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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사진에는 하나지만 보통 2개, 3개씩 달기도 했다. 팔의 혈관들이 지겹다고 깊이 꼭꼭 숨어버려 바늘을 찌를 때마다 애를 먹기도 했다.
▲ 지겹도록 달고 살던 링거과 항생제 주사 이 사진에는 하나지만 보통 2개, 3개씩 달기도 했다. 팔의 혈관들이 지겹다고 깊이 꼭꼭 숨어버려 바늘을 찌를 때마다 애를 먹기도 했다.
ⓒ 김재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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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끝없이 달고 사는 링거가 지겨워."
"어쩌라고…."
"나 차라리 죽게 해줘."
"무슨 소리야? 이제 치료비도 마련되었고 좋아질텐데!"

눈물이 뺨으로 흘러 환자복이 젖을 정도로 그치지 않는 아내. 스테로이드 주사 봉지를 달고 살기를 5일, 끝이 날만 하니 고열에 오한, 방광염증으로 항생제 링거를 또 7일, 그 사이 아무것도 먹지 못해 너무 기운 없어 영양제 수액 또 2일, 바늘 뺀 자리에 다시 정상 치료과정으로 맞는 면역글로브린 주사제 5일, 이것 끝나면 뒤에 기다리고 있는 것은? 또 항암주사제 링거.

'한 달 중에 20일을 주사제 링거를 달고 사니 나도 그 불편함이 말로 못하겠는데, 하물며 아픈 당사자인 아내가 참고 있는 통증과 증상들은 얼마나 힘들까?'

계속되는 항생제 주사로 전부 내성이 생겨 이제는 사용할 수 있는 방광균 항생제가 한 가지 성분밖에 안 남았단다. 그것마저 안 듣게 되면 수술로 옆구리를 뚫어 호스를 넣어야 해서 위급한 때를 대비해 남겨두기로 했다. 대신 소변주머니를 떼고 일회용 라텍스로 빼내는 넬라톤 방법으로 소변 보기를 시작했다.

"잠깐만…."
"왜 그래?"
"에휴, 또 꼬리뼈 부분에 살이 갈라져 피가 나네."

기저귀를 갈다가 보니 문제가 또 생겼다. 실금이 되어 흘러내린 소변이 계속 엉덩이 쪽으로 적시는 바람에 꼬리뼈 부분이 불어터져 살이 갈라졌다. 더구나 침대에서 누워 보는 대변이 자꾸 상처 부위를 오염시킨다. 그러니 욕창으로 변한 꼬리뼈의 상처 부위가 쉽게 나을 수가 없다. 악순환이 계속 되는 것이다.

"처음 암 진단을 받았을 때 심정이 어땠어요?"
"왜 하필 나일까? 속상했지요. 나는 나쁜 짓도 안 했고 열심히 산 죄밖에 없는데…."

TV에서 암환자를 인터뷰하는 부분이 나왔다. 폐암 진단을 받고 한쪽 폐를 덜어 낸 수술을 한 사람에게, 그분은 그렇게 말하며 울먹였다. 같이 보고 있던 옆 침대의 간병인이 그런다.

"맞아! 내가 본 환자들도 '왜 하필 나야? 왜 나에게 그런 일이 생기는 걸까?' 그랬어."

하긴 나도 돌아보니 그런 생각, 그런 비슷한 원망을 숱하게 했었다.

"왜 하필 우리 가정에 이런 일이 생긴 거야? 왜 하필 아내일까? 왜 하필 내가 이 고생을?"

살펴보니 나만 그런 생각을 하는 게 아니었다. 어려운 난관에 닥친 많은 사람들이 그런다. 급작스런 사고로 불행해지거나, 예상 못한 일로 가족과 이별하고 상처를 안고 사는 사람들, 또는 남의 이유로 사업이 망하거나 한 사람들도, 뭔가 나만 억울하게 당한 것처럼 속상해 한다.

"왜 하필 나인가? 왜 하필 지금인가? 왜 하필 그 자리에 내가 있었을까? 조금만 빠르거나 조금만 늦었어도 피할 수 있었는데…" 하면서. 다들 자기는, 자기 가족은, 안 그런 사람이라고 하는데, 궁금해진다. 열심히 살았는데 어느 날 덜컥 암 선고를 받아도 되는, 그 '나쁜 사람'은 일찍 정해져 있는 걸까? 그 '나쁜 짓'은 또 어떤 걸 말하는 걸까?

그런데 곰곰이 생각하니 내가 그 당사자였다. '나쁜 짓'을  하고 산 '나쁜 사람'. 아내에게는 날마다 벌컥 화만 내고, 아내가 힘들게 몸 고생, 마음 고생할 때, 나는 뒹굴거리며 군림하고 살았다. 아이들에겐 이래라, 저래라, 하면서, 정작 나는 한 점 부끄럼 없도록 사회생활을 하지는 못했더라. 양심적으로 돌아보니… 그런데 왜 그 벌이 내게 안 오고 아내에게 청천벽력의 난치병으로 왔을까?

"여보, 여보."
"응, 나 여기 있어, 왜 그래?"
"나 배가 많이 아파…."

오전 2시 55분, 아내가 깨우는 바람에 일어났다. 보통 다른 환자들은 5시간에서 6시간 간격으로 한다는데 집사람은 거의 세 시간마다 나를 깨운다. 방광 상태가 더 안 좋아진 건지 아님 줄어들었는지, 손발이 차갑고 식은땀이 배었다.

이건 제때 소변을 빼주지 않아서 생기는 과반사 증상이다. 더 지체하면 숨을 못 쉬고 졸도까지 한다는 걸 나중에 알았다. 얼른 간호사에게 넬라톤용 라텍스 호스와 소독장갑을 받아서 가림막을 치고 작업에 들어갔다. 소변량은 900밀리, 배가 아플 만도 했다.

자리에 누워 눈을 감아보지만 잠이 오지 않는다. 한참 자야할 시간에 깨어 설쳐버렸더니 잠이 안 온다. 팔다리는 늘어지고 정신은 몽롱한데 마음이 자꾸 무거워진다. 두렵다. 내 체중이 자꾸 빠져나가고 있다. 아내의 증상은 한없이 아래로 굴러 내려가기만 하고.

'이렇게 얼마나 버틸 수 있을까? 벌써 500여일이 다되어가는 병원생활이 끝은 오기는 올까? 남들은 이 시간 다 잠속에 빠져 있겠지? 난 내일도 모레도 그 다음날도, 그다음의 다음 날도 계속 이렇게 살아야 하겠지?'

그런 생각이 몰려오니 숨이 헉! 막힌다. 사람들은 힘내라, 혹은 엄살부리지마라 쉽게 말한다. 그러나 나는 정말 내일이 오는 것도 싫어진다. 내일이 오지 않아도 되는 날이 기다려진다. 일부러 내가 만들지 않은 하늘이 허락한 오늘이 마지막인 날.

- 하늘로 돌아가는 길

돌아가고 싶다. / 이 세상 소풍 끝나는 날 / 가신다던 시인처럼,

몸은 너무 무거워 데려갈 수 없다며 / 가볍게 떠난 어린왕자처럼,

내려온 기억은 없어도 / 엄마 품 같은 그곳으로

걷고 싶다. / 깃털처럼 가볍게 / 봄날 햇살처럼 따뜻한 길을

마냥 걸어도 고단치 않고 / 가벼운 시장 끼 같은 상쾌함으로

사랑하는 사람과 마냥 걷고 싶다.

그날이 언제일까? / 이 세상 보내줘서 고맙고

데려가줘서 더욱 고맙다고 / 엎드려 절하고픈 귀천의 그날이

"이게 다 먹은 거야? 왜 벌써 안 먹어?"
"그만 먹을래."
"안돼!, 이렇게 조금 먹고 독한 약 어떻게 견디려고? 속 아파, 조금만 더 먹자, 제발."

아내는 들어서 옮기고 씻기고 할 때마다 내가 무거워 고생한다고, 체중을 늘리지 않겠다고 밥을 안 먹으려고 한다. 그래서 내가 화를 냈다. 그랬더니 아내는 또 다른 작정을 하는 것 같다. 밤에 소변 때문에 나를 자주 깨우는 게 미안하다고 물을 줄여 먹기로, 혼자서는 물도 못 마시는 사람이 어떻게 나 모르게 한다고, 오죽하면 그런 작정을 할까만.

새벽에 깨어버린 잠을 다시 자지 못하고 밖을 내다보면 이랬다. 어딘가 병원 벽에 밤에 보던 그 야경 장면이 사진으로 찍혀 걸려 있었다. 낮에도 다시 떠올리는 밤의 기억.
▲ 잊혀지지 않는 야경 새벽에 깨어버린 잠을 다시 자지 못하고 밖을 내다보면 이랬다. 어딘가 병원 벽에 밤에 보던 그 야경 장면이 사진으로 찍혀 걸려 있었다. 낮에도 다시 떠올리는 밤의 기억.
ⓒ 김재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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꾹꾹 눌러 담은 자루마냥 터지기 직전인 사람이 되어 간다. 저녁 밥상을 치우고 산책을 나섰다. 이렇게라도 길을 걷고 하늘을 보고 바람을 마시지 않으면 견딜 수 없는 날들이 지나간다. 걷다보니 가족들이 앞서거니 뒤서거니 이야기하며 가는 모습이 부럽게 눈에 들어온다. 아내를 두고 늘 혼자만 나오는 게 미안한데 그 장면이 나를 더 편치 않게 한다.

'나도 아내와 같이 산책을 하면 얼마나 좋을까? 저 사람들은 지금 자기들이 누리고 있는 행복이 얼마나 귀하고 다시 오지 않을 수도 있는 아까운 것인 줄 알까?'

부부끼리, 연인끼리 단 둘이 가는 사람들도 보인다. 나도 한때는 아내와 저렇게 걸었었다. 저들도 나중 어느 날엔 이 날들을 그리워하겠지? 때론 티걱거리며 혼자 저만치 앞서도 가고, 때론 팔장끼고 히히덕거리고, 때론 힘들다, 배고프다, 춥다 칭얼거리기도 하며 걷던 날들을.

지금 그럴 수 있는 건강이 있는데도 안 하고 사는 사람들이 안타깝다. 그 시간, 그 건강, 쓰지도 않을 거면 우리에게 팔던지 좀 바꾸면 좋겠다. 그 아까운 날들을 그냥 흘려보내지 말고, 당장이라도 저녁상 물리고 같이 동네 한 바퀴라도 해보라고 권하고 싶다. 슬리퍼 질질 끌면 어떻고 무르팍 툭 나온 옷이면 어떠랴? 사랑할 형편되는 동반자나 가족만 있으면 충분하지. 이렇게 홀로 걸으며 아쉬워하는 사람도 있는데.

덧붙이는 글 | 2009년 11월부터 2009년 12월, 긴 치료일정의 한 가운데 어디쯤을 지날 때 이야기입니다.



태그:#희귀난치병, #투병, #가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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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날, 내 인생의 핸들이 내 손을 떠났다. 아내의 희귀난치병으로, 아하, 이게 가족이구나. 그저 주어지는 길을 따라간다. 그럼에도 내 꿈은 사람사는세상을 보고 싶은 것, 희망, 나눔, 정의, 뭐 그런 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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