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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엄마, 어디 가시게요?"
"응?"

작은 아이의 물음에 나는 오히려 궁금한 표정을 지었다.

"후후, 여기 핸들 있잖아요. 언제, 어디라도 엄마 마음대로 갈 수 있는 핸들이."

아이는 어느 틈에 내 뒤로 다가와 허리 부분 살을 두 손으로 잡더니 빙빙 돌리는 시늉을 냈다. 마치 승용차의 핸들을 돌리는 것처럼.

"얘는……. 저리 비켜. 난 또 뭐라고."

아이의 엉뚱한 행동에 웃음이 나왔지만 그것도 잠시 은근히 기분이 나빠 아이의 손을 거두어냈다.

"어? 엄마, 화났어요? 그러니까 운동 좀 하세요. 건강을 위해 매일 뒷산으로 산책을 가시든가 아니면 훌라후프라도 돌려서 뱃살이라도 빼든가. 그래서 예전처럼 늘씬한 엄마 모습을 찾으시라고요."
"됐어. 너도 내 나이 되어봐라. 그리고 나이 들면 어느 정도는 나잇살이 있어야 점잖아 보이는 거야. 너무 마르면 괜히 초라해 보여. 아유, 그만 하자. 내 걱정 하지 말고 너나 잘 하세요."

말을 하면서 내가 너무 억지를 쓰는 것 같은 민망함에 웃음으로 말을 맺었다. 그러면서도 나도 모르게 손이 허리로 갔다. 아이 말처럼 제법 손에 잡히는 살에 마음이 허전해졌다. 마치 소중한 것을 잃어버린 것처럼….

나는 1남 3녀 중 막내로, 보지도 않고 데려간다는 셋째 딸이었다. 초등학교 때는 수영선수로, 중학교 때는 사격선수로, 기본적인 체력은 물론 덕분에 균형 잡힌 몸매를 만들 수 있는 바탕이 되었다. 게다가 얼굴은 서구적으로 쌍꺼풀진 커다란 눈에 오똑한 코까지. 그래서 고등학교 때는 문학 선생님으로부터 '잉그리드 버그만'이라는 별명을 얻고, 대학 때 미팅 명단에는 늘 우선순위였다. 덕분에 외모 때문에 남들의 부러운 시선을 받는 것을 당연하게 여겼지 성형이나 다이어트로 마음 쓴 적이 한 번도 없었다.

그 후로 결혼을 하고 아이 둘을 낳아 키우면서도 40대까지도 20대에 입었던 옷들을 그대로 입을 수 있어 예전과 별반 다르지 않는 생활을 했었다. 그게 원래 체질적인 것보다는 경제적으로 한창 어려웠을 때라 몸도, 마음도 긴장한 탓이었던 것 같다. 그리고 한 해, 두 해 세월이 흐르고…. 그러면서 몸에 맞지 않는 옷들이 생겨나게 되고, 버리기에는 아까워 장롱 속에 넣어두게 되고.

그 옷들을 이제는 다 자라 대학생이 된 두 딸 아이들이 가끔씩 입곤 한다. 그래도 허리 사이즈가 맞지 않아 입지 못하는 옷들이 있는 것을 보면 분명 나의 20대는 남들의 부러움을 살 만했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와! 정말 예쁘다. 지금 봐도 예쁜데 당시에는 인기가 대단했겠어요. 하긴 이모부가 그랬잖아. 큰이모와 결혼하기 전에 이모 만나러 집에 오면 엄마 따라오는 남학생들 쫓는 게 일이었다고. 그런데 나는 왜 엄마를 하나도 안 닮은 거야? 쌍꺼풀도 없고 눈도 작고, 코도 그저 그렇고. 이럴 때는 아빠 닮은 게 정말 싫어. 엄마, 이번에 나도 쌍꺼풀 수술 할까? 여기 엄마처럼."

작은 아이가 건네주는 사진 속에서는 20대 때 내가 환하게 웃고 있었다. 그 모습이 반가우면서도 낯설게만 느껴져 나는 한참 동안 들여다보았다.

"됐어. 요즘은 쌍꺼풀 없는 눈이 더 예쁘다고 한 대. 너도 나도 수술을 해서. 그래도 너는 귀염성 있는 얼굴이야."
"흐응, 그건 내가 엄마 딸이니까 그런 거야. 엄마도 내가 예쁜 것 보다는 귀엽다면서."
"괜찮아. 충분히 예뻐."

내 말에 아이의 눈이 세모꼴로 변하면서도 입은 웃고 있었다. 솔직히 말하면 나는 나이 드는 것에 관대한 편이다. 나이에 맞게 사는 게 나도 좋고 남들이 보기에도 좋고. 그리고 다른 무엇보다 겉으로 보이는 것보다는 보이지 않는 것이 더 중요하다는 생각이다. 그래서 지금까지 젊어 보이기 위해 애를 써 본적이 별로 없다.

이런 나를 보고 아이는 외모 때문에 스트레스를 받아본 적이 없기 때문이라고 한다. 그 말도 맞는 것 같기는 하지만 그렇다고 예뻐 보이기 위해, 젊어 보이기 위해 없던 것을 만들어 내는 것은 별로 탐탁치가 않다. 남들에게 자신을 보이는 직업이 아닌 바에는. 오히려 자신에게 주어진 것을 잘 살려내는 개성이 더 좋다는 생각이다. 그런데 요즘은 몸이 자꾸 펑퍼짐해지는 것이 자꾸 거슬린다. 그냥 두는 것도 좋지만 그래도 자신을 위해 노력해야하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고.

가끔은 매일 보는 거울 속에 비친 내 모습이 익숙해서 20대 사진 속의 내 모습이 낯설어 보일 때면 무던한 나도 아쉬워지고, 때로는 아이들이 집을 나서는 모습에 대견하면서도 예전의 젊음이 그리워지기도 하고, 한 번쯤은 작아진 옷을 어거지로 입어 보며 아직은 괜찮다고 위안해보기도 하고. 그러다보니 쉰을 훌쩍 넘기고….

"엄마, 어디 가시게요?"
"그래, 뒷산에 산책 간다."
"응? 이제 정말 다이어트 시작하는 거예요? 그래요. 엄마는 다른데 말고 뱃살만, 그 핸들만 없으면 지금보다 훨씬 더 젊어질 걸요?"

아이의 말에 나는 민망한 표정을 지었다.

"누가 젊어지려고 하니? 건강 때문에 하는 거지."
"후후, 아무튼 잘 생각하셨어요. 잠깐만, 저도 같이 가요. 나도 예뻐지게."

우리는 마주보며 웃었다. 환한 웃음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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