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협동조합 붐이다. 작년말 협동조합기본법이 만들어진 이후 더욱 또렷하다. 서울시를 비롯해 전국적으로 이미 수천여개의 협동조합이 세워졌고, 준비중이다. 특히 경기침체기 일자리 만들기의 새로운 경제모델로 떠오르면서 큰 주목을 받고 있다. <오마이뉴스>는 지난 2010년부터 협동조합 모델을 주목해왔다. 이후 이탈리아 볼로냐와 캐나다 퀘벡주 등의 해외와 국내 사례를 심층적으로 다뤘다. 이번엔 국내 대표적인 소비자협동조합인 iCOOP(아이쿱) 협동조합 조사여행단(단장 이희한)에서 캐나다 협동조합의 원조격인 서스캐처원을 방문해 그들의 모습을 전하려 한다. [편집자말]
캐나다 서스캐처원주의 최대도시 새스커툰에서 동쪽으로 2시간을 달리면 호수를 낀 작은 마을이 나온다. 주로 곡물농사를 짓는 인구 320명의 러노어호수(Lake Lenore) 마을. 이곳에선 거의 모든 일들이 협동조합을 통해 이뤄진다.
 캐나다 서스캐처원주의 최대도시 새스커툰에서 동쪽으로 2시간을 달리면 호수를 낀 작은 마을이 나온다. 주로 곡물농사를 짓는 인구 320명의 러노어호수(Lake Lenore) 마을. 이곳에선 거의 모든 일들이 협동조합을 통해 이뤄진다.
ⓒ iCOOP(아이쿱) 협동조합 조사여행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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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시인은 캐나다 서부 서스캐처원의 망망 도로를 두고 '시(詩)에 영감을 준 여행지'로 꼽았다. 광활한 대평원에 내리쬐는 5월의 태양빛에 눈은 아리고, 지평선을 따라 쭉 뻗은 2차선의 도로는 아무리 달려도 끝나지 않을 것 같아 무감각의 연속이기만 하다. 이 도로에서 시인은 '돌아보면 지나온 길도 오래 오래 아득해서 그저 아름답기만 하다'고 했다.

새스커툰에서 동쪽으로 2시간 남짓을 달려 도착한 러노어 호수(Lake Lenore) 마을은 한 눈에 보기에도 소박한 도시다. 주민 320명의 작은 마을로 주로 곡물농사를 짓고 산다. 마을회관에 들어서자 조그만 바비큐 햄버거 자선파티가 열리고 있었다. 어린아이부터 할머니, 할아버지까지 동네 주민 거의 모두가 나온 것 같았다. 

러노아 주민들의 눈빛에는 이방인에 대한 경계를 느낄 수 없을 정도로 따뜻하고 친절했다.  이날 행사는 암 연구를 지원하고 마을 사업을 후원하는 기금 모금 파티였다. 주민들이 5캐나다 달러를 내고 점심을 햄버거로 즐기며 마을의 필요한 기금을 마련한다고 한다.

이날 행사에 주민 200명이 참여했고, 약 1000달러 이상의 기금이 모아졌다. 말그대로 동네 잔치다. 작년에는 기금을 모아 아이들이 놀 수 있는 놀이터를 만들었다. 이 소박한 시골마을에 8개의 협동조합들이 있다. 또 이들 협동조합끼리 협동과 연대를 통해 마을 전체가 호혜와 상생으로 움직이고 있었다.

러노어 호수마을 사람들이 자선파티를 위해 모였다. 거의 모든 마을 사람들이 참석했다. 이날 행사에 200여명이 잠석했고 1000달러(캐나다)이상을 모금했다. 이곳 역시 협동조합으로 운영된다.
 러노어 호수마을 사람들이 자선파티를 위해 모였다. 거의 모든 마을 사람들이 참석했다. 이날 행사에 200여명이 잠석했고 1000달러(캐나다)이상을 모금했다. 이곳 역시 협동조합으로 운영된다.
ⓒ iCOOP(아이쿱) 협동조합 조사여행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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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20명 러노어 마을 사람들의 협동이 가져온 행복

러노어후수 마을의 모든 행사에 빠지지 않는 이름이 있다. 바로 '어드밴티지 신용협동조합(Advantage Credit Union)'과 '러노어 농협' 이다. 이들은  러노아 마을에서 협동조합간 협동으로 지역사회에 지원하는 역할을 톡톡하고 있는 중요한 협동조합이다. 

어드밴티지 신협은 1960년대 초 러노어에 생긴 금융기관인 몬트리올은행이 철수하면서 주민들이 직접 나서 출자금을 모아 신협을 만들었다. 몬트리올 은행의 철수는 당시 지역주민들에게도 큰 충격을 줬다. 신협 매니저 캐시 호언은 "몬트리올 은행이 우리 마을을 버리고 떠났다"고 말할 정도였다.

50년의 역사를 가진 이 신협은 조합원수 800여 명. 이 지역의 거의 모든 주민들은 이곳을 통해 금융거래를 한다. 주로 농민인 주민들은 영농관련 자금을 빌린다. 자선파티 펀딩, 매년 서스캐치원협동조합연합회 주최 '청소년 협동조합 캠프'에 매년 4명씩 참가비(1인당 625달러)를 지원하기도 한다. 이같은 마을후원사업에 대한 지원은 별도의 마을관계위원회에서 결정하고 있다.

신협과 함께 이곳 농협도 빼놓을수 없다. 이곳 마을에서 가장 맏형격인 러노어 농협은 큰 창고에 각종 종자와 비료 등 농자재, 주유소 운영, 건축자재 판매 등을 주요사업으로 하고 있다. 비료를 담은 여러개의 큰 사일로와 거대한 농기계가 광활한 대평원 밀밭지대에 온 것을 실감케 하였다. 

러노어농협의 연 매출액은 2500만달러 (한화 280억 원)이며 이 가운데 주유소 비중이 가장 크다고 한다. 945명의 조합원중 779명이 이용을 하고 있으며 이사회는 6명으로 구성되어 있다.

은행·식료품 매장 문닫자, 주민들이 직접 협동조합으로 사업

러노어 생협매장의 모습.
 러노어 생협매장의 모습.
ⓒ iCOOP(아이쿱) 협동조합 조사여행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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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노어 마을 입구에 '쿱 푸드(COOP FOOD)' 마크가 또렷한 '생협 판매장'이 있었다. 이 곳의 역사를 들여다보면 주민사이, 협동조합 끼리의 협동과 호혜가 몸에 밴 주민들의 협동이 빚어낸 모습이 그려졌다.

1996년 11월 이 마을의 유일한 식품매장이 문을 닫는는 소식이 전해지자 주민들은 불안했다. 이 식품매장이 폐업하면 식료품을 구입하기 위해 주민들은 33km나 떨어진 홈볼트시까지 사러가야 할 처지이기 때문이다. 

주민들은 곧장 회의를 소집하고 가게를 살리기 위해 위원회를 조직했다. 매장을 운영할 법적 주체가 필요했기에 자연스럽게 협동조합을 세우자는 의견으로 모아졌다. 주민들의 힘으로 자금을 조직하고 마을회관 협동조합의 무상 기금 제공, 어드밴티지신협의 저금리 대출, 러노어농협의 상품대금 지원, 주민 1가당 500달러 출자로 인수 준비 1년여만에 협동조합 매장으로 문을 열었다. 우리 연수단이 방문하기 2주전 주민 110명이 1장씩 지붕 판넬을 기증하고, 32명이 토요일에 모여 직접 교체 공사할 정도로 협동이 일상화되어 있었다.

농사를 지으면서 이 마을 생협이사장이고, 서스캐처원협동조합연합 이사인 베럴 바워씨는 "식품매장을 인수하는데 주민들의 협동으로 가게인수가격을 20만 달러에서 13만달러까지 내려서 협상했다"고 회상했다. 최근에는 판매장 옆에 작은 '온실협동조합'을 만들어 각종 꽃과 오이, 토마토 등의 종자를 판매하고 있다.

이 온실협동조합의 태동에도 이 마을 신협의 지원이 컸다. 겨울이 긴 대륙의 특성상 1년에 5~6월 2개월만 문을 연다. 2개월만 운영하는데도 성공적이어서 연 2만 달러 이상의 순이익을 올려 생협매장을 지원한다. 

자선파티를 연 마을회관도 협동조합... 작은 것 하나하나부터 협동

러노아 농업협동조합이 운영중인 비료저장 탱크.
 러노아 농업협동조합이 운영중인 비료저장 탱크.
ⓒ iCOOP(아이쿱) 협동조합 조사여행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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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선파티가 열렸던 이 마을회관도 '커뮤니티홀 협동조합'이다. 1979년 마을회관을 새롭게 단장하면서 필요한 자금을 주민들이 출자로 마련하여 협동조합 방식의 운영을 시작하였다고 한다. 회관 안쪽으로는 두 개의 볼링레인과 간단한 오락-운동기구가 있는 것으로 보아 지역  회의장소, 피로연, 장례식 뿐만 아니라 레크레이션 장소로도 활용되고 있다.

러노아 마을에서 부러웠던 것은 '어린이 보육협동조합'이다. 2011년 정부지원과 이 마을 각 협동조합의 지원으로 조합원 28명이 학교공간을 리모델링하여 문을 열었다. 현재 4명의 교사가 15명의 아이들을 돌보며 자모들이 이사회를 구성하여 운영을 하고 있었다. 그 밖에도 겨울에 호수에서 어업을 하는 '러노어 화이트피시협동조합', 농민들의 농산물 재해 대비 '보험공제협동조합'이 있다.

러노어마을에는 보육, 마을회관, 식품매장, 원예, 농협, 신협, 농민공제, 어업 그리고 학교가 있어서 '마을에서 키우고 자란다'란 말을 실감나게 한다. 서스캐치원 대평원의 작고 소박한 시골마을 보고 있자니 마치 오래된 미래를 보고 있는 듯하다. 

그러나 이 오래된 미래가 마냥 밝지만은 않아 보인다. 우리나라 농촌도 그러하듯 젊은이들은 농사를 이어받지 않고 도시로 나가면서 인구도 줄고, 협동조합의 생활문화도 감소하고 있다.

장노년층은 협동조합매장, 은행을 이용하는 반면 젊은이들은 도시의 월마트 매장을 선호하고 있어 전통의 협동조합이 점차 운영에 어려움을 겪고 있었다. 그럼에도 문제가 있으면 주민들과 마을 협동조합이 협동하여 경쟁과 승자독식의 시장에 휘둘리지 않고 인간답게 살아가는 협동의 DNA를 잃지 않고 러노어의 주민들은 지켜가고 있었다. 여전히 러노어 호수마을이 자랑스럽다는 문구가 생생하다.


태그:#캐나다 협동조합, #서스캐처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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