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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의 목적이 무엇이든 여행은 고행이면서 또한 자신만의 축제다. 10박 12일라는 시차를 활용한 기묘한 날짜 계산이 언뜻 이해하기 어렵지만 여행의 색다른 묘미도 있었다. 8월 22일 체코 프라하에서 1박하고 8월 23일에는 독일의 중세의 모습이 많이 남아 있는 뉘른베르크와 로텐부르크를 거쳤다.

뉘른베르크는 나치의 전당대회가 열렸던 곳이다. 전쟁 중 집중 포화를 맞아 도시가 거의 파괴되었으나 전후에 남아있는 성곽과 건물의 원형을 살려 복원한 도시라고 했다. 때문에 전쟁의 흔적은 찾을 수 없는 중세의 모습을 볼 수 있는 도시였다.

로텐부르크는 도시라기 보다는 성곽에 둘러싸인 우리나라 면 소재지 정도의 작은 마을이었는데 외형상 정말 깜찍한 동화속의 마을이었다. 성 안의 도로와 건물 그리고 크리스마스 축제로 알려진 도시답게 크리스마스와 관련된 물품을 파는 가게 등이 깊은 인상을 남긴 마을이다. 아내도 아주 기억에 남을 도시라고 이야기한다.

23일에는 로텐부르크에서 1박 하고 1시간 거리의 뷔르츠부르크로 이동하여 레지덴츠 궁전의 정원, 마리엔 베르크 요새 구경, 그리고 프랑크프르트 시청 앞 광장에서 여행의 마지막 일정을 소화하고 공항으로 이동한 것은 오후 3시였다.

바쁘게 움직였던 10일이었다. 그리고 돌아온 지 열흘이 되었다. 벌써 여행의 기억은 헷갈리기 시작한다. 좀 더 시간이 지나면 많은 부분이 희미해지고 더러는 뒤죽박죽된 기억으로 남으리라. 허지만 부분적으로 지워지지 않은 기억이 있다면 그것은 남은 내 인생에 활력소가 되고 창조의 원천으로 남을 것이다.

뉘른베르크는 2차대전시 파괴되었으나 거의 복원되었다.
달리는 버스에서 외성의 모습을 잡은 사진이다.
▲ 뉘른베르크성 뉘른베르크는 2차대전시 파괴되었으나 거의 복원되었다. 달리는 버스에서 외성의 모습을 잡은 사진이다.
ⓒ 홍광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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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동안 8회에 걸친 여행 소감을 마무리하면서 빠진 부분을 덧붙이고자 한다.

전반적으로 같은 시기의 우리나라 기후보다 약간 낮은 편이었다. 우리가 갔던 날의 부다페스트는 섭씨 39도까지 올랐다는데 습기가 덜한 탓인지 크게 더위를 느낄 수 없었다. 그밖의 날은 거의 섭씨 30도 이하였고 아침에는 20도 이하까지 떨어진 적이 있었다. 8월 중순 여행 시에는 긴팔 티셔츠나 바람막이 한 두벌 가져가면 무리 없을 것으로 본다.

동유럽은 흐린 날이 많다고 했는데 우리는 아우슈비츠를 다녀오는 동안에만 비를 구경했다. 여행사의 인솔자도 자기 경험으로 여행 중 그렇게 날씨가 좋았던 것은 처음이라는 말을 몇 번이고 했다. 신발은 운동화와 샌들을 갖추었는데 주로 샌들을 많이 신었다.

정면은 뉘른베르크 다리 옆의 오래된 병원. 지금은 양노원으로 쓰인다.
▲ 성양노원 정면은 뉘른베르크 다리 옆의 오래된 병원. 지금은 양노원으로 쓰인다.
ⓒ 홍광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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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흘 동안 같은 버스를 타고 이동했기에 교통 사정을 정확하게 알기는 어려울 것이다. 우선 고속도로 장거리 운행 시 버스는 2시간마다 쉬어야 하는데 처음에는 15분, 나중에는 30분을 쉬도록 하는 강제규정이 있다고 했다. 자주 검문하는 것은 아니지만 경찰에 걸리면 벌금을 문다고 했다.

독일 하이델베르크에서 스위스 루체론까지는 5시간가량 거리로 두 번 쉬는 코스이다. 총 45분을 쉬어야 한다는 말이었다. 인솔자는 15분 쉬고 30분 쉬느니 45분 쉬는 것이 어떻겠느냐고 의견을 묻더니 기사와 교섭 끝에 한 곳에서 느긋하게 45분을 쉬기로 했다. 간식도 먹고 맥주도 한잔 했던 시간이었다. 버스의 기사는 5일 만에 교체되었다.

동유럽 역시 국경의 개념은 거의 없었다. 그러나 도로 사정은 잘사는 나라와 못사는 나라의 차이가 있었다. 못사는 나리일수록 도로의 노면이 거칠었기 때문이다. 잘사는 나라는 도로에 열선을 깔아 눈 내릴 때를 대비한다고 들었다. 대중교통을 이용해볼 기회는 프라하에서 트램이라는 전차를 탔을 때뿐이다.

일반적으로 도시의 역사가 오래되었기 때문에 각국의 도심은 도로가 좁은 편이었다. 동유럽에서는 런던처럼 2층 버스는 볼 수 없었는데 도심에는 대형 차량 통행을 제한하는 곳이 많았다. 우리나라처럼 불법 주차가 없었다. 그럼에도 그 좁은 도로에 자전거 도로를 따로 만들어 자전거 통행자를 보호해주고 있었다. 현지 가이더는 자전거에 부딪치면 약도 없다는 말로 자전거도로의 보행을 막았다.

10일간 버스로 이동하는 과정에서 작은 교통사고라도 전혀 못 보았다. 교통법규를 지키는 국민의 의식 수준은 우리나라보다 한참 앞섰음을 알 수 있었다. 사람 중심의 질서, 무단 주정차가 없는 현상은 본받을 점이라고 본다.

크리스마스 광장의  과일가게. 이곳에서 토마토를 구입하였다.
독일 농산물을 자랑하는 청년을 만나고.
▲ 뉘른베르크 노점 크리스마스 광장의 과일가게. 이곳에서 토마토를 구입하였다. 독일 농산물을 자랑하는 청년을 만나고.
ⓒ 홍광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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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본 알프스 산맥의 봉우리들은 청년기의 산처럼 거칠고 험했으며 경사도 심했다. 슬로바키아의 타트라 지방의 산도 낮은 편이지만 알프스의 봉우리와 비슷했다. 들이 넓으니 농사가 잘 될 것 같지만 기후조건이 맞지 않아 잘 되는 농산물이 적다고 했다.

감자와 밀 해바라기 포도 호프 등을 주로 농사지으며 나라마다 고기가 주식의 하나인 탓인지 축산도 발달한 편이었다. 인구 밀도가 낮은 탓인지 우리나라 같으면 아까운 땅들이 많이 놀고 있었다.

정육점을 알리는 조형물이 예술작품이었다.
▲ 로텐부르크 거리의 간판 정육점을 알리는 조형물이 예술작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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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판이 아름다운 집의 가게 모습.
▲ 정육점 간판이 아름다운 집의 가게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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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부 유럽 여행 시 스파게티 종류의 음식에 질려 고역이었다면 이번 동유럽 여행에서 음식에 대한 거부감이 거의 없었다. 첫째는 개인적으로 동유럽의 음식이 식성에 맞았기 때문이라고 하겠지만 그보다는 동유럽 음식이 투박하면서도 간이 맞았기 때문이었다고 생각한다. 컵라면이나 즉석밥을 준비해온 일행도 있었으나 그럴 필요는 없다고 본다.

아침은 호텔식이었는데 치즈와 쏘시지 햄 등 육류제품이 많았는데 우리나라에서는 그런 것을 거의 먹지 않았던 나도 입에 맞았다. 특히 술은 맥주나 와인 종류가 많아 다양하게 맛볼 수 있었기에 소주를 준비하는 일은 없었으면 한다.

술값은 국내보다 비싼 편으로 보였다. 맥주 1잔에 2유로에서 3유로(공짜 안주를 주는 곳도 많지 않음), 와인은 종류에 다라 다르지만 1잔에 3유로(약 4500원)정도인데 2잔쯤 마시면 여행의 기분을 살릴 수 있을 것이다.

숙소는 주로 3성급 호텔을 이용했는데 서양의 3성급 호텔은 한국의 깨끗한 모텔 수준으로 보면 될 것이다. 일본 중국 서유럽 여행 시 4성급 이상의 호텔을 이용했는데 그때에 비해 다소 떨어지긴 했으나 괜찮았다.

숙소의 격에 따라 같은 코스의 여행일지라도 많은 경우 1백 만 원 차이가 난다. 숙소에 실내화는 없고 면도기를 제공하는 곳도 없다. 어떤 곳에서는 고체비누조차 제공하지 않는 곳도 있었다. 동유럽 여행을 계획하는 분들은 참고 했으면 한다.

농촌에 사는 사람이라 각국의 농업에 관심이 많았는데 자세히 알 기회는 거의 없었다. 현지 가이드에게 들은 말이 전부일 수밖에 없을 것이다. 유럽은 거의 완전하게 친환경 농업을 한다고 들었다. 그리고 제철에 나오는 음식을 소중하게 여긴다고 했다. 때문인지 비닐하우스는 찾을 수 없었다.

그리고 뉘른베르크 크리스마스 광장의 농산물 가게에서 만난 농민도 기억에 남는다. 토마토와 작은 사과도 저울에 달라 값을 매기는 젊은 상인은 모든 농산물의 안전성을 강조했다. "natural", "clean" 정도의 짧은 영어로 오간 대화만으로도 자기나라 농산물에 대한 자부심이 대단함을 느낄 수 있었기 때문이다.

운 좋게 오스트리아 빈에서 7일 만에 열리는 시장을 구경할 기회가 있었다. 현지 가이더의 설명을 종합해보면 서구 유럽 여러 나라는 물론 오스트리아를 비롯한 동유럽의 여러 나라도 식량은 물론 과일 채소 등을 자급하고 있으며 특히 GMO식품의 수입 자체를 금지하고 있다고 했다.

짧은 시간에 자신들의 안전한 먹거리를 자급하려는 동유럽사람들의 의지와 노력을 보았다고 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그러나 자꾸  GMO 농산물을 무분별하게 수입하는 우리 정부의 농업정책, 우리의 식량 자급률, 그리고 농촌 현실이 크게 보였다. 다시 유럽 농촌을 직접 볼 수 있는 기회가 있었으면 싶다.

서유럽도 그렇지만 동유럽 역시 우리처럼 현란한 간판으로 손님을 유인하는 가게는 없었다. 가게를 상징하는 조형물을 간판으로 내건 모습도 좋았고, 길거리까지 물건을 진열하는 공격적인 모습도 찾을 수 없었다.

시내의 일반 가게도 우리나라 백화점 수준으로 단정하고 깔끔하게 상품을 진열하고 정가제를 실시하고 있었던 점도 우리가 배울 점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또 많은 가게들이 대를 이어 운영한다는 말도 들었는데 확인할 길은 없어 유감이었다.

이번 여행의 일행이 모여 기념사진도 찍었다.
▲ 레지턴츠 궁전 이번 여행의 일행이 모여 기념사진도 찍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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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 여행의 일행 중에는 자기를 내세우는 사람, 자기 생각대로 말하여 일행 모두에게 사람에게 불쾌감을 주는 사람, 까닭 없이 인솔자에게 부담을 주는 사람, 느린청을 부리는 사람, 호텔 식당에서 과일을 챙겨 담는 사람 등이 간혹 있었는데 이번 여행에는 그런 사람을 볼 수 없었다.

4명씩 세 가족, 여성 친구 한 쌍, 그리고 5쌍의 부부로 이루어진 24명이었는데 처음 만났고 앞으로 다시 만나기 어려운 사이임에도 서로 양보하고 나누어 먹을 줄 아는 사람들이었기에 즐거운 여행이 될 수 있었다고 본다. 인천 송도에 산다는 어떤 이는 어느 날 저녁 식사 자리에서 일행에게 와인 한잔씩 쏘는 모습도 보였다.

금번 인솔자는 지금까지 만났던 인솔자들에 비해 유능하고 친절했기에 편안하고 더 즐거웠다고 기억한다. 독일 침공시 폴란드 바르샤바를 배경으로 하는 영화 <피아노>와 <사운드 오브 뮤직> <아마데우스> 등을 도시와 연결하여 적절하게 보여주는 센스에 일행들도 좋았다는 호평이었다. 아내는 오랫동안 기억에 남을 것 같다며 가을에 고구마와 야콘을 캐면 한 박스 보내주겠다고 주소까지 따왔다.

인위적인 모습이 거슬리는 점도 있었지만 잘 다듬어진 정원이었다.
▲ 레지턴츠 궁전의 정원 인위적인 모습이 거슬리는 점도 있었지만 잘 다듬어진 정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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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유럽에는 자국 화폐를 주로 쓰면서 유로를 제한적으로 통용하는 나라가 있다. 폴란드, 헝가리, 체코 등인데 그곳에서도 사전에 유로 통용 여부를 확인하면 되었고 물건을 살 일이 없으면 불편할 일은 없다.

개인적으로 외국에서 쇼핑하지 않기로 작정한 터라 물건을 구입한 것이 아주 적다. 오스트리아에서 볼프강 성당에서 아내의 기념 묵주, 모차르트 기념 초코렛 네 봉지, 헝가리에서 관절염에 좋다는 약, 독일에서 압력밥솥 뚜껑의 고무벨트를 구입한 것과 부족한 비타민을 보충할 목적으로 몇 번 길가의 가게에서 토마토 사과 등 과일을 구입하였고 나는 캔 맥주 한 번 사먹었을 뿐이다.

그러나 가게 구경은 부지런히 했다. 빈에서의 명품가게, 문구를 파는 가게, 프라하의 면세점, 부다페스트의 면세점, 독일 뉘른베르크의 옷과 주방용품 가게, 로텐부르크의 크리스마스 용품점, 프랑크푸르트의 면세점 등 물건을 확인하고 가격을 살폈는데 명품의 디자인은 좀 더 독창적이었으나 옷이나 문구류 등은 우리나라 제품보다 낫게 보이지 않았다. 면세점이라고 들린 곳이 상품도 다양하지 못하고 가격도 싼 편은 아니었던 것 같다.

요새의 정원과 아래쪽의 강 그리고 건너편의 시가지가 한폭의 그림이었다.
▲ 마리안베르크요새 요새의 정원과 아래쪽의 강 그리고 건너편의 시가지가 한폭의 그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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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유럽 여행 시에 보기 힘들었던 중국, 아랍계, 인도의 관광객들이 많았던 점은 특기할 만 했다. 특히 중국의 관광객들은 티를 내며 다니는 통에 어디서나 눈에 띄었는데 중국이 유럽을 먹여 살린다는 말이 나올 정도라고 했다.

여담이지만 오스트리아 정부는 '무례한 중국 관광객들의 교육을 부탁한다'는 공한을 중국에 보냈다가, '그렇다면 오스트리아에 중국관광객을 보내지 않겠다'는 중국의 답변에 '자신들의 요구를 없었던 것으로 해달라'고 사정했다는 이야기도 들렸다.

동유럽 사람들의 차림은 서유럽에 비해 조금 더 보수적으로 보였다. 젊은이들 복장도 그렇지만 길거리에서 남녀의 스킨십도 서유럽에 비해 흔하지 않았다. 현지 가이드의 말에 의하면 현지인들이 외국 관광객들에 대한 친절도는 낮은 편이라고 했다. 그래도 눈이 마주치면 인사를 건네는 경우는 그쪽 사람들이었다.

10일간 여행의 마지막 장소였다.
▲ 프랑크푸르트 시청 10일간 여행의 마지막 장소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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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매치기가 많다는 말을 들었으나 조심했던 덕인지 이번에도 탈이 없어 다행이었다. 아마 우리가 가난한 여행자들로 보였는지 모를 일이다. 중국인들이 많이 당했다는 소문이 들렸다.

동유럽 여행, 오래 기억에 남을 것 같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한겨레 필통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태그:#뉘른베르크, #로텐부르크, #레지던츠궁전, #마리안 요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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