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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007년 10월 3일 오전 백화원 영빈관에서 열린 남북정상회담에서 노무현 대통령과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악수하고 있다.
 지난 2007년 10월 3일 오전 백화원 영빈관에서 열린 남북정상회담에서 노무현 대통령과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악수하고 있다.
ⓒ 사진공동취재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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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무현 전 대통령은 2007년 10월 3일 비공개 단독회담에서 김정일에게 '북방한계선(NLL) 때문에 골치 아프다. 미국이 땅따먹기 하려고 제멋대로 그은 선이니까. 남측은 앞으로 NLL을 주장하지 않을 것이며 공동어로 활동을 하면 NLL 문제는 자연스럽게 사라질 것'이라고 구두 약속을 해줬다." (2012년 10월 8일 국회 외교통상통일위원회의 통일부 국정감사에서 정문헌 새누리당 의원)

"너무나 자존심이 상해 입이 떨어지지 않는다. (정상회담 대화록엔) 처음부터 끝까지 비굴과 굴종의 단어가 난무했고, 대한민국 국민에 대한 배신이었다. 내 말이 조금이라도 과장됐다면 의원직을 사퇴하겠다." (2013년 6월 20일 국정원이 무단 열람시킨 대화록과 발췌본을 보고난 후 기자회견에서 서상기 국회 정보위원장)

새누리당은 지난해 대선부터 지금까지 9개월이 넘도록 2007년 남북정상회담에서 노무현 전 대통령이 서해북방한계선(NLL) 포기 발언을 했다고 주장해왔다. 국가기밀인 정상회담 회의록 공개·열람이 어려운 상황에서 국가정보원(국정원)이 제공한 발췌록을 일방적으로 열람한 뒤 '굴종', '배신'이라는 극단적 표현을 사용하면서 'NLL 포기'를 기정사실화하려 했다.

[왜곡] "NLL 주장 않을 것" 발언은 없었다

하지만 지난 달 24일 회의록 전문이 공개되면서 그동안 새누리당의 주장이 노 전 대통령의 발언을 과장하거나 자의적으로 왜곡했다는 사실이 드러났다.

당장 지난해 10월 통일부 국정감사에서 "노 전 대통령이 정상회담 당시 김 위원장과의 단독회담에서 NLL을 주장하지 않겠다고 한 비공개 대화록이 존재한다"며 당시 노 대통령의 발언이라고 주장했던 정문헌 의원의 주장은 사실과 다르다는 것이 밝혀졌다.

회의록 전문에는 노 전 대통령이 NLL을 남한 내 갈등의제로 인정하고 '괴물'이라는 표현을 썼지만 "골치 아프다"고 한 적은 없다. 또 정 의원이 주장하듯 "미국이 땅따먹기 하려고 제멋대로 그은 선"이란 발언도 없다. 물론 "앞으로 NLL을 주장하지 않을 것"이란 발언도 등장하지 않는다.

오히려 노 대통령은 "(NLL은 남한에서) 현실로서 (영토선으로) 강력한 힘을 갖고 있다"며 "NLL을 갖고 이걸 바꾼다 어쩐다가 아니고 공동번영을 위한 바다 이용계획을 세움으로써 민감한 문제들을 미래지향적으로 풀 수 있다"고 김 위원장을 설득했던 것으로 나타났다.

뿐만 아니라 노 전 대통령은 "그건(NLL) 옛날 기본합의 연장선상에서 앞으로 협의해 나가기로 하고…"라고 언급해 NLL 문제는 이전 정부들의 방침을 계승한다는 취지를 명백히 했다. 노 전 대통령이 말한 기본합의란 지난 1992년의 남북기본합의서를 뜻한다. 노태우 정부 당시 체결된 이 합의서는 NLL에 관련해 "남과 북의 해상 불가침 경계선은 앞으로 계속 협의한다, 해상 불가침 구역은 해상 불가침 경계선이 확정될 때까지 쌍방이 지금까지 관할하여 온 구역으로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왜곡] "보고 드린다" 등 굴종 표현은 없었다

2007년 남북정상회담 대화록 열람을 위해 여야 열람위원들이 지난 15일 성남 수정구 국가기록원 대통령기록관을 찾은 가운데 국가기록원 관계자들이 열람목록을 들고 대통령지정기록물 열람실로 들어가고 있다.
 2007년 남북정상회담 대화록 열람을 위해 여야 열람위원들이 지난 15일 성남 수정구 국가기록원 대통령기록관을 찾은 가운데 국가기록원 관계자들이 열람목록을 들고 대통령지정기록물 열람실로 들어가고 있다.
ⓒ 남소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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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부터 끝까지 비굴과 굴종의 단어가 난무한다", "상상을 초월한다, 정상회담 내용이 아니다, 대화록이 아니고 보고하는 수준이었다"고 밝힌 서상기 의원의 지난달 20일 주장도 터무니없는 왜곡이었다는 것이 밝혀졌다.

서 의원뿐 아니라 발췌록을 열람한 새누리당 의원들은 "노 전 대통령이 김정일 국방위원장에게 '보고드린다'는 표현을 자주 썼다"고 주장했다. 그런데 새누리당 의원들이 굴종의 대표적 사례로 든 "보고드린다" 또는 "앞서 보고드렸듯이"라는 표현은 103쪽 분량인 대화록 전문 어디에도 나오지 않는다.

정상회담 대화록 전문에는 노 전 대통령이 "6자회담에 관해 여러 가지 이야기를 하는데, 조금 전에 보고를 그렇게 상세하게 해주셔서 감사하다"고 했는데 여기서 '보고'란 당시 북측 김계관 부상이 정상회담 중간 6자회담 경과를 남북 정상에게 보고한 것을 일컫는 말이었다.

회담 흐름상 노 전 대통령의 '보고' 언급은 김 위원장이 김계관 부상을 불러 자신에게도 보고하게 해준 데 대한 인사이지, 자신이 김 전 위원장에게 보고한 것을 두고 한 말이 아닌 것이다. 그런데도 새누리당과 국정원은 이 발언을 노 전 대통령이 김정일 위원장에게 6자회담에 관해 '보고'하고 난 뒤 그런 기회를 가진 것에 감사해했다는 뜻으로 왜곡해 대표적인 굴종 사례로 부각했다.

새누리당이 노 전 대통령을 '친북·반미주의자'로 몰아간 부분 역시 발췌문 일부를 자의적으로 해석한 것이다. 정 의원은 "대화록에 북핵 문제에 대해 노 전 대통령이 '내가 전 세계를 돌아다니면서 북한이 핵보유를 하려는 것은 정당한 조치라는 논리로 대변인 노릇을 열심히 하고 있으니까 북한이 나 좀 도와달라'고 했다"거나 "주한미군 철수와 한반도 통일에 대한 김 위원장 발언에 노 전 대통령이 동의를 표시했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회담록 전문에 나타난 노 전 대통령 발언은 국제사회에서 고립된 북한을 어르고 달래는 데 방점이 찍혔다. 노 전 대통령은 "우리 민족끼리 아무리 하고 싶어도 고립을 자초하는 자주는 할 수 없다"며 "김 위원장이 북·미관계 개선을 위한 문만 열어놓는다면 미국이 이에 상응한 관계개선 조치에 속도를 내도록 재촉할 것"이라고 설득하고 있다.

[왜곡] 국정원, '위원장님'으로 표기... 폄훼

심지어 국정원이 발췌록을 작성하면서 단어를 바꾸거나 없는 말까지 끼워 넣어가며 노 전 대통령을 폄훼했다는 사실도 드러났다.

정상회담 대화록 전문과 발췌본을 비교해보면 전문에는 '위원장'이라고 기록된 부분이 발췌문에는 '위원장님'으로 바꿔 표기한 부분이 세 곳 등장한다. 노 전 대통령이 NLL을 언급하면서 "위원장과 인식을 같이 하고 있다"고 한 부분은 "위원장님과 인식을 같이 하고 있다"로, 서해평화협력지대 구상과 관련해서 "위원장께서 지금 승인해 주신 거죠"라고 한 발언은 "위원장님께서 지금 승인해 주신 거죠"로 바뀌었다. 김 위원장에게 보고서를 전달하는 부분도 "위원장님께서 보도록 드리고 가겠다"로 수정됐다.

같은 맥락에서 노 전 대통령은 자신을 '나'로 표현했지만 발췌록에는 '저'로 바꾼 부분이 두 군데 나타났다. 아리랑 공연에 대해서 노 전 대통령이 "나는 큰 기대를 가지고 있다"라고 한 것이 "저는 큰 기대를"로, 공동어로를 설명하는 과정에서 "나도 관심이 많은"이 "저도 관심이 많은"으로 바뀌어 표현된 것.

국정원은 이런 논란이 일자 "단순 오타일 것"이라는 입장을 밝혔지만, 의도적인 왜곡이라는 주장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

[왜곡] 전문 공개 후에도 'NLL 포기' 강변


오히려 대화록 전문이 공개된 후에도 국정원과 정문헌 의원은 각각 대변인 성명과 해설서를 내는 방식으로 노 전 대통령의 NLL 포기 주장을 강변했다.

국정원은 지난 10일 대변인 성명을 통해 "NLL 회의록 공개는 국가안보를 위한 불가피한 선택"이었다며 "NLL 관련, 남북정상회담 회의록 내용은 남북정상이 수차례에 걸쳐 백령도 북방을 연한 NLL과 북한이 주장하는 소위 '서해해상군사경계선' 사이 수역에서 쌍방 군대를 철수시키고, 이 수역을 평화수역으로 만들어 경찰이 관리하는 공동어로구역으로 한다는 것"이었다고 주장했다.

국정원의 주장은 급기야 "이는 육지에서 현재의 휴전선에 배치된 우리 군대를 수원-양양선 이남으로 철수시키고, 휴전선과 수원-양양선 사이를 '남북공동관리지역'으로 만든다면 '휴전선 포기'가 분명한 것과 같음"이라는 사뭇 엉뚱한 결론으로 비약됐다.

정 의원도 NLL 해설서를 통해 "2007년 남북정상회담 회의록을 통해 노무현 대통령이 북방한계선과 북한 주장 해상경계선 사이의 수역에서 군대를 철수하는 데 동의함으로써 NLL 이남 해역의 영토주권을 포기한 사실이 확인"된다며 "이는 대통령의 '영토 보전' 책무를 규정한 대한민국 헌법을 위반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국정원과 정 의원 모두 정상회담 회의록 내용 중에 "NLL을 기준으로 한 등거리·등면적에 해당하는 구역을 공동어로구역으로 한다"는 언급이 없다는 것을 근거로 노 전 대통령이 NLL을 포기했다고 주장하고 있는 것이다.

국정원·정문헌, 사실관계 왜곡 명백

윤호중 민주당 의원이 14일 2007년 10월 남북정상회담 때 노무현 대통령이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에게 제안한 '서해평화특별지대' 지도를 공개했다.
 윤호중 민주당 의원이 14일 2007년 10월 남북정상회담 때 노무현 대통령이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에게 제안한 '서해평화특별지대' 지도를 공개했다.
ⓒ 윤호중 의원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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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이런 주장은 지난 14일 민주당 윤호중 의원이 정상회담에서 노 전 대통령이 김정일 위원장에게 전달한 지도를 공개하면서 설 자리를 잃게 됐다. '남북경제공동체구상(안)' 문서에 포함되어 있는 '서해평화특별지대' 지도에는 노 전 대통령이 제안한 공동어로구역이 NLL를 기준으로 남북한 등면적으로 표시돼 있기 때문이다.

무엇보다도 윤 의원이 공개한 지도를 통해 국정원이나 정 의원 모두 결정적인 사실관계를 왜곡하고 있다는 사실이 드러났다.

노 전 대통령이 김 위원장이 주장하는 북한의 해상경계선에 동의해서 NLL수역을 포기했으며, 이 북한의 해상경계선이 바로 지난 1999년 9월 2일 북한이 일방적으로 선포했던 '서해해상군사경계선'라는 것이 국정원과 정 의원의 주장이다.

지난 10일 국가정보원 대변인 성명에 첨부된 지도. 국정원은 이날 노무현 전 대통령이 2007년 남북정상회담에서 서해 북방한계선(NLL)을 포기했다는 취지의 대변인 성명을 발표했다.
 지난 10일 국가정보원 대변인 성명에 첨부된 지도. 국정원은 이날 노무현 전 대통령이 2007년 남북정상회담에서 서해 북방한계선(NLL)을 포기했다는 취지의 대변인 성명을 발표했다.
ⓒ 국정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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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문헌 의원은 1999년 북한이 주장한 서해해상경계선과 NLL 사이에 서해평화지대가 만들어지는 것으로 생각했다. 이런 잘못된 이해 때문에 인천 앞바다가 위협받는다는 대국민 위협을 했다. 뿐만 아니라 남북이 협의하지도 않은 지역에 서해평화지대를 만드는 것에 노무현 대통령이 동의해주었다고 말하면서 노대통령이 NLL을 포기했다는 주장을 했다.
▲ 정문헌 의원이 주장하는 서해평화협력지대 범위 정문헌 의원은 1999년 북한이 주장한 서해해상경계선과 NLL 사이에 서해평화지대가 만들어지는 것으로 생각했다. 이런 잘못된 이해 때문에 인천 앞바다가 위협받는다는 대국민 위협을 했다. 뿐만 아니라 남북이 협의하지도 않은 지역에 서해평화지대를 만드는 것에 노무현 대통령이 동의해주었다고 말하면서 노대통령이 NLL을 포기했다는 주장을 했다.
ⓒ 윤호중 의원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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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히 정 의원은 ▲ 북한주장 해상경계선은 1999년 북한이 '조선 서해 해상군사분계선'이라는 이름으로 일방 선포한 것이고 ▲ 2007 남북정상회담 회의록에서 김정일은 "군사경계선" "경계선" 등으로 부르고 있다는 해제까지 붙여 자신의 논리를 뒷받침했다.

그런데 정상회담 당시 노 전 대통령이 김 위원장에게 전달한 지도, 이후 남북 국방장관회담시 우리 측 등면적 안이 명시된 지도, 심지어는 2007년 12월 열렸던 남북장성급군사회담에서 북측이 우리 쪽에 건넨 지도 어디에도 국정원이나 정 의원이 주장하는 '서해해상군사경계선'은 등장하지 않는다.

대신 이들 지도에는 '서해해상군사경계선'보다 한참 북쪽에 우리 측 합참통제선과 얼추 비슷하게 그려진 '경비계선'이 표시되어 있다. 이로 미루어 정상회담에서 김정일 위원장이 말한 군사경계선이란 바로 이 '경비계선'을 뜻하는 것임을 알 수 있다.

북한이 2006년부터 주장해온 '경비계선'은 '서해해상군사분계선'보다 한참 북쪽으로 물러난 것이지만, 참여정부는 NLL을 무력화 시킬 수 있다는 우려로 단 한 번도 북한이 주장한 경비계선을 인정한 적이 없다. 그런데도 국정원과 정 의원은 시종일관 1999년 북한이 선포한 해상군사분계선을 가지고 노무현 정부가 있지도 않은 이 선에 동의했다고 주장하고 있는 것이다.

국정원과 정 의원이 NLL 대화록의 문맥을 자르고 비틀어 '아전인수'식 궤변을 늘어놓는 억지 해석을 통해 노 전 대통령의 NLL 포기 발언을 기정사실화 하려 했던 증거들이다. 이는 더 나아가 허위사실 유포를 넘어 사실상의 이적행위를 했다는 지적까지 나오고 있다.

지도를 공개한 윤호중 의원은 "국정원과 새누리당 주장 가운데 노 전 대통령이 'NLL을 포기했다'는 것과 등면적 언급이 없었다는 부분 등에 대해서는 분명히 책임을 져야 할 것"이라며 "대북정보 업무를 하는 국정원과 MB 정부에서 통일비서관을 했던 정문헌 의원처럼 알 만한 사람이 '노 전 대통령이 인천앞바다까지 내주기로 동의해주고 왔다'는 거짓말을 한 것은 북측에 유리하게 해석될 말을 국가기관이 버젓이 했다는 점에서 놀라지 않을 수 없다"고 지적했다.


태그:#NL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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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 김도균 기자입니다. 어둠을 지키는 전선의 초병처럼, 저도 두 눈 부릅뜨고 권력을 감시하는 충실한 'Watchdog'이 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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