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충립 전 특수전사령부(특전사) 보안반장. 국군보안사령부(보안사) 소속이었던 그는 광주민중항쟁이 일어났던 지난 1980년 5월 특전사에 근무하면서 신군부의 핵심이었던 정호용 특전사령관을 보좌했다. 당시 보안사령관은 전두환 전 대통령이었고, 전 전 대통령의 핵심측근인 장세동씨는 특전사 작전참모였다.
이런 배경 때문에 김 전 반장은 오랫동안 신군부 인사들과 가깝게 지내왔다. 그런 그가 오는 8월 1일 광주에 내려가 망월동 묘지를 참배한다. 그는 평소 "전두환 전 대통령 등 신군부가 광주 시민들에게 진정성 있게 사과해야 동서화합을 이룰 수 있다"고 생각해왔다. 망월동 묘지 참배는 그런 생각의 연장선상에서 계획됐다.
특히 김 전 반장은 지난 29일 <오마이뉴스>와 한 인터뷰에서 "대선 전인 지난 2011년 3월 전두환 전 대통령과 박근혜 현 대통령의 화해 만남을 추진했다"고 증언해 눈길을 끈다. 그는 지난 2012년 대선에서 박 대통령의 직능조직특보를 지냈고, 현재 (사)탈북동포지원한국교회연합과 한반도프로세스포럼 회장을 맡고 있다.
"전두환 전 대통령이 왜 '의리없는 사람'이냐 하면..."1980년 육군 소령으로 예편한 김충립 전 반장은 잠시 정치권에 몸을 담은 뒤 1990년대 미국으로 건너가 목사가 되었다. 그리고 친동생인 김충환 전 의원이 한나라당 서울시장 후보 경선에 출마한 지난 2011년 2월께 귀국했다. '박근혜-전두환 화해 프로젝트'는 그의 귀국과 함께 시작되었다.
"박근혜 전 대표가 광주하고 통합하지 않으면 대통령이 될 수 없다. 그런데 광주하고 통합하지 못하는 것은 전두환 전 대통령 때문이다. 전 전 대통령이 광주사람들에게 진솔하게 사과하면서 광주 문제를 풀어야 한다. 그래야 다음 대통령이 동서화합, 국민통합을 이루어낼 수 있다고 생각했다."80년 신군부 진영에 서 있었던 김 전 반장은 "전두환 전 대통령은 의리가 없는 사람이다"라고 평했다. 그 이유로 ▲ 80년 박정희 전 대통령을 권력형 부정축재자에 포함시켰다 ▲ 5공 내내 박정희 전 대통령 추도식을 열지 못하게 했다 ▲ 아들 박지만씨를 잘 챙겨주지 못했다 ▲ 2007년 대선 당시 이명박 후보가 최태민 목사와 박근혜 후보의 관계를 가지고 박 후보를 비방했을 때 묵비권을 행사했다 등을 들었다.
김 전 반장은 전두환 전 대통령과 가까운 정호용 전 특전사령관, 이학봉 전 보안사 대공처장을 잇따라 만났다. 이학봉 전 처장은 "전두환 전 대통령은 의리가 없는 사람이다"라는 김 전 반장의 주장에 이렇게 반박했다.
"박지만씨에 관한 지적은 일리가 있다. 하지만 최태민 목사의 경우 보안사에서 조사한 뒤 강원도 전방으로 보내는 것으로 예우했다. 그런데 최태민 목사가 박근혜 대통령에게 '보안사에서 엄청 고생했다'고 허위보고했다. 또 당시 언론에서 박정희 전 대통령이 권력형 부정축재자에 포함돼 있다고 보도했는데 박근혜 대통령이 그것에 섭섭했을 수 있다. 하지만 우리는 박정희 전 대통령을 그 명단에 포함시킨 적이 없다. 또 추도식을 못 열게 하고 최태민 목사를 못 만나게 한 것은 박근혜 대통령을 보호하기 위해서였다. 박근혜 대통령을 예우하지 않았던 것은 아니다."특히 김 전 반장은 "지난 2007년 이명박 후보가 중앙정보부(중정) 자료(최태민 파일)를 가지고 박근혜 후보를 공격했는데 이학봉 전 처장이 80년 보안사에서 관련내용을 조사해보니 전혀 사실이 아닌 것으로 드러났다"며 "그래서 2012년 대선 때 다시 최태민 목사 얘기가 나오면 이학봉 전 처장이 직접 나서서 증언하겠다고 약속했다"고 전했다.
김 전 반장은 "이학봉 전 처장에게 이런 답변을 듣고서 '그럼 전두환 전 대통령과 박근혜 대통령이 만나서 오해를 푸는 게 좋겠다'고 제안했고, 저도 박 대통령의 핵심 측근들을 통해 전두환 전 대통령 쪽의 의견을 박 대통령에게 전달했다"고 말했다. 그가 박근혜-전두환 화해 프로젝트를 위해 접촉한 박 대통령 쪽 채널은 직보라인에 있던 인사로 알려졌다.
"전두환 추징금 검찰수사, 박근혜 대통령 정치보복 아냐"
전두환 전 대통령은 처음에 "박정희 전 대통령은 물론이고 그의 딸에게 사과할 정도의 문제는 전혀 없었다, 내가 왜 사과해야 하는지 모르겠다"는 반응을 보였다고 한다. 하지만 나중에는 "부하가 한 일이지만 박근혜씨 쪽에서 오해할 수 있겠다, 내가 박근혜씨를 만나서 사과하겠다"고 '통큰 결단'을 내렸다.
김 전 반장은 "전두환 전 대통령과 박근혜 대통령이 만날 날짜까지 정했지만 여러 가지 사정으로 인해 두 사람의 화해 만남은 이루어지지 못했다"고 전했다. 그가 의욕적으로 추진했던 박근혜-전두환 화해 프로젝트가 실패로 끝난 것이다.
박근혜 대통령은 지난 2004년 8월 한나라당 대표에 취임한 직후 전두환 전 대통령을 예방한 바 있다. 하지만 2012년 대선 당시 새누리당 대선후보로 확정된 이후에는 전 전 대통령을 만나지 않았다. 당시 김대중·노무현 전 대통령 묘소를 참배하고, 김영삼 전 대통령과 이희호씨를 방문한 것과 극명하게 대비되는 대목이다. 그는 일찍이 한 언론 인터뷰에서 "5공 시절을 대단히 가슴 아프게 살아왔다"고 토로한 바 있다.
그런 가운데 박근혜 대통령이 지난 6월 11일 국무회의에서 "문제가 되고 있는 전직 대통령 추징금 문제는 과거 10년 이상 쌓여온 일인데 역대 정부가 이를 해결하지 못하고 이제서야 새 정부가 의지를 갖고 해결하려고 하고 있다"고 말했다. 박 대통령의 발언 직후 전두환 전 대통령의 미납추징금을 환수하기 위한 검찰수사가 시작됐다. 일각에서는 정치보복이라는 지적이 나왔다.
하지만 김 전 반장은 "박 대통령이 전 전 대통령에게 정치적으로 보복한 것 아니냐는 시각이 있는데 그것은 잘못 짚은 것이다"라며 "전두환 전 대통령이 2011년 초에 '박근혜씨에게 사과하겠다'고 말한 것이 박 대통령에게 분명히 전달됐기 때문에 보복할 일은 없다"고 주장했다. 2년 전 화해 만남은 불발로 끝났지만 사과에 관한 교감은 이루어졌기 때문에 정치보복론은 적절하지 않다는 것이다. 이어 그만의 독특하고도 흥미로운 의견을 내놓았다.
"박근혜 대통령은 이명박 전 대통령이 재임기간에 한 번도 가지 않은 5·18 행사에 참석했다. 그런데 행사가 열리기 전에 종편 채널에서 '북한 특수군이 광주사태를 일으켰다'고 대대적으로 보도했다. 게다가 보훈처장이 '임을 위한 행진곡' 제창을 금지시켰다. 이에 호남에서 격분했고, 박 대통령이 왔는데도 다른 장소에서 기념행사를 진행해 버렸다. 국민통합의 뜻을 가지고 행사에 참석한 박 대통령으로서는 아주 곤란한 처지에 놓인 것이다. 그때 박 대통령은 '전두환 전 대통령이 만든 갈등이 전혀 해소되지 않았구나'라고 느낄 수밖에 없었다."김 전 반장은 "박 대통령은 선거 때 국민통합을 강조하고 행복한 국민들을 만들겠다고 해서 당선됐는데 기대했던 만큼 호남의 지지가 없었고, 이명박 대통령도 안 간 5·18 행사에 왔는데도 환영받지 못하는 것을 보고 전두환 전 대통령에 섭섭함을 가졌을 것이다"라고 말했다.
끝으로 김 전 반장은 "전두환 전 대통령 일가는 빠른 시일 안에 추징금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며 "특히 전 전 대통령은 5·18 광주사태를 진솔하게 사과하고 광주 시민들에게 용서를 구함으로써 박 대통령의 동서화합, 국민통합에 동참해야 한다"고 주문했다.
"장세동이 특전사 작전참모로 왔다는 것이 더 중요하다"한편 김 전 반장은 전두환· 허화평·허삼수 등 신군부의 핵심 실세들이 5·18 강경진압을 주도했음을 인정하면서 특히 베일에 가려진 '장세동 역할론'에 주목했다. 그는 지난 2010년 5월 <오마이뉴스>와 한 인터뷰에서 "12·12 직후 정호용 50사단장이 특전사령관으로 온 것보다 12·12의 주역 중 한 명인 장세동 수경사 30경비단장이 특전사 작전참모로 왔다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주장했다(관련기사 :
"장세동은 5·18 수일 전에 왜 광주에 내려갔을까?")
다만 김 전 반장은 "특전사 작전참모(장세동)가 광주에 가고 부대가 이동하는데도 사령관(정호용)이 이에 관여하지 못했다"며 "(정호용은 신군부 주류로부터 소외된) 아웃사이더였던 셈이다"이라며 특전사령관 발포 책임론에는 비판적인 의견을 내놓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