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가위 감독의 신작 <일대종사>의 한 장면. 사진은 엽문 역의 양조위.

왕가위 감독의 신작 <일대종사>의 한 장면. 사진은 엽문 역의 양조위. ⓒ 인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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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춘권의 대가 '엽문' 하면 제일 먼저 떠오르는 것이 중화의 자주의식을 고취한 인물이라는 사실이다. 그도 그럴 것이 <엽문> 및 <엽문2>에서 중국인 무술가를 추풍낙엽처럼 쓸어버리는 일본인 장군과 서양인 권투선수에게 홀로 맞서 패배를 안길 수 있는 유일한 인물이 엽문 아니던가.

엽문의 승리는 엽문 개인의 승리가 아니다. 외세의 침략에 저항할 길이 없어 신음하는 중국을 대표해 중화의식의 자주성을 고취시킨다는 의미를 담는다. 일본 혹은 서양의 침략 앞에 무릎을 꿇은 건 중국인의 주권만이 아니었다. 중국인의 자존심인 중화의식 또한 외세 앞에 굴욕 당하고 울분을 참아야 했던 당시대에 엽문은 외세에 꺾이지 않는 '오상고절의 무술가'라는 아이콘이 덧입혀진다.

'이방인의 정서'로 그리는 중국 영웅 엽문

이렇게 항일정신, 혹은 외세 저항의 아이콘으로 묘사하던 엽문이 왕가위와 만나면 어떨까. 영화 <일대종사>는 기존에 엽문 일대기를 다룬 영화에서 흔히 차용하던 관습법인 '저항의 아이콘'에서 벗어나려는 모습이 눈에 띈다.

대신에 엽문이 어떻게 조국인 중국 대륙에서 벗어나 홍콩에서 보금자리를 틀고 살아가야 했는지 '비주류의 정서'에 주목한다. 조국 중국의 자주 의식을 고취하던 주도적인 정서에서 벗어나 격변의 시대에 휘말리는 무술가의 고뇌를 담는 것이 엽문의 일대기를 다룬 이전 작품과의 차이점이다.

 <일대종사>에서 궁이(장쯔이 분)와 엽문(양조위 분)

<일대종사>에서 궁이(장쯔이 분)와 엽문(양조위 분) ⓒ 인두


이는 엽문을 연기하는 양조위의 내레이션을 통해서도 나타난다. 40살 전의 엽문의 인생은 활짝 핀 봄과도 같이 화창하다. 속 깊은 아내 장영성(송혜교 분)을 만나고 두 딸과 살아가는 엽문은 특별한 직업을 갖지 않아도 먹고 사는 데 지장이 없었다.

하지만 40살 이후로는 인생의 내리막길을 걷는다. 대동아전쟁으로 엽문의 집은 일본군에게 빼앗기고 두 딸은 목숨을 잃는다. 조국인 중국 대륙에서 한참이나 떨어진 홍콩에서 객창감을 느끼며 평생 살아야 하는 처지에 다다른다. 일련의 엽문 시리즈가 중국인의 자주 의식을 고취하는 성취자로서의 엽문을 그린다면, <일대종사>는 상실의 정서, 이방인의 정서로 엽문을 묘사한다.

상실의 정서는 엽문만 가지는 게 아니다. 장쯔이가 연기하는 궁이는 아버지를 살해한 제자에게 원수를 갚기 위해 꽃다운 나이에 정혼마저 포기하고 오로지 복수의 칼날을 갈며 살아간다. 그뿐만이 아니다. 궁이가 마음속으로 깊이 연모하는 남성은 엽문이다.

하지만 엽문은 이미 아내가 있는 유부남. 어쩌면 궁이는 엽문에게 마음을 빼앗기지 않기 위해서라도 엽문과 승부를 겨루지 말았어야 했을지도 모른다. 왕가위 감독은 궁이와 엽문이 공중에서 얼굴이 마주하는 찰나의 순간을 클로즈업으로 처리한다. 아마도 궁이는 이때부터 엽문에게 마음을 빼앗겼을지 모른다.

<일대종사>는 고향인 중국 땅을 그리워해야만 하는 엽문의 상실을 다루면서 동시에 격투 가운데서 싹트는 아련한 사랑까지 아우르는 한 폭의 수채화 같은 영화다. 서정적인 정서가 쿵푸와 만나는 흔치 않은 영화다. 이는 왕가위 감독의 정교한 미장센이 돋보이는 연출 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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