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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6월 26일, 17개 로스쿨의 인권법학회에서 국정원 선거개입 의혹 사태에 대한 시국선언을 함께 발표했다. 3주 정도의 시간이 지난 지금, 국정조사가 제대로 시작조차 되지 않고 있어 답답한 마음 여전하다. 시국선언에 참여한 로스쿨 재학생으로서 어떤 과정을 거쳐 성명서가 발표되었는지, 그 과정을 통해 뭘 느꼈는지 소회를 짧게나마 이야기해보고자 한다.

17개 학교 로스쿨 인권법학회가 시국선언에 참여한 이유

국정원 대선 개입을 규탄하는 총학생회 시국선언과 종교계, 시민사회단체의 참여가 늘어나고 있는 가운데,  6월 22일 오후 서울 중구 파이낸스센터 앞에서 청년이그나이트 주최로 열린 국정원 규탄 집회에 참석한 학생과 시민들이 국정원 대선 개입에 대한 국정조사 실시와 박근혜 대통령의 입장 표명을 촉구하고 있다.
▲ 국정원 규탄집회, "국정원 댓글왕" 국정원 대선 개입을 규탄하는 총학생회 시국선언과 종교계, 시민사회단체의 참여가 늘어나고 있는 가운데, 6월 22일 오후 서울 중구 파이낸스센터 앞에서 청년이그나이트 주최로 열린 국정원 규탄 집회에 참석한 학생과 시민들이 국정원 대선 개입에 대한 국정조사 실시와 박근혜 대통령의 입장 표명을 촉구하고 있다.
ⓒ 유성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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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정원이 소위 '댓글작업'을 통해서 지난 대선에 개입했다는 검찰 수사결과를 접하면서, '어떻게 요즘 같은 때에 이런 일이 벌어질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을 했었다. 댓글로 여론을 몰아가면 선거의 흐름을 좌우할 수 있다고 믿을 만큼 국민들을 우습게 본 걸까? 국민들의 주권행사에 국가기관이 이렇게 아무런 문제의식 없이 '개입' 하고자 하는 시도를 할 수 있는 건가? 헌법에 근거해서 그 존립의 정당성을 인정받는 국가기관이 어떻게 헌법의 근간을 흔드는 행위를 서슴없이 할 수 있는 것인가?

그러던 중 인하대학교 로스쿨 인권법학회에서 시국선언을 하기로 했는데, 다른 학교 학회들에서도 동의가 된다면 함께 연서해 발표하는 것이 어떻겠냐는 제안을 받게 되었다.

제안 받은 학교들 사이에서 3~4일간 논의가 진행되고 동의된 6개 학교(인하대, 서강대, 서울시립대, 전남대, 한국외대, 한양대)의 연서로 우선 1차 성명이 발표됐다. 학회 구성원들이 한자리에 모이는 것이 쉽지 않은 현실에서 이렇게 빠른 시일에 합의 결과가 나온다는 것을 로스쿨에서 처음 경험하면서, 그만큼 사태가 심각하다는 것도, 사람들의 분노가 크다는 것도 다시 한 번 느낄 수 있었다.

한편, 연서에 함께 하지 못한 학교 중에는 1학기 기말고사 기간과 논의일정이 겹친 곳들이 있어 1차 발표 후  다시 한 번 회의가 이루어졌다. 결과적으로 앞서 발표한 6개 학교에 11개 학교가 합세해(건국대, 동아대, 서울대, 아주대, 원광대, 이화여대, 제주대, 전북대, 중앙대, 충남대, 충북대) 17개 학교의 인권법학회가 연서하여 시국선언을 하게 됐다. 그리고 비록 발표 당시 함께 하지는 못했지만 이후 논의를 거쳐서 부산대와 경북대의 노동법학회도 연서에 동의한다는 의결을 하였다. 의사 정족수를 채우지 못해 연서에 함께 하지 못했지만 그 뜻에 공감하고 함께 하려고 했던 사람들의 뜻을 같이 나누었으면 좋겠다, 함께 하지 못해 아쉽다는 이야기들을 전해 듣기도 했다.

충분히 공감하고 함께 분노하고 있음에도 함께 할 수 있는 기회를 쉽게 가질 수 없는 상황이, 우리를 자꾸만 소극적으로 만들고 있는 것은 아닌지. 현실에서 벌어지고 있는 문제에 대해 적극적으로 의견을 표명할 수 있고, 나아가 이것을 혼자가 아닌 '우리'라는 이름으로 함께 할 수 있음에 벅차고 설레는 감정을 오랜만에 경험할 수 있었다.

6개의 학교가 연서를 발표한 즈음, 인하대에 국정원 측의 연락이 왔었다는 소식을 듣게 되었다. 인하대 인권법학회에서 제안을 해서 시국선언을 진행하게 되었다는 것을 대외적으로 이야기한 적이 없음에도, 연서한 학교들 중 유독 인하대에만 국정원이 학교를 통해 학회장에게 연락을 한 것이다. 시국선언 관련 국정원이 인하대 학회장에게 이것저것 물어보는 연락을 했다는 사실에 우리는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우리도 모르는 사이에 이런 일상적인 감시가 이루어지고 있고, 우연히 이번에 드러나게 된 것은 아니었을까? 1970년대 중앙정보부시절부터 그래왔으니 그럴 수도 있다고 그저 간과해왔던 것은 아닐까? 국정원은 무엇을 위해 존재하는 곳일까? 민주주의의 근간을 흔드는 행위를 한 자들의 엄정한 책임을 묻고 국정원을 개혁해야 한다고 이야기했지만, 정말 그 개혁이 제대로 이루어질 수 있을까? 많은 것이 달라지고 바로 서야 한다고 생각하면서도 밀려드는 불신과 회의에 잠시 혼란스러웠다.

며칠이 지난 7월 4일, 43기 사법연수원생 95명이 검찰총장에게 국정원 사건에 대한 철저한 수사와 엄정한 공소유지를 촉구하는 의견서를 대검찰청 민원실을 통해 제출했다. 2003년 이라크 파병 이후 사법연수원생들의 입장 표명은 처음 있는 일이다.

"…이 사건은 결코 선처돼서는 안 될 매우 중대한 헌정파괴 범죄임을 감안해 우리 사법체계가 상정하고 있는 합당한 처단을 받을 수 있도록 끝까지 힘써 주기 바란다.…이번 사태가 올바르게 해결됨으로써 민주적 기본질서와 법치주의가 제자리를 찾고 차후 헌정문란 범죄의 유혹을 느끼는 모든 사람들에게 분명한 경고를 해 줄 수 있기를 간절히 염원한다.…"(43기 사법연수원생 95명 성명서 중 )

사법연수원생 95명의 시국선언은 그만큼 이 문제가 중대하고 심각하다는 것을 보여준다고할 수 있다. 특히 사법연수원생들의 경우 공무원 신분이기 때문에 입장을 표명하는데 많은 제약이 따르고 스스로 감수해야하는 위험이 클 수 있음에도 그들은 쉽지 않은 결단을 보여주었다는 점에서 의미 있는 행동이 아닐까 싶다. 현실을 외면하지 않고 당당하게 의견을 표명하는 그들의 모습에서 다시 한 번 혼자가 아닌 '우리'라면 할 수 있는 것들이 훨씬 많아질 수 있다는 생각을 했다.

'셀프' 개혁 과연 가능할까

'국정원에 납치된 민주주의를 찾습니다 2차 촛불문화제'가 6일 오후 서울시청앞 서울광장에서 '국정원 대선개입과 정치개입 진상 및 축소은폐 규명을 위한시민사회단체 긴급 시국회의' 주최로 열리고 있다.
▲ 국정원 대선개입 규탄 2차 대규모 촛불집회 '국정원에 납치된 민주주의를 찾습니다 2차 촛불문화제'가 6일 오후 서울시청앞 서울광장에서 '국정원 대선개입과 정치개입 진상 및 축소은폐 규명을 위한시민사회단체 긴급 시국회의' 주최로 열리고 있다.
ⓒ 권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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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개 로스쿨의 인권법학회에서 시국선언을 함께 하고 3주 정도의 시간이 흐른 지금, 과연 무엇이 달라졌을까? 진상규명을 하라했더니 국정원은 2007년 남북정상회담 회의록 공개를 통해 NLL 발언 해석을 내놓고 선거개입의혹과 전혀 관계없는 사안과의 물타기를 끊임없이 시도하고 있다. 헌법에 근거하여 정당하게 존립하는 국가기관이 되도록 국정원을 철저하게 개혁하라했더니, 그들은 '셀프개혁'을 하겠다고 나서고 있다. 헌정질서 문란이라는 중대한 범죄의 의혹을 받고 있는 당사자인 국정원이, 정보수집에서 나아가 스스로 해석까지 도맡아 하는 그야말로 무소불위의 권력을 휘두르고 있는 셈이다.

이들이 과연 스스로를 개혁할 의지와 능력이 있다고 볼 수 있을까? 회사재산을 횡령하여 자식들에게 편법적으로 물려주는 기업가에게, 다시는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회사 내부 단속을 잘 하라고 하면 알아서 그들이 '셀프' 개혁을 할 수 있을까?

매일 저녁 광화문에 진상규명과 국정원 개혁을 요구하는 수많은 촛불이 모이고 있지만, 이에 대해 언론은 보도조차 제대로 하지 않고 있다. 하지만 보이는 것이 전부는 아니다. 수많은 국민들이 이 사태에 분노하고 철저한 진상규명과 국정원의 개혁을 원하고 있다는 사실은 변함 없기 때문이다. 국민의 뜻을 가장 존중하고 두려워할 때 국가가 바로 설 수 있다. 철저하고 신중한 국정조사와 국정원의 개혁, 그리고 대통령을 비롯한 국가기관들의 책임 있는 모습을 기대하는 건 너무 지나친 욕심일까?


태그:#국정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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