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인도네시아 빠난자칸 전망대에서 본 일출
▲ 일출 인도네시아 빠난자칸 전망대에서 본 일출
ⓒ 박설화

관련사진보기


'그래도 적도를 지나는 인도네시아인데 아무리 춥다고 해도 이방인에겐 서늘한 정도겠지'라는 생각은 오만이었다. 자와 섬의 동부에 있는 브로모 화산을 가기 위해 밤늦게 도착한 숙소에서는 이미 객들을 맞이하는 사람들의 옷차림이 예사롭지 않았다. 그리고 다음날, 숙소에서 저절로 이가 딱딱 부딪히는 경험을 하고 나왔을 때 모든 현지인들은 두꺼운 파카를 입고 있었다. 일출을 보고 브로모 화산으로 갈 사람들을, 팀으로 꾸려서 4륜구동 자동차로 이동시켜줄 운전기사도 마찬가지였다.

일출의 순간은 짧다. 설령 전세계의 사람들이 모여든다 해도...
▲ 일출의 찰나 일출의 순간은 짧다. 설령 전세계의 사람들이 모여든다 해도...
ⓒ 박설화

관련사진보기


전망대에서 보이는 브로모 화산과 바톡 화산
▲ 화산 전망대에서 보이는 브로모 화산과 바톡 화산
ⓒ 박설화

관련사진보기


브로모 화산을 가기 전, 근처의 빠난자칸 산의 전망대로 향했다. 세계최고의 일출이라고도 일컬어지는 이곳을 BBC의 자연사팀(NHU)의 수석 프로듀서, 마이클 브라이트는 '죽기 전에꼭 봐야 할 자연 절경 1001'에서 소개하기도 했다. 도대체 어떤 곳이기에 2011년도에 실제로 폭발을 한 브로모가 있는 이곳에 전 세계 사람들은 모여드는 걸까.

깜깜한 새벽 3시 반의 산길을 자동차 헤드라이트에만 의지해서 가는 길이 자못 두근거린다. 근방이 깜깜해서 아무것도 보이지 않다가, 커브를 트는 순간 헤드라이트에 바로 옆이 낭떠러지인 것이 보인다! 손잡이를 잡은 손에 힘이 들어가는 순간이다. 그래도 여전히 깜깜한 새벽의 산길엔 긴 4륜구동 자동차의 라이트 행렬이 이어진다.

빠난자칸 전망대에서 일출을 보는 순간, 잠시 추위는 잊는다.
▲ 일출을 보는 사람들 빠난자칸 전망대에서 일출을 보는 순간, 잠시 추위는 잊는다.
ⓒ 박설화

관련사진보기


빠난자칸 전망대에서 보이는 활화산들.
▲ 화산들 빠난자칸 전망대에서 보이는 활화산들.
ⓒ 박설화

관련사진보기


인도네시아 최대 주차전쟁이 벌어지는 곳은 여기다. 일출을 보고 내려오는 사람들을 위해 가장 가까운 곳에 주차를 하는 것은, 출발시간과 기사의 주차기술이 절대적으로 영향을 미친다. 그 좁은 산길에 다닥다닥 정렬되어가는 차는 늘어만 간다. 산 속의 주차난은 전문가들에게 맡기고 사람들은 각자의 의미 있는 일출을 기대하며 길을 나선다. 이미 자동차로 올라왔기 때문에 걸어야 하는 시간은 10분 남짓. 전망대에 먼저 도착한 사람들은 선점한 자리에서 일출을 즐기기 위해 착 달라붙어있다.

뜻 깊은 순간을 의미있는 사람들과 공유하는 여행자들
▲ 여행자들 뜻 깊은 순간을 의미있는 사람들과 공유하는 여행자들
ⓒ 박설화

관련사진보기


화산재가 쌓인 흑색의 평지.
▲ 브로모를 가는 사람들 화산재가 쌓인 흑색의 평지.
ⓒ 박설화

관련사진보기


한 30여분을 기다렸을까? 멀게만 느껴지던 컴컴한 하늘이 색을 띠기 시작한다. 뿌옇던 노란색에서 주황색을 띠고 푸르스름한 기운이 주위를 비춘다. 황홀한 새벽의 색깔이다. 그리고 오른쪽에 위치한 바톡산과 브로모 화산의 주름이 점차 또렷하게 보인다.

언제나 찬란한 순간은 금방이다. 금세 세상은 밝아졌고 주위 산들의 주름 잡힌 세월의 흔적이 드러날 때 즈음 사람들은 상념에서 빠져 나와야 했다. 전 세계 각지에서 여행자들이 발걸음을 했다고 해서 그곳의 일출이 더 길어지진 않는다. 그리고 너무나 비현실적이나 분명 우리 앞에 존재하고 있는 자연 앞에선, 늘 그렇듯이 사람들은 숙연해진다. 이 순간만큼은 자신들이 가진 번뇌와 아픔이 무의미하기 때문이다. 위대한 자연을 끊임없이 찾는 가장 큰 이유일 것이다.

바톡산을 배경으로 손님을 기다리는 동물들.
▲ 손님을 기다리는 말과 동키 바톡산을 배경으로 손님을 기다리는 동물들.
ⓒ 박설화

관련사진보기


브로모 화산까지 갈 수 있는 계단
▲ 계단을 오르는 사람들 브로모 화산까지 갈 수 있는 계단
ⓒ 박설화

관련사진보기


내려오는 길, 군불에 구워진 옥수수를 샀다. 입가에 묻은 검댕이 부끄러운 줄 모르고 배고픔을 달랜다. 그리고 신들이 살고 있다는 브로모로 이동했다. 차를 타고 이동하는 내내 길은 검은 모래다. 자세히 보니 모래라기보다는 고운 가루에 가깝다. 화산재가 오랫동안 쌓인 그것이다.

일출을 보았던 그 곳에서처럼 각자 본인들의 손님을 태웠던 자동차들이 정렬되어있다. 그리고 광활한 회색빛의 땅을 걷는 사람들의 행렬이 보인다. 덩그러니 있는 사원 하나와 손님들을 기다리는 말과 동키들이 보인다. 몇 동물들은 타기도 미안할 만큼 날씬한 몸을 가졌지만 주인을 위해서 손님을 태우고 가열차게 둔덕을 오른다.

얼마 못 가 헥헥 거리며 힘들어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세상을 걸어본 경험이 오래되지 않았을 외국인 아기들도 부모의 손을 잡고 계단을 잘도 오른다. 저 아기들은 커서 사진으로나 기억하겠지만, 부모의 손을 잡고 함께한 이 여행은 아이들의 자아의 한 축을 이룰 것이다.

2011년도에 실제로 폭발하기도 했던 이곳은 유황가스와 연기가 쉴 새 없이 나온다.
▲ 브로모 화산 2011년도에 실제로 폭발하기도 했던 이 곳은 유황가스와 연기가 쉴 새없이 나온다.
ⓒ 박설화

관련사진보기


중간쯤에 땀을 닦으며 무심코 돌아본 시야엔 바톡 산과 광활한 화산재의 땅, 그리고 그 곳을 가로지르는 사람들이 보인다. 유황냄새는 차에서 내리자마자 났지만 정상으로 오를수록 냄새가 강해졌다. 그래서 그런지 올라오는 많은 사람들은 날리는 화산재와 유황냄새를 피하고자 모자와 마스크를 착용하고 있다. 실제로 이곳은 2011년도에 화산이 폭발했었고 현재도 인도네시아 정부는 화산의 상태를 체크하여 관광객들의 방문을 조절한다.

드디어 정상에 도착했다. 그리고 정상에 도착하면 사람들은 느끼게 된다.

왜 그곳이 신들이 사는 곳인지. 존재를 증명이라도 하듯, 끊임없이 올라오는 유황냄새와 눈으로 확인되는 거대한 연기가 영험한 분위기를 자아낸다. 흡사 지옥으로 통하는 통로라 해도 끄덕여질 만한 광경이다. 그래서 그런지 가늠할 수 없는 두려움도 느껴진다. 너무나 비현실적인 자연과의 경계가 줄 하나라서일까. 다리가 떨린다며 그 앞에 서서 보지 못하는 사람들도 있다.

브로모 화산 주위의 산간마을은 비옥하여 계단식 논과 밭을 형성하고 있다.
▲ 인도네시아 산간마을 브로모 화산 주위의 산간마을은 비옥하여 계단식 논과 밭을 형성하고 있다.
ⓒ 박설화

관련사진보기


자연에 대한 두려움이란 감정은 인간이 자연에 순응하며 조화롭게 살도록 한다. 맞서서 변화시키고자 하는 것보다 순응하며 자연의 섭리를 받아들이고 조화로울 수 있는 방법을 찾는 것이 오래가는 방법이다.

현지인들은 그들의 전설에 의해 오랫동안 이곳에 치성으로 의식을 거행했다고 한다. 특정 날짜에 분화구를 향해 꽃과 음식과 심지어는 가축까지도 제물로 받친 이곳. 어쩌면 그래서 신들은 이곳을 농사에 적합한 비옥한 토양으로 보답하는지도 모른다. 인간들이 떠날 수 없도록…. 

덧붙이는 글 | 이 여행기는 2012년 4월부터 2013년 4월에 걸친 2회의 인도네시아 종단여행을 바탕으로 합니다. 현지 장소의 표기는 현지에서 이용하는 발음을 기준으로 합니다.



태그:#브로모 화산, #바톡 산, #인도네시아 자연, #죽기전에 가봐야 할 장소, #세계여행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아프리카를 담은 사진에세이 [same same but Different]의 저자 박설화입니다.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