈 사람들은 얼굴에 미소를 충전하고 간다.

"장사가 편해, 이게 얼마나 재밌는데"

친구분과 TV를 보고 있는 할머니.
 친구분과 TV를 보고 있는 할머니.
ⓒ 박기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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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계순 할머니의 주름을 보니 문득 손 할머니의 나이가 실감이 난다. 손 할머니는 올해 우리 나이로 팔순이다. 경로당이나 노인복지관을 찾아 남은 삶을 즐기기만 해도 좋을 듯한데 아직 장사를 하시니 괜히 마음 한 구석이 불편해진다. 이런 말을 하자 손 할머니는 빙긋 웃으며 대답한다.

"나는 경로당도 싫고 복지관에 가는 것도 별로야. 그런 데는 왠지 답답해. 장사하며 혼자 독립적으로 사는 게 얼마나 좋은데. 장사가 제일 편안해. 나보다 나이 많은 할머니들도 남들 신경 쓸까봐 자식들 집 나와 혼자 사는 사람이 많아. 나는 장사를 해서 자식들 손 벌리지 않을 수 있으니 형편이 나은 편이지."

손 할머니는 장사를 '목적지'라고 부른다. 특별한 여가 시설을 찾지 않고도 여기서 재미를 느끼기에 다른 것에 한눈팔 새가 없다. 그런 할머니에게는 항상 함께하는 친구가 있다. 아는 사람이 주고 간 새끼고양이 '나비'는 하루 온종일 할머니 곁에 있다.

할머니는 매일 아침 야채가게 맞은편 닭집에서 나비의 먹이를 얻어 오고 마실 물도 갈아 준다. 나비는 할머니가 쉴 때 할머니의 슬리퍼에 올라가 장난을 친다. 할머니도 괜히 발로 나비를 괴롭히는 게 마치 장난기 많은 소녀같다. 할머니가 나비를 보는 표정이 왠지 특별해 궁금증이 생겼다. 할머니는 나비를 다시 한번 보며 엊그제 나비가 돌아온 얘기를 했다.

"시장에서 나비를 키우다 보니 얘가 밤에는 좌판 위에 올라가 장난을 치기도 해서 신경이 쓰여. 하루는 얘를 데리고 왕십리까지 걸어가 그냥 두고 혼자 왔지. 그렇게 한참이 지났어. 그런데 엊그제 새벽에 가게로 나오니 나비가 있는 거야. 그게 열사흘 만이야. 밥도 잘 못 먹었는지 홀쭉해져서 마음이 아팠어. 얼마나 나한테 애교를 부리던지 다시 내보낼 수가 없겠더라고. 조금 크면 남을 줘야겠지만 그때까지는 잘 키워주려고."

꼬마고양이 나비와, 단골 손님, 친구들과 함께하면 할머니의 하루는 금세 지나간다. 오후 여섯 시께 장사를 정리하면 손 할머니의 하루 일과도 거의 끝이 난다. 집에 들어가 씻고, 저녁 식사를 하면 날씨가 선선해질 오후 7~8시쯤. 이때 청계천을 한 바퀴 걷고 돌아오는 게 하루의 마무리이자 할머니만의 건강 유지 방법이다.

손명숙 할머니의 하루 시간표는 이렇게 짜여 있으며 어느새 20년이 넘는 동안 이 생활을 계속해왔다. 그렇게 할머니는 팔순이 됐고 그동안 할머니의 삶의 터전은 조금씩 변화해 지금의 서울중앙시장이 됐다. 서울중앙시장만의 특별한 '나이테'를 느끼려면 손명숙 할머니의 삶을 엿보는 것이 가장 좋은 이유다.

덧붙이는 글 | 이 연재는 김진석 사진작가가 기획하고, 세명대 저널리즘스쿨에 재학 중인 안형준(29), 임경호(29), 박기석(27) 3명이 취재를 진행합니다.



태그:#서울중앙시장, #손명숙 할머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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