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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지호/ 문학동네/ 가격 15,000원
▲ 방랑식객 임지호/ 문학동네/ 가격 15,000원
ⓒ 문학동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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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생명이 그곳에 뿌리를 내렸다면 분명 그만한 이유가 있고, 그 이유를 알고 이용할 줄 알면 우리는 그 이(利)를 취할 수 있다.

풀 한 포기 꽃 한 송이도 인간과 똑같이 제 나름의 해석을 갖고 있다. 그것에 땅에 대한, 우주에 대한 각각의 해석이면 몸으로, 생김으로, 색으로 다 표현된다. 온 산의 풀이 약이다. 자연이 만든 밥상이 우리를 살린다. - 본문 중에서

지난 7월 8일 SBS <힐링 캠프>를 통해서 방랑 식객 임지호를 처음으로 알았다. 그에 대한 사전지식이 전무했던 나로서는 그의 개인적인 방랑벽(?)은 받아들이기 쉽지 않은 문제였다.

자신의 하고 싶은 일을 위해, 가족 구성원 누군가의 희생이 담보된다면 삶의 책임성에서 무책임하게 다가올 수도 있었기 때문이다. 그 면에서는 생각이 달랐지만, 자기가 하고 싶은 일을 향해서 저돌적으로 달려가는 모습은 아직도 실행하지 못했으며 앞으로도 실행하기 어려운 나의 꿈이기도 하다.

그에게 먹을 수 없는 것은 없다, 안 먹는 것이 있을 뿐이다

그의 요리재료는 주변의 온갖 풀들이며 잡초들이다. 감히 먹을 수 없을 것 같은 온갖 재료들의 그의 요리재료가 되고, 그것은 단 하나의 요리로 탄생한다. 오로지 그 사람을 위한, 단 하나의 요리가 완성되는 것이다. 그가 요리의 재료로 사용되는 것들은 거반 내가 알고 있는 것들이었다. 물론, 내가 안다는 것은 아주 일부로, 이름 정도와 몇몇 특성과 사진으로 자료를 가지고 있다는 정도다.

무수하게 만났던 것 중에는 밥상에 올라온 것도 있었지만, 어떻게 먹어야 하는지 몰랐기에 대부분 눈요기로 그친 것이 대부분이다. 반드시 먹어야만 제대로 아는 것은 아니겠지만, <방랑식객-생명 한 그릇 자연 한 접시>를 읽고, '그때 알았더라면 한 번쯤은 먹어봤을 것을' 하는 생각과 동시에 기회가 되면 '나도 한 번 응용해서 밥상에 올려봐야지' 하는 생각을 했다는 것이다.

요리란, 우주의 재료에 영혼을 보태는 작업이다

프롤로그에 "요리란 물, 바람, 불, 빛을 담은 우주의 재료에 영혼을 보태는 작업이다"는 말이 있다. 풀 한 포기에도 온 우주의 기운이 들어있다는 것은 진실이다. 문제는, 어떤 것을 어떤 방식으로 먹을 수 있느냐는 것이다. 여러 가지 다양한 재료로 요리한 글들을 보면서도 결국 나도 언젠가 그런 기회가 있을 때 요리를 할 수 있는 것들이나 한번 시도해 봐야겠다는 것은 서너 가지 정도에 국한되었다.

그럼에도 음식에 대한 중요한 통찰력들이 이 책에는 들어있으며, 우리의 음식문화에 대해서도 진지하게 다시 생각해 봐야 할 내용이 이 책에는 풍성하다.

코딱지풀이라도고 한다. 이 풀이 귀한 요리의 재료가 된다고 생각도 못했다.
▲ 광대나물 코딱지풀이라도고 한다. 이 풀이 귀한 요리의 재료가 된다고 생각도 못했다.
ⓒ 김민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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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 먹는 것과 못 먹는 것'이라는 섹션에서는 광대나물이 등장한다. 코딱지풀이라고 불리는 앙증맞은 꽃이다. 된장국에 넣어 먹는다는 이야기는 들었지만, 온통 보랏빛으로 하늘거리는 꽃밭에 섰을 때에도, 텃밭을 점령한 광대나물을 뽑아내면서 '어찌 이리도 실할까?' 하면서도 단 한 번도 그를 먹어본 적이 없다. "이름에 '나물'이 들어있으니 먹는 것 아니냐?"는 지인의 질문에 대해서도 그저 "그럴지도 모르죠. 그런데 먹는 방법을 몰라요"라고 얼버무린 적이 있었다.

아마 그때 이 책을 만났더라면 "여린 순은 생채로 버무려 먹고요, 데쳐서 묵나물로도 먹을 수 있어요"라고 대답했을 것이고, 분명히 한 번쯤은 밥상에 올렸을 것이다. 그리고 난생처음 먹는 음식이기에 내가 먼저 시식을 한 후 하루가 지나도 별 탈이 없으면 식구들에게 권했을 것이다. 내년 봄에는 기어이 광대나물을 먹어보리라.

제주도 해안가에 지천이던 번행초, 씨앗은 익으면 굉장이 딱딱하다.
▲ 번행초 제주도 해안가에 지천이던 번행초, 씨앗은 익으면 굉장이 딱딱하다.
ⓒ 김민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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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 올레길을 걸으며 만난 사람들에게 해준 요리들을 소개하는 곳에서는 아주 반가운 풀도 만났다. 번행초다. 이 책에서는 부각으로 요리했지만, 나는 주로 데쳐서 무쳐 먹었다. 제주도 해안가에는 번행초가 무성졌다. 저것이 먹을 수 있는 나물이라면 참 좋겠다고 생각했는데, 육지로 치면 '시금치'요, 조리법도 그와 비슷하다는 이야기를 듣고 한움큼 뜯어와 살짝 데쳐서 버무려 시식했다. 맨 처음에는 독초가 아니냐며 의구심을 드러내던 아내도 그 아삭한 맛에 반해 당장 번행초를 하러 바다에 나가자고 했다.

아이들도 맛나게 먹었다. 문제는 씨앗이 무척 딱딱한데 어느 날인가는 씨앗이 들어있었나 보다. 이가 약한 내 이빨이 번행초 씨앗에 졌다. 부러진 것이다. 제주도에서 처음으로 먹어본 번행초, 그리고 지인이 구해온 갯취쌈의 맛에 취해 나는 이빨을 온전하게 하나를 잃었다. 갯취는 삼겹살을 싸먹으면 기가 막힌 맛을 내는데 너무 맛나게 먹다 삼겹살의 오돌 뼈를 어긋나게 씹으면서 번행초가 깨어놓은 이빨을 온전히 잃은 것이다. 덕분에 이를 새로 박을 수밖에 없었지만, 거반 10년이 넘었건만 그 맛이 이 책을 읽으면서 입안에 싸하게 퍼진다.

다섯살 전에 다양한 맛을 경험하게 하라

이렇게 한 번 우리 몸에 입력된 맛은 우리의 몸 어딘가에 남아있다. 그것은 결국 식습관과도 밀접한 관련이 있다. 그래서 임지호는 다섯 살 이전에 다양한 음식을 맛 볼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한다.

그리고 로컬 푸드 개념과는 조금 다른 입장인 듯 보이지만, 인근 10km 이내에서 구하는 재료가 가장 좋은 식재료가 될 수 있다고 말한다. 그것 역시도 사람이 사는 곳의 우주적인 기운과 그들이 자라는 곳의 우주적인 기운이 합일적인 측면에서 본다면 맞는 말이라 생각한다.

이 책을 읽고 아직은 먹어보지 못했지만, 꼭 시도해 보고 싶은 것이 생겼다. 이번 여름휴가 때 가능하지 않을까 싶은데 소나무와 솔잎과 솔방울을 삶아 차로도 마시고, 밥을 지을 때 응용해 보고 싶은 것이 그 하나이며, 낙엽 차도 그 중 하나이다. 떨어진 낙엽에는 독소가 없다고 하니, 그 맛이 어떤지 꼭 알고 싶은 까닭이다. 그는 자연에서 음식재료를 구할 때 자연에 대한 예의를 지켜야 한다고 말한다.

"나무야 고맙다, 나도 조금 먹을게…… 들풀아 고맙다, 필요한 사람이 있으니 조금만 빌려 갈게……"

이런 마음은 감나무에서 감을 얻으며 "나만을 위한 것이 아니라 햇볕과 바람이 만들어 낸 우리 모두의 감이었다"라고 고백하는 그의 마음에서도 드러난다. 그는 갯벌도 요리재료로 사용하는데 "갯벌을 먹는 것은 생명의 역사, 생명의 근원을 먹는 것이다"라고 말한다.

그의 음식엔 철학과 인문학이 담겨있다

그의 음식에는 철학이 담겨있고, 인문학이 담겨있다. 더욱이 반가운 것은 우리 주변에서 잡초라고 불리는 모든 것들이 이렇게 소중한 존재라는 증거를 음식을 통해서 드러낸다는 점에서 더욱더 깊은 감동을 준다. 고작 말로, 사진으로, 그림으로 그들의 소중함을 이야기하는 것보다 몸에 모시는 과정을 통해서 그들의 소중함을 느끼는 것만큼 직접적인 체험은 없을 것이다.

그리하여 잡초로 만든 요리를 먹은 이들이 이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것들은 다 소중한 것이라는 근본을 몸으로 체득할 때, 잡초들과의 관계만이 아니라 사람과의 관계도 그렇게 되지 않을까 하는 그런 생각이 문득 든다. 기분 좋은 책이다. 내가 그런 음식을 먹을 수 없을 수도 있고, 혹은 한두 가지 정도는 응용해서 먹을 수 있을지도 모르겠지만, 우리가 먹어야 할 음식은 어떤 것인지에 대한 답이 여기에 나와 있다.

오지랖 넓게 개인적인 가정사까지 걱정(?)하기도 했지만, 그런 비범한 방랑 식객이 있어 범인들이 접할 수 없는 경지를 맛볼 수 있으니 그 또한 좋은 일이 아닐까 싶다. 이 책에는 특별히 아토피를 앓고 있는 아이들에게 해준 음식 이야기들이 많이 소개되어 있다. 이 책에 소개된 수많은 식물은 내게는 아주 익숙한 이름들이다. 그런데 먹어본 것은 그다지 많지가 않고, 약재로는 사용할지언정 음식으로는 먹을 것으로 생각조차 하지 않았던 것들이 음식의 재료가 된다는 사실을 알았다. 음식이 바로 보약인데, 나는 이렇게 평범한 사실을 종종 잊고 살아간다.

무엇을 먹어야 할까? 어떤 음식이 나를 살릴 수 있고, 우리의 아이들에게 먹여야 하는지에 대한 지침서와도 같은 책, 지리산, 제주도, 백두산, 일본을 방랑하며 만든 요리와 사람들과 그가 만든 풀들에 관한 이야기에 답이 있다.


방랑식객 - 생명 한 그릇 자연 한 접시

SBS 스페셜 방랑식객 제작팀 지음, 문학동네(2011)


태그:#임지호, #방랑 식객, #광대나물, #번행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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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을 소재로 사진담고 글쓰는 일을 좋아한다. 최근작 <들꽃, 나도 너처럼 피어나고 싶다>가 있으며, 사는 이야기에 관심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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